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걷고 싶은 길 2 : 규슈.시코쿠 -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반한 일본의 걷고 싶은 길 2
김남희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일본을 여행하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늘 시간에 쫓겼다는 것이다. 가파른 물가 때문이었다. 한 곳에 오래 머물며 일 없이 빈둥거리기를 좋아하는 내 여행 방식을 포기해야 했다. 다시 일본을 여행할 때는 시간적, 물질적 궁핍에서 벗어나 더 깊은 산골이나 섬으로 들어가 그저 느리게 걷고, 한가롭게 소요할 수 있기를 바란다.
- Prologue 나의 일본 여행을 아직 끝나지 않았다 中

1권의 가팠던 호흡의 원인이 2권의 프롤로그에서야 밝혀진다. 게다가 일본 여행의 시작이라는 시코쿠는 불교 순례길은 2권의 제일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뭐야? 일정이 모두 거꾸로 잖아? 왜 이렇게 편집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역별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어느 파트부터 읽어도 상관이 없는 책이긴 하지만 구지 산티아고에 버금가는 종교적 순례길의 감동을 위해 시코쿠를 마지막에 편집해야만 했을까? 싶다. 
 

 

가만히 나무를 바라본다. 가까이 귀를 대면 깊고 푸른 나무의 숨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이 나무가 살아온 수천 년의 시간을 생각해본다. 이 섬의 삼나무들은 느리게 자라난다. 다른 섬의 삼나무들이 30년이면 자랄 높이에 다다르기 위해 이 섬의 삼나무들은 300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더디 자라는 만큼 그들은 오래 살아남는다. 오래 가기 위해서는 느리게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걸까. 왕복 아홉 시간을 걸어 이 나무를 만나고 돌아가는 동안 사람들은 잠시나마 세상의 시간 따위는 잊어버린 채 이 숲의 시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수십억 년에 걸쳐 이루어진 지구의 모든 것들을 백 년도 되지 않아 소진해버리는 우리들. 후손도, 미래의 삶도 생각하지 않는 이토록 짧고 허망한 시간 개념이라니. 조몬스기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은 그토록 느리게 흘러가는 지구의 시간을 잠시나마 호흡하는 법이 아닐까.
- 신들의 세계를 허락 없이 기웃거리다 야쿠시마 中 024-025

아무튼, 조몬 삼나무의 야쿠시마도, 에머랄드그린빛 오키나와도 멋지지만 아무래도 시코쿠의 순례길은 대단했다.  

 
나는 ‘종교적인’ 사람보다는 ‘영적인’ 사람이고 싶다. 특정한 하나의 종교를 선택하기보다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신의 마음이 깃들어 있음을 아는 사람이고 싶다. 무언가를 간구하는 기도보다는 감사하는 기도를 올리는 사람이고 싶다. 인간이 한없이 약하고 미천한 존재임을 신 앞에 겸허히 인정하는 사람이고 싶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나라에는 신이 많다. 800만 신을 모신 나라라는 말이 있을 만큼 세사의 모든 신이 다 모셔져 있다. 마을마다 서 있는 신사에서 손을 모으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가미사마(신)’께 나도 손을 모은다. 물집의 완쾌를 빌려다가 다시 바꾼다. 지금 이 순간이, 이번 생이,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그저 감사하다고,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절간의 부처님, 빙그레 웃으시는 것 같다.
- 일본에 끌리는 내 마음은 아직 반쪽짜리 31번 지쿠린지~40번 간지자이지 中 189 
 

 1번 절부터 88번 절까지 일본 불교의 한 종파인 신곤슈(眞言宗, 진언종)의 창시자인 고보 다이시를 따르는 1200킬로미터의 시코쿠 불교 순례길. 카미노데산티아고의 800킬로미터보다 긴 길이 가까운 곳 일본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게 이 책의 큰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길 위에서 우리는 아무런 가면도 쓰지 않는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을 들여다볼 뿐이다. 걷고 있을 때 우리는 머리를 쓰지 않는다. 찾아오는 모든 만남에 몸으로 정직하게 반응할 뿐이다. 가야 할 길이 험하고 고달플수록 감사할 일은 늘어난다. 눈은 밝아지고 마음은 담백해진다. 진짜와 가짜가 구별되고,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들이 보인다. 천년 전부터 오늘까지, 욕심 없이 순하게 걷고 또 걸어 자기 자신이 되었던 익명의 순례자들. 그들이 지금 나를 붙잡아주는 걸까. 지구 위에 이토록 영적인 길들이 있다니, 새삼 고맙다.
- 길 위에선 만남도, 헤어짐도 잠시 24번 호쓰미사키지~30번 젠라쿠지 中 155

글쓴이가 길을 떠나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이렇게 영적인 길들을 따라 나서는 그. 이제 또 어떤 새로운 길을, 새롭게 보게 될 길을 우리에게 일러줄지 궁금하다.

책을 덮으려는 마지막에 이르면 사누키 우동이 너무나 먹고 싶어지는 책. 결국 우동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우동집으로 가게 되는 후유증은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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