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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평점 :
글을 쓰다가 막힐 때 머리도 쉴 겸 해서 시를 읽는다. 좋은 시를 만나면 막힌 말꼬가 거짓말처럼 풀릴 때가 있다. 다 된 문장이 꼭 들어가야 할 한마디 말을 못 찾아 어색하거나 비어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도 시를 읽는다. 단어 하나를 꿔오기 위해, 또는 슬쩍 베끼기 위해. 시집은 이렇듯 나에게 좋은 말의 보고다.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 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 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을 때 中 215-216
그다지 수필 종류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좋아하는 박완서님의 글을 오랜만에 만나는 기쁨에 작가의 수필을 대하게 됐다. 역시나~~하는 마음으로 읽게 됐다. 연륜에서 오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 작가의 눈을 통해 늘 바쁘게 살아가는 척 하면서 내 근처를 둘러보기를 못하는 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흐르는 강가에서’에 양수리-수종사-다산유적지로 가는 길은 몇 번이나 다녀온 길인데 이렇게 세심하고 사물을 보고 읽고 듣고 하면서 기억해낼 수도 있구나싶고, ‘나는 다만 바퀴 없는 이들의 편이다’에 나오는 남한산성에 관한 이야기도 매우 인상적이다.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할머니 같다가도 아주 예민한 소녀처럼 보이는 것이 작가의 소소한 일상들에서 느껴지는 삶의 지혜 등이 놀랍다.
독후감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 쓴 2부 책들의 오솔길도 좋고, 추모사들이 담긴 3부 그리움을 위하여도 인상적이다. 늘 건강하셔서 또 다른 책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