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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끝에 사람이
전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평점 :
바늘 끝에 사람이 있다.
대감댁 노비가 낫다고 말하는 선배에게 주안이는 "우리(노동자)는 노비가 아니잖아요"라고 말한다. "노비도 아니고, 회사 소유물도 아니고, 일 시킬 대만 전원 넣고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기계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회사는 자꾸 우리를 그렇게 취급하려고 하잖아요. 그러면 안 된는 거잖아요." 이 당연한 말을 했던 주안이는 죽었고 선배는 지상에서 7만 2천 킬로미터 위, 카운터웨이트 꼭대기에 홀로 남아 당연한 권리 보장을 요구하며 싸운다.
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노동자의 권리, 최소한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존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바늘 끝에서 위태롭게, 홀로 버텨야 할까. 회사와 노동자의 싸움, 갈등이라고, 누군가는 쉽게 '밥그릇 싸움'이라고 치부해 버리기도 하지만 이건 그들의 일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문제가 아닐까. 당연한 걸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오려면,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도 없는 세상이 오려면 얼마나 더 죽고 다치고 싸워야 할까. 바늘 끝에 더 이상 사람이 서 있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긴 올까.
피해자의 목숨보다 가해자의 앞날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창백해질 수밖에 없는 눈송이들
"야, 죽으면 다 소용없다. 그 병장 놈이 그렇게 대단한 집안 자식도 아니야. 그런데도 공군사관학교를 나온 장교의 죽음보다도 살아 있는 놈의 앞날이 더 중요한 거야." "살아 있어서가 아니라 남자라서 중요한 거엿겠죠." 유진은 무심결에 반박했다. (283)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가해자의 이름들. 하지만 남은 사람들과 가해자들은 그들의 '앞날'을 더 걱정한다. 피해자에게도 살아갈 미래가 있었다는 걸, 어쩌면 가해자들보다 더 창창한 앞날이 있었다는 걸 가해자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거나 아예 생각조차하지 않는다. 가해자의 '앞날'을 완전히 망쳐버려야 한다는 게 아니다. 잘못에 대한 정당한 처벌을 하길 원하는 거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목숨으로 요구해야 할 만큼. 그래도 실현되지 않을 만큼. 그런 세상에서 점점 더 늘어날 창백한 눈송이들이 걱정된다.
모를 수는 있어도 잘못 아는 건 안 된다.
"제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엄마가 그렇게 알고 있었대요. 뉴스에서 그렇게 말하니까."
"모르는 건 모를 수 있어. 그런데 잘못 아는 건 안 된다는 거야." (327)
모르는 것도 죄일까. 모르는 게 죄라고 말할 순 없겠지만 잘못 아는 건 죄가 될 수 있다. 또 잘못 알고 있는 걸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잘못된 걸 여기저기 '진실'인 것처럼 퍼뜨린다면 분명히 죄다. 어쩌면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가짜 진실(거짓) 너머의 진짜 진실을 (의식, 무의식적으로) 외면하는 것도 죄다. 왜냐하면 그 '가짜 진실'때문에 여전히 고통받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기 때문이다.
영원히 이어질 기록으로 하는 연대의 힘
정소라 작가는 기록으로 하는 연대의 힘이 세다고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기록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그 기록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더 단단한 연대로 이어질 테니까. 전혜진 소설의 판타지적, 비현실적 요소들이 오히려 현실을 더 직시하게 해 준다. 오히려 현실이 상상 속 비현실보다 더 참혹하기도 하니까. 신의 힘을 빌려서라도 가해자를, 동조자를 처벌할 수 있다면 하고 바라게 되니까. 기억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당연하고 중요한 진실을 전혜진 작가는 이야기의 매력을 빌려 강력하게 다시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