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들의 중국사
사식 지음, 김영수 옮김 / 돌베개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원래 이런 쪽을 좋아한다. 특히 중국 고대사 쪽에 관심이 많다보니 별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사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총 200여명에 달하는 중국 역대 황제들 중에서 대표적인 15명을 선정해 써놓은 각각의 평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평전들의 내용은 대부분 기존의 평가를 뒤집어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유의 것들이었다.

 수 양제부터는 내가 잘 모르는 역사들이라 딱히 할말이 없는데, 딱 그전까지 - 촉 후주 유선 - 의 평전들은 하나같이 억지스런 주장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일례로 저자는 진시황이 '평생 남에게 통제를 받았다'고 하였는데, 곧 재상인 여불위나 이사 등에게 통제를 받으며 그들이 시키는대로만 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물론 진시황이 말년에 완전 소외 당하고 후사 문제도 확실히 해놓지 못하고 했던 것은 사실이나 수백 년 동안 분열되어 있던 중국을 약 10년만에 통일시킨 사람이다. 도량형이니 화폐니 하는 것들 다 차치하고 - 일통천하의 업적만으로도 충분히 보통 위인이 아님은 증명할 수 있다. 뭐 진시황은 손 하나 까딱 안하고 이사가 시키는대로만 했는데 저절로 천하가 통일이 될 수 있었겠는가? 만약에 그렇다면 이사가 아주 훌륭한 재상이거나 해야하는데 저자는 이사를 - 능력도 없는 - 치졸한 소인배로 평가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모순이다.

 그리고 유방과 항우에 대하여 평가를 할 때도 '유방은 양아치 항우는 영웅'이라는 주장을 개진하며 - 그러한 평가를 내린 이유는 - 유방은 간교한 속임수를 좋아했기 때문이고 항우는 우직하고 염치를 알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성패에 따라 인물의 가치를 논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이 주장은 책 전체에 걸쳐 전제로 깔고 있다). 사실 나도 항우를 좋아한다. 하지만 항우가 본받을 만한 인물은 아니다. 항우는 살생을 너무도 즐겨 하였다. 저자는 시종일관 백성들의 편에 서서 - 황제 자리 쟁탈전으로 인해 중국의 역사(백성들)는 피폐해졌다, 국가를 다스리려면 지식인들을 중용해야지 무장들은 하등 도움이 안된다 운운하면서도 진나라의 군대를 땅에 파묻고 함양 백성들을 도륙했으며 초한전 때 20여만명의 한나라 군사를 죽인 항우를 두둔하니, 이게 과연 말이나 되는 소린가? 반면에 유방은 어리버리한 군주로서, 400년 한 왕조의 시조이며 - 내가 알기로 - 중국 민중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황제 중 한명인데, 살인마 항우보다 못하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이어서 저자는 조조에 대하여 '후세에 재앙을 남긴 간웅'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만 내가 보기에 중국의 삼국시대에는 조조 아닌 어느 누가 조조의 위치에 있었더라도 종국에는 혼란의 시대가 다시금 도래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딱히 조조가 크게 잘못을 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리고 저자는 조조가 자신의 딸들을 헌제의 황후로 삼은 일을 두고 '딸을 예물 취급했다'고 하였는데, 사실 중국의 역사에서 이러한 예는 수도 없이 찾을 수 있으며 오히려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었다. 이는 저자가 살짝 오버를 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은 유비이다. 저자는 유비가 '유황숙'이라는 칭호를 받았다고 하였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유황숙'이라는 말은 삼국지연의에만 등장하는 호칭이지 정사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저자는 유비가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간 삼고초려를 부정하고 있는데 막상 들춰보면 별 근거없이 서로 다른 두 종류의 기록(삼국지, 위략) 중 하나(위략)를 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봤을 때 삼고초려는 '있었다고는 하지만 확실치 않은 사실'이지 '무조건 없었던 사실'은 아니다. 그리고 저자는 유비가 제갈량의 의견을 진정으로 존중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은 제갈승상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은 유비가 죽기 전에 남긴 말이다.

 

「...승상의 재능은 조비(曹丕)의 열 배는 되니 틀림없이 국가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고, 결국에는 대사업을 완성시킬 것이오. 만일 태자(유선)가 보좌할 만한 사람이라면 그를 보좌하고, 만일 그가 재능이 없다면 그대가 그 자리를 취하시오...」

 

 이는 정사에 나오는 말이다. 과연 유비는 제갈량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았을까..?

 다음은 유비의 아들 유선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유선이 41년간 황제 자리를 지켰으므로 멍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유선을 노장 사상에 입각한 '무위의 군주'의 경지에까지 오른 것처럼 이야기한다. 실로 황당할 따름이다. 제갈량이 죽고 나서 강유가 수 차례 북벌에 올라 매번 패하면서도 계속 군사를 일으키자 촉의 대신들이 만류하고 백성들의 생활은 극도로 피폐해졌다고 한다. 이런 꼴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 군주가 현명한 군주인가? 사실이 이러함에도 저자는 유선이 다스릴 당시 촉나라 백성들의 궁핍함에 대한 기록은 전혀 들춰내지 않고 있다. 이외에도 (유선을 다룬 장에)특히 오류가 많은데 일일이 지적하기가 귀찮다.

 이후의 다른 황제들은 잘 모르겠다. 단지 남당의 '이후주'라는 황제에 대하여 망국의 군주이지만 매우 훌륭했던 시인이라 용서가 된다는 식으로 주장한 부분이 마음에 안들었다. 시를 잘 쓰면 잘 쓴 것이지 대관절 그것으로 나라 말아먹고 백성들 피보게 한 책임을 씻는다는게 말이나 되는가. 아무리 자기가 시를 좋아했어도 나라를 다스리는 중임을 맡았으면 본업에 소홀하지 말아야지, 시나 짓다가 나라 망하는 줄을 몰랐으니(도성이 함락되기 직전에도 시를 짓고 있었다고 함. 저자는 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음)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인지 의문이 간다.

 

 표지 모델은 유비다. 저자는 '황제는 모두 도적놈'이라는 확고부동한 신념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이점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저자 혼자서 지나치게 기존의 통념을 반박하려고 하다보니 억지로 주장을 편 부분이 많아진듯 하다. 그래도 나름 참신한 주장들이 많았으며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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