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날들의 기록 - 철학자 김진영의 마음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진영이라는 작가(사람)은 <아침의 피아노>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이 책의 부제는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일기다. 암 선고를 받고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치열하게 사유하고 꾸준히 기록한 저자가 정말 대단하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건강하실 때 좀 더 많은 글을 남겨 주셨으면 어땠을까..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인상적인 첫 만남 이후로 김진영을 잊고 지냈다. 2023년 2월, 그를 다시 만났다. 조용한 날들의 기록이라는 책을 통해. 아침의 피아노가 애도 일기였다면 조용한 날들의 기록의 부제는 마음 일기다. 암 선고를 받기 이전의 김진영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암 선고가 그의 생각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아침의 피아노를 읽으면서 문득문득 궁금했는데 조용한 날들의 기록을 통해 그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했다.


이 책은 오래오래 곁에 두고 아껴 읽고 싶은 책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슬프고 시린, 너무 날카로워서 정말로 부드러운, 순간처럼 영원한 김진영의 사유를 가득 담고 있다.


여러 번 펼쳐 읽어도 손상되지 않도록 튼튼하게 잘 만들었다.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 두는 책이 아니라 마음이 흔들릴 때, 냉철한 사유가 필요할 때, 김진영이라는 사람의 따스한 날카로움이 그리울 때마다 꺼내 보는 책이 되리라는 걸 알아서, 그러길 바라는 마음도 담아 더 튼튼하게 만들었나 보다.



김진영은 내리는 눈을 보며 사라짐을 생각했다.

고요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했다가 고요히 사라지는 눈처럼 그도 고요히 살다가 고요히 사라지고 싶었을까. 모든 것을 고요하게 만들고 싶었을까. 고요히 사라지는 것도 어렵지만 눈처럼 모든 것들을 고요하게 만들면서 사라지는 건 더 어렵다.


나도 가능하면 흔적없이, 고요하게 사라지고 싶다. 눈처럼 언제 존재했냐는 듯. 지금 그가 우리 곁에 없기 때문일까. 조용한 날들의 기록의 첫 문장이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김진영은 말한다. 책이 우리를 매혹하는 건 어떻게 죽어야 하는 가를 우리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나는 어떻게 죽고 싶을까. 그는 어떻게 죽고 싶었을까. 책을 통해 어떻게 죽어야 하는 가를 배울 순 있지만 배운 걸 정말 실천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없다.


조금씩 아껴 읽고 싶은, 한 번 읽고 끝나는 책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서 음미하고 싶은 책을 만나서 기쁘다.


*이 글은 하니포터6기로 활동하면서 한겨레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질문은 조금만 - 자부심과 번민의 언어로 쓰인 11인의 이야기
이충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충걸의 명백히 사적인 관점이 담긴 인터뷰집


인터뷰어 이충걸을 프롤로그에서 명백히 밝힌다. "이 글은 모아놓은 질문, 쓸어 모은 대답이 아니라 기나긴 모니터링과 외로운 의심 끝에 적힌 것"이라고. 이 인터뷰집의 주인공은 어쩌면 11명의 인터뷰이가 아니라 단 한 명의 인터뷰어이자 서술자인 이충걸이 아닐까. 그 점이 이 책이 가진 독특한 매력의 근원이다.




이충걸과 함께 만나는 최백호, 강백호, 법륜, 강유미, 정현채, 강경화, 진태옥, 김대진, 장석주, 차준환, 박정자


이름은 들어봤지만 제대로 알지는 못하는 사람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이충걸이라는 렌즈를 통과해서 만났다. 그리고 나는 최백호 노래를 찾아 듣고, 야구의 룰이 궁금해졌고, 박정자의 연극 공연을 보러가고 싶어졌다. 그건 이충걸의 힘일까. 인터뷰이들의 매력일까. 그 매력을 섬세히 포착해서 드러낸 이충걸의 힘이 살짝 더 크게 다가왔다. 나에겐.


이충걸과 인터뷰를 한다면


이충걸과 인터뷰를 해보고 싶다. 이충걸의 밀도 높은 질문을 받고 나름의 대답을 주고 그 대답이 이충걸의 머리와 마음을 거쳐 손으로 정리되어 나온 글을 읽고 싶다. 나도 몰랐던 내 마음 속을 그렇게라도 들여다 보고 싶다.



지금의 노래, 최백호

"잃어버린 낭만이란 시간이죠. 젊은 시절 어떤 실연의 상처마저도 지금은 아쉬우니까요."

이것을 작위적인 미학의 절대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죽음의 왈츠, 박정자

"또 어느 날, 분장실에서 무대로 나 있는 계단을 올라갈 때 먼지가 싹 날리면 사람들 몰래 뭉쳐진 먼지를 주워요. 난 그 먼지조차 고마운 거예요."

연극을 한다는 건 희망 없고 무분별한 사랑에 빠지는 것. 연극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데, 살 수 없다면 연극을 할 수도 없는 것. 모든 예술가는 괴짜가 되어야 하고, 보헤미안은 퇴짜 맞은 이들의 피난처란 말은 다 틀렸다. 먼지 덩이를 줍는 배우야말로 가장 수공업적인 연극의 이데올로기 아닌가. 연극은 물음표가 붙은 땅. 시공 너머로 가기엔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는 미래. 영광스러운 허기의 코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의 영혼 오로라 - 천체사진가 권오철이 기록한 오로라의 모든 것
권오철 글.사진, 이태형 감수 / 씨네21북스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의 영혼 오로라? 천체사진가 권오철이 기록한 오로라의 모든 것이라고? 이 책을 펼치기 전에 표지만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오로라가 아름답고 신비하다고 해도 신의 영혼에 비유할 만큼 엄청난가? 천체사진가란 직업도 있구나. 오로라의 '모든 것'이라고? 살짝 진부하다. 00의 모든 것이란 표현, 유행 좀 지난 듯.


이 책을 다 읽고 다시 표지를 천천히 살펴봤다. 제목도, 설명도 진짜였다. 오로라는 신의 영혼이고 이 책에는 천체사진가가 오로라의 '모든 것'(오로라의 모습, 오로라를 잘 보고 카메라에 담는 방법, 오로라 발생 원리까지)이 들어 있다. 사진으로 봐도 이렇게 신비롭고 아름다운데 실제로 오로라를 보면 정말 어떤 기분일까. 책을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책장을 넘기면서 오로라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책으로 하는 여행.




권오철 사진가는 오로라의 여러 색깔 중 핑크색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 색을 봤다면 밤하늘에서 경험할 수 있는 오로라의 거의 최대치를 본 것이라고 한다. (45p) 나도 핑크색 오로라를, 오로라 폭풍을, 오로라 댄싱을 내 눈에 담고 싶다.



오로라의 황홀한 빛은 지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생명이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증거(94p)라고 한다. 지구에서의 삶을 마감하기 전에 나도 오로라를 만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을까.


오로라의 수도, 캐나다 옐로나이프

오로라를 볼 확률이 가장 높은 오로라 존은 대부분 극지방의 춥고 황량한 지역이지만 옐로나이프는 공항이 있는 큰 도시다(112p). 오로라 빌리지가 있을 만큼 오로라를 보려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고 한다. 나만 몰랐나 보다. 오로라 관광 프로그램이 엄청 다양하다는 걸.


요즘은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권오철 사진가가 직접 체험하고 꼼꼼하게 기록하고 정리한 여행 정보는 읽는 거 자체로 재밌다. 또 오로라를 카메라에 담는 방법도 친절하고 자세히 알려 준다.




오로라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래서 솔직히 관심도 별로 없었다. 이 책을 읽고(여행하고) 나서 내 버킷 리스트에 오로라 댄싱 보기를 추가했다.


오로라를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우주의 초미세먼지 같은 내 존재가 지겨울 땐, 그저그런 일상에 지칠 땐, 권오철 사진가가 카메라에 담은 신의 영혼, 오로라를 보면서 언젠가 오로라 댄싱을 볼 날을 기대하며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카메라로 다 담을 수 없고, 인쇄하면 또 그 느낌이 달라진다고 했지만(41p) 오로라를 책에 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게 느껴진다. 권오철 천체사진가 덕분에 비행기를 안 타고도, 추위에 덜덜 떨지 않아도 오로라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값의 비밀 -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양정무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그림을 잘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그림을 알고 싶다.

그림이 궁금하고 그림의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

그래서 이 책이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읽어 보고 싶었다.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살짝 겁먹었다.

예상 외로 술술 잘 읽혔다. 그림값 이야기가 이렇게 재밌다니! 신기했다.

예술 작품에 값을 매긴다고? 그건 예술을 모독하는 거 아닐까?

예술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다.

책을 읽고 나서도 예술을 물질적 가치로만 평가할 수 없다는 믿음은 변치 않았다.

이 책을 통해 그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배웠다.

'값'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림의 '값'은 매우 중요하고

그림과 그림'값'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림은 예술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그 그림을 그리는 작가도

그 작품을 감상하고 소비하고 소유하고 향유하는 사람도 생활 세계에 속한다.

생활을 위해 우리는 예술도 필요하지만 물질도 필요하다.

먹고 살아야 그림도 그리고 그림도 즐길 수 있으니까.

이 책은 '컬렉터', '아트 딜러'의 역할이 미술사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역할을 해 왔다는 걸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예술 발전에 자본의 힘이 미친 영향을 쉽게 알려 준다.

또 그림값이 결정되는 메커니즘, 거래되는 방식도 흥미롭게 설명한다.

셀프 마케팅의 귀재였던 루벤스 이야기,

엄청난 부를 쌓았다가 몰락한 렘브란트 이야기,

자신을 신으로 표현할 만큼 자신감 넘쳤던 뒤러 이야기 등등.


이 책에는 그림값 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렸던 작가의 삶도 들어 있다.

메디치 가문, 고갱을 후원해서 그의 작품 활동을 도왔던 수집가 이야기 등 후원자, 수집가 이야기도 풍부하게 담겨 있다.

마지막엔 Q&A 형식으로 '미술 투자'를 쉽게 설명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그림과 그림값을 둘러 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고 재밌게, 쉽게 풀어 낸다는 것이다!

그림이나 예술을 잘 몰라도 친절한 설명과 풍성한 예시를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그림과 화가, 컬렉터, 딜러 이야기에 빠져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90년대생, 교사가 되다
박상완.박소영 지음 / 학이시습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저자들은 90년대생 교사와 그들과 함께 일하는 비90년대생을 함께 인터뷰했다. 이를 통해 세대 간 차이뿐만 아니라 세대 내 개인 차이까지 밝히려고 시도했다. 의도는 좋았으나 결과까지 성공적이진 않다.


이 책이 90년대생 교사의 '특성'을 잘 드러냈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기성세대 눈에 비친 90년대생의 모습을 더 많이 담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그게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다. 요즘 교사, 요즘 세대가 이 책을 읽으면 기성세대가 요즘 세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그냥 '퇴근'이 땡! 퇴근, 칼! 퇴근이 되고 업무와 사생활의 경계를 '명확히'하려는 행동이 된다. 일은 학교(회사)에서 하고 다 못한 일은 내일 와서 하면 된다고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기성세대들에게 '우리 때는 남아서도 하고 집으로 업무를 가져가기도 했는데 요즘 선생님들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반대로 90년대생의 눈에 비친 기성세대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기성세대가 요즘 세대의 눈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확인하면 요즘 세대를 아주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서로 이해하고 잘 지내자!는 교훈을 전달하려는 책은 아니다. 기성세대와 요즘 세대가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스스로 되돌아볼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90년대생, MZ세대 등 '세대론'이 개개인의 특성과 차이를 가리고 두드러진 차이만 부각하지 않도록 세대 담론을 논할 땐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이 책의 저자들도 세대 담론이 가진 그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으며 인터뷰 분석 과정에 그 문제의식을 녹여 내려고 애썼다.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지만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연구를 시도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