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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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엔 빈틈이 많지만 그 틈 덕분에 더 촘촘하고 따스하고 긴 여운으로 남는 이야기들이 담겼다. 이주란 작가는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틈을 애써, 억지로 채우지 않는다. 허전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포근하다. 소설이 갑자기 이렇게 끝나나 싶다가도 그렇지. 삶에는 시작도 끝도 불분명한 일들이 많지. 하면서 수긍하게 된다.

이주란의 세계에서 '어른'은 늘 행동으로 말하는 정직한 사람(110)이다. 최선을 다해 자기 삶을 살아내고 무자비한 따뜻함을 나눠주는 사람. 경아야, 뭘 좀 먹고 있어. 아줌마의 메시지였다. 그제야 허기가 몰려왔다. (...) 나는 호박죽을 데워 먹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을 조금 흘린 것은 호박죽이 너무 맛있어서도, 무언가가 슬퍼서도 아니었다. 아줌마가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을 내가 지금 나눠 받고 있다는 무자비한 따뜻함 때문이었다. (113~114)

'이 세상 사람' 중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아주 가까운 사이인 부모라도. 아이는 자신을 학대하는 부모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세상 사람 모두를 이해하더라도 단 한 사람은 끝내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살면서 겪은 대부분의 고난을 지나왔고 살면서 만난 대부분의 인간을 이해했고, 살면서 받은 대부분의 상처를 견뎌왔고 자주 웃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사람은 끝내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서 아는 저의 기분은 이것뿐입니다. (207)

'파주에 있는' 현경 씨는 좋은 하루를 보내고 싶고 다른 사람들도 좋은 하루를 보내길 바라지만 도무지 그 하루는 어떤지 알기 힘들다. 그래도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좋은 하루를 응원한다. 좋은 하루가 뭐지. 자기가 그렇게 말해놓고도 현경은 멍하게 생각에 빠져 있었다. 좋은 하루라니. 좋은 하루를 보내라는 말을 살면서 만 번은 한 것 같은데 누군가에겐 너무 무책임한 말이 아니었을까. 습관적으로 나온, 호의의 마음이 가득한 인사말에도 현경은 괴로워했다. 음, 현경 씨는 그런 말을 들으면 상대가 무책임하다고 생각하나요? 아니요. 현경 씨도 상대가 정말 좋은 하루를 보내기 바라면서 한 말이시지요? 네. 아마 상대도 그 마음을 알 거예요. 무책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돼요. 그런가요. 누군가의 하루까지 현경 씨가 책임질 수는 없어요. 그 사람의 하루는 그 사람의 것이니까요. (255)

박연준 시인은 이주란 작가의 글을 읽고 나면 '기분'이 남는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하면서도 울적하고 보드라운 기분이 남았다. 내 마음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별일은 없고요?


*하니포터 6기로 활동하면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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