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는 내내 감당할 수 없는 불편함이 지속되었다. 현실을 배워가는 기분이랄까, 여렴풋하게 인지하고 있던 불편한 진실들에 대해 보다 명료하게 적나라하게 전달받을 수 있는 계기였다. 확인사살당하는 기분. 뭐 대략 이런게 아닐까 싶다.  


 저자인 수디르 벤카테시는 10년에 가까운 긴 시간을 순수 혈통의 흑인들이 거주하는 빈민촌 로버트테일러에에 드나들며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한다. 이것은 저자가(그 당시엔 학자였던) 그 시간 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묻어난 책이다.
 

 이 책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개인적으로 평소에 종종 상념에 빠져드는 테마를 떠올리게 했다. 사람은 대부분 자기 자신에게 관대하다. 때로는 내가 가지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대단한 행운인지를 잊은 채, 마치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운하고 억울한양 비통해한다. 나보다 더 못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보고 긍휼을 느끼며, 내 스스로의 자리에 위안을 얻고 다짐을 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그것도 본질적인 의미의 각성이라기보단 그 자체적으로 인간이기에 가능한 찰나의 감상 정도라고 생각한다. 


 예를들어, 우리는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도 보장받지 못하는 제3세계국 빈민들이나, 건강하고 온전한 몸 조차 허락받지 못한 중증 장애인들을 보며 ‘내 스스로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고, 만족할 줄 알며, 그것을 통해 노력과 성실을 다해야하는지‘에 대해 거듭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 감상과 찰나의 동기유인에서 그치기 일쑤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일이 아닌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괴짜사회학>을 읽으면서 느꼈던 딜레마가 바로 이것이다.





 딱히 부족한 것이 없이 ‘적당한’ 배경 안에서 살아온 중산층의 진짜 시민계급과, 이름만 시민인 빈민층의 만남은 그야말로 불편함이었을 것이다. 문득 이 책이 출간된 현지에서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정권 아래 있었던 실제 사건이었다. 이미 지난 정권에 대한 폭로야 현 정권에 대한 언급보다는 하나의 농담 혹은 과거에 대한 반성 정도로 여겨질 수 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선도하고 민주주의의 표상인 그들만의 파라다이스가 발뺌의 여지조차 없게 모두 까발려진 것이 이 책이었기 때문이다.


 이 내용을 접하면서 미국(LA) 경찰의 폐단과 비리를 고발했던 실화를 다룬 영화 <체인질링>과,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친들 나고 자란 배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잔혹하게 꼬집은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가 떠올랐다. ‘우리 소시민들은 이런 방법을 통해 공권력 혹은 사회적 부조리와 대항할 수 밖에 없는것인가’란 씁쓸한 물음과 함께.


 뒤늦게 찾아보니 <아웃라이어> 또한 이번 <괴짜사회학>과 같은 김영사의 책이었다. 이 출판사… 나에겐 참 어려운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고 자란 환경이 각박하여 성장과정에서 얻을 수 있었던 기회나 혜택은 적었지만, 내가 스스로 노력한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리란 맹목적인 희망을 단호하게 꺾는다. <아웃라이어>가 그런 비통한 현실에 대한 물음(Question)이라면, 이번 <괴짜사회학>은 그 물음에 대해 시니컬하고도 자조적으로 “그게 세상의 이치야”라고 말해주는 답(Answer)이라는 느낌이 와닿았다. 아아 잔혹한 현실이여…….


 하지만 진짜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듯, 아웃라이어의 ‘10,000시간 노력’ 이야기처럼, 이 책도 희망과 노력에 대한 가치를 역설하는 것에 매우 큰 비중을 둔다. 비록 그것이 피나고 뼈를 깎는 것 이상의 고행이라 할 지라도, ‘분명히 되는 길은 있다’는 것 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행해야 한 다는 것과 함께.


 나는 개인적으로 인문사회학에 관심이 많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의 저자처럼 현지에서 그것들을 직접 느끼고 호흡하는 연구법을 매우 흥미롭게 여기는 편이다. 하지만 본문에서도 끊임없이 언급되듯이 기존의 학계나 보도매체에서는 그저 안전한 망루에 올라 우리가 사는 세상 속 시각으로 그들을 평가하고 함부로 매도한다. 결코 그들이 왜 그래야만 했는지나,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그들 나름의 규칙과 여러가지것들이 어떻게 정립되는지는 관심 밖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그 더럽고 위험한 곳에 속하지 않았다는 안도감, 그것 하나를 가지고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에 대한 살벌한 꼬집음이 나는 참 좋았다고 말하겠다. 주인공도 자기가 나고 자란 환경이 있기에 처음부터 그들 속에 녹아들이 편해질 순 없었다.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지내오면서도 매번 자기만의 기준에 의한 경솔함으로 실수와 사고를 빚어냈고, 끝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노력했다. 적어도 자신의 마음이 언젠가는 통할 것이라고 순수하게 믿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제까지의 우리와 그의 차이점이다.


 이 책이 탄생될 수 있었던 하나의 촉매제인 <괴짜경제학>도 너무나 읽고 싶어졌다. 이미 그 유명세에 여러 정보를 접하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선뜻 택하지 못했던 책이었다. 아마 그 책을 읽고 나면 조금 더 달라진 관점으로 새로운 서평을 작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허공에 부유하는 듯한 기분으로 로버트테일러의 상공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참을 떠돌다 정신을 차려보면 푸르스름하게 동이 터오는것을 목격한적도 있다. 그렇게 몰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완독하는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내게 어렵고 힘겨운 진짜 사실이 녹녹히 새겨져있었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근거없는 막연한 희망보다는 단호하고 냉철한 감각이 필요한 요즘이다. 무엇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국에 그만큼 적나라한 사실을 맞이하여 대처하는 우리들의 의연한 현실감을 길러 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적의 사과
기무라 아키노리, 이시카와 다쿠지 지음, 이영미 옮김, NHK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 / 김영사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몇 번의 결심과 그에 따른 실행, 그리고 예기치 못한 좌절과 포기를 겪으며 살아갈까?


 오랜만에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에 콕콕 와닿는 책을 만났다. 근간에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실존인물인 이런 논픽션 일반 장르에 자주 빠져들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이번에 접한 <기적의 사과>는 그 주인공을 지켜본 객관적 입장의 제 3자가 그 이야기를 서술했다는 것에 더 큰 의의를 두려고 한다.


 책의 주인공은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세계 최초로 무농약 무비료 농법으로 사과 재배를 성공시킨 괴짜 농부 기무라 아키노리(木村秋則, 이하 기무라)씨다. 농약과 비료는 이제 우리가 살고있는 현대의 농법에 있어서 빠질래야 빠질수가 없는 필수불가결한 기본 요소가 된지 오래다. 나무를 키우기 위해선 건강한 토양과 충분한 햇빛 그리고 물이 필요한 것 처럼, 농약이나 비료가 없는 농사는 그저 안하느니만 못한 형태가 기존 농업 시장에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아니 과연 그러한 길이 있을 것인가? 라고 상상조차 해 보지 않았던 바로 그 길을 이 책 속 주인공이 10년에 가까운 고난의 세월을 거쳐 이룩해내고 만다.(이 책을 읽음으로써 알게 된 사실은 그 어떤 농작물보다도 사과재배가 막대한 양의 농약과 비료 사용을 필요로 한다는 것 이었다.)


 책을 완독하고 난 뒤 근래에 읽었던 그 어떤 책보다도 정성과 노력을 담아 서평을 작성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적의 사과>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수집하기 위해 웹검색을 이용하던 중, 주인공인 기무라씨가 이미 <자연재배>라는 제목의 저서를 출간한 바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주인공 기무라씨는 이미 자신이 고안해 낸 무농약/비료 농법을 통한 웰빙 재배법에 대해 세계 각국에서 러브콜을 받아 강연을 다니는데 1년 중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가족 및 지인들의 혹독했던 시간을 통해 터득하게 된 이 농법으로 일확천금의 기회를 누리는 영웅이 되길 원치 않는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더 많은 이들이 이전보다 더 바쁘고 힘든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그 결과가 분명한(수확된 농작물이 더 건강하고 친자연적인)결과를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서, 일본 전역 뿐만이 아닌 세계 각지에서 이 옳은 방법이 이행되기를 염원한다. 물론 그것을 통해 요즘 사람들이 그토록 칭송하는 유기농법의 농작물들이 기존의 농약과 비료로 무장되어 공산품처럼 탄생된 작물들보다도 더 싸고 보편적인 거래의 대상이 되길, 마치 인적이 드문 야산의 어딘가에서 수확한듯한 천연의 그 깨끗한 것들을 모두가 당연한듯이 즐길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 것 이다. 그것은 수많은 이들이 마치 대단한 시대적 과업을 이룩한듯 자신을 칭송하는 업적이, 비단 자신만의 노력과 연구가 아니라, 사과나무가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생존하고 열매를 맺은 것이라고 굳게 믿는 그의 마음에서 분명하게 읽어낼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 속에서 동경과 불안이 공존했다. 주인공은 아주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시선이 닿는 어떤 분야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었다. 이 길이 내 길이라고 믿고(아니, 어쩌면 그러한 생각도 채 닿기 전부터), 그 분야에 목숨을 걸고 고군분투 할 수 있는 천성을 타고 난 열정적인 인물이었다. 나는 그러한 그의 모습이 부러웠지만 그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 너무나 불안했다. 한 분야에 미칠듯한 집념과 노력으로 투쟁하는 이런 사람도 끝을 알 수 없는 역경과 싸웠다. 도중에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할만큼 좌절도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러하지 못하다. 23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생을 살면서 무엇 하나에 목숨 한 번, 아니 뜨거운 숨 한 번 토해본 적 없는 것 같다는 사실을 순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런 심리상태를 ‘불편한 진실’이라고 칭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하고 싶지만 결코 인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책의 소개를 접한 뒤 본격적으로 프롤로그를 읽기 전에는 친환경주의 농법에 대한 예찬론이나 어디서 많이 봄직한 그럴듯한 성공스토리의 칭찬일색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별 다른 기대가 없었고 별 다른 흥미가 없었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사과나무 재배자들이 무농약에 대해서, 그저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은 머나먼 그 옛날 문명 이전의 세상 속 이야기로 치부해버라고 심드렁해 하는 것 처럼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리 길지 않았던 본문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가슴 한켠이 거듭 짜릿해짐을 느꼈다. 


 책 속에는 인생이 녹아있고 철학이 묻어났다. 보통 사회적 생물이라고 칭해지는 인간 뿐 아니라,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존재하는 그 모든것들이 결코 독립된 개체로 홀로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우리 모두는 인지하고 있지 못할 뿐, 수많은 이의 도움과 협조 배려로 지금 이렇게 우뚝 설 수 있다는 것 등 가장 본질적이고 도덕적인 물음들이 거듭 머리와 가슴으로 밀고 들어왔다. 기무라씨가 그 어려운 시절을 통해 이룩한 무농약 사과나무에 살뜰한 애정을 느끼는 것도 이것에서 시작되는 것 일테다. 결과적으로 맛있는 열매를 맺어 준 사과나무가 그에게 부와 명예를 지속적으로 제공한다거나, 이 길을 걷기 시작할 때 세상사람들이 비웃으며 힐난했던 그 오명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음이 아닌,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깨달아야 할 것들을 각성하게 해 준 것’ 그것은 분명 인간뿐만이 아닌 만물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절대적인 가치라는 사실 말이다.

 
 이 책과 하나의 프로그램을 위해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저자는 주인공에 대해 말했다. “그는 소박하고 꾸밈이 없으며, 주변 사람들을 밝고 희망에 차게 만드는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이 서평을 쓰는 지금 당장이라도 아오모리현에 달려가 그를 만나고 싶은 충동이 마구 일렁였다. 그 소탈한 웃음을 듣고, 세상에 안 될 것은 없다는 격려를 전해받고, 한입 베어무는 순간 눈물이 솟구칠 것 같다는 그 맛있는 사과를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었다. 나도 그의 가치관과 세상에 대한 시선을 따르고 싶어졌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는 순간, 왠지 마음이 정화되고 지금까지의 나태했던 것들을 용서받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불편함은 가시고 나는 다시금 도약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기일회 一期一會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는 흔히들 말한다.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상대 중 가장 이기기 어려운 것은 바로 ‘나’자신이라고. 이 테마는 언제나 알듯말듯 하면서도, 때로는 격하게 가슴에 와닿는다. 마치 내가 나 자신을 알 수 없듯이, 그 누구보다 내 스스로 제어해야만 하는 나 자신을 이기는 것이 가장 힘들듯이.



 사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땐, 법정 스님께서 종교인의 길을 걸으며 겪어 온 소소한 이야기들이 적힌 수필집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서 어려운 용어들이 많이 나오고 기대 이상의 심도있는 불교에 대한 설명들이 언급될때마다 조금씩 의아했는데, 알고보니 수필집이 아니라 법문집이었다. 아뿔사싶은 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불학에 관심이 많다. 불교가 아니라 불학 말이다. 어려서부터 종교와 신앙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때 부터 집안 분위기에 의해 교회를 다니는것이 자연스러웠고, 제사 대신 가족예배를 보는 것이 당연시되어온 개인사를 지닌 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불학에 마음이 가는 이유는 유일신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내가 그 어린시절부터 믿어오던 종교에 회의를 느끼는 것이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불학에서는 내가 곧 부처요 부처가 곧 나니, 우리들도 수행을 통해 얼마든지 성불할 수 있고 득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러한 삶에 대한 긍정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구원받기 보다는 스스로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살아가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한다.



 나는 불학과 더불어 우리 국사학을 매우 좋아한다.(이 문장을 쓰는데 왠지 ‘연모한다’라는 단어가 쓰고 싶어졌다.) 우리 한국, 조선, 고려, 삼국시대… 한반도의 시간을 움직여 온 원동력에는 물질적인 요소보다 심리적인 요인들이 언제나 더 크게 작용해왔다. 아마도 그래서 흔히 한국인을 칭하는 수식어로 ‘의지, 근성’ 이런 것들이 활용되는 것 같다. 이러한 심리적 요인들은 여러 가지 종류로 그 존재의 가치를 발했지만, 아마 그 무엇보다도 불교라는 것이 가장 오랜 시간동안 가장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민족을 지키고 화합하게 했을 것 이다.



 사사로운 얘기가 길었지만, 요지는 이 책을 통해 기존에 관심있던 불학에 대해 좀 더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어 좋았다는 것 이다. 일단은 국사학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 불학에 대한 관심이 근래들어 여러 분야에서 마음이 불안하고 안정되지 못한 때에 그 욕구가 더 강렬해졌다. 스스로 면벽수행이라도 하러 떠나고 싶다고 공언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연한 계기로 늘 꾸준히 갈구해 온 분야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습득 할 수 있었으니 가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말은 분명 이런 상황에 써야 옳을 것이다.



 책이 너무 마음에 들어 여유분으로 생긴 나머지 한권은 갓 보름전에 6년간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훌쩍 호주로 떠나버린 지인에게 선물했다. 일기일회라, 인생에 더 없이 고민스럽고 어려운 선택을 깊은 성찰 끝에 명료하게 스스로에 대한 직관으로 결정짓고, 차근차근 진행시켜 성사시킨데 대한 무한한 동경과 격려를 담은 마음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었는지 지인도 책을 받고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이번에 맞닥뜨린 일기일회를 꼭 긍정으로 활용하고 오겠노라며…….



 불교계에서 쓰이는 다소 생소한 어휘들이 빈번했음에도 그 의미가 어렴풋이 와닿았던 것은, 이 책에 앞서 삼국시대 중 불교문화가 가장 왕성했던 신라에서 갓 불교를 받아들이고(법흥왕) 정착해가던(진흥왕) 시대의 이야기를 접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이란, 이렇게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들 끼리도 서로 은근하게 잇닿으며 연결고리를 낳곤 한다.



 내가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를 이번에도 어김없이 달성했다. 바로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 아니 그 이상의 희열을 또 한번 느끼게 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은 기쁨 - 이해인 시집
이해인 지음 / 열림원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은 초등학교 시절 담 하나 너머로 친하던 동네 소꿉친구의 추천으로 처음 접하였다. 요즘처럼 종종 마음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버겁거나 삶이 지쳐 쓰러질만큼 빠르게 돌아갈 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 성현의 말들을 실천하기 딱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순수시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작가의 개인적 사정이나 사회적 배경을 담은 시들을 아주 외면하는 것은 아니지만(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시인을 딱 한명만 꼽자면 아마 이육사님이라고 하겠다.) 시詩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마음을 치유하고 정화시켜주는 가치라고 생각하기에, 내 인생에서 시를 가장 많이 접할 수 있었던 학창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 보면, 김영랑 시인이나 서정주 시인의 시를 참으로 좋아했던 것 같다.(시인의 작품들 중 내재적 관점으로만 해석되는 시들)

요즘은 내 일상이 너무 바쁘다. 정말 헉! 소리가 나오고 생각보다도 몸이 앞서 에구구구~ 하는 탄식을 뱉어내곤 한다. 결코 소홀하지 않았던 입시전쟁 속 분주했던 10대 시절에도 흔히 볼 수 없었던 코피를 이번달에만 들어 수차례 쏟아냈으며, 눈만 깜빡깜빡하면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구나- 싶은 날들이 바로 요즘이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을 만났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들은 종종 찾아서 접해왔으나, 이렇게 책으로 출간되어진 묶음시집은 아마 중학생 때 시화반에서 전해받은 것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나 스스로에게 찰나의 여유나마 제공하기 위해, 도서 목록을 살피던 중 눈에 번쩍 하고 띄인 것이다. 마치 수녀님의 그 나붓하고 단정한 음성으로 “넌 잠시 쉬어도 된다.”라고 말해주듯이.

나는 천주교신자는 아니다. 지금은 잠시 안식일 성수를 회피하는 불량신도이기는 하나, 우리 사회에서 늘 지탄의 표적이되며 어떻게 보면 한 갈래의 형제인 천주교도들에게서 가장 많은 원성과 비판을 듣는 개신교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해인 수녀님의 글이 참 좋다. 이미 하늘의 별이 되신 고 김수환추기경님의 그 부드러우면서도 강직한 강론들을 들을 때마다 벅차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어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던 것 처럼 말이다.

종교적 이념이나 잣대를 떠나, 그저 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고 어루만질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 우리 사회에서의 문학인이나 종교인들이 지녀야 할 미덕이고 지향해야 할 궁극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해인 수녀님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나에게 최고의 지침을 제시해주는 이상향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마음같아선 내 개인 블로그에 발췌한 글들을 잔뜩 올려 이 따스함을 만인에게 전하고싶다. 하지만 새로이 개정된 신미디어법 덕분에 언제 잡혀갈지 몰라 두려움에 떠는 마음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부디 이 글을 통해서라도 새로이 혹은 다시 한 번 수녀님이 쓰신 그 따뜻한 마음을 접해볼 수 있는 사람들이 보다 더 많이 늘어났으면 그 이상의 바람이 없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친구에게 빌려줬던 책을 돌려받아 돌아오는 길에 다시 읽게 된 그녀의 이야기. 이 책은 내가 2년전 이맘때 그녀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던 길에 매우 즉흥적으로 구매하여, 버스를 기다리거나 식사를 할 때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잠들기 전 등등과 같은 시간에 한두장씩 읽었던 책이다. 에쿠니 가오리가 출간한 책은 대부분 소장하고 있지만, 이 <웨하스 의자>는 그녀의 나라를 여행하며 읽는 이야기라는 느낌에 그 어떤 책보다 애틋하고 남다른 추억이 깃들어있다.
 
 근래들어 유독 지나간 에쿠니씨의 이야기들에 집착하는 경향이 좀 있다. 그것은 에쿠니씨의 문체 자체가 처음에는 내용파악에 중점을 두고 읽을때 발견되지 않다가 두번째, 세번째엔 마음에 여유를 두고 천천히 음미하며 되짚어본다는 것 자체가 주는 매력이 유독 크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마음이 매우 차분하게 정돈되는 느낌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대부분 성장소설이며 주인공이 내면의 자아를 발견하고 스스로 그것을 납득해가는 과정이 주를 이룬다. 그것을 위한 사건적 배경이 연애이든 우애이든 그 어떤 상황을 초월해서 말이다. 나는 그 부분이 참 좋다.
 
 언젠가 가끔씩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아무도 모르는 내 은밀한 사생활들을 나만이 아는 표현법과 어휘들로 풀어내어 그럴싸하게 적당히 감출 수 있는 매력이 가장 크다고 정의한 바 있다. 아마도 이 부분은 그녀의 이야기를 접하며 내가 느끼는 것들과 크게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녀는 전지적 작가다. 모든 주인공들의 내면심리를 꿰뚫고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이야기를 그 누구가 원하거나 상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전지적관점을 그녀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을 휘두르는데 이용치 않는다. 그 주인공들이 스스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까지의 길을 터 주는 역할만을 담당할 뿐이다. 나는 그 다정다감하고도 적당히 객관적인 시선이 너무나 좋았다. 이러한 관점은 특히나 이번에 읽은 <웨하스 의자>에서 가장 극대화된다.
 
 그 누구보다 강건하고 독립적이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유약하고 친절에 무기력해지는 주인공을 보며 나는 나 자신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흉이 아니라는 위로를 이 책에서 받을 수 있었다. 친구나 엄마나 선후배에게서도 들을 수 없던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다정다감함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