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전집 - 증보판
백석 지음, 김재용 엮음 / 실천문학사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백석을 대학 입시 공부를 하는 와중에 알게 되었다. 당시에 나는 여우난골족, 여승, 탕약, 국수, 고향,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등의 시를 통하여 백석과 접하게 되었으며 - 항상 그러한 시를 대한 뒤로는 - 지문(시)에 관한 - 객관식 문제들이 뒤따르곤 하였다. 그런데 사람이 이런식으로 알게 된 작품에 대하여는 통상 정이 떨어지고 감흥이 줄게 마련이지만, 유독 백석의 작품들은 나에게 매번 강한 인상을 심어주곤 하였다. 특히 여승과 국수, 고향에서 좋은 느낌을 받은 나는『백석 전집』이라는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백석의 해방 전·후의 작품들을 온전히 아울러 정리해놓은 책이 없었다고 한다. 백석은 재북시인, 빨갱이였다. 때문에 해방 이후의 작품 - 을 구하기도 힘들 뿐더러 - 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꺼려졌던 모양이다. 아무튼 1997년 들어서야 이 책의 초판이 발행되었다.

 白石은 필명이고, 본명은 백기행(夔行)이었다고 한다. 책을 다 읽어보고(520쪽) 솔직히 실망을 했다. 사실 해방 이전의 작품들은 좋은 작품도 꽤 있었지만 해방 이후의 작품들은 쓰레기에 다름 아니었다. 물론 당시 북한의 문학이 죄다 그런 류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엮은이는 책 말미의 해설에서 백석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다른 대다수의 작가들과 달리 순수 문학과 문학을 통한 광의의 사상성(계급투쟁의식에 국한되지 않는) 교양을 추구하다가 배척도 받고 결국에는 절필하게 되었다고 변호 아닌 변호를 하고 있지만, 내가 봤을 때는 작품들의 주제와 목적이 오로지 선동 및 찬양 일색이며 - 해방 이전 백석이 추구하던 이미지와 미학은 완전히 실종되어 버렸던 것 같다.

 엮은이는 백석이 해방 이전에 향토적인 언어와 민속적 상상력에 집착하였던 것은 -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점에서 '고독'이라는 문제가 발생하자 그것을 극복해내려는, 과거의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마음에서였다고 해석한다. 그러면서 해방 이후 백석이 작품속에 '공산주의'라는 어휘를 사용한 것은 '특정한 사회를 지칭하기보다는 마음속에 있는 유토피아를 의미한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봤을 때는 완전히 어거지다. 예를 들어 보자.

 

 나는 제3인공위성

 나는 우주 정복의 제3승리자

 나는 쏘베트 나라에서 나서

...(중략)...

 나는 공산주의의 천재

...(중략)...

 나는 공산주의의 자랑이며 시위

 공산주의 힘의, 지혜의

 공산주의 용기의, 의지의

 

 모든 착하고 참된 정신들에는

 한없이 미쁜 의지, 힘찬 고무로

 모든 사납고 거만한 정신들에는

 위 없이 무서운 타격, 준엄한 경고로

...(중략)...

 지칠 줄 모르는 공산주의여

...(중략)...

 나는 공산주의의 사절

 나는 제3인공위성

 

-제3인공위성

 

 위의 시 어디를 봐서 '공산주의'가 특정한 이념이 아닌 마음 속 유토피아의 상징이란 말인가? 엮은이는 지나치게 백석을 미화하려 한 나머지 그의 드높은 '당'에 대한 충성심을 모른척 해버린 것이다. 솔직히 백석은 해방 이후 지독한 빨갱이가 되어 순수 문학의 색깔을 거의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는 해방 이후 아동문학에도 크게 관심을 가졌던 모양인데 그에 따른 결과물들도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백석이 해방 이전에 쓴 시들의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닌지라 과연 그의 시 중에는 나의 마음을 잡아끄는 작품들이 여럿 있었다.

 

 옛날엔 통제사(統制使)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港口)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千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六月)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 방등이 붉으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통영(統營)

 

 백석은 통영에서 여자 하나를 짝사랑한 모양이다. 동일한 제목의 다른 시에도 '난(蘭)'이라는 여자가 등장하여 백석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이외에도 백석이 연정을 표현한 시는 은근히 많다.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이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눌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바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그런데 백석은 사랑에 그리 성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북관에 계집은 아름답다...어늬 아침 계집은/머리에 무거운 동이를 이고/손에 어린것의 손을 끌고/가펴러운 언덕길을/숨이 차서 올라갔다/나는 한종일 서러웠다(절망)", "...내가 오래 그려오던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내가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은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이렇게 한여름을 보내면서 나는 하늑이는/물살에 나이금이 느는 꽃조개와 함께/허리도리가 굵어가는 한 사람을 연연해 한다(삼호(三湖)-묽닭의 소리 1)"...

 그렇게 남의 여자가 되어 '허리도리가 굵어가는 한 사람을 연연해' 하다보니 백석은 동태가 되어버렸다.

 

 처마끝에 명태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문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멧새 소리

 

 나 역시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나도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참, 찌개가 되더라도 빨리 녹았으면 좋겠다.

 아무튼 이 책에는 백석의 시 외에도 수필, 소설 등의 산문들도 실려 있는데, 딱히 특출난 작품은 없었다. 단지 그가 1962년도에 쓴「프로이드 주의 - 쉬파리의 행장」은 조금 재미있었다. 백석은 공산주의자 및 인도주의자의 입장에서 프로이트의 - 성욕을 바탕으로 한 패륜적인(?) 이론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을 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썩어빠진 자본주의와 죽이 맞아 떨어져 자본주의가 닿는 곳이면 어디든 날아가 달라붙는다. 마치 쉬파리처럼. 백석은 남조선에 미제의 자본주의가 침투하면서 더러운 프로이트도 만연하고 있다며 크게 걱정을 한다. 흥미롭고 나름 유익한 글이었다.

 

 위에 내가 직접 인용한 시들 말고도 내가 수험생 때 지문으로 만났다고 한 시들 역시 괜찮았으며 마지막으로 읽고 있노라면 가슴이 싸 해지는 시를 하나 옮겨 보고자 한다.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 승합자동차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자성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은 예서 삼백오십리 묘향산 백오십리

 묘향산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새하얗게 얼은 자동차 유리창 밖에

 내지인(쪽발이) 주재소장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들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차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팔원(八院)-서행시초 3

 

 ...이러면 안되지만...군대 생각이 나기도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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