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그대에게 (리미티드 에디션)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3월
평점 :
품절


감성이 좀 건조하다고나 해야할까?

아니

솔직히 말해 읽기를 잘 못 한다고 해야 하는 것이 맞겠지?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나오는 시들은 모조리 해부학 하듯이 행,간을 나누고 의미를 파악하면서 까발려졌지만 재미가 없었고

그 이후로도 시집을 제법(?^^)이라고 해야하나? 많이 읽고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시를 읽어주는 시인이 계시면 더없이 좋다.^^

 

 

정재찬 교수님이 패널로 나오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조금씩 읽다보면 그 프로그램에서 잔잔한 음성으로 음성지원이 되는 듯 하다.^^  

 

음악을 감상할 때, 작곡가의 생애를 이야기하면서 어떤 상황에서 나오게 된 곡인지를 알게 되면 좀더 곡을 이해하는데  쉽고, 또 조금은 더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

시와 함께 가요의 이야기도 풀어주시고, 시가 나오게 된 시인의 뒷배경 이야기도 나오고 참 편안하게 시를 읽어주셔서  줄과 행의 숨은 의미를 찾으며 해부학처럼 파헤지며 읽던 시 읽기 자체를힘들어하던 나와 비슷한 친구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12개의 단락으로 나뉘어진 글귀들이 모두 좋았지만, 나는 특히 '떠나가는 것에 대하여'에 관한 내용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꽃처럼 아름답게 살기는커넝 꽃처럼 죽디고 왜 이리 힘이 드는 겐지 이간은 자꾸만 현재를 붙잡으려다 자꾸만 추한 꼴을 보이고 한다.

- 떠나가는 것에 대하여 64p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散華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가지에서 떨어져서 땅에 닿는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 동안에 매화의 결정이고,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 배꽃과 복사꽃과 벚꽃이 다 이와 같다.

선암산 뒷산에는 산수유가 피었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

산수유가 사라지면 목련이 핀다.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꽃잎을 아직 오므리고 있을 때가 목련의 절정이다. 목련은 자의식에 가득 차 있다. 그 꽃은 존재의 중량감을 과시하면서 한사코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올린다. 꽃이 질 때, 목련은 세상의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가장 참혹하다. ~~

-김훈, 자전거 여행중에서

 

인용은 길었지만, 도무지 이런 글은 줄일 재간이 없다. 그릐 글에는 묘사조차 경구警句처럼 들리는 신이함이 있다. 사랑스러운 대상에게조차 거리를 두며, 거리를 두면서도 그 대상이 제 속으로만 느끼고 있을, 그리하여 아무도 모르고 지나갈 속내조차 적확하게 드러내는, 오랜 숙련 끝에 얻어진 내공이 그에게는 있기 떄문이다. 그는 따스하고 냉정하다.

- 떠나가는 것에 대하여 65p

 

 

김훈의 글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시의 글에 대한 내용이 참으로 줄일 재간이 없다.  다같이 한 줄 한 줄 읽어보면 좋겠다.

 

 

시를 비롯한 문학 작품은 하나의 해석과 감상만을 요구하거나 용인하는 절대 진리의 세계가 아니다.

 

누구나 시를 읽고 해석하고 즐길 권리가 있다.(284p)'

'이제 다시 시가 반가운 얼굴로 성큼 다가오기 시작할 것인즉, 그러니 그만 이 책을 덮고 부디 시집을 펼치시라. 시를 잊은 그대여.(299p)

 

이 책을 내신 이유가 아닐까? 싶다.

공대생이 아닌 나도, 누구의 가슴도 울리는 서정저인 시 강의이다.  

 

남이 울면 따라 우는 것이 공명이다.
남의 고통이 갖는 진동수에
내가 가까이하면 할수록 커지는 것이 공명인 것이다.
슬퍼할 줄 알면 희망이 있다.
-눈물은 왜 짠가 82p

눈을 떠도 아니 보이고
눈을 감아도 아니 보이는 것.
그대 등 뒤에 걸린 커다란 하늘을
실눈을 뜨고서야 비로소 보인다.
-그대 등 뒤의 사랑 104p

소망이 있는 한,
기다린다는 것은 정녕 행복한 일이다.
기다릴 사람이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기다리다 죽어도, 죽어도 기다리는 132p

"부끄럽지 않은가/부끄럽지 않은가"
이 구절은 우리 시가 성취한 가장 값진 반복 중 하나로 기록되어야 옳다. 한 번으로는 부족하고 세 번은 짜증나는 법, 두 번 반복되는 이 시구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반복에 반복을 거듭해 읽어가면서 가슴이 서늘해지고 저려 옴을 느꼈는지 모른다. 시인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노래를 잃어버린 세대. 더 이상 노래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세대. 부끄럽지 않는가. 부끄럽지 않은가.
- 노래를 잊은 사람들 中 164-165p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내 안에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에서 벗어나려 한 것도,
끝내 아버지를 닮고 마는 것도
다 아버지의 그늘 탓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192p

사랑 앞엔서, 운명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어쩌란 말이냐, 흩어진 이 마음을 2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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