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집
전경린 지음 / 열림원 / 2007년 12월
구판절판


아저씨는 승지와 내게로 다가오더니 쓸쓸하게 웃으며 둘의 손을 동시에 잡고 흔들었다. 아저씨의 웃음은 남루하다 못해 구멍이 숭숭 난 지독히 슬픔 웃음이었다. 아빠는 억지웃음을 웃을 바에야 어색한 채로 버티는 사람이지만, 내가 없는 어딘가에서는 그렇게 비루하게 웃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65쪽

어른들도 누구나 삶을 힘겨워하고 있고 누구나 조금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05쪽

"우린 무언가를 할 때마다 실패도 하고 상처도 입고 후회도 하지. 마음이 무너지기도 해. 사는 동안 몇 번이고 마음이 무너지지. 하지만 중요한 건 다시 하는 거야."
아저씨는 정말 마음이 다 무너져 본 사람 같았다. 아저씨는 젊었을 때 이혼을 했고 그 후로 아이도 잘 보지 못하게 되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 그럴 때, 난 쉬운 일만 해. 심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만 하지. 쉬운 일도 규칙적으로,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힘이 생겨. 그리고 시간이 가면, 그게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 걱정 마. 그렇게 될 거야."
-122쪽

젊음도 인생도 너무 길다. 우리 세대는 평균 수명이 백 살이라고 한다. 결혼 적령기는 서른 살도 넘어설 거라고 한다. 이십대란,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 같지만 실제론 아무리 휘저어도 손에 잡히는 게 없다. 몸이 붕붕 떠오르는 무중력 속에서 우리에게 허용된 것은 오직 배움이고 계획이고 허구이고, 꿈이고 대기일 뿐이다.
-208쪽

어른들이란, 도저치 참을 수 없는 것 까지도 저렇게 힘껏 받아들이는 사람들인가.......가슴이 뻐개지도록 밀고 들어오는 진실들을 받아들이고 또, 승낙 없이 떠나려는 것들을 순순히 흘려보내려면 마음속에 얼마나 큰 강이 흘러야 하는 것일까. 진실을 알았을 때도 무너지지 않고 가혹한 진실마저 이겨내며 살아가야 하는 게 삶인 것이다.
-253-254쪽

사랑을 하면 할수록, 우린 사랑하는 사람보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람드을 더 사랑하게 되거든.
-264쪽

공부란 한번 교과과정에 밀리기 시작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밀리지만, 머리에 쥐가 나더라도 고비를 넘어 밀고 가기 시작하면, 눈덩이를 굴리듯 쌓아가는 재미가 있다. 심지어 시험조차 적극적으로 자기를 측정하는 즐거운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공부를 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은 외로움과 자유의지, 그리고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하는 결핍이란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그 힘을 잘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268-269쪽

"혼자 있는 사람이 외롭다는 건, 사람들이 하는 가장 큰 오해야."
........
"사람은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없어서 외로운 거야."
-270쪽

페넬로페의 후예들-김형중 문학평론가
그때쯤, 전경린도 검은 우산과 어둠과 염소의 도움을 빌려 가부장의 집으로부터 야반도주했다. 같은 시기 집을 나선 그 어떤 페넬로페들보다는 그녀는 일탈적이었고, 관능적이었으며, 독하고 당찼다. 은희경은 냉소를 택하고, 공지영이 신파를 택하고, 공선옥이 피도 눈물도 없는 자연주의를 택하고, 김형경이 신경증을 택할 때, 전경린은 성(sexuality)을 택했다.
.....그녀의 ‘쾌락의 활용’은 윤대녕의 ‘여행의 활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존재의 근원을 찾기 위해 여행을 택한 대신 성을 택했다고 해서 그녀가 딱히 더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282-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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