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전사 - 책으로 만나는 풀꽃평화 1
쿤가 삼텐 데와창 지음, 홍성녕 옮김 / 그물코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나는 작년에 학교 도서관을 뒤지다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였고 한번 훑어본 뒤 선뜻 구입을 결심하게 되었다. 내가 이 책에서 얻고자 하였던 바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 내지는 '폭력을 모르는 민족' 정도로 치부되는 티벳인들의 전사적인 면모에 대한 정보였다. 도서관에서 대충 훑어보았을 때도 전사들에 대한 내용이 본문의 주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완전히 잘못 짚었다. 나는 책을 보는 내내 지겨워서 책을 들었다 놓았다 하였으며, 독파에 보름이 걸린 것도 비단 바빴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책이 재미없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지나치게 상세한 정경 묘사

 2. 지나치게 상세한 경로 묘사

 3. 지나치게 상세한 행위 묘사

 

 책의 제목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온전한 거짓은 아니더라도 칠팔십 프로는 거짓이다. 책의 표지에는 한 무리의 티벳 게릴라 전사들의 사진이 실려 있으며, 사람들은 전사들의 활약상을 보기 위해 이 책을 고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전사들 다수의 투쟁사가 아닌 전사 중 단 한 명의 지극히,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역사를 다루었다.

 저자인 쿤가 삼텐 데와창은 아들 도르지 왕디 데와창에게 구술을 했고 도르지 왕디 데와창은 영어 원문 퇴고 후에 아버지의 이름만을 내세워 이 책을 펴냈다. 작품이 구술로써 씌여진 관계로 본문은 쿤가 삼텐 데와창의 독백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의 기억력은 그야말로 대단하여 매우 사소한 상황까지도 자세히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것이 심하다보니 책이 지겨워진 것이다. 생각해보라. 어느 누가 쿤가 삼텐 데와창이 초코르걀의 고요함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언덕을 세 시간 반 동안 기어올라간 이야기를 궁금해 하겠는가?

 쿤가 삼텐은 넉넉한 집에서 자라 어릴 적에 출가를 하였으나 사춘기 때 집안이 몰락한 것을 보고는 가세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환속을 한다. 이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무역을 하여 엄청난 부를 쌓았으며, 아내가 낳은 첫 아이가 두 달만에 요절하자 순례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여기서 쿤가 삼텐은 무역을 하며 돌아다닌 장소들과 순례여행을 다닌 장소들에 관하여 지나치게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일일이 열거하고 있으며, 그 단조로운 기행문을 읽는 것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하지만 티벳 전통에 대해서도 상세한 기록을 남겨놓고 있어 자못 흥미로운 부분들도 많았는데, 다음과 같은 사실은 '과연 티벳'이라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기도 하였다.

 

「티벳 사람들은 육류를 먹기는 하지만 불법(佛法)의 영향으로, 동물을 죽이거나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것을 자제했다. 우리 지역에서는 행정부가 일반적이거나 특수한 지시 사항을 반포하곤 했다. 새해 초하루에 반포되는 일반적 지침은 새해의 첫 한 달 동안 가축과 야생동물의 살육을 금한다는 것이었다. 그 대신 동물을 도축하는 특정한 기간이 지정되었다. 겨우내 먹을 육류를 비축하기 위해 10월에 한 번, 새해를 위해 고기를 공급하는 12월에 한 번으로 정해졌다. 물새가 알을 낳기 시작할 때도 기본적 지시 사항들이 발령된다......4월에는 새로 태어난 티벳 영양을 다른 동물과 인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비슷한 지시 사항이 공포되었다. 물고기도 산란기에는 같은 방식을 적용해 보호했다.

 초목 법은 장사를 위해 목재를 무차별적으로 벌목하는 것을 금했다...」

 

 이 책은 '풀꽃평화연구소'라는 자연주의 단체에서 지원하여 발간되었으며, 내지는 전부 재생용지로 되어 있었다.

 아무튼 쿤가 삼텐은 이후 중국군의 티벳 침공에 의해 삶의 기반을 거의 빼앗겼으며 - 부르주아였으므로 더욱 그랬을 것이다 - 친형까지 본보기로 처형되자 중국군에 대한 분노로 불타 티벳 게릴라 부대인 '추시 강드룩'의 작은 우두머리가 되었다. 쿤가 삼텐 본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진 적이 거의 없었으며 전술에 대한 감각이 있었다. 또한 라사가 함락 직전까지 몰리자 14대 - 현재도 재위 중인 -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의 탈출 작전에 일조를 하기도 하였다.

 결국 인도까지 퇴각한 쿤가 삼텐은 국경(NEFA) 부근에서 고향 땅으로 돌아가게 될 날을 학수고대하다가 중국과 인도 사이에도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또다시 피난을 가게 된다. 쿤가 삼텐이 중국을 얼마나 싫어할지 가히 짐작이 간다.

 내가 지겨운 책이라고 혹평을 했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쿤가 삼텐의 이야기는 티벳 난민 전체의 이야기와 다를 바 없고, 역사에서 항상 약자의 입장이었던 우리의 모습과도 별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쿤가 삼텐은 책 말미에서 전세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나의 마지막 소망은 독립된 티벳, 자유와 평화가 깃든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한 망명자로서 나는 자유의 중요성을 배웠다.

 나의 바람과 소망은 자유를 누리는 행운을 가진 사람 모두가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그들보다 적은 자유만을 누리는 사람들 - 그 중에서도 티벳 사람들도 포함될 것이다 - 을 돕는 데 자유를 사용하는 것이다.

 - 1985년 5월 봄딜라에서」

 

 사족. 오탈자가 많았다. 번역문도 매끄럽지 못했다(마지막 인용문 중 '그 중에서도 티벳 사람들도 포함될 것이다'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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