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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에서 일주일을 - 어느 사회학자의 인문학적 일기장
유승호 지음 / 가쎄(GASSE) / 2011년 2월
평점 :
강원도와 제주도를 연상시키는 에든버러에 도착하고 첫날, 여권을 잃어버리고 갑자기 공식적 정체성이 상실된 일(16p)이 일어나고, 성찰 여행이 시작된다.
이 책은 에든버러의 여행기 형식을 빌렸지만 사실 여행기가 아니다. 에든버러에서 보고 느낀 것을 여행 중에 쓴 글이기 때문에 여행기이지만, 일반적인 여행기처럼 여행 정보를 담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에든버러라는 도시를 매개로 우리의 문화와 문화산업, 도시발전에 대한 나의 상념을 담은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9p
물론 책의 첫부분에 이렇게 밝히고 있긴 하다.
늘 낭만적인 전원 풍경을 생각하며 환상을 가지고 있던 스코틀랜드의 이야기는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다. 그렇게 밝히고 있으니..
영국이면서 영국이 아닌 스코틀랜드 이야기.
여행기가 아니면서 여행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해보기.
프린지 페스티벌을 다녀온 여행 결과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본 학계 보고서 같은 이 책 그러나 이렇게 뮤미건조하게....심지어 꽤나 딱딱하다. 스코틀랜드 아이었어서도 충분히 사유해 볼 수 있는 이야기거리들의 이야기이다.
내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우리 동해안의 7번 국도는 이미 사라졌다. 물론 물리적인 국도는 여전히 그대로 존재하고 있지만 그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삶과 기억들은 사라졌다. 공간은 있지만 사람들의 생활과 흔적이 없다. 사람들이 없으므로 기억마저 없다. 걸어가며, 운전하며 마주치는 가게들은 텅 비어 잠겨 있고 폐가로 쇠락하고 있다. 교차로에서 반갑게 만난 작은 가게는 가까이 가보면 거대자본의 속물이다. 수십 년을 지키는 가게주인은 간데없고 편의점 아르바이트 종업원은 아무런 기억도, 기억할 것도 없다. 그냥 아르바이트에 지쳐 다른 이의 인생을 그냥 넘겨짚는 망상자도 ‘멍상자’에 불과하다. 동해안 걷기는 순례라는 이름으로 신성화되었다. 오래 걷기가 드물고 그 드문 것에 생명을 부여하려 애쓰는 사람들을 높여 부르는 낱말들. 그런 순례자들에게 작은 동해안 국도의 동네 가게는 제주도의 삼다수 물을 건넨다.
- 여행객의 일주일 中 넷째 날, 주변자의 성공방정식 76-77p
에서는 우리의 7번 국도와 통영의 통피랑 벽화 마을과 함께 에든버러의 투철한 장인 정신이 담긴 건 아닐까? 서비스교육을 받은 건 아닐까 하는 반갑게 방문객을 맞는 친절함과 함께 오버랩 되는 이 장면은 왠지 씁쓸하다.
여행을 다닐 때 거의 기념품을 사고 하지는 않지만, 처음 유럽을 갔을 때 우리나라에서처럼 이곳저곳에도 다 파는 기념품인 줄 알고 다음 도시에서도 살 수 있을 줄 알았던 이탈리아에서 작은 기념품이 생각난다. 우리 나라에서는 강원도나 제주도의 선물샵에서도 꼭 같은 기념품을 살 수 있는데 말이다...
강원도나 제주도나 꼭 같이 방문객을 맞는 친절함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도 싶고,
파리나 로마처럼 도시 인구보다 더 많은 관광객들 떄문에 결코 친절하지 않은 곳과는 사뭇 다른 에든버러의 모습이 사랑스럽기조차 하다.
다른 사유의 이유로 나도 에든버러를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