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티는 삶에 관해서도 생각해보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 (2017 리커버 한정판 나무 에디션)
허지웅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나의 침대 맡에 한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 리스트 중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에

(제목 때문이었을까? 내 책이었을까? 아무튼 야금야금 읽으며서도 도서관 등 기타 등등에서 빌려온 책들에 밀려 덜 읽었는데)

‘버티는 삶에 대하여’

가 보태어졌다.

화면을 통해 마음껏 주물러져 편집되어 보이는 방송인으로서의 모습도 잘 알고 있지 못하지만, 들리던 것으로만 가지고 있는 허지웅에 관한 나름의 이미지가 있었나 보다.

책을 읽으며 아! 글쟁이로서의 그의 모습을 읽고 나니 훨씬 더 나은(?이렇게 적으면 물론 방송인 허지웅에 대해 아주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나?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아무튼^^) 느낌이 든다. 잠깐 잠깐 비춰지는 것보다 솔직한 속내를 봤다는 ‘활자중독자’의 오류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모두 상처받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생이 영화나 연속극이라도 되는 양 타인과 자신의 삶을 극화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그 상처를 계기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거나, 최소한 보상받으리라 상상한다. 내 상처가 이만큼 크기 때문에 나는 착한 사람이고 오해받고 있고 너희들이 내게 하는 지적은 모두 그르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착각은 결국 응답받지 못한다. 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다. 자기변명을 핑계거리도 삼을 이유도 없다. 다만 짊어질 뿐이다. 짊어지고 껴안고 공생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할 뿐이다. 살아가는 내내 말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연민만 아니라면, 자기혐오로도 충분히 살 수 있다. 물론 사랑으로도 살 수 있겠지만 그건 여건이 되는 사람에게 허락되는 거다. 행복한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세요 사랑하세요. 같은 말을 떠벌리며 거만할 수 있는 건 대개 그런 이유에서다. 나는 별일 없이 잘 산다.

-나는 별일 없이 잘 산다 中 18p

TV만 보면 테이스트가 없는 사람이 되고, 인터넷만 보면 자기가 해보지 않은 모든 것을 불편하게 여기거나 틀렸다고 말하게 되며, 경험만 많이 쌓이면 주변 세계와 격리된 꼰대가 됩니다. 종류가 무엇이든 책을 읽으세요. 가장 오랫동안 검증된 지혜입니다.

-책 읽는 삶에 대하여 中 82-83p

요즘 살짝 고민이 생겼다. 나의 진심은 너의 진심과 다르다. 맞다. 그러나 나의 진심과 너의 진심 결국 공히 ‘진심’인 것이다. 그 개별의 진심들을 모두 싸잡아 무시하는 게 과연 옳은 태도일까.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마냥 긍정하면 바보가 된다. 그것을 마냥 부정하면, 역시 바보가 된다.

- 나는 냉소적인 사람이다 中 102p

1부는 나는 별일 없이 잘 산다는 신변 잡기에 관한,

적당한 때가 되면, 당신은 어떤 말로는 진실을 꾸며낼 수 있을 것이다.

-진실을 감추는 방법 中 165p

2부 부적응자들의 지옥에서는 80년의 광주, 2008년의 청계 촛불 광장 등 사회적으로 예민했던 이야기들, 현실에 속한 이야기를 좀더 신랄하게 이야기하고 ,

살아 있는 누군가는 깎아내려짐으로써 상품화된다. 이미 죽은 누군가는 신화화됨으로써 상품화된다. 어제 잭슨을 욕해 배를 채웠던 사람들이 오늘 잭슨을 우러러 다시 배를 채운다. 잭슨에 대한 평가는 하루아침에 바뀌었지만, 정작 그들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동기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진심과 진실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본질에 대한 어떤 규명이나 확인도 없이 괴물은 우상이 되고 우상은 괴물이 된다. 돈이 된다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세상에서 가장 쉽고 천박하며 공공연한 진실이다.

-마이클 잭슨, 괴물과 우상 中 234p

3부 그렇게, 누군가는 괴물이 된다는 바로 본인이 그렇게 됐을 수도 있는 펜대로, 혹은 방송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괴물 만드는지에 , 4부에서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째든 이 책 술술 잘 읽힌다. 가볍게 쓰여졌다는 게 아니다. 아무튼....

나의 요즘 심란한 마음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또 내게 한 가지 이야기해준다. 버티는 삶에 대하여. 이기고 지고가 문제가 아니라 15라운드까지 버틴 록키 발보아처럼 말이다.

그렇게 버티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삶의 과제를 넘어서야 하고 게다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최근의 내가,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의 내가 천착할 주제란 고민할 것도 없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물론 내가 말하는 좋고 나은 사람과 당신이 생각하는 좋고 나은 사람은 다를 겁니다. 틀린 건 아니고 다를 거예요. 아마도.

내가 사랑하는 좋은 사람이란 계산된 위악을 부리지 않고 돈 위에 더 많은 돈을 쌓으려 하기보다 내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 알며 인간관계의 정치를 위해 신뢰를 가장하지 않고(나는 신뢰를 가장하는 데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 난 듯 구토가 쏠리는 인간을 삼십 명 정도 알고 있다) 미래의 무더기보다 현실의 한줌을 아끼면서 천박한 것을 천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되 네 편과 내 편을 종횡으로 나누어 다투고 분쟁하는 진영논리의 달콤함에 함몰되지 않길 하루하루 소망하는 자다.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노력하고 있다. 변하지 않을 거란 자기 확신은 있다. 나는 신념과 이론은 아닌 좁은 오지랖과 얕은 참을성과 깊은 분노 때문에 이쪽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내게 앞뒤 상황을 가리지 않고 추종할 신념이나 이론이 새삼 생길 리 없고, 그래서 나는 어른스러움이라는 이름의 화장술을 배울 수 있을 리 또한 없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필요 이상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에서 흐른 고름을 먹고 자존감을 핥으며 의기양양 이름을 팔고 있다. 책임을 다해야 할 일에서 버티고 분투하기보다 도망가기를 먼저 선택한다. 그래서 나는 아직 좋은 사람이 아니다.

아, 나는 정말 미치도록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 언제쯤 나는 고개를 들고 거울을 보고 내 선택을 낙관할 수 있을까. 베개 맡에 누워 하루 일을 뒤돌아볼 때 ‘~했지만 그래도 그건 내가 잘했다’는 말을 더 많이 할 수 있을까. 언제쯤 나는, 나아질 수 있을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中 113-11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