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과 교류의 문명사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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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에 대한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주제도 테마도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는 이 때 어떤 역사책이 내 수준에 맞으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하는 고민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역사는 내가 앞으로 꾸준히 잡고 공부해야 할 분야이니 역사 분야만큼은 신중하게 보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오늘날 문화 교류사’, ‘문명 교류사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역사학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어느 특정한 한 시대, 한 지역만을 집중적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사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제 더 이상 그것은 불가능하다. 브렉시트가 오늘 한국의 증권 시장을 흔들고, 그곳에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에서 근무하는 가족의 경제적 상황까지 바꿔버리는 세상에 이 책은 단순히 문명의 교류가 오늘날의 일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역사는 전지구사적인 관점에서 봐야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역사학계는 그 흐름을 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학교에서 세계사를 배우는 데도 인색하다. 선택과목으로 선택하지도 않는다. 어쩌다 의식있는 선생님이 계시는 곳의 고등학교에서는 세계사배우지만 대다수는 한국사와 상당수 겹치는 동아시아사를 배우거나 다른 사회과 과목을 선택한다. 틀렸다기보다 문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제 우리나라, 우리 경제, 우리나라 사람만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전세계에서 일어난 일이 실시간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럴 때 세계사교육은 정말 더 중요하다. 물론 지금의 세계사교과서가 그런 부분을 충족시켜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이 지구에 다양한 민족, 다양한 국가의 삶을 엿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채 살아간다면 우리의 시선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흔히 요즘 말하는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보다 국정교고서를 만드는 것이 우선인 이 나라의 행정관, 정치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우리 민족이 우수하고, 우리 민족이 얼마나 고대 사회에서부터 찬란한 문명을 가지고 내려왔는지를 지금의 아이들이 왜 그토록 많은 양을 외워야 하는가. 근현대 사회가 어떻게 변화 되어왔는지, 그 안에서 세계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알지도 못한 채.

  단군, 고조선도 중요하지만 오늘날 역사를 배우는 과정에서 얼마나 의미를 가질까? 아버지 시대의 일을 과대, 왜곡 시키는 작업을 하면서 엄청난 세금을 들이고, 52만 명의 고등학교 신입생을 볼모로 새로운 실험(?)을 하는 것이 과연 경제를 발전시키는 일인가?

  이 책은 정치, 경제 중심의 역사 서술이 아니다. 그래서 참 좋다. 지배층의 역사, 주류의 역사만을 나열식으로 늘어놓은 흔하디 흔한 책이 아니다. 먹는 것, 입는 것, 해를 끼치는 것, 이로운 것, 거룩한 것,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해적이야기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유대인과 창녀촌,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게 하는 베를린 장벽 이야기 까지.

정말 흥미롭고, 진지하면서도 아프고, 새로운 사실을 정말 많이 알게 된다. 무엇보다 재밌다. 이런 역사 책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고, 기회가 된다면 이런 책을 많이 읽고 싶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좀 더 단단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는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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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 년 고려사
박종기 지음 / 푸른역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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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년 고려사는 기존에 자신이 알고 있었던 '고려'라는 나라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새롭게 해준 책이다.

무엇보다 역사교과서에서 항상 반복적으로 외치는 우리나라 중심의 역사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흥미를 끌었고, 또한 각 개별 주제 하나 하나가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체제에서 한번쯤 새롭게 인식되어야 할 문제들을 드러내놓고 있었기 때문에 역사의 과거와 현재성을 잘 보여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작가가 모든 것을 아우려려는 욕심을 벗어던지고 정말 '고려'에 대한 오해를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썼다는 인식을 갖게 하였다.

가령 무인정권기의 몽고 침입을 자주이냐, 사대이냐의 관점에서 적절한 근거로 이해를 시켜주었고,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음은 물론,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호주제'의 개념을 완전히 뒤엎어 버리는 '본관제'의 기원과 그 의미 설명은 충분한 논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원간섭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고, 역사는 흑백으로만 보아서 그 깊이를 제대로 알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 사회제도나 일반 민중들의 인식이나 그들의 생활상을 놓친 것은 아니다.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그들의 삶이 어떤 영향을 받았고, 그에따라 어떤 삶을 개척해 나가야했는지도 상세히 보여주었고, 딱딱한 제도사에 대한 이해도 쉽게 할 수 있도록 그 배경을 잘 설명해 놓고 있다.

다만 여러가지 소스를 보여주다 보니 한 가지 주제에 대한 깊이가 덜 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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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까치글방 86
니콜로 마키아벨리, 강정인 옮김 / 까치 / 199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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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키아벨리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말하는 이상화된 정치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정치상황을 이야기 하고자 함을 처음부터 밝히고 시작한다. 따라서 자꾸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적인 도덕을 내세우기보다는 직접 생활을 하면서 부딪히는 어려움에 대해 그 어려움들을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지혜롭게 이겨낼 것이냐가 마키아벨리의 관건이다. 그 전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사악함과 위선, 가식과 잔인함, 그리고 악덕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는데 이것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정치와 사회의 현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성스러운 도덕을 지키려고 애쓰던 사람이나 백성들에게 관대하면서 많은 것을 주기만 하는 이들과 고대정치 철학에서 말하는 대로 정치를 해나가려던 이들 모두는 비열하고, 사악하며, 위선과 비도덕으로 강력한 무력을 앞세운 세력들에 의해 결국 모두 멸망당하고 그러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을 보지 못했음을 강조한다. 물론 그것은 정치체제가 안정되지 않은 신생 군주국에서 주로 일어난다.

 그런데 여기서 겉으로만 보면 저자가 얘기하는 마키아벨리의 모습은 찾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일반적인 도덕적 상식에 어긋나는 군주의 그러한 행위들이 궁극적으로는 백성들의 생활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고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게 되며 더 나쁜 결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을 막아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군주가 인민들에게 관대하고 주는 것이 후하면 죄인들은 활개를 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사회는 무질서함으로서 그만큼의 사회적 비용이 들고, 또한 검약하지 않고 많이 주기만 한다면 나중에 정작 필요할 때 주지 못하게 되고 외적의 침입이나 불가피한 상황에 닥쳤을 때 인민은 더 이상 줄 것이 없는 군주를 욕하게 되고 결국 돌아선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자인 데다 기만에 능하며, 위협을 피하고 눈앞의 이득에 눈이 어둡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군주는 눈앞의 칭찬을 쫓기보다 강력한 통치로 비난을 택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저자가 얘기하는 자본주의적 요소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책에서 인민들에게 최소한 미움은 절대 받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즉 강압적인 통치로 두려움을 주고, 전쟁 등을 통한 업적들을 쌓아 명성을 기대하는 것은 올바른 행위지만 인민들에게 미움을 사는 것은 외부의 적을 두려워하는 것의 몇 배 이상으로 군주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1494년부터 프랑스와 스페인의 영토 침공은 그 후 3세기 동안 이탈리아 반도를 이탈리아인 자신들과 별 관계도 없이 벌어진 격돌의 대상이자 희생물이 되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조국 이탈리아가 이처럼 분열하여 대립과 갈등을 계속하는 상황에서 강력한 군주가 나타나 이탈리아를 통일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책에서 잘 드러내 보이고 있다. 과거 역사적 사실들을 끄집어내어 그 속에서 이탈리아 현실의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바로 로마의 공화정이 그 모델이었던 것 같다. 이것은 그가 비록 전제군주의 성격을 띤 메디치 家에게 일자리를 부탁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공화정을 지지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훌륭한 군주의 상을 끊임없이 본받고 연구하는 것을 군주의 역할로 보고 역사서를 읽기를 강조하고, 과거 위인들을 찾아 모방하라고 충고하는데 그 모델이 되는 인물들이 알렉산드로스 대왕, 카이사르, 키루스, 스키피오이다. 그가 『군주론』을 쓴 두 이유 중에 진짜 이유라고 생각되는 것은 이탈리아의 분열과 대립을 종식시켜 줄 강력한 군주의 등장을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군주상을 체계적으로 그려본 것이 바로 이 『군주론』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의 마지막장 제목은 야만족의 지배로부터 이탈리아의 해방을 위한 권고이다. 그 속에서 그는 지금 시기가 영웅을 맞이할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을 때 모세가 출중한 능력을 보여주었던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 예속되어 있었기 때문이고, 키루스의 위대한 정신이 드러나기 위해서 페르시아 인들은 메디아 인들에게 억눌려 있어야 했으며, 테세우스의 탁월한 역량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테네 인들은 지리멸렬한 상태에 처해야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이탈리아의 이런 분열과 대립, 갈등과 외세에 유린당하는 현실은 오히려 앞서 얘기했던 시대보다 더 황폐화된 시기이기 때문에 더 좋은 지도자가 등장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지도자가 바로 메디치 가문이라고 마키아벨리는 말한다. 이것은 결국 맨 처음에 밝혔듯이 당시 피렌체의 사실상의 군주였던 메디치가의 로렌초에게 바치는 저서임을 확실히 해주고 잇다. 단순히 이러한 이유로 책을 집필했다는 사실을 떠나서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분단된 조국 현실을 분명 안타까워했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통일을 이룬 뒤 등장한 군주가 해야할 일들과 그 책임에 대해 이 책에서 아주 자세한 방법들을 제시해 놓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이 책을 통해 마키아벨리를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안으로, 또는 그 사회가 분열되지 않기 위해서는 군주가 무자비한 잔인함과 위선, 가식, 철저한 이익 우선주의를 추구하도록 했다는 것에서 인간의 이기적 본성만을 강조한 인물로 보는 것은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그것은 지나친 단순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왜냐면 마키아벨리는 현실적 경험을 이야기 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데서 잘 알 수 있다. 만약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바를 행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를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마키아벨리는 어쩌면 허위 같은 명분이나 실제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 자선사업 같은 것을 하기보다 지금 당장에 힘들고, 비난을 받을지는 모르지만 미래에도 그 사회를 안정되게 지속적으로 유지함으로써 인민들에게 덜 피해가 가는 길을 택하라고 충고한다. 비록 그 방법상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이러한 이론을 두고 비판만 하기보다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문제들을 그를 통해 깊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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