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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케빈 마이클 코널리 지음, 황경신 옮김 / 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오체 불만족]의 오토다케를 보는 때와는 사뭇 다르다. 오토를 위해 초등학교 장애 시설을 만들고 하던 것이 인상적어서인지, 당연....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지...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좀 덜할 거라는 어이없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케빈이 다리가 없는 줄 알면서도 사진의 컷들을 처음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봤더니
휠체어가 아닌 보드를 선택한 자기를 보고 double take에 대한 반발? 내지는 ‘나도 이렇게 쳐다본다‘는 생각에 이런 컷들이 나오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왜 내게 시선을 보내는지, 나는 이해했다. 나는 그들과 달라 보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마도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더러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바닥을 굴러다니는 것보다는 바닥을 굴러다는 것보다는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존재로 보이는 것이 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간단하고 쉽게 돌아다닐 수 있는 방법으로 스케이트보드를 선택했다. 내가 나의 선택을 바꾼 데에는 나만의 이유가 있었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충격적인 영향에 대해는 결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저 사람은 왜 휠체어를 살 돈이 없나?
홈리스인가?
구걸을 하고 있나?
사람들이 왜 그런 질문들을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타인들에게 내 존재의 정당성을 설명하려고 끊임없이 애쓰는 일은 나를 지치게 했다. 어떻게 해서 지구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야만 하는 외계인이 된 것 같았다. 사람들의 질문과 추측들은, 내가 인간이 아니라 서커스 단원처럼 여겨지도록 강요하는 것들이었다. 나를 응시한다거나 의문을 갖는다거나 하는 행위들이 그랬다.
스케이트보드가 가져다주는 모든 상처와 소외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건 이미 나 자신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나는 정상적으로 세계를 보기 위해 스케이트보드를 선택했고, 그것을 포기하게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드는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 왔는지를 대변해주었다. 나의 세계는 미적인 가치보다 적응과 실용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붙잡아야 하는 세계였다. 스케이트보드가 없었다면, 나는 특별하거나 심지어 불가능해 보였던 그 모든 일들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 14 무슨 꿍꿍이야? The Dog Show 212-213
좀더 자유롭기 위해 스케이트보드를 선택하게 되지만
그 곱지 못한 시선들을 그대로 받게 된다. 만약에 나도 어딘가에서 케빈을 케빈과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면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그런 시선들에 굴하지 않고 많은 곳들을 여행하며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의 사람들을 무려 3만장이 넘게 찍고, X게임에서 모노스키를 타고 2위까지 오르게 되는 등의 성과를 얻게 된다.
double take에서느끼던 많은 불평들 불만들에서 조금은 편해졌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