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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 나는 명동촌에서 태어났소. 망명한 자산 계급 민족주의자들이 일군 동네라 늘 나라를 위해 살아야만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소. 이등박문을 죽이기 위해 근처 선바위에서 사격 연습을 했다는 안중근이나 이상설을 따라 헤이그까지 갔다가 국제 대표들 앞에서 창자를 꺼내 보이며 죽었다는 이준 얘기 같은 것 말이오. 그때만 해도 나는 얼른 커서 독립군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소. 하지만 용정으로 나가 살아가면서 차츰 나라가 없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게 됐소. 태어난 나라가 없으니 우리에게는 당도 없소. 나라도 없고 당도 없는 자에게는 민족도 없는 것이오. 중공당에 가입한 뒤부터 나는 내 혈관에는 국제주의의 피만 흐른다는 사실을 알아냈소. 국제당만이 우리의 당이고 나라고 정부요. 내가 알기로 지금 간도 땅에서 진정으로 항일하는 조선인 공산주의자 중에 국제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소. 나는 일본놈들만큼이나 민족주의자들을 증오하오. 지난 시기, 그들은 가짜 정부를 우리에게 강요하고 애국자들을 학살했소. 그런 내가 민생단 감투를 쓰게 될 줄을 정말 생각지도 못했소.”
1933년 7월 어랑촌 231-232p 박도만의 이야기 중
나라를 읽은 4명의 혁명을 꿈꾸는 중학생들이 얽히고 설키어 결국 그 당시 동만주에서 있었던 것처럼 서로를 의심하고, 배신하며 죽고 죽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 속에 들어가게 되는 화자(話者)의 이야기는 시간을 오르내리고 있어 집중력이 많이 필요하다.
그런 고로 보통 책 말미에 나오는 해제나 해설 등은 읽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번 책은 다 읽고도 내게는 어쩌면 우리에게는 낯선 역사 1930년대 초 동만주의; ‘민생단 사건’에 관한 내용이 생소해 한홍구 교수의 해제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작가의 책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나랑은 코드가 맞이 않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너무 넘쳐나는 이야기를 쓰려고 했기 때문일까? 고난이도의 퍼즐을 맞추는 기분으로 읽게 되는 독자에게 별로 친절하지 않은 작품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