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공지영 에세이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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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누가 "마음에 새기고 사는 구절 하나쯤 있으세요?"묻길래 그런 대답을 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내 맘대로 되는 일 하나도 없다. 그래서 순간순간이 재미있다."
언젠가 몹시 힘들던 어떤 날에 ‘인생의 핵심은 고통이다.’라는 구절을 읽고 불에 덴 듯 며칠을 화끈거리던 기억이 있다. 마나는 사람에게마다 눈물까지 약간 글썽이며 말하곤 했다.
"내가 무슨 책을 읽었는데 거기 내가 존경하는 필자가 그러더라. 인생은 핵심은 고통이다.......너무하지 않니? 지금만 지나면 좀 나으려나 했는데 인생의 핵심이 고통이라니.....너무하다구. 응? 넌 어떻게 생각하니?"
친구들은 내 질문을 듣고는 약간 멀뚱한 표정으로 "음, 일리가 있네."라며 내가 더 심각한 말을 할까 봐 얼른 다른 말로 넘어가 버리곤 했다.
내 맘대로 안되니까 재밌는 거야 중
인생의 핵심이 고통이라니, 너무해! -154쪽

심리학에 따르면 언제나 남의 탓을 하는 성격장애와 언제나 자기 탓을 하는 신경증적인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거칠게 말하면 주로 남자에게 성격장애가 많고 여자에게 신경증적인 요소가 많은데, 병원을 찾는 이들은 주로 신경증적인 사람들이라고 한다. 둘 다 병적인 상태는 틀림없지만 그래도 신경증적인 사람들은 면담 치료에 꽤 효과가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탓이 있다고 생각하고 어쨌든 자기를 변화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결혼을 한 지 하루가 지났거나 아이를 낳은 지 한 달쯤 지나면 남을 변화시키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쉬운 일이긴 하다.
나 역시 어려운 시절을 거치면서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그 쉽고도 유명한 이야기를 받아들이기까지 정말 많은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다. 하지만 그걸 깨달았다고 해서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제가 그런 거 아니거든요 중
들보 사이로 보이는 너무 많은 티끌들에서 -162쪽

나는 힘이 들 때마다 친구의 이 말을 떠올리곤 했다. 신기하게도 마음에도 근육이 있다는 것을 나는 발견하게 된 것이다. 마음을 조절하려고 애쓰고,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마음뿐이라는 걸 생각하며 호흡을 가다듬고.......처음에는 이것이 갑자기 마라톤을 뛰려는 것처럼 어림도 없는 일로 보인다. 그런데 실패하면서도 어찌됐든 그래 보려고 애쓰면 신기하게도 근육이 생기듯이 조금씩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에도 근육이 있다 중 상처받는 건 살아있다는 징표에서- 170-171쪽

나는 힘든 친구에게 가끔 말하곤 했다.
" 마음에도 근육이 있어. 처음부터 잘하는 것은 어림도 없지. 하지만 날마다 연습하면 어느 순간 너도 모르게 어려운 역경들을 벌떡 들어 올리는 널 발견하게 될 거야. 장미란 선수의 어깨가 처음부터 그 무거운 걸 들어 올렸던 것은 아니잖아. 지금은 보잘 것 없지만, 날마다 조금씩 그리로 가보는 것...... 조금씩 어쨌든 그쪽으로 가보려고 애쓰는 것. 그건 꼭 보답을 받아. 물론 네 자신에게 말이야."
그러면 어떤 친구는 묻는다.
"꼭 그런 것까지 노력하며 살아야 하니?"
물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상처를 받고, 생명이 가득 찰수록 상처는 깊고 선명하다.

마음에도 근육이 있다 중 상처받는 건 살아있다는 징표에서- 170-171쪽

한때 삶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고 느낄 때 나는 평화를 간절히 갈구했다.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랐던 것이다.어느 정도 생이 안정을 찾고 나자 나는 자유를 원했다.처음 자유를 원한다,라는 생각을 했을 때 솔직히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피에 젖은 밴발 같은 것이었다.자유라는 게 말이 그렇게 그게 쉬운가 말이다.개인이든 나라든 자유라는 걸 얻는다는 것은 결국 핏빛 깃발을 휘날리는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요즘 들어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유란 결국 평화의 다른 이름이며 정말로 예수의 말대로 그건 진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 말이다.예수는 우리에게 진리란 결코 옛것의 이름으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온 몸으로 증명하다가 처참하고 사형당한 사람이고 보니,내가 처음에 생각한 피에 젖은 맨발이 그리 틀린 생각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착과 상처를 버리는 곳에 조금씩 고이는 이 평화스러운 연둣빛 자유가 너무나 좋다.편견과 소문과 비방과 비난 속에서도 나는 한줄기 신선한 바람을 늘 쐬고 있으며 내게 덕지덕지 묻은 결점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고통속에-254-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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