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동유럽의 골목을 걷다 - 한 소심한 수다쟁이의 동유럽 꼼꼼 유랑기
이정흠 지음 / 즐거운상상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동유럽이라 하면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만을 많이 떠올리는데,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된 많은 나라들과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을 포함한 이야기라 <론리 플래닛>을 들고 다닌 글쓴이처럼 이 책을 들고 다녀도 역사와 문화를 모두 알 수 있도록 상세하게 나와 있는 매우 꼼꼼한 여행기이다. 
 

또, 요네하라 마리의 <프라하의 소녀 시대>라는 책 덕분에 동유럽 여행 계기가 되었다고 책 첫머리에 명시하고 그 책에 실린 곳들의 추적 덕분인지 특별히 베오그라드의 세르비아 발칸의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아무도 누가 세르비아인이고 누가 크로아티아인이며 누가 무슬림이냐고 묻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한 인민이었으니까. 그 사실을 어떻게 물릴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걸어야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구유고연방 사람들이 다시 하나가 될 이유도, 정당성도 없겠지만, 적어도 예전에는 서로 친구였고 이웃이었고, 협력자였다는 것 정도는 떠올려도 되지 않을까. 그것만으로도 서로에 대한 증오에 폭력을 줄이는 첫걸음이 될 테니까. 꽃의 집을 방문하는 유고 사람들이 과거의 ‘강한’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추억이나 향수가 아닌, 함께 공존하며 살던 ‘평화로운’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그리움과 앞으로의 평화로운 ‘미래’를 꿈꾸는 거라면 좋겠다. 나 역시, 처절하게 죽고 죽인 이 밭칸의 땅에서 서로 존중하고 다름을 인정하며 공존하는 새 시대가 오기를, 그런 평화의 시대가 오기를 티토의 묘 앞에서 조심스럽게 기원했다.

코소보 [유고 사회주의의 상징 티토의 묘지] 중 363 p

 

짧았던 유고슬라비아와의 인연도 끝이 났다. 과한 감상에 시달렸지만, 그만큼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에서 시작해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에서 끝이 난 2주간의 유고슬라비아 여행은 나에게 짙은 흔적을 남겼다. 이제 지도에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는 없지만, 내게는 죽을 떄까지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이제 각기 다른 나라지만, 슬로베니아도 크로아티아도 몬테네그로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도 세르비아도 모두 고맙다는 인사말은 같았다. 흐발라hvala 정말, 진심으로 ‘흐발라’다.

코소보 -[베오그라드의 메이 데이] 중 367p

전쟁의, 또는 내전의 상처로  힘겨운 지역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이 짠해지는 내용이 많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건물 옆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다리가 놓여있기도 했고, 지친 표정으로 구걸하는 사람을 지나면 세상에서 제일 세련된 복장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동유럽은 나의 선입견이 어떻든 아주 특별하기도 한, 그런 곳이었다. 마치 낮과 밤의 경계에서 때로는 어정쩡하게 때로는 독특하게 풍경을 만들어내는 오후 5시처럼 말이다.

작가의 글 [동유럽 여행에 대한 사소하고 솔직한 수다] 중 8

처음에는 화려하게 나와 있는 여느 여행기와는 다르게 화보가 많이 없어 서운한 감이 있었지만, 색감을 죽인 가끔씩 나오는 사진들이 오히려 동유럽의 오후 5시같은 분위기를 제대로 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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