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노진선 옮김 / 솟을북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신성한 힘이 내 인생에 개입해줬으면 좋겠어. 제발 이 일을 좀 끝내달라고 신에게 청원서라도 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못 쓸 건 또 뭐야?”
나는 이바에게 기도에 대한 내 개인적 견해를 설명했다.
“ 난 신에게 뭔가 구체적인 것을 요구하는 게 불편해. 그건 뭐랄까 믿음이 약해진 것처럼 보이거든. ‘내 인생에서 힘든 이런 저런 일을 좀 바꿔주실래요?’라고 기도하고 싶진 않아. 신께서 다 뜻한 바가 있어 내가 그 역경을 극복하기를 원하실지 모르는 일이잖아. 그래서 난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담한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는 편이 더 마음 편해.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이바는 예의 바르게 내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이렇게 물었다.
“대체 왜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거야?”
“뭐라고?”
“우주를 향해 네가 원하는 것을 기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도대체 왜 하게 되었냐고? 넌 이 우주의 일부야, 리즈. 한 성분이라고. 따라서 이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에 참여하고, 나아가 네 감정을 알릴 자격이 충분해. 그러니까 네 의견을 한번 털어놔봐. 자기 진술을 해보란 말이야. 내 말 믿어. 적어도 고려의 대상은 될 테니까.”
“정말?”
나로서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정말이고말고! 만약 네가 지금 당장 신에게 청원서를 쓸 수 있다면, 뭐라고 쓸래?”
- 9 신에게 청원서를 쓰다 55
 

늘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힘들어하던 그녀가 이혼으로, 또 생각 없이 터무니없이 빠져버린 새로운 연인과의 어이없이 끝나가는 사랑 때문에 만신창이가 되어 자기에게 주는 일 년 간의 휴가를 주게 되는 리즈의 이야기.
쾌락 추구, 신앙 추구, 균형 추구에 적당히 어울리는 로마와 인도 아쉬람과 발리에서의 일 년 간의 이야기이다.
  

사실 영화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뒤늦게 만나게 된 책인데, 소설일 거라고 생각하고 책을 접해봤더니 의외로(??) 에세이다. 여행기라고는 하나 책장 낱장 한 장 한 장이 얇아 무려(??) 500p에 달하는데도 흔한 사진 한 장 없다. 유명 관광지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로마에서는 먹고, 뭄바이에서 조금 떨어진 그곳에서는 요가 아쉬람에서 명상에만 잠기고, 발리에서도 그저 임대한 곳에서 현지인처럼(??) 살아보려다 사랑하게만 되는 이 책을 여행기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장소를 옮겨 가더라도 ‘늘 함께 가게 되는 마음‘ 때문에 힘들어하며 사람에게 끈임 없이 실망하고 좌절하고 사람으로 인해 치유해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중독은 맹목을 바탕으로 한 모든 사랑 이야기의 단골손님이다. 이는 애정의 대상으로부터 우리가 원하고 있다고 감히 인정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찔하고, 환각적인 그 무엇을 받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마도 천둥 같은 사랑과 영혼의 밑바닥까지 뒤흔드는 짜릿함이 섞인 감정적 마약쯤 될까.
이내 우리는 여느 마약 중독자의 배고픈 집착으로 그 강렬한 감정을 갈구하기 시작한다. 투약이 보류되면 금세 미치광이 환자가 되고 만다(애초에 이 중독을 부추겨놓고, 이제 와서 물건을 팔지 않겠다고 버디는 마약상에 대한 분노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가 어딘가에 그 물건을 숨겨 놓았다는 걸 알고 있다, 빌어먹을. 왜냐하면 전에는 공짜로 주던 물건이니까).
다음 단계가 되면 우리는 피골이 상접한 채 길모퉁이에 서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그 물건을 한 번 더 가질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강도짓이라도 할 준비다 된 채로. 하지만 그 동안 우리 애정의 대상은 이제 우리에게 정나미가 떨어져버린다. 그는 우리를 한때 정열적으로 사랑했던 사람으로 보는 건 고사하고, 생판 남 보듯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를 비난할 수 없다. 자신을 좀 돌아보라. 우리는 자기 자신도 못 알아볼 정도의 한심한 쓰레기가 되었다.
그게 끝이다. 이제 우리는 맹목의 최종 목적지에 도달했다. 조금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바닥까지 떨어져버린 자아.
- 5 데이비드에게 중독 : 짧은 행복, 긴 외로움 38-39


체중 증가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에 가서 먹는 것에만 집중하고, ‘나’에게 ‘나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고, 사랑에 너무나 중독되고, 상처받고서도 새로운 사랑에 도전하는 그녀가 아름답다.

인도에서 만난 뉴질랜드에서 온 배관공 겸 시인이 쥐어준 쪽지에서‘~그리고 놓아버려라‘, ‘~그리고 놓아버려라‘로 마무리되는 [자유로워지기 위한 설명서]는 리즈에게도 그랬겠지만 내게도 무척 인상적이다.
  

사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여행가는 아니다.
내가 그 사실을 아는 이유는 그 동안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정말로 여행을 잘하는 사람들을 만나봤기 때문이다. 진정한 여행꾼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 무쇠 같은 체력 덕분에 캘커타의 도랑물을 한 바자기나 마시고도 끄떡없는 사람. 다른 사람들은 고작 전염병이나 걸리는 곳에서도 오히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오는 사람. 위협적인 국경 관리인을 만나도 눈썹 하나도 까딱하지 않고, 비자 사무실의 비협조적인 직원들을 어떻게 구슬려야 하는지 아는 사람. 어딜 가든지 그곳 주민들과 비슷해 보이는 적당한 키와 외모를 가진 사람. 그들은 터키에 가면 투르크족으로 보이고, 멕시코에 가면 갑자기 멕시코인이 되며, 스페인에 가면 바스크인으로 오인받는다. 미국에서는 가끔 아랍인으로 통하기도 하고.
- 13 여행은 내 일생일대의 사랑 66

그렇게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뛰어난 여행가이다.  

 하지만 이 모든 악재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여전히 내 일생일대의 사랑이다. 열여섯에 베이시터로 번 돈을 모아 처음으로 러시아에 다녀온 이후부터 난 언제나 여행은 어떤 희생이나 고통도 치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의 다른 애정의 대상들과는 달리 여행에 대한 내 사랑은 언제나 충실하고 변함없었다. 내가 여행에 대해 느끼는 감정한 행복한 초보 엄마가 말도 안 듣고, 늘 아프기나 하고, 산만하기 그지없는 아기에게 느끼는 감정과 같다. 아기는 날 아무리 힘들게 하든 상관없는 법이다. 왜냐하면 내가 너무도 사랑하니까. 내 거니까. 나랑 꼭 닮았으니까. 내 몸에 토악직을 해도 괜찮다. 난 상관하지 않는다.
- 13 여행은 내 일생일대의 사랑 68
  

그런 그녀의 새로운 사랑, 새로운 여행에 다시 한 번 관심이 간다. 발리 그 후 두 번째 이야기 [결혼해도 괜찮아]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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