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사과
기무라 아키노리, 이시카와 다쿠지 지음, 이영미 옮김, NHK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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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몇 번의 결심과 그에 따른 실행, 그리고 예기치 못한 좌절과 포기를 겪으며 살아갈까?


 오랜만에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에 콕콕 와닿는 책을 만났다. 근간에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실존인물인 이런 논픽션 일반 장르에 자주 빠져들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이번에 접한 <기적의 사과>는 그 주인공을 지켜본 객관적 입장의 제 3자가 그 이야기를 서술했다는 것에 더 큰 의의를 두려고 한다.


 책의 주인공은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세계 최초로 무농약 무비료 농법으로 사과 재배를 성공시킨 괴짜 농부 기무라 아키노리(木村秋則, 이하 기무라)씨다. 농약과 비료는 이제 우리가 살고있는 현대의 농법에 있어서 빠질래야 빠질수가 없는 필수불가결한 기본 요소가 된지 오래다. 나무를 키우기 위해선 건강한 토양과 충분한 햇빛 그리고 물이 필요한 것 처럼, 농약이나 비료가 없는 농사는 그저 안하느니만 못한 형태가 기존 농업 시장에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아니 과연 그러한 길이 있을 것인가? 라고 상상조차 해 보지 않았던 바로 그 길을 이 책 속 주인공이 10년에 가까운 고난의 세월을 거쳐 이룩해내고 만다.(이 책을 읽음으로써 알게 된 사실은 그 어떤 농작물보다도 사과재배가 막대한 양의 농약과 비료 사용을 필요로 한다는 것 이었다.)


 책을 완독하고 난 뒤 근래에 읽었던 그 어떤 책보다도 정성과 노력을 담아 서평을 작성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적의 사과>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수집하기 위해 웹검색을 이용하던 중, 주인공인 기무라씨가 이미 <자연재배>라는 제목의 저서를 출간한 바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주인공 기무라씨는 이미 자신이 고안해 낸 무농약/비료 농법을 통한 웰빙 재배법에 대해 세계 각국에서 러브콜을 받아 강연을 다니는데 1년 중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가족 및 지인들의 혹독했던 시간을 통해 터득하게 된 이 농법으로 일확천금의 기회를 누리는 영웅이 되길 원치 않는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더 많은 이들이 이전보다 더 바쁘고 힘든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그 결과가 분명한(수확된 농작물이 더 건강하고 친자연적인)결과를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서, 일본 전역 뿐만이 아닌 세계 각지에서 이 옳은 방법이 이행되기를 염원한다. 물론 그것을 통해 요즘 사람들이 그토록 칭송하는 유기농법의 농작물들이 기존의 농약과 비료로 무장되어 공산품처럼 탄생된 작물들보다도 더 싸고 보편적인 거래의 대상이 되길, 마치 인적이 드문 야산의 어딘가에서 수확한듯한 천연의 그 깨끗한 것들을 모두가 당연한듯이 즐길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 것 이다. 그것은 수많은 이들이 마치 대단한 시대적 과업을 이룩한듯 자신을 칭송하는 업적이, 비단 자신만의 노력과 연구가 아니라, 사과나무가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생존하고 열매를 맺은 것이라고 굳게 믿는 그의 마음에서 분명하게 읽어낼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 속에서 동경과 불안이 공존했다. 주인공은 아주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시선이 닿는 어떤 분야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었다. 이 길이 내 길이라고 믿고(아니, 어쩌면 그러한 생각도 채 닿기 전부터), 그 분야에 목숨을 걸고 고군분투 할 수 있는 천성을 타고 난 열정적인 인물이었다. 나는 그러한 그의 모습이 부러웠지만 그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 너무나 불안했다. 한 분야에 미칠듯한 집념과 노력으로 투쟁하는 이런 사람도 끝을 알 수 없는 역경과 싸웠다. 도중에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할만큼 좌절도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러하지 못하다. 23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생을 살면서 무엇 하나에 목숨 한 번, 아니 뜨거운 숨 한 번 토해본 적 없는 것 같다는 사실을 순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런 심리상태를 ‘불편한 진실’이라고 칭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하고 싶지만 결코 인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책의 소개를 접한 뒤 본격적으로 프롤로그를 읽기 전에는 친환경주의 농법에 대한 예찬론이나 어디서 많이 봄직한 그럴듯한 성공스토리의 칭찬일색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별 다른 기대가 없었고 별 다른 흥미가 없었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사과나무 재배자들이 무농약에 대해서, 그저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은 머나먼 그 옛날 문명 이전의 세상 속 이야기로 치부해버라고 심드렁해 하는 것 처럼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리 길지 않았던 본문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가슴 한켠이 거듭 짜릿해짐을 느꼈다. 


 책 속에는 인생이 녹아있고 철학이 묻어났다. 보통 사회적 생물이라고 칭해지는 인간 뿐 아니라,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존재하는 그 모든것들이 결코 독립된 개체로 홀로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우리 모두는 인지하고 있지 못할 뿐, 수많은 이의 도움과 협조 배려로 지금 이렇게 우뚝 설 수 있다는 것 등 가장 본질적이고 도덕적인 물음들이 거듭 머리와 가슴으로 밀고 들어왔다. 기무라씨가 그 어려운 시절을 통해 이룩한 무농약 사과나무에 살뜰한 애정을 느끼는 것도 이것에서 시작되는 것 일테다. 결과적으로 맛있는 열매를 맺어 준 사과나무가 그에게 부와 명예를 지속적으로 제공한다거나, 이 길을 걷기 시작할 때 세상사람들이 비웃으며 힐난했던 그 오명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음이 아닌,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깨달아야 할 것들을 각성하게 해 준 것’ 그것은 분명 인간뿐만이 아닌 만물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절대적인 가치라는 사실 말이다.

 
 이 책과 하나의 프로그램을 위해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저자는 주인공에 대해 말했다. “그는 소박하고 꾸밈이 없으며, 주변 사람들을 밝고 희망에 차게 만드는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이 서평을 쓰는 지금 당장이라도 아오모리현에 달려가 그를 만나고 싶은 충동이 마구 일렁였다. 그 소탈한 웃음을 듣고, 세상에 안 될 것은 없다는 격려를 전해받고, 한입 베어무는 순간 눈물이 솟구칠 것 같다는 그 맛있는 사과를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었다. 나도 그의 가치관과 세상에 대한 시선을 따르고 싶어졌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는 순간, 왠지 마음이 정화되고 지금까지의 나태했던 것들을 용서받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불편함은 가시고 나는 다시금 도약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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