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원태연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아침에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으며
내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걸 알았습니다.
참으로 따뜻하고 행복합니다.
언젠가부터 저는 행복이 TV 드라마나 CF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거울을 통해서 보이는 제 눈동자에서도 행복이 보인답니다.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무의식 중에 눈에 띄는 모든 것에
그 사람의 의미를 갖다 붙이고 무시하고
지나치던 유치한 무엇들에게 예전에 그렇게 생각해서 미안해 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저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도 좋은 일들만 생길 수가 있는지, 그렇게 늦게 오던 버스도 어느새
내 앞에 와 어서 집에 가 전화를 기다리라는 듯 나를 기다려주고,
함께 보고 느끼라는 듯
감미로운 사랑 얘기를 테마로 한 영화들이 속속 개봉되고,
읽어보고 따라 하라는 듯 좋은
소설이나 시집들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역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자주도,
그렇다고 그렇게 뜸하게도 만나지 않습니다.
매우 적당히 서로에게 다가가도 있는 중입니다.
입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손을 잡는 것으로
만족하고, 조금 더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다음 약속을 만드는 것으로 만족하여 만나고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서로의 왼쪽과 오른쪽 어깨가 똑같이 젖을 정도로 다정하게 하 나의
우산으로 비를 피하고 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그의 생일이 찾아옵니다.
그의 생일날 무슨 선물을 건네줄까 고민하는 내 모습이 참 예뻐 보입니다.
그에 게 어울릴 만한 향의 로션이나 스킨이 무엇일까? 아니면 어떤 색깔이,
난방이 그 에게 어울릴까?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언제나 나를 떠올릴 수 있게 메모와 지갑을 겸할 수 있는
다이어리 수첩을 사줘 볼까?
하며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내 보습이 그렇게도 행복하게 느껴질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아침에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으며 내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을 때 문득문득 불안해지고는 합니다.
아닐 겁니다. 문득문득 찾아오는 그 느낌을 불안하다 따위의 작은 감정의
기복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심장이 찢어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면 안 되는데,
또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버스가 너무 빨리 와 어쩔 수 없이 일찍
들어간 집에서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 전화기만 만지작만지작
쳐다보고 있으면 안 되는데, 감미로운 사랑 얘기를
테마로 한 영화가 개봉될 때마 다 아직도 흘릴 눈물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게 되면 안 되는데, 읽을 만할 거라고 선물 책 밤새도록 뒤적이며 울고
또 울게 되면 안 되는데. 어쩌면 그래서 그렇게 자주도, 그렇다고 그렇게 뜸하게도
아닌 적당히 만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입을 맞추고 싶다가도 손만 잡고
말아버리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생일 선물 하나 고르는데 몇 날을 고민하는 이번에
또 잘못되더라도 기억 속에 안 남을 선물을 고르려 노력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이번에 또 그렇게 되면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서인가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또 생기고 말았습니다.  


원태연의 시는 개인적으로 별 좋아않지만, 이병헌의 유일한 앨범[TO ME]의 낭송을 듣고 찾게 된 詩랍니다. 녹음은 약간 다른데 그게 훨~씬 -목소리 포함ㅋㅋ-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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