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게 한걸음 -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서유미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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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상상과는 너무 다르다. 십대 후반, 혹은 이십대 초반쯤에는 서른살 정도면 인생의 모든 것이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 있을 거라고 믿었다. 표면적으로는 나 혼자 사는 원룸과 재산 목록 일호로 꼽는 잘 빠진 자동차, 열정을 다해 일하고 싶은 직업과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약간 버거운 연봉, 뭐 이런 것을 소유하고 있을 줄 알았다. 그뿐 아니라 거창한 삶의 목표를 향해 질주하며 나를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인생의 동반자와 사랑에 빠져 있을 거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21세기에는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닐 거라는 상상보다 훨씬 현실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서른살 이후의 인생이란 날개를 활짝 펴고 그 궤도를 따라서 멋지게 비행만 하면 될 거라고 기대했다. 정해진 궤도를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 때문에 살짝 지루해질 수도 있지만, 갈팡질팡하고 불투명한 스무살 무렵에는 오히려 그런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젊음의 절정으로 빛날 삼십대를 생각하면 황홀해졌다. 그래서 그때는 서른살이 넘으면 인생을 견뎌내기가 훨씬 수월할 것 같았다.
-66-67쪽

그런데 서른셋씩이나 되고 보니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삼십대는 빛나지는 않고 젊음의 절정도 아니며 여전히 바람과 파도가 아슬아슬하게 키를 넘기는 태풍 속일 뿐이다. 안정적인 궤도라는 것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이루어놓은 것은 아무적도 없다. 삶이 안정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가슴을 짓누른다. 인생은 점점 더 살아가기가 팍팍하고 피 속에는 세상의 찌꺼기까지 잔뜩 끼어 혼탁해진 것 같다. 배신이라도 당한 기분이다. 물론 나 자신에게 말이다. 이런 지경이니 사십대는 기대와 상상이 되기는커녕 낭떠러지 같은 기분마저 든다. 사십대를 기대하기에는 인생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없다. 독하게 마음먹고 인생이라는 밭을 다 갈아엎기 전에는 말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67쪽

이 나이쯤 되고 보니 사랑이 모든 것을 다 이기고 해결해주리라 생각하지는 않게 된다. 그래도 사랑이 아무렇지도 않게 추락하고 발에 치이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사랑은 적당히 높은 곳에서 신비로운 모습으로 있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랑이 밥은 못 먹여줘도 배고픔은 잠시 잊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142 쪽

죽음은 산 사람들에게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장례라는 긴 의식을 통해 그런 자리를 마련한다. 사실 나도 나 자신과 그다지 원만한 사이는 아니다. 싸움과 냉전과 불만과 후회가 끊이지 않았다. 한때는 뻗어나가는 고민과 이상을 현실이 따라가지 못했고, 때로는 현식에 안주하느라 아무것도 꿈꾸지 않았다. 언제나 이게 아닌데, 좀더 나은 삶이 있을 텐데,라고 중얼거리지만 하루하루 시간 때워가기 바빴다. 그러고 나면 분노와 자괴감이 치밀었다. 그러면서도 이런 보잘 것 없는 삶마저 전복될까봐 두려웠다. 그러다보니 나와 화해할 틈이 없었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면 삶은 꽤나 평화로운 것이다. -244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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