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25 - 소금의 계절
허영만 글.그림 / 김영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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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본 영화 중 가장 많이 울었던 작품 Best 3위는 <식객>
가장 많은 공감과 가장 많은 설움과 묘한 잔상을 남긴 드라마도 <식객>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인 만화는 단 한권도 제대로 보지 못 한 작품이 바로 <식객>

사실 이번에도 출간된지 한참이 지난 이 책을 영화 <식객: 김치전쟁>을 본 뒤(☞리뷰)에야 흥미가 생겨 집어들게 되었다.




책을 보기 전에는 오랜 시간 장수 연재된 만화라는 것. 국내 각 지역의 향토색이 짙은 우리 음식을 두루 소개한다는 것 외에 대체 무엇이 이 작품을 영화며 드라마로 제작되게 하여 온 국민이 사랑 받을만큼 대단한 지위에 오르게 한 것일까.. 막연히 궁금해하기만 했었다. 그리고 참 뒤늦게 접한 원작을 통해 허영만이라는 대 작가의 작품 <식객>. 왜 이분이 국민만화가의 칭호를 얻게 되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바로 이 책을 통해서 말이다.

보통 소설가들은 한 편의 글을 쓰기 시작할 때, 그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사건부터 여러가지 작품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을 취재하고 연구하는데 막상 집필을 시작하여 글을 써내려가는 것 보다 더한 노력과 수고를 들인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 사실을 떠올리며 ‘만화책이라고 해서 모두 한 순간의 유희거리로 넘겨서는 안 될 일’이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내게는 이렇게도 대단한 의미를 지닌 작품을 25권에 이르러서야 처음 만나게 되었다는 것은 여러모로 참 아쉬운 일이었다. 「소금의 계절」이라는 부제를 지닌 이 책은 우리나라의 대표 음식인 김치와 그 맛의 근간이 되는 소금이 소개되며, 이제는 영화며 드라마 등으로 너무나 유명해진 진수·성찬 커플의 결혼식이 소개되는 아주 사랑스러운 회차본이다.




<식객: 소금의 계절> 뒷 날개에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어머니 숫자와 동일하다』라는 표현이 쓰여있다. 나는 이 글이 이번 영화 식객과 관련하여 쓰여진 문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전 영화 본편에서도 대사로 사용되었고, 전 식객 발행본에서도 쓰여진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다시금 몇 번을 되새겨도 감동적이고 공감가는 표현임에는 분명 할 것이다.

나는 만화 식객을 보는동안 솟구쳐오르는 식욕에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질 못했다. 소개되는 모든 음식과 식재료들이 눈 앞에 준비되어 근사하게 한 상 차려진듯한 기분을 들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 식객이 어느새 26권(진수 성찬의 집들이 날)의 대 장정을 끝으로 완결을 맞이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허영만 화백께서는 바로 차기작 준비에 들어가셨다는데.. 무언가에 푹 빠져본 이들은 이 기분을 알겠지만 식객의 열혈 팬으로서(책도 안읽고-,-;) 과연 이만큼 또 매력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을지 염려스러워졌다. 하지만 이제는 아쉬운 마음은 뒤로 한 채, 완결을 기념으로 식객 전권을 셋트 구입을 새로운 목표로 세웠다. 그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지금 소장하고 있는 25권은 주변에 또 다른 (원작을 접해보지 못한) 팬에게 선물하여 이 멋진 작품의 가치를 새길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결심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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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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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제야 이 책을 읽은 것일까, 나는 왜 진작 그가 정계에서 활동할 때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 한 것일까 등등 이와 같이 여러 가지 후회를 가슴속에 품게 만든 책. 이번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는 바로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소감은 제목에 낚이지 말아야겠다는 것 이었다. 한때, 경제·경영 코너를 우후죽순처럼 가득 메운 스타벅스에 관한 고찰. 그것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로 착각할 수 있는 제목이기 때문이다.(나만 그런가?)

이 책은 서문에서 저자가 밝힌 바와 같이 우리가 주변에 있는 카페를 드나들듯 편안한 느낌으로 접할 수 있는 경제학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하지만 전공자인 내가 읽기에도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던 책이다. TV나 무심코 지나치던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경제학적 해석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대학 수준의 경제학 원론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야 책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물론 이런 장르의 책들이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도입부에서 강조했던 그런 쉽고~ 재미있고~ 편한~ 느낌은 결코 아니기에 섣불리 집어 들어서는 안 될 거라는 말을 하고 싶다. (내가 전공자임에도 상식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르지만..)




유시민씨의 책은 <청춘의 독서>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비록 이 책은 국내외 전반의 경제상황에 대해 현실적인 감각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출간 된지 꽤 오래된 터라 현재 상황과는 여러 가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 또 아쉽기도 했다. (재쇄 기록을 보니 아직도 꽤 팔리는 듯한데, 조만간 개정판 작업을 한 번 하셔도 좋을법한 훌륭한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는데 꼬박 보름이 걸렸다. 보통 책을 한 번 펼치면 길어야 3~4일(잠을 안자가며!!) 읽는 나로선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앞에서 말한 ‘생각보다’ 어려웠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찬양하게 된 것은, 볼 때 어지간한 경제 원론 강좌보다 훨씬 많은 가르침을 얻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아 나는 왜 이제야 이 책을 읽은 것일까.. 20살 여름에만 읽었어도 경제학 원론 성적을 재수강 등급으로 받는 비극적인 일을 초래하지는 않았을 텐데...
 

더불어, 사회악적인 요소만 아니라면 ‘아는 것이 힘’이라는 테마는 무조건 옳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깊이 공감했는데, 그 또한 이번 책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때때로, 많이 아는 것이 교만과 위선을 낳을 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보다 더 넓은 시야와 성찰의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크루그먼(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그 중에 국가의 경제정책적 권능과 관련하여 비교적 분명한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자기가 대통령이 되기만 하면 온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주고 빈부격차와 불황을 비롯한 온갖 경제적인 악을 제거할 것처럼 큰소리치는 정치가를 믿지 말라. 무식한 돌팔이가 아니면 말만 번지르르한 사기꾼이 틀림없으니까.                                                                                          유시민, <경제학 카페> (2002)

나는 아직 읽어야 할 것과, 매달 대책 없이 질러서 쌓아둔 책이 많은데도 <청춘의 독서>에서 소개되었고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속 해설의 근간이 된 경제학의 여러 고전들이 너무너무 읽고 싶어졌다. 그 중 하나는 뉴욕판 데이비드 리카도라 불리는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이다. 아마 이 책은 보름 가지고는 택도 없을 텐데.. 벌써부터 가슴이 일렁인다. 그렇다면 우선은 당장 내 책 꽂이에 꽂혀있는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가 먼저여야 하겠지..? 꽤 오랜만에 가슴 한 구석에 밀어둔 전공에 대한 열정이 끓어오르는 이 기분, 나쁘지 않다. 이게 다 경제학 카페 덕분이다. 전공 여부와 관계없이 경제학을 공부하는 이라면 꼭 한번은 읽어봐야 할 명작이다. 나는 이 책을 이렇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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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침묵 - 제3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이선영 지음 / 김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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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 시절의 기억은 생생하다. 얼핏 보기에는 정말 간단하지만, 그것을 찾아내기 위한 과정은 험난했으며, 아마 그것이 발견된 후부터 이어져온 시간이 다시 몇 번을 흘러 지난다 해도 반증의 오점은 단 한건도 발견되지 않을 이론, 피타고라스의 정리. 13살의 내가 그것을 만났던 그 날 말이다.



이 책은 맨 처음 책을 펼쳐들며 접했던 추천사와 홍보글귀가 전해주던 느낌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롤플레잉 스타일의 온라인 게임 원작 같기도 하고, 학창시절에 자주 읽었던 판타지 소설의 느낌도 어렴풋하게 풍겼다. 마루출판사에서 나온 화풍객의 <청사자단> 시리즈와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 것도 이 책을 즐기는데 있어서 큰 매력요인이 되어주었다.








만약 지금 이 순간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2천 년 전 과거로 떠날 수 있다면 어떨까? (물론 그들의 말과 여러 문화들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이미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에 대해, 그들은 아직 존재조차 모르고 있거나 그 구조를 파헤치기 위해 골몰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면?





이제 우리에게는 그 이론이 얼마나 대단한 가치를 지니는가를 인식하기보다 입버릇처럼 당연하게 내뱉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2010년에 살고 있으며, “이건 왜 그런가요?”라고 묻는다면 “원래 그런 거란다”라는 대답 만돌아오는 의무교육과정에서 수의 체계를 배운 독자가 무리수의 존재를 눈앞에 두고 전율과 공포를 느끼며 한걸음씩 진리를 향해 내딛는 기원전 6세기의 학도를 만나는 일. 이건 정말 간단명료하게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알쏭달쏭하고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내게 소설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은 그 장면 장면을 연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천 년의 침묵>은 기회가 된다면 연극 혹은 뮤지컬의 무대 공연으로 제작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지중해 문화가 꽃피운 아름다운 그리스의 의복과 생활양식 그리고 2천여 년을 거슬러 돌아온 현자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이 내 눈앞에서 말을 하고,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시는 일들은 상상만으로도 짜릿하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 ㅣ 수학자, 역사인물



B.C 582년 (그리스) - B.C 496년

 

피타고라스의 정리 발견
피타고라스 학파 창설
비블로스 비교 입문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문하생

 
비록 당시의 시대상을 표현하기 위해 쓰인 용어들(의복 명칭 등)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지 않았다는 게 조금은 아쉬웠지만, 평가단의 의견처럼 이제 우리도 ‘이런 소설’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기뻤던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음모론은 매우 흥미롭게 즐겨 찾는 대상이지만, 세상에 불신과 음울을 낳기 때문에 가급적 피하는 편이다. 하지만 항상 새로운 물음과 반증을 제시함으로써 보다 더 나은 방향 혹은 새로운 전환으로 나아가기 위한 이 정도 수준의 음모론은 아주 바람직한 촉매제라고 생각한다. 현자의 학파가 그랬던 것처럼, 자칫 방심했다간 금방 정체되고 고여 썩어버릴 수 있는 이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입에만 쓴 약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루 빨리 안목 있는 극본가가 이 작품을 보고 영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다면 이 책이 무대 위에서 또 다른 장르로 형상화되는 첫째 날 가장 좋은 자리를 예약해두고 그 시간을 만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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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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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하나의 픽션이라기보다는 작가가 어떤 작품을 집필하기에 앞서 크게 영감을 받게 된 하나의 ‘실제사건’을 두고 그것에 대한 취재과정과 그 속에서 건져 올린 온갖 의문, 감상을 순차적으로 정리해서 보고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배경은 내가 이 책을 펼쳐들게 된 결정적인 이유, <청춘의 독서>에 아주 자세하게 담겨있다. (☞서평)
 
자신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알며, 품위 있고도 현명하게 삶을 살아가던 블룸은 파렴치한 타인의 이기심 때문에 스스로 살인범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멍에를 짊어지게 된다. 바로 그 인간쓰레기는 차이퉁이라는 언론사의 기자 퇴르게스. 책을 읽는 동안 연상된 그의 비주얼 이미지는 스머프를 잡아먹는 악당 가가멜 혹은 만화 <두치와 뿌꾸>에 나오던 마빈박사가 짬뽕된 느낌이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차이퉁은 독일판 조중동으로 볼 수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런 문제는  정말 어느 나라나 똑같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나마 한두 해 나이를 먹어가며 배운 것이 많아질수록 식견이 넓어졌다고 스스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이번 독서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그 수확들 중 가장 대표적인 테마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논쟁. 과거에 알고 있던 이 테마는 무조건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었다. 더불어, 그것을 제한하는 압력 주체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사회악이라고 단정했는데, 오히려 지금은 언론이 부리는 횡포만큼 또 무서운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정말 어느 곳에나 기막히게 들어맞는다.

저자 하인리히 뵐은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대작가다. 이런 대단한 이의 글을 읽다보니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갔다. 영화 <아나키스트>, <헤드윅> 그리고 대학에 진학해 들어본 수업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모 교양강좌 교수님께 추천받은 <국가의 신화>라는 책 까지…….

이제까지 내가 알던 독일은 우리보다 잘 살았었고, 잘 살고 있으며, 먼저 통일도 이뤘으며, 우리는 아직까지 친일파 문제를 청산하지 못해 논란의 불씨로 남겨둔 것에 비해 나치 처결도 분명하고 깨끗하게 매듭지은 것을 보며 막연하게나마 훌륭한 선구적인 나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접한 독일은 결단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영화 <헤드윅>만 보더라도 러닝타임 내내 주인공이 불러주는 수많은 명곡들이 참 뒤늦게 깨달은 그 사실에 대해 열렬히 부르짖고 있었다는 것을 되새길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것이 단순히 지나간 과거사에 대한 비애 표출이라고만 느꼈었는데,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짧은 식견으로나마 이 책에 대해서 의견을 풀어놓자면, 이 책은 문학 작품으로써의 표현력(예술성)보다는 사회현실(모순점)을 반영하고 지탄했다는 점이 더욱 크게 빛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나는 이제까지 문학작품을 평가하는 4가지 관점 중 내재적 관점으로의 평가를 항상 절대우선시 했는데, 이번만큼은 그 신념을 망설임 없이 접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책의 뒷면에 새겨진 추천사 중 문학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니츠키의 문장을 참고할 수 있는데, 그가 이르길 뵐은 ‘작가 이상의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뵐이 국제 펜 협회 회장으로서 단순히 문학과 지성의 대중화를 추구하는 것 이상의 여러 일들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에 관한 일화 중에는 우리 한국과 관련한 것도 있다. 뵐이 회장 직위를 역임하고 있던 바로 그 시기에 동양의 머나먼 나라 한국 땅의 대통령에게 펜 협회로부터 서신이 도착했는데, 문인 김지하 시인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석방을 청원한 것이 그 내용이었다고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눈을 몇 번이고 비비며 그 이름을 다시 확인해야만 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딱히 집어들 표현이 없었다. 1972년,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에도 바로 이러한 활동들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기존에 형성된 ‘영화’라는 장르의 고정관념을 벗어던진 파격적인 설정으로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도그빌>.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훌륭한 작품이 보다 편안하게 대중들에게 스며들기에는 많은 장벽들이 존재한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으로 문장이 너무 어렵다는 것 이다. 분명히 우리말로 번역된 글귀임에도, 때로는 외국어보다도 생소한 고전의 문어체 이상의 거리감이 느껴질 정도니까 말이다. 책을 반 이상 읽었을 때는, 더 이상 문장 하나하나를 깊숙이 받아들여 친해지고 싶은 마음까지 다 사라지고 말았다. 책을 펼쳐들기에 앞서 가졌던 기대를 크게 반감시켜서 차라리 번역 혹은 편집의 문제이기를 바랄 정도였다.

책을 완독하고 나서는 오히려 이런 문체가 이 소설의 매력을 살리는 것에 큰 일조를 한다고 인정하게 됐지만, 어쨌든 어려운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문체가 어려워서 책을 중도에 포기하고 그 가치를 음미할 수 없다면, 그 작품은 실패한 셈이 될 테니까……. 이와 같은 맥락으로 극에는 ‘소격효과’라는 기법 있다. 다른 말로는 ‘소외효과’ 또는 ‘낯설게하기’로 불리는데, 니콜 키드먼 주연,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2003년 작 영화 <도그빌>에서 그 효과를 가장 적나라하게 엿볼 수 있다.
 
독일의 표현주의 희곡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주장한 개념으로, 관객과 배우의 심리적인 거리를 말한다. 무엇보다 관객은 배우의 연기에 몰입해 동일화되어서는 안 되며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입장에서 극을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는 평소에 절대 읽지 않는 책이나 보지 않은 영화, 드라마의 평론은 절대적으로 피한다. 줄거리의 스포일러를 당하는 것이 싫을 뿐 아니라 글 작성자의 평가와 가치관 주목 포인트가 그대로 내 사고를 점령하고 그 바깥은 더 이상 생각할 수 수 없게 시야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젠장, 이번엔 제대로 망했다. 나는 정말이지 <청춘의 독서>에서 유시민님이 제시해 준 방향, 그 외에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물론 유시민님이 너무나 훌륭한 지성인이며, 하인리히 뵐은 나 같은 나부랭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대작가라는 사실도 한 몫 할 테지만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정말이지 이 책은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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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즐거운 인생 비법 - 실수 9단, 행복 만들기 10단
황안나 지음 / 샨티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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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출판계의 화두는 아마도 ‘산문집·에세이의 대란’일 것이다. 평범하게 일상을 살고 있는 어린 학생들부터 가정주부,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유명인사까지 너 나 할 것 없이 각자의 가치관과 인생을 담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출시하고 있으며, 그런 책들이 베스트셀러 서가 곳곳을 채우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행보의 주축에는 Web 2.0의 상징인 블로그가 자리 잡고 있는데, 오늘은 바로 그 블로그를 통해 수많은 이들에게 귀감을 주고 ‘도보여행가’라는 신개념 직업까지 창출해 낸 한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2010년 올해로 드디어 일흔을 맞이하신 황안나 선생님은 24살의 대학생인 내가 심히 부끄러울 정도로 열정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고 계신다. 이런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된 것은 벌써 반년이나 훌쩍 지나버린 지난해 여름의 2009년 Yes24 문학캠프(☞링크). 나는 그 날 운이 좋게도 선생님과 같은 차량에 탑승하고 ‘아마도 최고령 참석자’라는 멘트와 함께 자기소개를 시작하시는 모습에 너무나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심지어 봉평에 위치한 이효석 문학관에 도착해서는 메밀뻥튀기를 급구매 한 뒤, 하나 드셔보시라는 명분으로 접근하기까지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선생님은 2박 3일간 주어진 일정 내내 ‘최고령 참가자’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약하셨다. 첫 날 조별 연극제에서는 70세의 점순이(김유정, <봄봄>의 여주인공)를 맡아 공지영 작가님이 뽑은 여우주연상의 영예까지 누리셨을 정도로 말이다. 같은 차량이기는 하나 3조와 4조로 나뉘어 더 가깝게 다가가지 못한 점이 너무 아쉬울 만큼 반짝반짝 빛나는 그런 분이셨다.
 



 
흘러가는 시간을 부여잡고 싶을 만큼 즐겁고 행복했던 캠프의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짐도 풀기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Yes24 사이트에 접속해 안나 선생님의 저서 두 권을 비롯해 여러 책들을 구매하는 것 이었다. 그리고 그 두 권 중 먼저 출간되었던 <안나의 즐거운 인생비법> 바로 이 책을 2010년 새해를 맞이하는 기념으로 펼쳐들게 되었다.
 
앞서 말 한 바와 같이 요즘은 에세이·산문집이 대란을 일으킬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애독가의 길을 동화와 소설로 시작한 만큼 어려운 책 보다는 이런 장르를 선호하고 또 그 트렌드에 편승해 남부럽지 않게 많이 읽어보았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한 것은 결과적으로 이런 장르의 책들이 역설하는 내용이 대부분 한결같다는 것이다. ‘인연을 소중히 할 것’,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열정적으로 도전할 것’, ‘내가 가진 것을 나보다 아쉬운 이들과 함께 나눌 것’ 등등…….
 
그런데 배경만 각기 상이할 뿐 결과적으로는 늘 똑같은 말 만 되풀이하는 이 쪽 장르들이 대체 왜 이렇게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을 통해 고민의 시간을 가져보았고, 그를 통해 결론으로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이란 것 이었다. 이런 가치들이 중요하다는 것과 그것의 실천을 통해 우리는 보다 궁극적인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어렴풋이 알고 있다. 하지만 보다 설득력 있는 위치의 누군가가 직접 제시해주는 텍스트 혹은 조언이 주는 결심과 감명, 그리고 선명하지 않은 개인적인 인지는 분명히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같이 출판물이 범람하는 시대에는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한들  한 번 읽은 책을 일정 주기마다 거듭 찾기보다는 같은 내용의 또 다른 신간을 향해 손을 뻗기가 더 쉽고도 현명한 선택이니 말이다.
 

 
과거에 공자(孔子)는 일찍이<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섰으며,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 살에 귀가 순했고,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랐지만 법도에 넘지 않았다.”

 
이 글은 공자가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고 학문의 심화된 과정을 술회한 것으로, 사람들은 공자의 이 말로부터, 15세를 지학(志學), 30세를 이립(而立), 40세를 불혹(不惑), 50세를 지천명(知天命), 60세를 이순(耳順), 70세를 종심(從心)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중 특히 이순(耳順)은 논어의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에서 나온 말로 나이 ‘예순 살’을 이르는 말인데, 인생에 경륜이 쌓이고 사려와 판단이 성숙하여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 나이를 일컫는다. 더불어,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았으되 법도에 어긋나지 않다)에서 유래하여 ‘일흔 살’을 이르는 말 또한 먼저先 나서生 하루라도 더 긴 시간을 보내온 우리 어르신들이 ‘왜 존중받아 마땅한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해 주는 문구다.
 
게다가 황안나 평생 직업으로 교단에서 어린 친구들을 가르치셨던 분이다. 베스트셀러를 쓴 문인이나 파워블로거,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얻는 정치인……. 혹은 이보다 더 대단하고 유명한 사람이라 한들 전직 선생님이자 이순(耳順)을 넘기고 종심(從心)을 앞 둔 이 분의 진솔한 멘트보다 더 큰 교감을 끌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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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을 울렸고, 큰 웃음 터지는 에피소드를 통해 수많은 즐거운 웃음을 선사해 준 이 책은 그 무엇보다 남편 되시는 사부님과 선생님의 애틋한 사랑이 참 보기 좋았던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다.
 
딱히 부족한 것은 없는데 모든 일이 다 꼬여버린 것만 같고 힘들기만 할 때, 이 책을 읽어보자. 주옥같은 책들이 매일매일 쏟아지는 ‘요즘 같은’ 시기에도 가끔은 일정한 주기마다 다시 꺼내어 찾아줄 책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기쁜 일인가에 대해 가슴 떨리도록 깨우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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