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 밀레니엄 프로파일 1
로버트 서비스 지음, 정승현 외 옮김 / 시학사 / 2001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외모에서부터 사람을 압도한다. 표지라든가 제본 스타일 때문이 아니라, 그 두께 - 약 900쪽 - 로 하여금 보는 이를 질리게 만든다. (뭐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나는 분명히 이 책에게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때문에 구입 후 수 년만에야 책을 펴보게 되었으며, 왜 이 책을 미리 보지 않았나 후회를 하게 되었다.

 

 레닌의 본명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이다. '레닌'은 필명인데, 그는 이외에도 여러 이름을 썼으나 - 내가 얼마전에 읽은 바 있는 - '무엇을 할 것인가?'를 출간하면서 쓴 이름이 레닌인 - 그리고 그 책이 그의 저작들 중 최초로 큰 반향을 일으킨 - 관계로 대중에게 그는 '레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레닌은 귀족적인 집안에서 자라났으며 - 부친은 교육자인 관계로 교육열이 대단했다. 그는 집안의 왕자였고, 모친이나 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다. 사랑과 기대를 받는만큼 레닌은 열심히 공부를 했고 성적은 항상 최상급이었다.

 레닌에게는 형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이 알렉상드르였다. 레닌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공부벌레였던 그는 대학에 가서 과격한 테러 단체에 몸을 담은 후 황제 암살 음모에 가담하였고 결국 실패하여 일당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형을 항상 존경해왔던 레닌은 이 사건으로 인해 러시아의 짜르 왕정을 증오하게 되었다. 이후 점점 대가리가 굵어간 레닌이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맑스의 사상이었다.

 맑스를 접한 레닌은 일생에 있어 단 한가지의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 그것은 짜르 체제의 전복에 이은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레닌은 처음에 상당히 교조적인 면모를 보인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알고 보니 이 책의 제목은 체르니셰프스키의 동명소설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를 읽었을 때에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레닌은 맑스주의를 비판없이 무조건적으로 떠받들었으며, 자신이 해석한 맑스만이 진정한 맑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맑스나 레닌이나 중산층 출신의, 체험이 심히 결여된 이론가들이다. 아무리 머리가 좋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이론과 현실은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레닌은 맑스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내가 여기서 레닌의 유배 생활, 망명 생활, 정치 투쟁 등에 대하여 자세하게 기술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레닌이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이었고, 분명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도 볼셰비키('다수파'라는 뜻. 멘셰비키는 소수파 - 하지만 결코 볼셰비키가 항상 다수는 아니었다)의 리더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 혁명을 일구어내고 만다.

 10월 혁명으로 인하여 러시아에는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1차 대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러시아의 경제는 피폐했으며 레닌은 대단한 지지를 받고 있지도 않았다.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고 레닌은 그것을 모두 해결하려 했다. 또한 그는 자기 나라에서 혁명이 일어나면 자연적으로 유럽의 모든 나라들에서 혁명이 일어날 줄로만 믿고 있었는데, 그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책을 보다보면 레닌이 해놓은 일은 엄청나게 많다. 그는 50세 조금 넘게 사는 동안 제대로 쉰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사람이 과로를 하면 안된다. 건강의 위협은 아무리 혁명적 영웅이라도 비켜가지 않는다. 레닌은 죽기 전에 스탈린을 경계했고 끝까지 그를 몰아내려 했다. 하지만 역사는 레닌의 후계자로 스탈린이 집권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레닌은 그야말로 황소고집이었으며 교조적이면서도 기회적인, 참으로 모순된 인간이었다.

 

「이러한 위선은 참으로 놀랄만하다. 레닌 자신도 (스탈린처럼)주의가 부족했으며 (트로츠키와 피야타코프처럼)너무 관료적인 방법에 집착해왔고 (지노비예프처럼)혁명에 대해 지나친 낙관주의로 일관해왔으며 또한 (부하린처럼)정통 맑스주의에 모호한 모습을 보여왔던 것이다.」

 

 저자의 이 말이야말로 레닌의 정치적인(일부는 사상적인) 모습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또한 레닌은 상당히 폭력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레닌은...(중략)...화를 내며 간섭했다. '악당들'은 현장에서 총살되어야 한다. '진압의 속도와 힘'은 강화되어야 한다. 어떤 헌법상이나 입법상의 개정도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의 모든 활동'에 적용될 수 있는 사형제도를 실현하는 방식으로 공식화되어야 한다...(중략)...그는 법에 공포정치의 본질과 정당성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닌은 훌륭한 정치가였다. 그가 선택한 노선은 거의 항상 최선의 해결책을 동반하였다. 그런 그가 기반을 다져놓은 덕분에 '소련'은 70 여년간 존속할 수 있었다.

 

 사실 레닌 같은 사람이야말로 충분한 자료에 근거하여 객관적인 입장에서 전기를 쓰기가 대단히 어려운 사람일 것이다. 정치라는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저자는 소련이 무너진 후에 레닌에 대한 방대한 양의 기밀문서를 연구할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왜곡이 최소화된 레닌의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었다. 과연 저자가 밝혀놓은 참고문헌이나 주석들을 보면 그 어마어마한 양에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이다. 물론 본문 중간중간에 사건진행이 뒤죽박죽이거나 문단이 이상하게 나뉜 곳 등이 눈에 띄었지만 워낙 방대한 양의 자료를 가지고 900쪽 정도의 책을 저술하다보니 아주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라 웬만큼은 이해할 수가 있었다.

 단지 눈에 거슬린 것은 번역자들의 무성의함이었다. 무성의한 번역문장, 무성의한 교정 - 오탈자의 남발 등은 양서의 질을 떨어뜨리는 재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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