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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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내내 감당할 수 없는 불편함이 지속되었다. 현실을 배워가는 기분이랄까, 여렴풋하게 인지하고 있던 불편한 진실들에 대해 보다 명료하게 적나라하게 전달받을 수 있는 계기였다. 확인사살당하는 기분. 뭐 대략 이런게 아닐까 싶다.  


 저자인 수디르 벤카테시는 10년에 가까운 긴 시간을 순수 혈통의 흑인들이 거주하는 빈민촌 로버트테일러에에 드나들며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한다. 이것은 저자가(그 당시엔 학자였던) 그 시간 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묻어난 책이다.
 

 이 책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개인적으로 평소에 종종 상념에 빠져드는 테마를 떠올리게 했다. 사람은 대부분 자기 자신에게 관대하다. 때로는 내가 가지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대단한 행운인지를 잊은 채, 마치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운하고 억울한양 비통해한다. 나보다 더 못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보고 긍휼을 느끼며, 내 스스로의 자리에 위안을 얻고 다짐을 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그것도 본질적인 의미의 각성이라기보단 그 자체적으로 인간이기에 가능한 찰나의 감상 정도라고 생각한다. 


 예를들어, 우리는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도 보장받지 못하는 제3세계국 빈민들이나, 건강하고 온전한 몸 조차 허락받지 못한 중증 장애인들을 보며 ‘내 스스로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고, 만족할 줄 알며, 그것을 통해 노력과 성실을 다해야하는지‘에 대해 거듭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 감상과 찰나의 동기유인에서 그치기 일쑤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일이 아닌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괴짜사회학>을 읽으면서 느꼈던 딜레마가 바로 이것이다.





 딱히 부족한 것이 없이 ‘적당한’ 배경 안에서 살아온 중산층의 진짜 시민계급과, 이름만 시민인 빈민층의 만남은 그야말로 불편함이었을 것이다. 문득 이 책이 출간된 현지에서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정권 아래 있었던 실제 사건이었다. 이미 지난 정권에 대한 폭로야 현 정권에 대한 언급보다는 하나의 농담 혹은 과거에 대한 반성 정도로 여겨질 수 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선도하고 민주주의의 표상인 그들만의 파라다이스가 발뺌의 여지조차 없게 모두 까발려진 것이 이 책이었기 때문이다.


 이 내용을 접하면서 미국(LA) 경찰의 폐단과 비리를 고발했던 실화를 다룬 영화 <체인질링>과,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친들 나고 자란 배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잔혹하게 꼬집은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가 떠올랐다. ‘우리 소시민들은 이런 방법을 통해 공권력 혹은 사회적 부조리와 대항할 수 밖에 없는것인가’란 씁쓸한 물음과 함께.


 뒤늦게 찾아보니 <아웃라이어> 또한 이번 <괴짜사회학>과 같은 김영사의 책이었다. 이 출판사… 나에겐 참 어려운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고 자란 환경이 각박하여 성장과정에서 얻을 수 있었던 기회나 혜택은 적었지만, 내가 스스로 노력한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리란 맹목적인 희망을 단호하게 꺾는다. <아웃라이어>가 그런 비통한 현실에 대한 물음(Question)이라면, 이번 <괴짜사회학>은 그 물음에 대해 시니컬하고도 자조적으로 “그게 세상의 이치야”라고 말해주는 답(Answer)이라는 느낌이 와닿았다. 아아 잔혹한 현실이여…….


 하지만 진짜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듯, 아웃라이어의 ‘10,000시간 노력’ 이야기처럼, 이 책도 희망과 노력에 대한 가치를 역설하는 것에 매우 큰 비중을 둔다. 비록 그것이 피나고 뼈를 깎는 것 이상의 고행이라 할 지라도, ‘분명히 되는 길은 있다’는 것 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행해야 한 다는 것과 함께.


 나는 개인적으로 인문사회학에 관심이 많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의 저자처럼 현지에서 그것들을 직접 느끼고 호흡하는 연구법을 매우 흥미롭게 여기는 편이다. 하지만 본문에서도 끊임없이 언급되듯이 기존의 학계나 보도매체에서는 그저 안전한 망루에 올라 우리가 사는 세상 속 시각으로 그들을 평가하고 함부로 매도한다. 결코 그들이 왜 그래야만 했는지나,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그들 나름의 규칙과 여러가지것들이 어떻게 정립되는지는 관심 밖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그 더럽고 위험한 곳에 속하지 않았다는 안도감, 그것 하나를 가지고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에 대한 살벌한 꼬집음이 나는 참 좋았다고 말하겠다. 주인공도 자기가 나고 자란 환경이 있기에 처음부터 그들 속에 녹아들이 편해질 순 없었다.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지내오면서도 매번 자기만의 기준에 의한 경솔함으로 실수와 사고를 빚어냈고, 끝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노력했다. 적어도 자신의 마음이 언젠가는 통할 것이라고 순수하게 믿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제까지의 우리와 그의 차이점이다.


 이 책이 탄생될 수 있었던 하나의 촉매제인 <괴짜경제학>도 너무나 읽고 싶어졌다. 이미 그 유명세에 여러 정보를 접하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선뜻 택하지 못했던 책이었다. 아마 그 책을 읽고 나면 조금 더 달라진 관점으로 새로운 서평을 작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허공에 부유하는 듯한 기분으로 로버트테일러의 상공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참을 떠돌다 정신을 차려보면 푸르스름하게 동이 터오는것을 목격한적도 있다. 그렇게 몰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완독하는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내게 어렵고 힘겨운 진짜 사실이 녹녹히 새겨져있었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근거없는 막연한 희망보다는 단호하고 냉철한 감각이 필요한 요즘이다. 무엇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국에 그만큼 적나라한 사실을 맞이하여 대처하는 우리들의 의연한 현실감을 길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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