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거미원숭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사상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수 많은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입을 모아 칭송하는것은 왠지 모르게 괜히 반감이 든다. 그래서 책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문학을, 종래에는 궁극적으로 등단을 꿈꾼다, 라고까지 말하면서도 감히 시도할 엄두를 내지 않았던 것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최근에 리뷰(☞ 링크)를 남겼던 <해변의 카프카>를 정말 얼떨결에 오기로 펼쳐들기 전 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해변의 카프카를 집어들기 훨씬 전에) 내 지갑을 열어 주저없이 구매를 해 두었던 하루키의 저서가 딱 한권 있으니, 그게 바로 초단편 소설 모음집 <밤의 거미원숭이>였다.

학창시절 수험 공부를 위해 뒤적이던 참고서의 한 켠에 수록되어 있던 낭만적인 이야기 하나.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무심결에 눈으로 훑기 시작한 그 내용이 어느새 머리와 가슴에 강렬하게 새겨져 결코 잊지 못하게 됐던 사건.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뒤에야, 그 단편이 수록된 이야기 모음집을 구매하기까지 나는 정말 새삼스럽게 남모를 두근거림을 간직하며 종종 이 글을 읽어왔다. (좌측면에 배치된 글이 바로 그 작품이다.)

하루키의 많은 팬들은 의외로 그의 단편집이나 수필을 많이 추천한다. 괜한 반감으로 그를 외면했던 시간 동안도, 나는 이 글 한편때문에 "아 이런 느낌 때문이었나" 싶을 만큼 이미 그에게 제대로 매료되어 있었다.

이 책은 전 세계를 통틀어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만큼 히트를 쳤던 판타지소설 <해리포터>에 종종 등장하는 '여러가지 맛이 나는 젤리'와도 같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어야 2페이지를 채 넘기지 못하는 초단편들로 구성된 책이, 매 장을 넘길때마다 새로운 기대감과 감상으로 큰 파장을 남기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사게 된 계기였던 이야기 <한밤중의 기차에 대하여> 같은 감성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조금은 섬찟하지만 결국 파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리게끔 만드는 <새빨간 고추> (▶ 본문보기) 이야기까지. 이야기꾼으로서의 하루키씨는 과연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고, 얼마나 방대한 분량의 생각들을 품고 사는 존재인지에 대해 깨닫게 해준다.

물론, 그 중에서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세계적인 작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그의 장편들, 그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뭔가 심오한 의미의 그런 것들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단순히 글의 문장만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 안에 숨겨진 의미가 따로 존재할것만 같은, 그래서 너무나 쉽게 쓰여진것만 같은 이 글이 더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그런 얘기들 말이다.

하지만 책을 읽기에 앞서 제시되는 저자의 말에 하루키씨는 말한다. "이 책은 나 또한 큰 부담없이 즐기며 써내려간 이야기니 그것을 분석하고 파헤치기 보다는 그저 문장 그대로를 편안하게 즐겨주십시오" 라고. 하지만 말이 쉽지 이렇게 남다른 글을 써놓고 이런 멘트만 남기면 끝이란 말인가? 참으로 이기적인 능력자다-_-;

이로써 나는 하루키씨의 작품을 딱 2종 읽어본 셈이 됐다. 이번 서평의 주인공이자 초단편 소설 모음집인 <밤의 거미원숭이>와 상/하권으로 구성된 장편소설 <해변의 카프카>.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두권이 같은 작가가 쓴 책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마저도 하루키씨의 능력이겠지..

문체나 느낌이 틀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도 전혀 다른 느낌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왜 '초 단편 소설'이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소설이라는 범주가 대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으며 그 경계가 참 오묘하다는 느낌이다. 말 그대로 하루키씨의 의견 (그냥 편하게 겉으로 드러나는 문장 그대로를 즐겨주십시오) 만을 주목한다면 이것은 소설보다는 한편 한편의 동화같은 느낌마저도 든다.

앞으로 주절주절 사설이 길었지만 결론은 '아주 쉽게 볼 책' 이라는 것 이다. 이제까지 그리 많이 겪어보진 못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는 적어도 내게 '공부를 하면서까지 읽어야 할' 그런 어렵고 심오한 작가로 인식되었고, 내가 아닌 많은 독자들이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 의하면 (그리고 작가가 의도한 것 처럼 그냥 드러나는 글귀만 편안하게 읽는다면) 그는 더이상 뭔가 대단한것을 추구하는 철학적인 사람이 아닌 수더분하고 유쾌한 입담을 자랑하는 동네 아저씨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라는 작가에게 더욱 흥미가 일었다. 심지어 글을 쓰겠다고 하는 내가 이제껏 생각지도 못했던 보다 더 다채로운 분야의 글들을 시도해보고 싶다는 의욕까지도..

화장실에 가면서 한 편, 버스를 기다리면서 한 편,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까지 또 한 편, 이렇게 우리 일상의 찰나에서 큰 부담없이 한번씩 들춰볼 수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찬 <밤의 거미원숭이>는 그의 모든 작품을 답습하고 칭송하는 팬들조차 조금은 아쉬운감이 있다고 했지만, 도리어 나는 그런 부분들까지 더 매력적으로 느꼈다고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표현의 한계를 느낄 수 있는 좁은 지면에서 보다 더 강렬하고 개성 넘치는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진짜 작가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작가가 참 좋아졌다. 

많은 이들이 극찬한다는 그 대단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유독 참 부담스럽고 어려워 요지경으로만 느껴지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해 준다면, 바로 이 책을 통해 그와 좀 친해져보라고 적극 권해줄테다. 이 와중에서도 철학적 쟁점과 분석적 잣대를 들이댄다면 나는 뭐 더 할 말이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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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 2010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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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구입하게 되는 경우는 주로 3가지로 나뉜다.


1. 책을 많이 보는 지인(or 트위터 팔로잉 멤버)들의 소개와 추천
2. 온라인 서점 홍보 배너와 베스트셀러, 특가 기획전 메뉴
3. 무슨무슨 여러가지 복잡한 수상작들 그리고 전작이 흥미로웠던 작가의 신간

이 세가지 경우의 예시 중 이번 <제리>는 2번+3번 항목에 속한다. 이전에 읽었던 어떤 책의 리뷰등록을 위해 방문한 온라인 서점 페이지, 그것도 로그인 박스 옆으로 뜬 광고배너에서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라는 테마가 눈에 확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에는 제법 몽환적인듯 하며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표지가 맘에 들었다.) 결단코 맹세하건대, 책에 대한 설명은 단 한줄도 미리 읽어본바가 없었다. 그래서 20대가 말하는 20대의 이야기인지도, 파격적인 성애 묘사로 화두가 되고 있는지도 전혀 몰랐다. 물론 그래서 더 충격적이고 당황스러웠다는 것은 더 말 할 것도 없겠다.



나는 이 책에 대해서 특별히 좋았다거나 나빴다거나 하는 호불호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어졌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올해들어 읽은 책 중 유일하게 책을 펼친 순간부터 완전히 덮을 때까지 단 한번도 쉬거나 딴짓을 하지 않은 채, 하루 안에 읽어내려간 책으로 기억하고 있다. 내가 그동안 이렇게까지 자극에 목말라했었던가? 스스로 참 민망스러웠다.

책을 읽고 나서 며칠간 "나 이번에 이 책 읽었어요~"라는 내색을 했더니, 비슷한 시기에 이 책을 따로 접했던 한 지인이 "20대인 니가 본 이 책은 어떠하냐"고 물어왔다. 더불어서 "요즘 20대는 정말 그렇냐"는 참 곤란한 질문과도 함께....

뭐랄까, 거기다 "아마도 일부는 그럴것이다. 나쁘지 않았다. 조금은 혼란스럽고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할 그런 이들이기에 그들이 보는 배부른 내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것 같다."라고 답했지만, 그 뒤에 이어 "사실 요즘이 아니라 어느 세대나 이러지 않았을까요? 우리 부모세대에도, 그보다 더 이전에도... 더불어 20대가 아닌 그 어느 연령대에서도.. 왜냐면 이런건 연령이나 시기의 문제가 아니니까 상황과 조건의 문제니까"라고 말하고 싶었던거 같다. 알려지지 않았을 뿐, 대놓고 말하지 못했을 뿐, 사실은 어디에서나 언제나 있어왔던 어둠이라고.


지인을 통해 읽게 된 프레시안의 서평 <제리>, 상처 입은 20대의 '킨제이 보고서'? 아니, '로망포르노'!링크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통해 하고싶은 말은 '이게 대체 왜 20대의 이야기'라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굳이 결론이라면..



책을 읽고나서 딱히 할 말도 못찾겠고 언제나 심심풀이로 하는 영화화-상상 놀이를 해보았다. 여자주인공은 문근영, 제리는 장근석, 강은 최다니엘로 점찍었는데 각각 <신데렐라 언니>와 <클로저>, <미남이시네요>,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맡았던 역할들(비주얼) 때문에 자연스레 연상이 되었다. 믿기 힘들지만 세 배우가 같은 또래라는 것도 크게 한 몫 했다. -_-;

나는 소설 속 주인공들을 한심스럽게 생각했지만 비난 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내 앞에 그들이 존재한다면, "내 인생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너보다 더 힘든 사람은 어디에나 있으니 좀 더 능동적으로 살아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들이 보기에 나는 배가 부르고 더 나은 세상에서 더 큰 희망을 발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듯 누가 누구의 힘듦이나 인생의 무게를 다 알수는 없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슬픈것은 이 세상에 수많은 '나'와 '제리', '강'이 우리 주변에 실존하고, 어쩌면 나 자신의 일부가 투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이 스스로 자기를 지칭했던 '루저'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일지도....

이 책에 대해 무슨말을 써야할까 참 많은 고민을 했다. 결국엔 예상했던 것과 같이 뜬구름 잡는 소리로만 가득 채워버렸다.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차기작이 기대되는 작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논외지만 서평을 위해 여러가지를 검색하던 중 '제리'라는 가수가 셋이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재밌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가 느낀 제리는 간결한 정리가 절실하지만 참 여러모로 정리하기 힘든 책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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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소피아코폴라에 가봤니?
임나경 지음 / 인디북(인디아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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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계기로 재밌는 책을 선물받아, 막 더위가 사방을 잠식해갈 무렵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감각있고 독창적인 컨셉으로 창업을 해 방송가에서도 회자될정도로 성공한 사례들을 소개한 책 <넌 소피아코폴라에 가봤니?>

실제로 저자인 임나경씨는 외식전문지 월간 《외식경영》의 취재부장이었던 사람으로, 책의 이야기들도 한 권의 잡지를 보는 듯 한 기분으로 즐길 수 있는 칼럼모음집의 문체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제목에 등장하는 소피아코폴라는 홍대에서 인기리에 영업 중인 의류매장으로, 헐리우드의 유명한 감독의 딸이고 아내인 유명 여배우 소피아 코폴라의 이름을 딴 곳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즐거웠던 것은, 맛집이나 여러 특색있는 가게들을 찾아다니길 좋아하는 내가 아는 집이 종종 등장했다는 것 이다. 관련 내용들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에서 언뜻 본 기억이 있는 곳도 있었고, 알지 못했던 인근의 점포도 등장해 꼭 가봐야겠다고 체크도 해 두었다. 그 중에서는 물론 맛집이 가장 매력있게 느껴졌다. (ㅎㅎㅎ)




책에서 만나 특히 반가웠던 곳, 바로 홍대 앞 밥스바비. 호주식 정통 핫도그와 고기파이 전문점이다.
사진출처:: 동아닷컴 웹뉴스 http://news.donga.com/3/all/20091110/24019402/1

책에서 등장한 여러 가게들을 살피다 보니 문득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내부마케팅을 특히 중시하고 있다는 점. 마케팅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분야의 거장으로 뽑는 필립코틀러의 총체적 마케팅 항목 중, 내부 직원과의 관계를 중시하여 직원들의 자발적인 친절이 고객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지 책 속의 모든 점주들은 잘 알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요즘 주변에서 만나는 왠만한 개인 영업점들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기에 특히 감격스럽고 반가운 내용이었다.

게다가 점포들의 개성있는 컨셉 성향부터 적극적이고도 성실한 고객관리 시스템까지, 본가에서 지금 엄마가 식당을 운영하고 있기에 여러가지 새겨두고 실천해야 할 지침이 많이 소개된 책이라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조만간 여유가 생기면 이 책에 등장한 모든 점포들을 하나씩 찾아보려고 한다. 책에서 제시된 사례들도 훌륭했지만, 직접 가게에서 느끼는 내공과 정성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 처럼 더 남다르게 와닿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런 책들이 좀 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많이 나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객이나 내부 직원에 대한 성실이 점주가 베풀 수 있는 남다른 선심이 아닌, 운영자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아주 중요한 덕목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깨닫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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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 상 -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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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디가서 또래보다 노티난다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다. 생각하는것도 좀 다르고 취향은 더더욱 다르다. 그래서 교류가 좀 있고 알고지내는 시간이 좀 된 이들은 의외로 고전이나 유명작들을 잘 모르는 나에게 깜짝 놀라며 "아 맞다 너 어리지.." 하곤 하는데, 그렇게 자주 오르내리는 작품들 중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것이 의외로 많았다.

이렇게 되다보니 하루키의 작품은 오기로 더 안읽게 되었다. 그런데 근래에는 "야 인간적으로 해변의 카프카정도는 빨리 봐라, 그러면서 니가 책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겠냐! 인간이 덜됐군!"하는 다소 격한 멘트에 화르륵 자극을 받아버렸다. 그래 한 번 시작해보자. 까짓거. 하는 마음으로. 게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작가인 에쿠니가오리가 또 '여자 하루키'라고 불린다지 않는가, 골수 팬들은 고개를 내젓고 아니라고 하는데 과연 어디가 비슷하고 다른지도 내 직접 느껴보리라.



아이러니 한 것은 <해변의 카프카>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미 1Q84 두 권을 모두 구입해 둔 상태였다는 것이다. 언제 읽을지도 모를 그의 책이지만, 너무 책들을 안읽으셔서 출판이 불황이라는 요즘같은 때에 8개월만에 밀리언셀러를 달성했다는 그 책이 또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제일 먼저 손에 쥐고 펼쳐든 것이 1Q84에 앞서 7년 전 마지막으로 출간된 장편 소설이자, 그의 문학적 역량이 총동원된 하루키 최고의 작품이라니! 이제 슬슬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책은 그렇게 지루하지도, 또 밤을 지새우며 읽을만큼 흥미롭지도 않게 조금은 잔잔한듯 하지만 제법 몰입해가며 읽을 수 있는 정도였다. 우선 책을 읽는 내내 몽환적인 느낌가 허무주의에 대한 추구 외에는 에쿠니씨와 닮은 점이 없다고 느꼈고, 세계 각국의 신화들이 총동원되어 '뭔가 좀 알고 봐야 재밌을 작품'이라는데서 큰 매력을 느꼈다.

책을 읽는 동안 큰 스프링 노트를 옆에 펼쳐두고 쉴새없이 느낌들을 적어뒀는데, 막상 책을 다 읽으니 그 느낌들을 쓰고 싶지가 않았다. 가장 큰 요인은 일단 책이 어렵다는 것 때문이었는데, 쉽사이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해 아는척, 다 이해한척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해야하나, 아니 그래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일본인들은 그의 작품을 공부하듯이 탐독한다고 들었다. 매번 책에 나올때마다 그에 대한 평론집이 함께 출간되고 그를 통해 보다 깊이있는 이해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한 나라에 이런 작가와 국민정서가 존재한다는 것은 무척 부러운 일이었다. 물론 나도 그를 더 이해하고 싶은 생각에 주저없이 평론집을 추가로 구매했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도 내가 이렇게까지 말 할 자격이 있나 싶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책을 읽게끔 자극했던 지인과 더불어, 이전에까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열혈 팬임을 자청하며 내게 그의 작품을 끊임없이 권고한 모든 사람들이 남성이었다는 것. 게다가 개인 윤리나 가치관에 있어서 굉장히 완고하고 권위적인 사람들이었다는 것에 있다. 의외로 그의 소설은 참 개방적이고 파격적이기까지 한데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들간의 닮은점을 찾기 시작하는데 또 재미가 붙었다. 까볼수록 너무 공통점이 많아 나중엔 헛웃음까지 칠 정도였고 말이다.

거기에 한가지를 더하자면, 나는 이제 하루키의 수 많은 작품들 중 카프카 하나만을 읽었을 뿐인데 그 안에서 말하는(그리고 내게 닿는) 모든 느낌들이 이미 내게 하루키를 전파하려고 했던 이들을 통해 한두번 들어봤던 내용들이라는 것 이었다. 참 지독하게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준 작가가 아닐 수 없다. 굉장히 대단하고 부러운 일이기도 하고…….

하루키의 작품에서는 여러가지 소재들이 계속 반복해서 등장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고양이비틀즈의 음악 같은, 그래서 그 얘기를 듣고는 본인 스스로도 어떤 소재에 강한 자극을 받아 글을 쓰는 만큼 독자들에게도 그렇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카프카를 통해 나는 그를 좀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미 단편집은 하나 읽었고, 조만간 시작하게 될 것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에 앞서 카프카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도울 평론집을 읽어야겠고. 아직은 밍숭맹숭 하지만 나 또한 이 작가에게 좀 더 빠져들거란 예상은 충분히 된다. 그래서 이번 노벨문학상의 결과가 더욱 궁금해지기도 한다. 1Q84의 4권 여부와 더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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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 정철의 불법사전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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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친한 언니가 트위터에 한구절 두구절 맘에 드는 문장을 올리던 것에 뽐쁘받아 구매를 결심했다. 인문학(성취욕)과 에세이/소설(휴식, 즐길거리) 사이를 오가는 독서 생활 중 조금은 색다르고 전례없던 유형의 도서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하긴, 이런 장르의 책을 어디서 또 찾을 수 있을까? 세상에 대한 엉뚱한 호기심들을 모은 부류가 그나마 좀 비슷하다면 모를까.

"꽉 막힌 생각에 날개를 달아줄 발칙한 상상력!"

메인 문구부터 흥미가 들끓기 시작했다. 어린시절, 조기교육에 대한 의욕이 남달랐던 엄마 덕분에 창의력 학습지를 다양하게 섭렵해 온 지난 날들이 떠올랐달까.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알려진 "웅진 씽크빅"을 떠올리는 문구. 근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 책 또한 웅진 브랜드에서 출간됐으니, 이 회사 참 창의력이 남다른 회사가 아닐 수 없겠다.



이 책은 카피라이터로 활동 중인 정철 선생님의 짧고 긴 카피 모음집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좀 재밌는게, 기존에 틀에 박힌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던 아주 쉬운 단어나 표현들을 '아 역시 카피라이터는 뭔가 다르구나'라고 느껴질만큼 남다르게 풀이해놨다. 그래서 불법사전이고, 그를 채워나갈 수 있는 불법생각이 청춘(보통은 젊은시절 이런 남다른 발상을 많이 하기에)의 특권이라고 책 메인에 적혀있다란 생각을 했다. 무튼 매 장을 넘길때마다 무릎을 탁! 치며 오호~ 하게 만드는 재밌고 독특한 책이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책의 마지막장까지 와있고, 다시 앞장부터 또 훑게 만드는 그런 책 말이다.

책을 다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의 트위터 계정(@cwjccwjc)을 알게 되어 바로 팔로잉을 했다. 매일 올려주시는 여러 문구나 동물의 왕국 시리즈 카피들을 보며, 역시 멋진 분이라는 감탄을 했고 나중에는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진행하는 출판기념 강연회까지 찾아가 기어이 싸인을 받았으니-_-vV 게다가 화과자까지 선물해드리는 애정을 선보였다. 으하하.



이 날의 강의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아주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우리 사회의 주요 인사들과 그 인사들을 통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들을 가지고 여러가지 카피 발상법과 표현방법을 설명해주셨는데, 2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잠시도 흐트러짐 없이 집중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아주 매력적인 강의였다.

강의를 마치고는 주저없이 선생님의 다른 책들도 구매했는데 그 중 <내 머리 사용법> 이라는 책은 이번에 나온 <불법사전>의 오리지널 버전이었는데, 그 또한 괜찮은 책이었다. 우연히 트위터에서 지인이 발췌한 글귀를 보고 시작된 독서가 이렇게까지 연을 잇게 하다니……. 지금 선생님께는 종종 트윗으로 안부인사를 여쭙고, 이후에 영화 시사회장에서도 또 뵙고 인사를 드릴만큼 내 입장에서 만큼은 나름 각별한 관계를 쌓고 있는 중이다. 일단 좋으면 들이대고 보는 이 성격이란(ㅋㅋㅋㅋ)

언젠가 술자리에서 가방에 넣고 다니던 이 책을 친구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매일 '돈 없는 학생~ 고학생은 가난해~'를 입에 달고 사는 친구는 그 자리에서 자기도 이 책을 사야겠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늘 한결같은 일상 속에서 삭막해져만 가는 마음과 머리를 느낀다면, 그래서 내 자신이 참 슬프고 가엾다고 생각된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적극 권하고 싶다. 발상의 전환/남다른 사고를 통해 영혼을 환기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해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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