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서커스 - 2,000년을 견뎌낸 로마 유산의 증언
나카가와 요시타카 지음, 임해성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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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서커스' 는 로마가 시민들에게 제공한 삭량과 오락 및 휴식거리를 가리키며, '포퓰리즘' 의 대명사로 쓰이는 표현이다.

로마가 제공한 빵과 오락거리로 인해 로마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졌고 타락했다고 탄식했지만 쇠퇴는 커녕 그로부터 약 100년 동안이나 더 유지됐다. 로마제국의 멸망과 더불어 '암흑의 중세' 가 시작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로마제국의 멸망원인은 정확하지 않다. 다만 몇 가지 설說이 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설, 목욕탕설, 납중독설 등.

로마가 성립한 초기에서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빵과 서커스' 로 상징되는 문화는 지속됐다. 로마는 성적 욕망의 극단적 추구나 동성애, 변태 행각 등에 대해 오늘날 현대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관대한 나라였다. 특히 귀족들의 향락은 매일 밤마다 먹고 마시고 섹스하고, 먹은 걸 토해내고 다시 먹고 마시는 광란의 연회를 되풀이하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쾌락주의가 로마 멸망의 원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책은 로마의 멸망 원인을 찾기보다는 남아 있는 로마의 유적을 통해서 오히려 로마는 어떻게 대제국이 되어 그토록 오랫동아 지속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저자의 토목기술사로서의 전문가의 식견으로 로마의 유산 중 건축 토목에 촛점을 두고 로마의 역사를 살펴보려 하고 있다. 로마가 도시를 이루는데 가장 중요했던

⑴도로(가도)는 주식인 밀을 가져오기 위해서 멀리 아프리카와 시칠리아 섬 등지에서 대량 수송을 위해 발달 되었으며 더불어 신속한 군사 행동과 정보 전달을 가능케 하고, 교역과 여행도 활발하게 만들었다.

⑵저수조를 이용해 쉽게 급수가 가능했기에 수많은 공공 목욕탕을 세웠고 맑은 물이 지나갈 수 있는 수도와 수도교의 뛰어난 건축기술들로 인해 물부족도 질병도 발생하지 안을 수 있었다.

⑶로마의 오락 거리로 유행한 것은 검투사 경기, 로마 희극 등의 연극, 모의 해전 등이 있었다. 따라서 그 시설로 투기장, 극장, 전차 경주장과 인공연못, 공공 욕장 등이 있었다.

검투사 경기장은 코로세움을 비롯한 3곳, 원형 극장은 마르켈루스 극장을 비롯한 3곳, 전차 경주장은 키르쿠스 막시무스를 비롯한 6곳, 모의 해전장은 4곳이 있었다.

대형 공공 욕장이 11곳, 소형 공공 욕장은 약 900 곳이나 있었다. 속주을 포함한 로마제국 전역으로 넓혀보면 현재 세계 유산으로 등재된 것만 28개 도시의 원형극장, 10개 도시의 원형 경기장, 4개 도시의 전차 경주장, 11개 도시의 공공 욕장이 있다. 등재되지 않은 것들까지 하면 원형 극장이 475곳, 원형 경기장이 209곳, 전차 경기장이 77곳이다.

그야말로 로마의 정치는 대중들의 민심을 사기 위한 정치였음에 틀림없다. 한 번 열리는데 대략 8억원이나 드는 검투사 경기와 수 많은 경기장과 극장, 하루 100회에 이르는 전차 경주, 실제 전투와 살인도 일어나는 모의 해전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로마가 얼마나 번성하였는지를 보여준다.

그야말로 로마의 시민들은 쉴 새 없이 볼거리와 즐길거리로 지루할 틈이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결국 로마는 가도와 수준 높은 건축기술, 상하수도 시설과 르네상스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등의 문화유산을 남기고 사라졌다. 아니 로마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로마를 이끌던 제국이 없어진 셈이다.

여전히 이탈리아의 로마는 로마제국 당시의 유적으로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고 내로라 하는 명품들로 그 옛날 사치스러운 생활을 독려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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