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인디아 - 채유희 여행 에세이
채유희 글.사진 / 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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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도에 와서 처음에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지저분함, 소음, 더위 등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보다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바로 인간에 대한 실망이었다. 여행자를 상대로 계산을 속이고, 사기를 치고, 사람을 돈으로만 보고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례함과 무책임한 행동들. 여행 책자에 떡하니 쓰여 있던, 영적인 빛으로 충만한 신들의 대지라는 문구는 어디로 가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혼돈으로 충만한 무개념의 대지라니.

인도는 명상을 하는 나라가 아니라 명상을 하게 만드는 나라라고 하더니, 인도에서 참 많이 참고 인내하는 법을 배우게는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델리에 와서 며칠 만에 인도 사람들에 대한 나의 신뢰는 거의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급강하했다. 급기야 너희들이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겠다는 말까지 튀어나올 지경이었으니까.
34p

언젠가 인도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 나쁘냐고 묻자 한 인도 청년은 이렇게 대답했었다.

“사람의 열 손가락은 모두 같은 손가락이지만 다 다르게 생겼어. 인도 사람들도 모두 같은 사람이지만 다 다르기 마련이야. 인도에는 사람을 속이는 사람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아.”

나중에 인도를 떠나게 될 즈음에는 나도 알게 되었다. 인도에는 곪고 거친 손가락도 있지만 예쁘고 곧은 손가락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인간에 대한 예의 39p 
 

 위의 글이 아니더라도 대체로 인도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인도를 다녀오면 요기나 명상가가 되거나, 아주 진절머리를 치며 인도에 대해 혐오감을 갖거나

그 모두를 보고 느끼면서 로맨틱 코드라니 왠지 조합이 맞을 것 같지 않은데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잔잔한 감성으로 시선을 따뜻하게 하는 렌즈의 촛점도 좋고 인도를 읽어내는 새로운 느낌의 인도 여행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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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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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나는 명동촌에서 태어났소. 망명한 자산 계급 민족주의자들이 일군 동네라 늘 나라를 위해 살아야만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소. 이등박문을 죽이기 위해 근처 선바위에서 사격 연습을 했다는 안중근이나 이상설을 따라 헤이그까지 갔다가 국제 대표들 앞에서 창자를 꺼내 보이며 죽었다는 이준 얘기 같은 것 말이오. 그때만 해도 나는 얼른 커서 독립군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소. 하지만 용정으로 나가 살아가면서 차츰 나라가 없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게 됐소. 태어난 나라가 없으니 우리에게는 당도 없소. 나라도 없고 당도 없는 자에게는 민족도 없는 것이오. 중공당에 가입한 뒤부터 나는 내 혈관에는 국제주의의 피만 흐른다는 사실을 알아냈소. 국제당만이 우리의 당이고 나라고 정부요. 내가 알기로 지금 간도 땅에서 진정으로 항일하는 조선인 공산주의자 중에 국제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소. 나는 일본놈들만큼이나 민족주의자들을 증오하오. 지난 시기, 그들은 가짜 정부를 우리에게 강요하고 애국자들을 학살했소. 그런 내가 민생단 감투를 쓰게 될 줄을 정말 생각지도 못했소.”

1933년 7월 어랑촌 231-232p  박도만의 이야기 중 
  

나라를 읽은 4명의 혁명을 꿈꾸는 중학생들이 얽히고 설키어 결국 그 당시 동만주에서 있었던 것처럼 서로를 의심하고, 배신하며 죽고 죽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 속에 들어가게 되는 화자(話者)의 이야기는 시간을 오르내리고 있어 집중력이 많이 필요하다.

그런 고로 보통 책 말미에 나오는 해제나 해설 등은 읽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번 책은 다 읽고도 내게는 어쩌면 우리에게는 낯선 역사 1930년대 초 동만주의; ‘민생단 사건’에 관한 내용이 생소해 한홍구 교수의 해제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작가의 책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나랑은 코드가 맞이 않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너무 넘쳐나는 이야기를 쓰려고 했기 때문일까? 고난이도의 퍼즐을 맞추는 기분으로 읽게 되는  독자에게 별로 친절하지 않은 작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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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슬픈 아시안
이시이 코타 지음, 노희운 옮김 / 도솔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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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옮긴이의 말에서처럼 ‘구걸하는 부처’라는 원제와는 달리 어디에도 부처는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 애써 모른 척하고 싶은 이야기. 발전하는 사회의 어두운 단면. 수많은 구걸을 하는 동남아의 걸인과 장애인을 만나는 그의 이야기는 알고 있었더라도 정말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의 하나일 뿐이다.  


전쟁의 남겨진 상처로 장애를 가져서 걸인이 된 경우나 걸인이 되기 위해, 또는 걸인을 만들기 위해 장애인이 되어 버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처절하다. 

 

8장 신이 사라져버린 하늘 인도의 첫 구절에 나오는 내용이다.

뭄바이, 영국의 식민지 시절에는 붐베이라고 불렀다. 이곳은 인도 최고의 경제도시다. 세계 곳곳에서 기업이 모여들고, 화려한 영화배우의 집이 이곳에 있다. 고급 쇼핑가를 걷다 보면 메르세데스 벤츠나 샤넬, 그리고 최신 컴퓨터가 진열되어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예전의 시내 풍경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딜 가나 오래 되고 더러운 옛 흔적을 볼 수 있다. 도시의 상징은 식민지 시절 만든 인디아게이트다. 그 주변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이 오간다. 거지가 손을 내밀고, 장애인 간이 열차를 타고 손으로 땅바닥을 밀면서 돌아다닌다. 조금 떨어진 장소에는 거대한 빈민가가 끝없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뭄바이는 매춘의 도시다. 북인도나 네팔에서 끌려운 여자 아이들이 지저분한 여인숙에서 아랍의 부호들에게 처녀를 빼앗긴다. 울며 소리쳐 보아야 누구 하나 귀 기울이지 않는다. 에이즈에 걸려 버려질 때까지 참지 않으면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 도시의 이름을 아직도 ‘봄베이’라고 부른다. 그들에게 이곳은 옛날 그대로 지저분한 도시인 것이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 봄베이’의 붐베이다운 모습이다. 굳이 알고 싶다거나 알고 싶지 않다거나 따지지 않겠다. 다만 이 취재를 할 때 나는 몇 차례 정신적인 공황이 찾아와 머리는 싸매야 했다. 눈물을 흘리며 신이 사라져버린 하늘을 향해 손을 모은 일도 있었다. 그래도 길거리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증언을 요청했다. 왜냐하면 믿지 않으려야 믿지 않을 수 없고,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스트리트 칠드런 263-264p

전에 다른 여행기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읽어서일까?  

거지의 행세를 하는 걸 부끄러하는 걸인과 당연시 여기는 걸인 등 동남아 여러 곳 최하층의 사람들을 오래 발품을 팔아 다닌 이야기는 너무나 충격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끌거리는 것은 뭘까? 르포 형식도, 신문 기사 형식도 아닌데, 너무나 딱딱한 글의 진행이 읽으면서 내내 원 작가의 잘못일까? 매끄럽지 못한 번역의 잘못일까?를 생각하게 하며 이 이야기를 좀더 맛깔스럽게, 호소력 있게  풀어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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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트 비밀클럽 비룡소 걸작선 51
트렌톤 리 스튜어트 지음, 김옥수 옮김, 카슨 엘리스 그림 / 비룡소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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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파괴를 목적으로 텔레비전 전파를 등을 통해 속삭임을 제작하여 두뇌를 씻어내려는 이들의 조직을 파괴하기 위해 조직되는 고아나 다름없는 4인방이 특이한 종류의 시험에 통과해 모이게 된다

브레인이나 다름없는 레이니와 꼬챙이, 행동대원 케이트와 투덜이 역할 뿐인 듯 하지만 결정적 역할을 위해 필요한 듯이 보이는 작은 아이 콘스턴스가 베네딕트에 의해 결정된 비밀클럽이 결성되어 노만손섬에 들어가 펼치게 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약 700페이지에 달하는 만만찮은 분양인데도 4명의 아이들이 좌충우돌 하는 모습들이 궁금해 재미나게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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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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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에서와 달리 지금 사람들이 마법의 과자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건 당장의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필요보다는 대체로 추상적이고 감정적인 문제 때문. 과열된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수소를 가득 담은 풍선만큼이나 끝없이 상승할 수 있다. 감정과 풍선의 공통점은 비가시권의 높이에서 제풀에 폭발해버린다는 것.

그에 비하면 현실이란 그네줄이나 위로 튀어 오르는 공과 같이 얼마나 건조하고 절망적인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곳까지밖에 오르지 못하며, 땅이 잡아당기는 힘을 뿌리치지 못하고 다시 내려오니까.
체인 월넛 프레첼과 마지팬 부두 인형 139p


머릿속에서 이성의 목소리가 내게 말을 건넨다. 추억은 그래도 상자 속에 박제된 채 남겨두는 편이 좋아. 그 상자는 곰팡이나 먼지와 함께, 습기를 가득 머금고서 뚜껑도 열지 않은 채 언젠가는 버려져야만 하지. 환상은 환상으로 끝났을 때 가지 있는 법이야. 한때의 상처를 의탁했던 장소를 굳이 되짚어가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아.

아직도 어린 시절의 마법 따위를 믿는 녀석은 어른이 될 수 없다고.

그러나 나는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더욱 빨리 달린다. 추억이라니. 환상이라니. 그 모든 것은 내게 있어서는 줄곤 현재였으며 현실이었다. 마법이라는 것 또한 언제나 선택의 문제였을뿐 꿈속의 망중한이 아니었다.
248p
  


마법의 세계가 들어있어 어찌 보면 ‘해리포터’와 다소 시니컬한 데도 웃음을 줬던 ‘완득이’가 결합된 듯 하면서도 말더듬이의 나까지 잘 반죽이 되어 아주 독특해서 상큼한(??) 때론 으스스한 여지껏 겪어보지 못한 스타일의 성장소설이다.

‘아직도 어린 시절의 마법 따위를 믿는 녀석은 어른이 될 수 없다고.‘(248) 하면서도

‘옛이야기에서와 달리 지금 사람들이 마법의 과자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건 당장의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필요보다는 대체로 추상적이고 감정적인 문제 때문’(139)이라며 아직도 마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불행한 가족사에 속해 있는 나와의 성장통은 그래서 아프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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