그녀는 왜 연쇄살인범이 되었나
슈테판 하르보르트 지음, 김희상 옮김 / 알마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이상 심리 [그녀는 왜 연쇄살인범이 되었나] 슈테판 하르보르트, 알마,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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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도발적인 책이다. 그냥 살인범도 아니고, 연쇄살인범. 심리학 관련된 서적을 읽는 을 좋아하지만, 적당한 심리학 책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다. 수많은 심리학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사회적 맥락을 분석하는 것에 중점하기 보다, 자기개발서에 가까운 책들도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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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나 학문적인 성취도의 문제가 아니다. 책값은 맥주 한 잔 덜 먹으면 되고, 학자가 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니 성취도 따위는 관심이 없다. 문제는 시간이다. 얼마 전에 우리를 떠난 스티브 잡스를 보면서, 돈이 많은 시대의 영웅이라도 죽음이라는 덫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극히 개인적 기준으로 책을 선택할 때, 첫째 고려하는 것은 당연히 글쓴이다. 하지만 이 책처럼 저자가 생소한 인물이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둘째 출판사이다. 지금까지 알마의 책을 읽어보고 후회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이 책을 독서목록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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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중소 전문 출판사가 많이 생겨야 한다. 지금의 현실은 반대다. 중소 전문 출판사들이 연이어 문을 닫고 있다. 물론 기업 경영의 실패로 볼 수도 있지만, 책을 사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도 큰 문제다. 책 뒤편에 보면, 알마는 문학동네의 계열사이다. 대그룹의 계열사처럼 독자적인 건물에 많은 직원이 있는 회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문학동네 건물 안에 사무실 하나와 몇 명의 직원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메이저에 속하지만, 독자적인 편집권을 가지고 있고 한다. 즉 메이저의 편이를 이용하는 전문 출판팀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 책처럼 많이 팔릴 것 같지는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다양한 책들을 출판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나는 문학동네에 아는 사람도 없고, 출판업계 사람도 아니다. 이 책도 출판사에서 받은 것이 아니라, 인터넷 카페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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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살인은 충격만이 아니라, 증오까지 불러일으킨다. 사회의 관습을 깨고 모성애라는 여성성을 더럽혔다고 해서 악함의 대명사로 불리는 동시에 증오의 대상으로 내몰리고 마는 것이다. (중략) 대개 여성의 폭력은 동반자나 친자식을 상대로 저질러진다. 여성은 남성이 지나치게 지배하는 상황에 대해 필요하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깨뜨리려 한다. (중략)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더욱 중요한 주제는 여성이 살인을 저지르는 범죄 성향이 갖는 특수성이다. (중략) 소명의식을 가지고 간호사나 간병인이 된 여성이 그처럼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중략) 일반적으로 이런 곳에서는 그 범행 당사자가 쉽게 혐의를 받을 수 있음에도 많은 희생자를 낳는 연쇄 살인이 거리낌 없이 자행되고 있다. (중략) 이런 물음을 차례로 쫓아가다 보면, 여성 살인범의 사악함이란 일종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들어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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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살인범의 사악함이란 환상이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여성 범죄자는 [장화홍련전]에 나오는 계모다. 물론 신동흔 교수의 [프로이트, 심청을 만나다]를 읽어보면, 색다른 해석을 볼 수 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 색다른 해석이 아니라, 옛날부터 여성 살인범은 사악하다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처럼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1947년 독일 엘름스호른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범죄의 천국인 미국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배경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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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동기의 성격에서 찾아볼 수 있는 주요한 차이점은 여성의 경우 대개 관계가 엇나가면서 빚어지는 문제라는 사실이다. 여성이 범인인 살인 사건에 희생자는 주로 남편이나 애인 또는 자신의 아이다. 반대로 남성 범인은 주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가족 바깥에서 살인을 저지른다. 그리고 희생을 당하는 쪽도 대개 남성이다. 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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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성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이성 파트너를 과감하게 살해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지적인 수준이나 사회적 위상 혹은 출신가문의 가세 정도가 살해충동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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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남편이 모르는 애인이 생겨 삼각관계가 될 때, 남편은 특히 위험해진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은 성가신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이미 몸과 마음은 다른 남자에게 가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은 당연한 권리처럼 사랑을 요구한다. 그러다가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듯 남편은 음험한 음모의 제물로 희생당하고 만다.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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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소개된 사건처럼 여성이 저지르는 살인의 대부분은 남자와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안간힘에서 빚어지는 범행이라고 한다. 범인과 희생자 사이를 묶어주던 사랑이라는 끈은 결국 희생자의 목을 조르고, 범인의 영혼을 묶어 버린다. 여기까지는 내가 지금까지 생각한 것과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남녀평등이라는 사회적 맥락으로 다시 이 문제를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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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범행으로 관계는 더욱 엇나가고 결국 파국에 이른다. 대개의 여성은 이런 자결권과 독립성을 단 한 번도 누려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이를 빼앗기는 삶을 살도록 남성에게 강요받아왔다. (중략) 여자는 보통 싸우고 난 뒤 은밀한 계획을 세워 남자를 죽이는 탓에, 싸움 직후 충동적으로 여자를 죽이는 남자에 비해 더 심한 처벌을 받는다. 이에 반해 남자는 우발적으로 저지른 짓이라며 온정을 호소하는 웃지 못할 코미디를 연출한다. 불화와 갈등이라는 동기가 같고 사람을 죽였다는 똑같은 결과를 놓고도 남성은 우대를 받고, 여성은 더욱 극악한 범인이 되고 만다. (나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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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쓰인 것 외에 저자에 대해서 더 알지는 못하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 남자의 입장에서, 다소 억울하고 지금 옆에서 자는 그녀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게 된다. 하지만 우리 남성은 작가의 의견에 지지를 보내야 한다. 한 여자의 애인이나 남편이기 전에, 딸의 아빠이거나 오빠, 남동생, 엄마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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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여자로 키워지는 것일 뿐이다.

- [제2의 성]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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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2011.10.25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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