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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그리나무 위에는 초록바다가 있다 ㅣ 오늘의 청소년 문학 7
린 호셉 지음, 김율희 옮김 / 다른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다는 도미니카 공화국.
그리그리나무와 더불어 참으로 낯선 배경이다.
하지만 낯설고 이상한 그곳에서 자라는 안나 로사의 이야기는
가슴 속에 따뜻하게 스며든다.
소설책을 통해 만나는 안나 로사, 분명 실제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지만
로사의 느낌에 따라 함께 춤을 추기도 하고 가슴 아파 울기도 한다.
“종이를 조금만 주세요, 제발, 여기 내 글이 달아나고 있어요.”
너무나 글을 쓰고 싶어하는 안나 로사.
그는 집안의 생계를 맡고 있는 구아리오 오빠의 수첩에 몰래 글을 쓰다가
그만 수첩을 몽땅 다 써버려서 감추어버리고 만다.
화가 난 구아리오와 낙심하는 가족들, 죄책감 속에 갇힌 안나 로사,
그 불쾌한 흥분 속에서 어머니가 만들어낸 멋진 점심 만찬을 보며
어머니의 지혜보다는 사랑에 감동이 된다.
안나 로사는 글을 쓰는 것과 함께 그리그리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좋아하는 열두살 소녀이다.
나뭇가지에 매달리며 노는 것이 아니라, 몇 시간씩 앉아있기만 한다.
주로 하는 것은 주변 살펴보기.
어느 날, 혹등고래를 보고 벌어진 바다괴물 소동은 웃음이 절로 난다.
그 어이없는 에피소드를 통해 안나 로사는 공책을 선물받고 그가
쓴 첫 소설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
작가를 꿈꾸는 안나 로사, 첫 출발은 너무나 순조로웠다.
특히 수첩까지 몰래 훔쳐 써 버린 철없는 여동생을 사랑의 눈으로 보는
구아리오 오빠의 격려는 말이나 글이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배우고, 메렝게 춤을 배우고, 사랑의 고통을
배우면서 안나 로사는 서서히 또는 빠르게 성장해나간다.
그리그리 나무 위에 올라가있는 안나 로사는 마을 사람들의 격렬한
투쟁을 바라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자기네들의 땅을 빼앗아 관광지로 개발한다는 것에 반대하여,
밀고 들어오는 불도저와 총성에 격렬하게 투쟁하고 있는 중이였다.
불도저가 그리그리나무에까지 이르자, 구아리오 오빠는 나무 위에서 겁에
질려 있는 여동생 안나 로사를 위해, 두 팔을 벌여 불도저를 막고 미소를
보내며 숨지고 만다.
그 사건 속에서 가장 상처 입은 사람은 다름 아닌 안나 로사였다.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나무는 더 이상 평안을 가져다주는
공간이 아니였고, 이제는 더 이상 글조차 쓸 수 없게 되었다.
고통 속에서 흐물흐물해져버린 안나 로사에서 치유가 된 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련해 준 은색 타자기였다.
그 속에는 바로 죽기 며칠 전의 구아리오 오빠도 있었다.
안나 로사는 오빠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타자기로 구아리오 오빠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닫혔던 그의 세계가 다시 열리는 순간이였다.
글을 미치도록 쓰고 싶어 했던 안나 로사, 머릿 속에 뛰노는 언어들을
주체할 수 없었던 열 두살 소녀는 열 세살이 되면서 무엇을 써야 할지,
왜 써야 할지를 깨닫게 된다.
성장은 믿음과 사랑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과정이 때론 고통스러운 것 같다.
그리고 소녀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어 준 가족들의 배려와 사랑이
너무나 아름답다.
어린 여동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버린 큰오빠 구아리오,
아버지가 다름을 알게 되면서 겪는 침묵 속에서 너는 변함없이
우리 가족이라고 인정하는 작은오빠 로베르토, 딸에게 파도의 리듬에
맞춰 메렝게 춤을 마음으로 추는 법을 가르쳐 준 아빠, 어떤 일이든 최초로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글쓰기를 처음 격려해준 엄마...
안나 로사가 행복과 슬픔을 배운 공간은 바로 가족들의 관계 속이였다.
우리가 소설 속의 허구일지라도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은 허구에서나
실제에서나 가족들의 사랑은 진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