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당초 내가 우리의 이야기를 글로 쓰려고 한 까닭은 이 이야기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글로 쓰려고 하니까 기억들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는 우리의 이야기가 내게서 빠져나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것들을 어떻게든 글을 통해서 붙잡아두고 싶었다. 하지만 글쓰기 역시 나의 기억들을 되살리지는 못했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우리의 이야기를 건드리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 나는 우리의 이야기와 화해했다. 그러자 우리의 이야기는 되돌아왔다.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내게 더 이상 슬픔을 주지 않을 정도로 둥글고, 완결되고, 나름대로의 방향을 지닌 모습으로. 나는 지난 오랜 세월 우리의 이야기가 정말로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우리의 이야기가 진실되다고 생각하며, 바로 그런 까닭에 그것이 슬픈 이야기냐 아니면 행복한 이야기냐 하는 물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231-232쪽
어쨌든 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생각할 때면 이 사실만을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무언가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을 때면 당시에 겪었던 마음의 상처들이 떠오르고, 내가 죄책감을 느낄 때면 당시의 죄책감이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내가 오늘날 무언가를 그리워하거나 향수를 느낄 때면 당시의 그리움과 향수가 되살아나곤 한다. 우리의 인생의 층위들은 서로 밀집되어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중의 것에서 늘 이전의 것을 만나게 된다. 이전의 것은 이미 떨어져 나가거나 제쳐둔 것이 아니며 늘 현재적인 것으로서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나는 이 사실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그것이 정말로 참기 어렵다고 느낀다. 어쩌면 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비록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지만 그래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썼는지도 모른다.
-2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