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여행 가자 - 아들, 엄마와 함께 길을 나서다
박상준 지음 / 앨리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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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봤을 땐 언제가 읽은 적이 있는 모녀지간母女之間의 여행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어지간히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아들과 엄마의 여행이라니....

게다가 ‘운동 중독’에 가까운 엄마와 ‘양말이 코에 걸리기 전에는 절대 일어날 생각(39p)’을 않으며 매일의 운동은 노동의 다른 이름이라 생각하는 아들과의 여행이라니.

잘 그려지지 않는 그림이지만, 참 묘한 조화이다 싶은데, 읽을수록 은근 끌린다.

 

어느 날 엄마의 울음을 보고 “집에 가기 싫다”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시작된 여행이다.

소소하게는 엄마의 산책코스를 툴툴 거리며 따라나서는 것으로 시작해 어릴 적 살던 지역 주변부터 다닌다.

단문단답의 무뚝뚝하니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대화에서 모양만 딸이지, 이 필자만큼이나 무뚝뚝한 나와 엄마의 대화를 떠올리게 한다.

 

기실 우리네 삶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고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고 했던가?

이야기 속에 묻어나오는 짧은 삶의 단편들이 엄마의 삶을 이야기해주는데, 또 하나의 소설 같은 넌픽션이다.

 

 

여행 코스도 부모님이 살고 있는 주변부가 거의 대부분이다.

영주하면 부석사 밖에 생각나지 않는데, 심지어 장롱면허 때문에 ‘김여사’ 엄마가 운전하는 차량으로 母子간 다니면서 보여주는 소소한 맛이 좋다. 거의 고향집에서 반나절 내지는 당일 코스에 가까운 영주에서부터 풍기, 단양 제천, 조금 멀리는 울진까지...

마지막 장에서 큰 맘 먹고 나서는 제주 여행까지 나온다.

제주 여행에서 ‘나는 엄마를 알지 못한다’에서 만난 섭지 코지의 안도 다다오 건축물, 글라스하우스와 지니어스 로사이를 대하며 엄마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부분을 읽으면서 나와 엄마(이책을 읽으며 쓰니 어머니보다는 엄마라 해야할 것 같아..^^)와의 여행이 다시 한 번 생각났다.

 

여고 동창생이나 동네 친구분들과 아주 가끔씩 다니시던 여행도 연령이 많이 되고 나면서, 거의못하시게 되고 나 섭섭해 하시던 엄마였다. 어찌하다보니 직장 생활 때문에 엄마의 고향에서 거의 이십여 년을 살다가 떠나올 때 즈음 '내가 살던 주변부라도 오시면 다녀볼까?' 하고 나름 관광명소라고 나와 있던 곳들을 마음이 바쁘게 다닌 적이 있었다.

 

결혼을 하고 사십 여 년을 고향을 떠나 사시던 엄마에게는 고향 근교의 곳곳이 모두 새삼스러웠던 모양이다. 참...오래도 엄마의 고향에 지내면서도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좀더 다닐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이 들었었다.

글쓴이 만큼이나 살갑지 않은 딸과 함께 다니던 모습들이 오버랩되면서 특별하게 읽히어지던 여행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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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사랑하고 싶어져 - 시간산책 감성 팟캐스터가 발로 쓴 인도이야기
김지현 글.사진 / 서교출판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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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다녀오지 않은 나로선 인도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기 힘들다. 한 달간의 계획을 짜고는 함께 나서지 못했던 친구에게 미안함이 제일 먼저 생각나고, 연수 중에 만난 한 이는 연수를 마치며 짐을 부치고는 네 번째 인도로 훌쩍 날아가는 걸 보면서 또다른 부채감을 느껴지곤 했다. 

 

언젠가는 싶으면서도 실상이 아닌 활자들로만 만난 인도라는 곳은 갈 수 있을까?아니, 가면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자꾸만 들게 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에서 시작된 인도에 관한 여러 책들에  또다른 인도에 관한 다른 책을 잡게 됐다.

 

 

제목부터 인도 여행기치곤 예사롭지?^^) 않았다. 요지경 속 세상 인도에서 어찌 그리 달달하게 적을 수 있지? 싶었다.

읽어가다 보니 대학생이다.

그럴 수가 있구나! 젊어서 그럴 수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에게 왜 태어났느냐고 물을 때가 참 많았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런 불평을 하면 안 된다.

내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엄마 품안으로도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진다.

그저 살아있는 모든 내 생체의 감각에게 감사해야만 한다.

그것이 현재의 인생, 즐거운 목적을 만들어 나가는 시발점이니...

미안한 만큼 의무를 져야 한다. 그것은 행복해야 한다는 사명이 아닐까?

해맑은 치킨 동냥 꼬마 中 174p

 

신분이 높은 사람은 물론 일반인으로부터도 부시당하는 계층(173p) 세 살 남짓 불가촉천민에게 KFC 한 조각을 주고도 번뇌가 많아지는 곳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 모르는 곳에 간다는 것,

둘 모두 여행이다.

오지로의 여행, 내면으로의 여행,

새로운 것에는 거부감, 불편함과 함께 낯설음에 오는

궁금증과 신선함 같은 것도 다가온다.

 

그런데 나는 더 이상 신선함을 찾을 수 없는 삶을 살아왔고

여행을 가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행을 하면서 아주 조금은 달라졌다.

 

그건 아무래도 이해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은 것 같은 빈손에

‘그래도 많을 걸 가졌구나.’라며

위로와 반성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니까 말이다.

그러다 지겨우면 떠나면 되는 거고, 그래도 좋으면 머물면 되는 거다.

새로운 곳에 도착해도 이삼일 지나면 다른 곳이 궁금해지는 게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왜 자꾸만 목표지가 필요한 걸까?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발 닿는 대로 가보자.

어차피 또 다른 곳이 가보고 싶어질 테니....

 

단순해지고 싶어서 염증을 덜고 싶어서 떠나는 여행에서도 똑같다.

염증은 똑같이 있고 내 주머니의 여비가 떨어지진 않을까 복잡해지지.

그런데 여행이 조금 더 좋은 거라면, 조금이나마 팔짱끼고 바라볼 수 있다는 거야.

그것만으로도 염증은 조금 덜어지지.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염증이 시작되니까.

 

한국을 떠나면 여행이 시작되는 줄 알았어.

비행기를 타면 편안하고 안락한 이상형으로 데려다 줄 것만 같았어.

그런데 인도는 매일 매일이 여행의 연속이야.

내가 역마살이 도졌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곳에 온 거 같은 느낌이 들거든.

 

책을 한 잔 한 장 넘길 때마다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것처럼.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은 비슷해도 공기는 달라. 같은 땅, 같은 나라인가 싶을 정도로.....

그래서 항상 기대되면서 항상 긴장 안에 나를 머물게 하지.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반나절이면 나도 그 안에서 같이 숨 쉬고 웃고 있다는 거야. 처음의 긴장은 다 사라지지.

그러다가 싫증이 나고 그러다가 재미가 없어지면 다시 배낭을 메고 떠나면 되는 거야.

그려지지 않는 도시로 말이지.

그게 여행이야.

그러다가 떠나온 곳이 그리워지면 다시 돌아가서 머물면 돼.

그게 인도야.

 

떠날 때와 머무를 때 中 175-178p

 

 

바라나시의 보트맨 철수씨도 만나고,

그나 저나 블루시티로 불리는 라자스탄의 조드푸르(Jodhpur)가고 싶다. ‘김종욱 찾기’에 나왔었다는데 난 왜 본 기억이 없지?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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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들처럼 떠나라! - 작가와 함께 떠나는 감성 에세이
조정래.박범신 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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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한 켠에는 그동안 모아둔 낙타와 예수님과 부처님의 사진이 함께 놓여 있다. 살아가기 고통스럽고 힘겨운 곳에 살고 있는 낙타라는 존재가 어쩌면 나와 닮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아 기외가 되면 낙타를 하나둘씩 사 모았다.

사진으로 놓아둔 예수의 얼굴은 밝고 투명해서 좋아한다. 그리고 그 옆에 일본에 있는 반가사유상은 미소가 참 좋다. 두분이서 서로 친하게 지내시라고 이렇게 한 공간에 마주하고 놓아 두었다. 와불님도 일어나셔서 예수님하고 이야기도 좀 하시라고.....

모아두다 中 447p

 

이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작가들이 여행을 가는 대단한 프로젝트라니...싶으면서도 사실 전에도 작가들의 여행이야기만으로 엮은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있어 이 책도 그럴까? 하고 망설였는데 기우였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 책이 여느 여행 책과 다른 것은, 작가의 문학의 창고 내지는 모태가 되는 서재를 먼저 둘러보고,(내 주변에는 그런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종교문제로 시끄러운 모습들을 보고나니 이 서재가 제일 인상적으로 남았다^) 그의 호흡을 알 수 있는 글이 직접 나와 좋다.

 

 

추억은 의미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느낌으로 기억된다. 의미를 위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심장이 뛰는 느낌에 끌려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의미를 따르는 삶보다 느낌을 만끽하는 삶이 어쩌면 더 즐겁지 않을까?

351p

 

한 번 간 길을 다시 가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용기만이 아니다.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는, 그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각오가, 오직 나와의 다짐이 필요한 것이다.

346p

 

그들의 고향이었거나, 문학의 고향인 장소를 지인知人들과 함께 하며 대화 형식으로 진행되어 편하게 읽힌다. 직접적 영향이 있었던 곳도 있고, 때로는 그 지역을 가면 가봐야 하는 곳들도 1박2일, 길어도 2박 3일 정도의 일정으로 함께 다녀보는데 제법 여러 곳을 두루 살펴본다. 물론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다고 맛집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글의 끝에 작가가 둘러본 시간 순서대로 여행에 관한 팁도 간결하지만 제대로 나와 있다.

    

기획이 언제 되어 진행되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함께한 사진들이 모두 늦가을과 겨울이라 조금 쓸쓸한 풍경이긴 하다.

완도, 부안, 양양, 김제, 안동, 영양, 진해, 울진, 강릉, 거제, 단양, 평창, 상주, 화순, 강진, 군산 작가들이 떠난 이 곳들 중 한 곳도 안 가본 곳은 없지만, 누구랑 가느냐? 누가 가느냐?에 따라 보고 느끼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대부분인데, 다시 한 번 그들처럼 떠나볼 수 있으면 한다.

 

여행은 즉흥시다.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면 재미도 감흥도 사라진다. 바람이 데려다 준 어느 곳에서, 언젠가 내 흥에 취해 보다. 들판, 하늘, 바람은 여행자에게 뜨거운 피를 흐르게 한다.

4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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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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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찍어대기만 하다가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즈음 처음 이 책을 우연히 접하고 충격이었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오름의 모습, 바다의 모습을 가장 좋은 좋은 `빛`에서 잡아낸 파노라마 사이즈의 사진들

`찰나의 순간`을 잡아야하는 스피드 셔터의 경기 사진도 아닌데, 오름의 가장 멋진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사 계절을 그 무거운 장비를 들고 오를 것을 생각하면ᆢ그래서 오름의 모습이 누구도 얻지 못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았다.

그런 그도 처음에는 여러 분야의 사진을 찍었고 두모악에서 굿판을 벌리는 사진들만을 모아놓은 전시를 봤을 땐 생소하기도 했다.

처음 갤러리 두모악을 갔을 때는 김영갑 작기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 뒤 뜰을 힘겹게 산책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으니ᆢ
들고 찾아간 이 책에 사인을 부탁드릴까?하다가 그것조차 염치없다 싶어 말았는데,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가셨다는 뉴스를 접했다.

제주를 갈 때마다 갤러리 두모악을 간다. 무료였다가 차츰 주차장도 생기고 입장료도 생기고 하며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전시가 또 어떤 사진으로 바뀌었나? 운동장이 바뀐 산책로 담장 아래 피었던 노란 수선화는 올 봄에도 꽃을 피울까? 궁금하다.

너무나 파헤져지고 있어
갈 때마다 변해가는 제주가 좀 걱정스럽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오름의 모습을, 제주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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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9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kalliope 2014-12-29 12:09   좋아요 0 | URL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북플을 시작하고나니 전에 읽었던 책들도 더러 뜨는데 이 책은 제가 읽은 지 오래ᆢ 알라딘 개인 블로그에 리뷰를 쓴 것 같은데 뜨질 않아 책을 만난 김에 올렸답니다ᆢ

카페회원이나 잡지에 올릴 만큼 글솜씨가 있거나 부지런한 편이 아니라 제 글이 아닐 겁니다.^^

친구 되어 북플서 자주 뵙겠습니다.
Happy Happy new Year!!!
 
걷다 보면 - 길 위의 사진가 김진석의 걷는 여행
김진석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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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겠지만 이래저래 바쁜 일이 많고, 교재를 봐야 할 일이 많이 생기다 보니, 서점을 많이 가지 못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거나 해서 새 책 냄새를 한 동안 못 맡았다. 오랫 만에 서점에 가서 느긋하게 책을 돌아볼 기회가 생겨서 여행 코너를 돌다 찾지 못하고, 책장에 꽂혀있는 이 책을 만났다. 사실 ‘걷기’를 작가만큼 좋아하지 않아 제목이 눈에 들오진 않았지만, 뭔가 우연히 뒤적거린 책의 사진이......

 

아~~~~~~~~!

 

사진이 너무 좋았다.

 

 

들어가는 추천글 심산 작가의 이야기처럼 ‘사진은 사진으로 말한다’에 딱! 어울릴만한 좋은 사진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찍는 사람이 우울하면 사진도 우울해진다. 사진은 찍는 이의 감정을 그대로 가져가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마음과 똑같이 움직인다 中

 

글 중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사진은 사진을 찍는 사람을 넘어설 수 없다. 그런 그가 사진을 찍게 되는 피사체를 보는 모습이 따뜻해서 나올 수 있는 사진이라는 생각이 든다.

 

 

멀어져가는 순례자의 뒷모습과 그의 어깨에 있는 큰 배낭을 바라본다. 그의 뒷모습에 나의 뒷모습이 겹쳐 보인다.

 

수많은 사람들이 걷는 이 길에서, 나 역시 그들과 같은 고통을 겪으며 환희를 느끼고 싶다. 때론 걷다가 지쳐 장면을 놓치더라도, 때론 카메라를 들 힘조차 없을지라도, 그들의 살아 있는 표정과 땀 냄새를 느끼고 싶다. 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다.

 

걸으며 내가 무얼 찍고 싶었는지 점점 분명해진다. 내가 찍고 싶은 것은 카미노가 아니다. 카미노를 걷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찍고 싶은 건 카미노가 아니었다 中

 

사진을 어설프게 좋아하다가 배워가기 시작하면서 늘 최종의 최상의 피사체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길 중에 만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나올 수 있는 사진이라는 것이 정말 사진을 돋보이게 하는 것 같다.

 

게다가 코엘료의 책 [연금술사]에서 시작해, 여러 산티아고 길을 다녀온 책들을 보면서 ‘언젠가 가봐야할 텐데...’하면서도 걷기를 힘들어해 ‘제주 올레길부터’했는데도 이렇고 있는데, 이 글쓴이를 보며 나의 걷기 계획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도 되었다.

 

찍은 후에는 이러쿵저러쿵 사진을 평가하지 말자. 찍을 때 행복했고 봤을 때 즐거웠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보이는 대로 찍는 것이 좋은 사진이다. 찍는 이가 행복한 것이 가장 좋은 사진이다.

中 29p

 

백 그램이라도 짐을 줄이고자 하는 산티아고 길에서도 무거운 카메라를 이고 지고, 하루 이 천여 장이나 되는 사진을 찍었다고 했는데, 그래서 더 좋은 사진을 만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걸으면서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비법’에 관한 이야기가 좋다.

 

‘길 위의 사진가’라는 이름을 얻기 전에 걷기를 좋아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지독히 싫어했다는데, 제주 올레 길을 시작으로 카미노 데 산티아고, 투르 드 몽블랑과 히말라야 등까지 길 위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특히, 카미노에서 만난 이들의 사연들을, 사진들을 읽고 보다 보니 코끝이 찡~~하다.

 

사실 한 권 전체가 산티아고 길 위에서의 이야기로 엮어진 책들도 몇 권이나 봤지만, 한 부분만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산티아고에 관한 이야기로도 충분할 만큼 인상적이다.

 

 

걷기 시작한 첫날은 모두 기운이 넘친다. 이틀째에도 몸은 힘들지만, 어제의 의지를 담아 걸으니 견딜 만하다. 하지만 사흘째에 고비가 찾아온다. 몸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지치고, 마음은 걸을 수 없는 이유를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이 길을 계속 걷느냐 마느냐,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느냐 마느냐는 어쩌면 72시간 내에 결정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순례자 협회에 따르면 모든 구간을 건너뛰지 않고 걸어서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사람은 출발한 사람 중 15퍼센트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불문율과 같다. 걷는 것도, 멈추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72시간 안에 결정된다 中 p

 

내가 왜 여기에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다른 순례자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왜 걷는지, 왜 이곳에 왔는지, 왜 돈을 써가며 사서 고생을 하는지. 돈과 시간이 있다면 이곳에서도 충분히 배부르게 먹고 편히 잠도 많이 잘 수 있는데 말이다.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보통 이런 생각들을 하며 걸었다. ① 먹고 싶은 음식들. 김치찌개, 소주, 삼겹살, 떡볶이, 된장찌개, 고추장, 냉면 등등. ②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몇 km 남았을까? ③ 대체 내가 왜 걷고 있는 걸까?

모든 순례자가 피할 수 없는 고민 中 p

 

 

이렇게 힘들던 산티아고 여정도 끝이 보여서

 

곧, 대성당에 도착한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목적지에 다다르면 새로운 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안다. 이보다 더 험난하고 어려우리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내 앞에 놓여 있던 수많은 길 중 하나를 곧 끝낸다. 마침표를 찍고, 숨을 고르고 다시 길을 나서겠지만 말이다.

 

멀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꼭대기가 보인다. 36일간의 여정, 800km가 넘는 거리, 6만 장이 넘는 사진들, 2천 명이 넘는 순례자들, 324시간의 걷기, 1억4천4백만 보의 발걸음. 숫자로 본 나의 카미노다. 심호흡을 길게 한번 하고, 골목과 골목을 지나자 웅장한 자태의 대성당이 나타났다.

 

드디어 길의 끝에 온 것이다 中 169p

 

대성당 앞의 사진들도 그 전의 산티아고 책에서 봤던 장소이지만, 새삼 감동스럽다. 3부 '길과 살아가다'의 여정 히말라야나 몽블랑 등도 좋았지만 2부 '까미노에서 길을 배우다'의 산티아고 이야기는 참 좋았다.

 

 

길 위에서 좋은 인연들 만나서 곧 또 좋은 책으로 만나길 기대해본다.

Buen Camino!

 

 

나는 사람을 찍고 싶고, 그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찍고 싶다. 그렇다고 아주 거창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다. 부엌에서 밥을 짓는 모습일 수도 있고 각자의 일에 몰두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 버스에서 생각에 빠진 모습일 수도 있고 묵묵히 길을 걷는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이 바로 ‘진실’이고 아름다움이 아닐까.
18p

땀 냄새가 나는 사진, 슬픔이 느껴지는 사진, 기쁨이 느껴지는 사진, 그런 ‘냄새가 다른’ 사진을 찍고 싶다.
25p

찍은 후에는 이러쿵저러쿵 사진을 평가하지 말자. 찍을 때 행복했고 봤을 때 즐거웠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보이는 대로 찍는 것이 좋은 사진이다. 찍는 이가 행복한 것이 가장 좋은 사진이다.

걷기 시작한 첫날은 모두 기운이 넘친다. 이틀째에도 몸은 힘들지만, 어제의 의지를 담아 걸으니 견딜 만하다. 하지만 사흘째에 고비가 찾아온다. 몸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지치고, 마음은 걸을 수 없는 이유를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이 길을 계속 걷느냐 마느냐,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느냐 마느냐는 어쩌면 72시간 내에 결정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순례자 협회에 따르면 모든 구간을 건너뛰지 않고 걸어서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사람은 출발한 사람 중 15퍼센트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불문율과 같다. 걷는 것도, 멈추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72시간 안에 결정된다 中


내가 왜 여기에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다른 순례자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왜 걷는지, 왜 이곳에 왔는지, 왜 돈을 써가며 사서 고생을 하는지. 돈과 시간이 있다면 이곳에서도 충분히 배부르게 먹고 편히 잠도 많이 잘 수 있는데 말이다.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보통 이런 생각들을 하며 걸었다. ① 먹고 싶은 음식들. 김치찌개, 소주, 삼겹살, 떡볶이, 된장찌개, 고추장, 냉면 등등. ②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몇 km 남았을까? ③ 대체 내가 왜 걷고 있는 걸까?
-모든 순례자가 피할 수 없는 고민 中

화살표를 따라 그렇게 한참 앞만 보고 걸으면 내가 걸어온 길이 희미해지다가 결국 잊힌다. 뒤를 돌아본다. 내가 걸은 길이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되돌아본 길은 머릿속 풍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사는 것도 그렇다. 걷다 보면 내가 걸어온 길이 얼마나 멋졌는지, 고통스러웠는지, 아름다웠는지 잊게 된다.

"나는 생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모른다. 그러나 걷기는 하나의 목적이 있다.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놓는다. 그리고 기쁨이 뒤따라올 때까지 다시 시작한다."
-이브 파칼레

-뒤를 돌아보면 다른 길이 보인다 中

일주일 동안 같은 풍경만 이어지는 메세타를 걸으니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사진도 다 똑같고, 사람들을 찍는 것도 싫었다. 사진적으로 침체기가 온 거다. 그래서 의미 없는 풍경과 건물들을 찍기도 했다. 걷는 것도 찍는 것도 무척 힘든 시기였다. 나 혼자 ‘왕따나무’라고 이름 붙인 저 나무가 그때의 내 마음을 보여준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찍는 사람이 우울하면 사진도 우울해진다. 사진은 찍는 이의 감정을 그대로 가져가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마음과 똑같이 움직인다 中

멀어져가는 순례자의 뒷모습과 그의 어깨에 있는 큰 배낭을 바라본다. 그의 뒷모습에 나의 뒷모습이 겹쳐 보인다.

수많은 사람들이 걷는 이 길에서, 나 역시 그들과 같은 고통을 겪으며 환희를 느끼고 싶다. 때론 걷다가 지쳐 장면을 놓치더라도, 때론 카메라를 들 힘조차 없을지라도, 그들의 살아 있는 표정과 땀 냄새를 느끼고 싶다. 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다.

걸으며 내가 무얼 찍고 싶었는지 점점 분명해진다. 내가 찍고 싶은 것은 카미노가 아니다. 카미노를 걷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찍고 싶은 건 카미노가 아니었다 中

그는 친절하다.
그녀는 웃음이 많다.
그 부부는 다정하다.
그 할아버지는 윙크를 잘한다.
그 할머니는 말이 없다.
그 아저씨는 재미있다.
그 청년은 빠르게 걷는다.
그녀는 심하게 코를 곤다.
그는 혼잣말을 잘한다.
그녀는 음악을 듣는다.
그들은 노래를 부른다.
그 할머니는 늦잠을 잔다.
그 연인은 키스를 한다.
그 사람은 와인을 마신다.
그 남자는 배낭이 크다.
그 여자는 배낭이 없다.
그 젊은이는 나무 밑에서 책을 읽는다.
그는 사진을 찍는다.

우리는 모두 걷는다.
- 카미노 위의 사람들 中

곧, 대성당에 도착한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목적지에 다다르면 새로운 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안다. 이보다 더 험난하고 어려우리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내 앞에 놓여 있던 수많은 길 중 하나를 곧 끝낸다. 마침표를 찍고, 숨을 고르고 다시 길을 나서겠지만 말이다.

멀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꼭대기가 보인다. 36일간의 여정, 800km가 넘는 거리, 6만 장이 넘는 사진들, 2천 명이 넘는 순례자들, 324시간의 걷기, 1억4천4백만 보의 발걸음. 숫자로 본 나의 카미노다. 심호흡을 길게 한번 하고, 골목과 골목을 지나자 웅장한 자태의 대성당이 나타났다.

-드디어 길의 끝에 온 것이다 中 1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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