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이야기
전호태 지음 / 풀빛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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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반도 거주민이라면 대부분 고구려의 방역과 국력에 대한 환상 내지는 미련이 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만주 벌판이 얼마나 광활한 지에 대해서는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 넓은 땅을 통치하고 - 무려 중국 통일왕조와 정면대결을 펼쳤던 고구려에 대한 그리움은 발해와 고려의 건국으로 이어졌으며 우리의 대외적인 이름 또한 Korea, 즉 고구려이다. 고구려에 대한 한민족의 집착과 애정은 1,000년 이상을 반도 안에만 갖혀 지낼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자격지심, 또는 恨의 투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에게 고구려는 한족의 요순시절과 같이 여겨지고 있으며 - 안타깝지만 -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고구려의 반의 반토막보다도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나도 어쩔 수 없는 한민족이다. 때문에 이 책을 보게 되었다.

고구려는 지나치게 북쪽에 있었다. 물론 지금의 못난 후손 입장에서 말이다. 신라는 당장 대국이 북에서 짓누르고 있어 견디기 힘들었고, 당 또한 변방의 골칫거리를 제거하고 싶었다. 수양제, 그리고 당태종의 끔찍한 전례가 있었지만, 이번엔 우군이 적국의 뒤에서 호응하는 형세이니 도박을 걸어봤다. 그렇게 당고종에 의해 고구려는 멸망했고 고구려의 사료와 각종 유물들이 무수히 남아있던 평양과 국내성, 졸본 등은 이후 수백 년 혹은 아직까지도 한민족의 영토로 편입되지 않았다. 이는 발해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우리는 현재 고구려에 대해 극히 제한적인 사료와 유물만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런 난감한 상황 속에서도 한줄기 빛은 있었으니, 그게 바로 고분벽화인 것이다. 고구려인들 사이에선 유난히도 무덤에 벽화를 그리는 일이 유행했으며, 이는 고고학자 및 역사학자들에게는 크나큰 축복이었다. 그 양반들이 벽화를 안 그렸더라면 우리가 아는 고구려의 모습은 발해의 그것보다 덜하면 덜했지 결코 명료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이 고분벽화를 토대로 고구려에 대한 썰을 풀어놓고 있다.

사실 아주 특별할 건 없었다. 이미 고구려에 대해선 학교에서나 공무원학원에서 질리도록 배워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확실히 그런 건 있었다.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무용총이나 강서대묘 벽화가 대단히 높은 수준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작품들이 워낙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고분벽화들의 상태나 수준이 썩 좋지는 않아보이더라.

와중에도 몇몇 이야기는 내 눈길을 끄는 면이 있었다. 저자는 일본서기의 기록도 종종 가져오고 있는데 거기 따르면 고구려와 백제가 싸웠을 때 적장끼리 서로 1대1로 겨뤄서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었다고 한다. 일본식으로 말하자면 일기토가 있었다는 얘긴데, 현대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이다. 또한 고구려인들이 세계 최초로 온돌을 발명했으며 실내에서는 신발을 벗고 생활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나오는데 이런 거 보면 중공 놈들의 동북공정은 미친 소리다.

이밖에도 고구려인들의 무기, 종교, 복식 등등에 대하여 고분벽화는 정말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해의 상징은 삼족오, 달의 상징은 두꺼비와 토끼, 그리고 계수나무였다는 사실과 불교 공인 후 벽화 양태의 변천, 그리고 고구려 말기에 도교가 득세하면서 불교와 도교의 세계관이 혼재된 그림들 등등... 그리고 복식에 있어서 남자는 검정색 건을 쓰고 여자는 흰색 건을 썼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재밌게 읽었다. 특히 강서대묘의 사신도는 언제 봐도 걸작이다. 고구려인의 생활상에 대해 다룬 책들 중에 이보다 알찬 책은 많지 않을 듯 하다.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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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의 삶 : 축복받은 제국의 역사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58
존 셰이드 외 / 시공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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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상의 고대문명 중에서도 지중해쪽 문명들은 특히 세련되어 보인다. 물론 내 기준이긴 하지만, 걔네들이 남긴 공예품이나 미술작품, 건축물 등을 보면 그 디테일과 규모면에서 웬만한 근현대 작품을 압살할 정도다. 르네상스운동이 괜히 태동한 게 아니란 얘기다. 그 지중해권 문명국가들 중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나라가 로마다. 오래 존속하고 땅도 넓어 후세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나라이기에 로마의 역사나 문화 등에 대한 정보는 비교적 접하기 쉬운 편이다. 그래도 활자화된, 로마인 일반의 삶에 대한 내용이 궁금해져 이 책을 샀다.

 

책은 로마의 역사, 문화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워낙 로마에 관한 이야기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보니 딱히 새로운 내용은 많지 않았다. 개중 내 눈에 띈 내용들은 어찌 보면 좀 단편적인 이야기들이다.

 

「제정 초기부터...(중략)...신랑은 약혼녀에게 선물과 반지를 주었으며, 여자는 이 반지를 왼손 약지에 끼었다. 결혼식날은 먼저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치른 다음, 신랑신부가 결혼에 동의하는 선언문을 읽었다.」

 

2,000년 후 극동아시아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결혼풍습이 바로 로마에서 온 것이었다! 조금 다른 건 로마에서는 선언문 낭독 후 부부가 서로 악수를 했다고 한다.

 '라틴'이라는 단어가 로마의 식민지나 동맹국 사람들 일부에게 부여하던 시민권 이름이었다는 사실과, 로마가 유대교 및 기독교를 탄압했던 게 종교적인 이유는 아니었다는 것도 새로웠다. 하긴 로마는 식민지 원주민들의 기존 종교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국가였다.

 

책을 읽는 내내 온갖 프레스코화와 조각상, 거대한 건축물과 그런 건축물을 재현한 그림 등을 보고 있자니 경이롭기 짝이 없었다. 특히 콜로세움이야 말할 것도 없고 포룸이나 공중목욕탕, 심지어 일반시민용 아파트까지 보고 나니 '이게 2,000년 전 나라냐'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누차 말하지만 르네상스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로마는 우리에게 어떤 유산을 남겼는가? 그들은 유럽의 교양어 중 하나인 라틴어를 우리에게 전해 주었고 수많은 로망어를 남겨주었다. 또 로마의 법률과 공화정 체제, 그리스 문화, 지중해 지역의 두 종교 - 유대교와 기독교 - 를 중세와 근대세계로 넘겨주었다. 이 모든 로마의 유산은 로마의 정복활동과 세계통일에 힘입어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유산들이 전해진 방식 또한 로마 문화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유럽인은 모두 로마의 시민이다. 그들 모두는 로마가 고대 세계로부터 전승하여 고르고 개선해서 후대로 넘겨준 다양한 문화유산의 수혜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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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범우문고 40
손무 지음 / 범우사 / 198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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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원 짜리 책이다. 초판이 86년도에 나온 책인데 내 건 초판 그대로 나온 00년도 5쇄 짜리다. 이걸 07년도에 샀던데 이제야 읽은 나도 참 죄인이다.

 

삼국지, 고대사 덕후로서 손자병법이라는 훌륭한 고전을 읽어보지 않은 것 또한 중죄이다. 그래서 봤는데, 꽤 훌륭한 책이긴 했는데 다음번엔 위무제 버전도 읽어보고 싶긴 하다.
보니까 병법의 기초부터 시작해서 실제로 들어가는 구조던데 전쟁과 살육에 대한 이야기다보니 확실히 고전 치고 현실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내 이목을 끄는 것은 그런 것들보단 문장이 아름답다거나 작금에도 유효하다거나 한 이야기들이다. 일단 인상 깊은 구절 몇 수 적어보겠다.

 

「손자가 말하기를 무릇 용병의 법은 나라를 온전케 하는 것이 으뜸이요 나라를 깨뜨리는 것은 그 다음이며, 군을 온전케 함이 으뜸이요 군을 깨뜨리는 것은 그 다음이며, 旅를 온전케 함이 으뜸이요 旅를 깨뜨리는 것은 그 다음이며, 卒을 온전케 함이 으뜸이요 卒을 깨뜨리는 것은 그 다음이며, 伍를 온전케 함이 으뜸이요 伍를 깨뜨리는 것은 그 다음이다. 그러므로 백전 백승이 가장 좋은 것은 아니다. 가장 좋은 것은 싸우지 않고 적의 군대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孫子曰 凡用兵之法 全國爲上 破國次之 全軍爲上 破軍次之 全旅爲上 破旅次之 全卒爲上 破卒次之 全伍爲上 破伍次之 是故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謨攻篇, 1章

 

「...그러므로 말하기를 저편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다. 저편을 모르고 나를 알면 한 번은 이기고 한 번은 진다. 저편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적마다 반드시 위태롭다.
 ...故曰 知彼知己者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
-謨攻篇, 5章

 

「...그러므로 승병은 먼저 이기고 나서 싸움을 구하며 패병은 먼저 싸우고 나서 승리를 구한다.
 ...是故勝兵先勝而後求戰 敗兵先戰而後求勝」
-形篇, 2章

 

「亂은 治에서 생기고 怯은 勇에서 생기며 弱은 强에서 생긴다...
亂生於治 怯生於勇 弱生於彊...」
-勢篇, 4章

 

「달려가지 않는 곳에서 나오고 뜻하지 않은 곳으로 달려간다...
出其所不趨 趨其所不意...」
-虛實篇, 2章

 

「무릇 군대의 태세는 물과 같다. 물의 형세는 높은 곳을 피해서 아래로 흐른다. 군대의 태세는 실을 피해 허를 친다. 물은 땅에 의해 흐름이 규정되고 군대는 적에 의해 승리가 규정된다. 그러므로 군대에는 일정 불변의 태세가 없고 물에는 일정한 형세가 없는 것이다. 능히 적의 태세에 따라서 변화시켜 승리를 거두는 것을 일러 용병의 신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오행에 상승이 없고 네 계절에 상위가 없다. 해에도 길고 짧음이 있고 달에도 기울고 차는 것이 있는 것이다.
夫兵形象水 水之形 避高而趨下 兵之形 避實而擊虛 水因地而制流 兵因敵而制勝 故兵無常勢 水無常形 能因敵變化而取勝者 謂之神 故五行無常勝 四時無常位 日有短長 月有死生」
-虛實篇, 7章

 

「길에도 지나가지 못할 곳이 있고, 적군이라도 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며, 적의 성이라도 공격하지 말아야 할 곳이 있고, 땅도 다투지 말아야 할 곳이 있으며, 군주의 명령이라도 받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塗有所不由 軍有所不擊 城有所不攻 地有所不爭 君命有所不受」
-九變篇, 2章

 

「사졸들을 보기를 어린아이같이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함께 험하고 깊은 골짜기도 갈 수 있다. 사졸들을 보기를 사랑하는 자식같이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더불어 죽을 수가 있는 것이다. 후대해도 부릴 수 없고 사랑해도 명령할 수 없으며 어지러워도 다스릴 수 없는 것은, 말하자면 방자한 자식처럼 쓸모가 없는 것이다.
視卒如嬰兒 故可與之赴深谿 視卒如愛子 故可與之俱死 厚而不能使 愛而不能令 亂而不能治 譬若驕子 不可用也」
-地形篇, 4章

 

「그러므로 불로써 공격을 돕는 것은 현명한 것이고, 물로써 공격을 돕는 것은 강한 것이다. 물은 끊을 수 있지만 불은 빼앗을 수 없다.
故以火佐攻者明 以水佐攻者强 水可以絶 不可以奪」
-火攻篇, 3章

 

「...이롭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고 소득이 없으면 쓰지 않으며 위태롭지 않으면 싸우지 않는다. 군주는 분노 때문에 군사를 일으켜서는 안 되며, 장수는 격분하여 전투를 해서는 안 된다. 이득에 합치되어야 움직이고 이득에 합치되지 않으면 그쳐야 한다. 분노는 다시 즐거움이 될 수 있고 격분은 다시 기쁨이 될 수가 있지만, 나라가 망하면 다시 존립할 수 없으며 죽은 자는 다시 살릴 수 없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이를 삼가고 훌륭한 장수는 이를 경계한다. 이것이 나라를 안전하게 하고 군사를 보전하는 길이다.
 ...非利不動 非得不用 非危不戰 主不可以怒而興師 將不可以慍而致戰 合於利而動 不合於利而止 怒可以復喜 慍可以復悅 亡國不可以復存 死者不可以復生 故明君愼之 良將警之 此安國全軍之道也」
-火攻篇, 4章

 

전반적으로 유비무환의 컨셉이 기저에 깔려 있었으며, 경제성을 강조하는 책이었다. 중의적일 수도 있는데 손자는 전쟁이 나라 경제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 그 악영향을 그나마 줄이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다 이 책을 쓴 듯 하다. 그 외 용간편에는 反閒이라고 이중간첩 쓰는 법도 나와 있는 등 2,500년 전에 나온 책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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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 지상 최고의 맹수를 쫓은 9,000여 일간의 기록 BBC 자연사 다큐멘터리 5
스티븐 밀스 지음, 이상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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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BC 다큐 제작자로 잔뼈 굵은 아재가 호랑이에 대한 최신 연구결과들을 적어낸 책이다(영문판 발행년도는 2003년). 거의 도감 같은 구성이지만 글의 내용도 상당히 알찬 편이었다.

 

 저자가 영국인인데다 인도 쪽이 워낙 호랑이 개체수도 많고 연구가 잘되어 있다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벵골호랑이 이야기였다. 하지만 본문에도 나오듯이 호랑이 아종 간 유의미한 유전적 차이는 거의 없으며, 호모 사피엔스로 치면 몽골로이드와 중동사람 정도 차이로 보면 될 것 같다. 단 아무르호랑이는 혹독한 기후 속에 살다보니 먹잇감들의 밀도가 워낙 낮아서 활동영역이 벵골호랑이의 수 배 이상이라고는 하더라.
 책에는 '온갖'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호랑이의 습성들이 나와 있었는데 그 중에 몇 가지 이목을 끄는 것들이 있었다. 일단 사냥기술인데, 호랑이는 기본적으로 기습을 한다. 사냥감이 호랑이를 먼저 발견했다면 그 사냥은 십중팔구 실패다. 심지어 사냥감이 호랑이를 본 티를 내며 고함이라도 지를 경우호랑이는 그대로 사냥을 포기하고 돌아선다고 한다. 호랑이는 사자나 치타처럼 초원에 사는 게 아니다. 호랑이의 서식지에는 추격전을 벌이기엔 너무 많은 장애물들이 있다. 대신 호랑이는 영리하게도 그 장애물을 역이용하도록 적응한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인간을 잡아먹는 호랑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내 생각에 인간에 대한 호랑이의 두려움은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프로그램된 것이 아니라, 호랑이가 인간을 마주치는 그 순간에 느껴지는 것이다. ...호랑이에게, 지프차에 탄 인간은 단지 지프차이다. 호랑이는 지프차를 먹지 않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이상 안전하다...
 ...나는 키가 1.8미터다. 호랑이의 키는 0.9미터 정도지만, 몸길이는 2.7미터에 이른다. 따라서 호랑이는 나를 보고는 내 몸길이가 5.5미터 정도나 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냥 못생긴 짐승이 아니라, 몸집이 엄청나게 큰, 못생긴 짐승으로 말이다. 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호랑이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커다란 영양을 공격할 때처럼 내 등 위로 올라타려다 내게 등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사냥하는 동물은 먹잇감을 쓰러뜨릴 때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당황하게 되면 이런 확신이 서질 않는다.」

 

 인류가 물론 몸길이와 체중만으로도 중대형 포유류에 속하긴 하지만, 직립보행 덕분에 다른 동물 눈에는 훨씬 더 커보인다는 이야기는 전에도 들은 적이 있다. 이런 거대하고 위압적인 - '인간'이라는 괴물을 사냥하는 일부 간 큰 호랑이들에게는 어떤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걸까? 저자가 발견한 건 그런 류의 것이 아니었다. 원인은 인간에게 있었다. 쭈그려 앉아있거나 허리를 숙인 자세의 인간. 호랑이에게 사냥 당한 인간들은 하나같이 저런 취약한 자세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공격을 받았다고 하더라. 이는 참 신선한 이야기였다.
 책에는 호랑이의 성생활에 대해서도 잘 나와있었는데 호랑이끼리 서로 눈이 맞으면 며칠 동안 같이 지내며 운우지정을 나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횟수가 2~3일 동안 오륙십 번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호랑이'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가 '비아그라'라는 것이나, 사람들에게 수컷 호랑이의 생식기가 정력제로 팔리기도 하는 것은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호랑이는 개보다도 근친상간이 잦은 동물이라고 하더라. 책 군데군데 개체 간의 친인척 관계라든지 족보라든지 하는 정보들이 나오는데 범 족보가 개족보보다 못해 보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호랑이는 근친상간에 의한 기형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근현대 들어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든 호랑이에게 이는 종족 보존을 위한 큰 강점이 될 수 있다. 게다가 그런 친척들 사이에서는 큰 싸움이 잘 나지 않고 서로 존중하며 지내는 경향이 있어 번식에도 유리하다고 한다.
 저자는 말미에 호랑이 종 보존을 위한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다. 다른 모든 생물이 그렇듯이 호랑이에게도 서식지 파괴가 가장 큰 위협이다. 인간은 덩치가 너무 크고, 서식지를 돌이나 정제된 흙 등으로 꾸미기를 좋아하는 바람에 다른 생물들 살 곳을 지나치게 없애버리는 경향이 있다. 인간 외에 그런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생물종은 극히 드물다. 저자는 이러한 서식지 보존과 밀렵 예방 등을 위해, 서식지 인근 주민들에게 '살아있는 야생호랑이는 돈이 된다'는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직 호랑이들이 살고 있는 곳들은 개도국이거나 빈부격차가 상당히 심한 나라들이며, 설령 잘사는 나라일지라도 호랑이 서식지 정도면 굉장한 깡촌이라 거기 사는 사람은 대개 가난한 사람일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 호랑이 투어 등을 통한 관광수입이 돌아가게 된다면 어떨까? 저자는 참 훌륭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공염불에 그치지 않고 책의 마지막장에 구체적인 관광 루트를 쭉 소개하고 있다. 인도, 네팔, 부탄, 방글라데시, 미얀마, 말레이시아, 인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중국, 러시아까지... 각 나라의 호랑이가 살고 있는 관광지에 대하여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내가 봤을 때 우리나라는 호랑이가 서식하기에 시베리아보다 훨씬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한국이야말로 멧돼지에 고라니에 유제류의 천국 아닌가. 게다가 기후도 덜 사납다. 나중에 혹시라도 통일이 된다면 DMZ 자리에 호랑이 몇 마리 풀어놓고 영구적인 호랑이보호구역으로 지정하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전술한 호랑이 관광 루트에 한국도 포함되는 날이 오도록 하는 일이야말로 - 200만 년 전부터 한반도에 살아왔던 호랑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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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배와 항해 이야기 역사 명저 시리즈 4
라이오넬 카슨 지음, 김훈 옮김 / 가람기획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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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거 가람기획의 역사명저 시리즈 중의 하나인데, 나는 고등학교 때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를 보고 큰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B.C 시대의 이야기, 게다가 '모험'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는 - 배, 그리고 항해 이야기라면 도저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리고 이 책이 들려주는 옛이야기들은 궁금증 해소를 뛰어넘어 TMI급이었다.

 

 저자는 해양고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모양인데, 선사시대의 배에 대해서는 일절 이야기하지 않고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배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있다. 어찌 보면 대부분 나무로 된 뗏목 뿐이었을 선사시대의 배들은 자료도 부족하고 할 말도 별로 없을 테니 이해가 간다. 특이한 점은 옛날 배들의 경우 프레임을 먼저 짜고 벽을 치는 게 아니라 벽을 먼저 치고 프레임을 짰다는 사실이었다. 때문에 벽 역할을 하는 널판지들을 이어붙이는 기술이 조선의 핵심이었고 손도 굉장히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어찌 됐든 이집트가 워낙에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이룩했기에 온갖 비비드한 컬러의 기록들을 많이 남겨놓았고 저자는 이것들을 참고해서 충분한 연구를 할 수 있었다. 보면 온통 B.C 2,000년, B.C 1,500년 막 이 시절 이야기를 하는데 도저히 감도 안 왔다.
 그러다 그리스로 넘어간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큰 전쟁이 있을 때마다 인류의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곤 했다. 그리스 역시 갖가지 전쟁을 치르면서 전함 위주로 조선술을 발전시켰다. 냉병기 밖에 없던 시절에 전함은 빠른 게 미덕이었다. 이에 따라 그리스에서는 날씬하고 노가 많은 전함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따른 일화도 상당히 재미있다.

 

「고대 국가들은 오늘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노예들을 전함의 노잡이들로 쓰지 않았다...
 ...국가가 소유한 노예들을 노잡이로 쓰는 것은 비경제적인 짓이었다. 힘 좋은 노예들을 사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들고, 또 그들이 전투하는 도중에 죽기라도 하면 그 돈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셈이 되므로, 노예들을 노잡이로 쓰는 것은 엄청난 투자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반면에 돈을 주고 고용한 노잡이들은 노를 젓는 일을 할 때만 봉급을 받았고, 그들이 전투하는 도중에 죽는다 해도 고용주들이 그에 대해 배상을 해줘야 할 하등의 의무가 없었다.」

 

 대항해시대에도 그랬고, 기원전 그리스에서도 뱃사람들 임금을 일부만 주다가 항해가 끝나고야 전부 지급해주곤 했다고 한다. 이건 뱃사람이 항구에서 술먹고 창녀촌 가는 등등으로 봉급을 흥청망청 써버리는 불상사도 예방하고, 뱃일 힘들어서 도망치는 것도 방지하는 일석이조의 해결책이었다.
 알렉산드로스가 대제국을 건설한 후 바로 요절하자 헬레니즘 시대가 도래했다. 그 전까지는 도시국가들 뿐이던 유럽에 제국들이 출현하게 된 거다. 이 나라들은 충분한 자본력을 확보하게 되자 엄청난 크기의 갤리선들을 건조하게 된다.

 

「그 배의 길이는 128m, 폭은 17.3m, 뱃머리 장식까지의 높이는 21.9m, 고물 장식까지의 높이는 24.2m였다. ...시험운항 때 그 배에는 4,000명의 노잡이들과 400명의 승무원들이 탔고, 갑판에는 2,850명의 전투병력이 탔다.」

 

 2,000년 전에 저런 배를 만들어서 타고 다녔단다. 진짜 대단한 사람들이다.
 로마시대에는 이집트의 곡창지대에서 난 곡물 등을 이탈리아 반도로 옮기는 게 또 일이었다. 그래서 이 괴물들은 이번엔 거대한 상선들을 만들게 된다. 거기엔 닻장을 조립할 수 있는 2톤 가까이 나가는 닻도 쓰였다는데 이 기술이 실전돼서 나중에 18세기에야 다시 발명했단다. 이런 상선들의 적재량은 보통 1,300톤 정도였다고 한다. 이외에 헬레니즘 때 어떤 상선은 2,000톤 짜리도 있었다고 한다.

 

 책에는 그밖에 바이킹 배에 대해서도 기술되어 있었고, 프레임을 먼저 짜는 조선술이 대세가 된 이후 - 방향키를 고물 바로 밑에 배치하게 되어 -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동그란 핸들만으로도 방향 조정이 가능하게 되고, 한 돛대에 돛을 여러 장 다는 기술 등이 발명되면서 대항해시대가 가능해졌다며 고대의 뱃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그런 걸 동양에서 먼저 발명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기 짝이 없다. 어찌 됐든 - 범선 모형만 봐도 설레는 나로선 참 즐거운 모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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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win 2022-09-06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구입을 생각중인데, 좋은 정보글 감사드립니다. 한가지 여쭤봐도 될런지요. 서평은 상당히 호평이신데 왜 별은 3밖에 안되는지 궁금합니다. 구입결정에 약간 망설여지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司馬懿 2022-09-07 17:1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제 기준으로 별점 3점부터는 양서에 해당하니 참고해주세요. 제가 별점에 좀 박한 편인가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