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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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하나의 픽션이라기보다는 작가가 어떤 작품을 집필하기에 앞서 크게 영감을 받게 된 하나의 ‘실제사건’을 두고 그것에 대한 취재과정과 그 속에서 건져 올린 온갖 의문, 감상을 순차적으로 정리해서 보고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배경은 내가 이 책을 펼쳐들게 된 결정적인 이유, <청춘의 독서>에 아주 자세하게 담겨있다. (☞서평)
 
자신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알며, 품위 있고도 현명하게 삶을 살아가던 블룸은 파렴치한 타인의 이기심 때문에 스스로 살인범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멍에를 짊어지게 된다. 바로 그 인간쓰레기는 차이퉁이라는 언론사의 기자 퇴르게스. 책을 읽는 동안 연상된 그의 비주얼 이미지는 스머프를 잡아먹는 악당 가가멜 혹은 만화 <두치와 뿌꾸>에 나오던 마빈박사가 짬뽕된 느낌이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차이퉁은 독일판 조중동으로 볼 수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런 문제는  정말 어느 나라나 똑같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나마 한두 해 나이를 먹어가며 배운 것이 많아질수록 식견이 넓어졌다고 스스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이번 독서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그 수확들 중 가장 대표적인 테마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논쟁. 과거에 알고 있던 이 테마는 무조건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었다. 더불어, 그것을 제한하는 압력 주체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사회악이라고 단정했는데, 오히려 지금은 언론이 부리는 횡포만큼 또 무서운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정말 어느 곳에나 기막히게 들어맞는다.

저자 하인리히 뵐은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대작가다. 이런 대단한 이의 글을 읽다보니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갔다. 영화 <아나키스트>, <헤드윅> 그리고 대학에 진학해 들어본 수업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모 교양강좌 교수님께 추천받은 <국가의 신화>라는 책 까지…….

이제까지 내가 알던 독일은 우리보다 잘 살았었고, 잘 살고 있으며, 먼저 통일도 이뤘으며, 우리는 아직까지 친일파 문제를 청산하지 못해 논란의 불씨로 남겨둔 것에 비해 나치 처결도 분명하고 깨끗하게 매듭지은 것을 보며 막연하게나마 훌륭한 선구적인 나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접한 독일은 결단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영화 <헤드윅>만 보더라도 러닝타임 내내 주인공이 불러주는 수많은 명곡들이 참 뒤늦게 깨달은 그 사실에 대해 열렬히 부르짖고 있었다는 것을 되새길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것이 단순히 지나간 과거사에 대한 비애 표출이라고만 느꼈었는데,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짧은 식견으로나마 이 책에 대해서 의견을 풀어놓자면, 이 책은 문학 작품으로써의 표현력(예술성)보다는 사회현실(모순점)을 반영하고 지탄했다는 점이 더욱 크게 빛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나는 이제까지 문학작품을 평가하는 4가지 관점 중 내재적 관점으로의 평가를 항상 절대우선시 했는데, 이번만큼은 그 신념을 망설임 없이 접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책의 뒷면에 새겨진 추천사 중 문학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니츠키의 문장을 참고할 수 있는데, 그가 이르길 뵐은 ‘작가 이상의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뵐이 국제 펜 협회 회장으로서 단순히 문학과 지성의 대중화를 추구하는 것 이상의 여러 일들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에 관한 일화 중에는 우리 한국과 관련한 것도 있다. 뵐이 회장 직위를 역임하고 있던 바로 그 시기에 동양의 머나먼 나라 한국 땅의 대통령에게 펜 협회로부터 서신이 도착했는데, 문인 김지하 시인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석방을 청원한 것이 그 내용이었다고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눈을 몇 번이고 비비며 그 이름을 다시 확인해야만 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딱히 집어들 표현이 없었다. 1972년,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에도 바로 이러한 활동들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기존에 형성된 ‘영화’라는 장르의 고정관념을 벗어던진 파격적인 설정으로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도그빌>.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훌륭한 작품이 보다 편안하게 대중들에게 스며들기에는 많은 장벽들이 존재한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으로 문장이 너무 어렵다는 것 이다. 분명히 우리말로 번역된 글귀임에도, 때로는 외국어보다도 생소한 고전의 문어체 이상의 거리감이 느껴질 정도니까 말이다. 책을 반 이상 읽었을 때는, 더 이상 문장 하나하나를 깊숙이 받아들여 친해지고 싶은 마음까지 다 사라지고 말았다. 책을 펼쳐들기에 앞서 가졌던 기대를 크게 반감시켜서 차라리 번역 혹은 편집의 문제이기를 바랄 정도였다.

책을 완독하고 나서는 오히려 이런 문체가 이 소설의 매력을 살리는 것에 큰 일조를 한다고 인정하게 됐지만, 어쨌든 어려운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문체가 어려워서 책을 중도에 포기하고 그 가치를 음미할 수 없다면, 그 작품은 실패한 셈이 될 테니까……. 이와 같은 맥락으로 극에는 ‘소격효과’라는 기법 있다. 다른 말로는 ‘소외효과’ 또는 ‘낯설게하기’로 불리는데, 니콜 키드먼 주연,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2003년 작 영화 <도그빌>에서 그 효과를 가장 적나라하게 엿볼 수 있다.
 
독일의 표현주의 희곡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주장한 개념으로, 관객과 배우의 심리적인 거리를 말한다. 무엇보다 관객은 배우의 연기에 몰입해 동일화되어서는 안 되며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입장에서 극을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는 평소에 절대 읽지 않는 책이나 보지 않은 영화, 드라마의 평론은 절대적으로 피한다. 줄거리의 스포일러를 당하는 것이 싫을 뿐 아니라 글 작성자의 평가와 가치관 주목 포인트가 그대로 내 사고를 점령하고 그 바깥은 더 이상 생각할 수 수 없게 시야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젠장, 이번엔 제대로 망했다. 나는 정말이지 <청춘의 독서>에서 유시민님이 제시해 준 방향, 그 외에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물론 유시민님이 너무나 훌륭한 지성인이며, 하인리히 뵐은 나 같은 나부랭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대작가라는 사실도 한 몫 할 테지만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정말이지 이 책은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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