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 - 뒤흔들거나 균열을 내거나
김도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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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일곱 명의 이야기 26 + 1

이 책엔 스물일곱 명의 낯선 사람의 이야기가 담겼다. 낯설고 비범한 스물여섯 명의 사람과 그 스물여섯 명의 낯선 사람을 매혹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김도훈의 이야기.


이 책에서 김도훈이 소개하는 스물여섯 명 중 단 한 명도 나에게 낯설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덮고 난 후 나는 스물여섯 명의 매혹적인 사람을 '더 알고 싶어 졌다.' 전혀 관심도 없고 낯선 존재였던 그들을 '알게 된' 건 아니지만 더 알고 싶어 졌다.김도훈이 쓴 이 책 덕분에. 이 인물들을 또 다른 방식으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낯선 존재를 살짝, 스치듯 알았다가 다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스물여섯 명이 아니라 스물일곱 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본다. 김도훈이 소개한 스물여섯 명 중 더 많이 알고 싶은 딱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다이앤 포시를 선택하고 싶다.

고릴라에 미친 여자 다이앤 포시

고릴라에 미친 다이앤 포시는 고릴라를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이든 했다. 그 결과 그는 죽임을 당했다. 다이앤 포시가 고릴라를 위해 했던 모든 일이 옳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덮어 놓고 다이앤 포시를 미워할 수도 없다. 복잡해서 매혹적이고 쉽게 선악으로 구분할 수 없어서 계속 생각하게 되는 존재, 다이앤 포시. 고릴라를 향한 마음만은 순도 100퍼센트였을 테니까. 그 마음은 기억하고 싶다.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를 사랑하는 일이 더 어려워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알고 기억하고 싶다. 고릴라를 향한 진심을.

김도훈이 말한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왜 이 사람이 낯설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데? 이 사람을 모른다니 너무 무식한 거 아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사람을 '안다'는 게 어떤 걸까.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그게 이 책의 강점이다. 낯설지 않은 사람을 낯설게 만들고 낯선 사람은 더욱 더 낯설게 만든다. 인간이 가진 복잡성, 모순, 한계와 그 덕분에 그 인간만이 가질 수 있게 된 고유한 매력을 포착해서 보여 준다. 스물 여섯 명의 매혹적인 사람을 잠시나마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인간의 복잡한 매력을 다시금 느끼게 해 주는 책이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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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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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엔 빈틈이 많지만 그 틈 덕분에 더 촘촘하고 따스하고 긴 여운으로 남는 이야기들이 담겼다. 이주란 작가는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틈을 애써, 억지로 채우지 않는다. 허전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포근하다. 소설이 갑자기 이렇게 끝나나 싶다가도 그렇지. 삶에는 시작도 끝도 불분명한 일들이 많지. 하면서 수긍하게 된다.

이주란의 세계에서 '어른'은 늘 행동으로 말하는 정직한 사람(110)이다. 최선을 다해 자기 삶을 살아내고 무자비한 따뜻함을 나눠주는 사람. 경아야, 뭘 좀 먹고 있어. 아줌마의 메시지였다. 그제야 허기가 몰려왔다. (...) 나는 호박죽을 데워 먹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을 조금 흘린 것은 호박죽이 너무 맛있어서도, 무언가가 슬퍼서도 아니었다. 아줌마가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을 내가 지금 나눠 받고 있다는 무자비한 따뜻함 때문이었다. (113~114)

'이 세상 사람' 중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아주 가까운 사이인 부모라도. 아이는 자신을 학대하는 부모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세상 사람 모두를 이해하더라도 단 한 사람은 끝내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살면서 겪은 대부분의 고난을 지나왔고 살면서 만난 대부분의 인간을 이해했고, 살면서 받은 대부분의 상처를 견뎌왔고 자주 웃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사람은 끝내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서 아는 저의 기분은 이것뿐입니다. (207)

'파주에 있는' 현경 씨는 좋은 하루를 보내고 싶고 다른 사람들도 좋은 하루를 보내길 바라지만 도무지 그 하루는 어떤지 알기 힘들다. 그래도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좋은 하루를 응원한다. 좋은 하루가 뭐지. 자기가 그렇게 말해놓고도 현경은 멍하게 생각에 빠져 있었다. 좋은 하루라니. 좋은 하루를 보내라는 말을 살면서 만 번은 한 것 같은데 누군가에겐 너무 무책임한 말이 아니었을까. 습관적으로 나온, 호의의 마음이 가득한 인사말에도 현경은 괴로워했다. 음, 현경 씨는 그런 말을 들으면 상대가 무책임하다고 생각하나요? 아니요. 현경 씨도 상대가 정말 좋은 하루를 보내기 바라면서 한 말이시지요? 네. 아마 상대도 그 마음을 알 거예요. 무책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돼요. 그런가요. 누군가의 하루까지 현경 씨가 책임질 수는 없어요. 그 사람의 하루는 그 사람의 것이니까요. (255)

박연준 시인은 이주란 작가의 글을 읽고 나면 '기분'이 남는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하면서도 울적하고 보드라운 기분이 남았다. 내 마음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별일은 없고요?


*하니포터 6기로 활동하면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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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중국은 왜 성장하는가 - 부패의 역설이 완성한 중국의 도금 시대
위엔위엔 앙 지음, 양영빈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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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와 경제적 번영의 역설적 관계


부패는 본질적으로 수량화하거나 측정하기 어렵다. 측정할 가치가 있는 걸 측정해야 하지만 그게 어려울 때 측정할 수 있는 것을 측정하고 그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런 실수는 부패와 경제적 번영의 역설적 관계를 간과하도록 만든다. 저자는 이 점을 논리적 근거와 통계 자료를 토대로 명쾌하게 분석하고 지적한다. 부패를 1차원적으로 이해하면 부패와 경제적 번영의 관계를 왜곡하게 되며 부패한 중국이 성장하는 이유도 파악할 수 없다.


떠돌이 강도가 아닌 '정주형 강도'


(부패한) 중국 관료는 강도질하고 도망가고 또 다른 곳에서 같은 짓을 반복하는 떠돌이 강도가 아니다. 이익 공유제를 통해 자신의 이익과 동시에 지역 성장을 추구하는 관료는 '정주형 강도'다(29쪽). 이곳을 떠나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자기 이익만을 취하는 떠돌이 강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익을 추구한다.


부패 지수를 세분화하기


나라별로 다른 부패 구조, 질적인 편차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부패 지수를 세분화해야 한다. 이 지표를 UCI(46쪽)라고 부른다. 이는 바늘도둑, 소도둑, 급행료, 인허가료로 분류한 네 범주를 통해 나라별 부패의 질적 차이를 뭉뚱그리지 않고 드러낸다. 부패를 단일 수치로 살펴보면 부패의 중요한 구조적 차이를 놓칠 수 있다(63쪽). 부패의 양뿐만 아니라 질, 질적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


중국은 부패했음에도 성장하는 게 아니라 부패했기 때문에 성장한다?


부패가 경제 성장에 좋은가? 나쁜가? 부패는 척결가능한가? 불가능한가? 이런 이분법적 구분에서 벗어나야 한다. 부패는 경제 성장을 촉진할 수도, 경제와 사회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단순한 분석으로는 이 영향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패의 구조적 다양성, 질적 차이, 변화하는 방식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부패와 성장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책


이 책은 부패와 성장의 관계를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도록 만든다. 부패는 균일하지 않으며 구조적, 질적으로 다양하다는 걸 강조한다. 부패는 곧 경제 성장을 저해하고 나라 발전을 막는다는 이분법적 사고에 균열을 낸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선언적 주장에 그치는 게 아니라 다양한 통계 수치와 논리적 근거들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명쾌한 결론을 내리도록 해 주는 게 아니라 부패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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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쓰다가 - 기후환경 기자의 기쁨과 슬픔
최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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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구를 잘 '쓰고' 있을까?

13년 차 환경 전문 기자 최우리는 묻는다. 지구를 잘 '쓰고' 있냐고. 충분히 '에코'하게 살고 있냐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책에는 전문적으로 기후위기를 분석하고 이에 대응하는 방안이 담긴 것도, 에코 라이프를 실천하는 이야기가 담긴 것도, 환경 이슈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기자의 이야기가 담긴 것도 아니다. 기자이자 지구를 잘 '쓰고' 싶은, 더 에코하게 살고 싶은 최우리의 생활과 생각이 담겨있다. 


왜 우리는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할까?

나를 위해, 그리고 지금 여기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월말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종말을 걱정하는 건 사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월말을 걱정하는 자에게도 많은 부를 축적하고 누리는 자에게도 '종말'은 성큼성큼 다가온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내 삶도, 이웃의 삶도 한꺼번에 붕괴할 수 있다. 가장 먼저 피해를 보지만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예민하다는, 지나치다는,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비난에 맞서 환경 문제를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한다. 또 이런 다고 뭐가 달라질까? 생각하지 말고 일상에서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 때로 에코하지 않은 순간이 있더라도 좀 더 에코해지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쓰레기는 절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쌓이고 또 쌓인다.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지구 어딘가에 내가 쓰고 버린 쓰레기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을 것(141)"이라고 최우리 기자는 지적한다. 내 눈앞에서 사라진다고 쓰레기가 영영 지구 밖, 우주 밖 어딘가로 사라지는 건 아니다. 어딘가에 차곡차곡, 지금도 계속 쌓이고 있다. 일단 내 눈앞에서 치워버리기만 하면 그만일까? 열심히 분리수거 했으니까 괜찮을까? 아니다. 분리수거를 생각하기 전에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에 자기가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만드는지 인식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최우리 기자의 이야기를 통해 환경 문제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특히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문제는 '경제' 문제와 직결된다는 걸 지적한 지점이 흥미로웠다. 흔히 환경은 경제와 대립된다고 보지만 궁극적으로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게 에코 라이프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안을 찾고 실천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 내 삶에서 에코 라이프를 시작해 보려 한다. 때때로 실패하고 뒷걸음질치더라도 조금씩, 천천히, 같이 노력하는 사람이 곳곳에 있다는 걸 기억하면 덜 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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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 배달 사고로 읽는 한국형 플랫폼노동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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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천만한 일터가 된 도로


배달 라이더들에게 도로는 일터다. 자칫 잘못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을 만큼위험천만한 일터.

일터도 있고 일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일터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관리하고 일하는 사람의 안전을 책임질 '회사'는 없다. 그 일터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대부분 플랫폼 기업이 가져간다. 하지만 그 기업은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위험 부담과 비용은 고스란히 노동자와 소비자가 져야 하지만 제일 이득을 보는 건 플랫폼 기업인 현실을 왜 나는 당연하게 받아들였을까. 왜 제대로 생각해 보지도 않고 무작정 배달 라이더들을 못마땅하게 여겼을까. 교통 규칙을 지키지 않고 배달하는 라이더들의 잘못이 없다는 게 아니다. 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 직시해야 진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인데 목숨 내걸고 배달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캐릭터가 아니라 사람이다


배달하다가 사고가 나도 고객의 컴플레인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가도 내가 시킨 음식 배달이 늦어지면 과연 나는 얼마나 참을성 있게 기다릴 수 있을까 생각하다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앱을 켜면 실시간으로 배달원의 위치를 보여 준다. 귀여운 캐릭터로! 하지만 그 캐릭터로 실시간 표시되는 건 진짜 살아 있는, 먹고 마시고 숨쉬는 사람이다. 이 책의 여러 내용 중 특히 화장실 이야기가 마음에 콕 박혔다. 화장실이 없는 회사라니. 나는 하루도 못 버틸 것 같다. 화장실 갈 시간도, 이용하고 싶을 때 자유롭게, 마음 편하게 이용할 수 없는 화장실도 없는 회사라니.

캐릭터가 아니라 사람이 배달하고 있다는 걸 꼭 기억하려고 한다. 나부터.


안전하게 일하고 정당하게 보상받을! 당연한 권리


안전하게 일하고 정당하게 보상받을 권리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당연한 권리다.

특수 고용 형태로 일하는 배달 라이더라고 해서 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당연한 권리를 당연히 보장받을 수 있도록, 안전하게 배달된 음식을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함께 노동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위해, 누구보다도 나를 위해 지속적으로 관심가져야 한다. 이 책을 읽는 게 좋은 시작점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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