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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일회 一期一會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는 흔히들 말한다.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상대 중 가장 이기기 어려운 것은 바로 ‘나’자신이라고. 이 테마는 언제나 알듯말듯 하면서도, 때로는 격하게 가슴에 와닿는다. 마치 내가 나 자신을 알 수 없듯이, 그 누구보다 내 스스로 제어해야만 하는 나 자신을 이기는 것이 가장 힘들듯이.
사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땐, 법정 스님께서 종교인의 길을 걸으며 겪어 온 소소한 이야기들이 적힌 수필집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서 어려운 용어들이 많이 나오고 기대 이상의 심도있는 불교에 대한 설명들이 언급될때마다 조금씩 의아했는데, 알고보니 수필집이 아니라 법문집이었다. 아뿔사싶은 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불학에 관심이 많다. 불교가 아니라 불학 말이다. 어려서부터 종교와 신앙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때 부터 집안 분위기에 의해 교회를 다니는것이 자연스러웠고, 제사 대신 가족예배를 보는 것이 당연시되어온 개인사를 지닌 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불학에 마음이 가는 이유는 유일신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내가 그 어린시절부터 믿어오던 종교에 회의를 느끼는 것이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불학에서는 내가 곧 부처요 부처가 곧 나니, 우리들도 수행을 통해 얼마든지 성불할 수 있고 득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러한 삶에 대한 긍정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구원받기 보다는 스스로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살아가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한다.
나는 불학과 더불어 우리 국사학을 매우 좋아한다.(이 문장을 쓰는데 왠지 ‘연모한다’라는 단어가 쓰고 싶어졌다.) 우리 한국, 조선, 고려, 삼국시대… 한반도의 시간을 움직여 온 원동력에는 물질적인 요소보다 심리적인 요인들이 언제나 더 크게 작용해왔다. 아마도 그래서 흔히 한국인을 칭하는 수식어로 ‘의지, 근성’ 이런 것들이 활용되는 것 같다. 이러한 심리적 요인들은 여러 가지 종류로 그 존재의 가치를 발했지만, 아마 그 무엇보다도 불교라는 것이 가장 오랜 시간동안 가장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민족을 지키고 화합하게 했을 것 이다.
사사로운 얘기가 길었지만, 요지는 이 책을 통해 기존에 관심있던 불학에 대해 좀 더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어 좋았다는 것 이다. 일단은 국사학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 불학에 대한 관심이 근래들어 여러 분야에서 마음이 불안하고 안정되지 못한 때에 그 욕구가 더 강렬해졌다. 스스로 면벽수행이라도 하러 떠나고 싶다고 공언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연한 계기로 늘 꾸준히 갈구해 온 분야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습득 할 수 있었으니 가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말은 분명 이런 상황에 써야 옳을 것이다.
책이 너무 마음에 들어 여유분으로 생긴 나머지 한권은 갓 보름전에 6년간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훌쩍 호주로 떠나버린 지인에게 선물했다. 일기일회라, 인생에 더 없이 고민스럽고 어려운 선택을 깊은 성찰 끝에 명료하게 스스로에 대한 직관으로 결정짓고, 차근차근 진행시켜 성사시킨데 대한 무한한 동경과 격려를 담은 마음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었는지 지인도 책을 받고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이번에 맞닥뜨린 일기일회를 꼭 긍정으로 활용하고 오겠노라며…….
불교계에서 쓰이는 다소 생소한 어휘들이 빈번했음에도 그 의미가 어렴풋이 와닿았던 것은, 이 책에 앞서 삼국시대 중 불교문화가 가장 왕성했던 신라에서 갓 불교를 받아들이고(법흥왕) 정착해가던(진흥왕) 시대의 이야기를 접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이란, 이렇게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들 끼리도 서로 은근하게 잇닿으며 연결고리를 낳곤 한다.
내가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를 이번에도 어김없이 달성했다. 바로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 아니 그 이상의 희열을 또 한번 느끼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