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 상 -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어디가서 또래보다 노티난다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다. 생각하는것도 좀 다르고 취향은 더더욱 다르다. 그래서 교류가 좀 있고 알고지내는 시간이 좀 된 이들은 의외로 고전이나 유명작들을 잘 모르는 나에게 깜짝 놀라며 "아 맞다 너 어리지.." 하곤 하는데, 그렇게 자주 오르내리는 작품들 중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것이 의외로 많았다.

이렇게 되다보니 하루키의 작품은 오기로 더 안읽게 되었다. 그런데 근래에는 "야 인간적으로 해변의 카프카정도는 빨리 봐라, 그러면서 니가 책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겠냐! 인간이 덜됐군!"하는 다소 격한 멘트에 화르륵 자극을 받아버렸다. 그래 한 번 시작해보자. 까짓거. 하는 마음으로. 게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작가인 에쿠니가오리가 또 '여자 하루키'라고 불린다지 않는가, 골수 팬들은 고개를 내젓고 아니라고 하는데 과연 어디가 비슷하고 다른지도 내 직접 느껴보리라.



아이러니 한 것은 <해변의 카프카>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미 1Q84 두 권을 모두 구입해 둔 상태였다는 것이다. 언제 읽을지도 모를 그의 책이지만, 너무 책들을 안읽으셔서 출판이 불황이라는 요즘같은 때에 8개월만에 밀리언셀러를 달성했다는 그 책이 또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제일 먼저 손에 쥐고 펼쳐든 것이 1Q84에 앞서 7년 전 마지막으로 출간된 장편 소설이자, 그의 문학적 역량이 총동원된 하루키 최고의 작품이라니! 이제 슬슬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책은 그렇게 지루하지도, 또 밤을 지새우며 읽을만큼 흥미롭지도 않게 조금은 잔잔한듯 하지만 제법 몰입해가며 읽을 수 있는 정도였다. 우선 책을 읽는 내내 몽환적인 느낌가 허무주의에 대한 추구 외에는 에쿠니씨와 닮은 점이 없다고 느꼈고, 세계 각국의 신화들이 총동원되어 '뭔가 좀 알고 봐야 재밌을 작품'이라는데서 큰 매력을 느꼈다.

책을 읽는 동안 큰 스프링 노트를 옆에 펼쳐두고 쉴새없이 느낌들을 적어뒀는데, 막상 책을 다 읽으니 그 느낌들을 쓰고 싶지가 않았다. 가장 큰 요인은 일단 책이 어렵다는 것 때문이었는데, 쉽사이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해 아는척, 다 이해한척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해야하나, 아니 그래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일본인들은 그의 작품을 공부하듯이 탐독한다고 들었다. 매번 책에 나올때마다 그에 대한 평론집이 함께 출간되고 그를 통해 보다 깊이있는 이해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한 나라에 이런 작가와 국민정서가 존재한다는 것은 무척 부러운 일이었다. 물론 나도 그를 더 이해하고 싶은 생각에 주저없이 평론집을 추가로 구매했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도 내가 이렇게까지 말 할 자격이 있나 싶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책을 읽게끔 자극했던 지인과 더불어, 이전에까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열혈 팬임을 자청하며 내게 그의 작품을 끊임없이 권고한 모든 사람들이 남성이었다는 것. 게다가 개인 윤리나 가치관에 있어서 굉장히 완고하고 권위적인 사람들이었다는 것에 있다. 의외로 그의 소설은 참 개방적이고 파격적이기까지 한데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들간의 닮은점을 찾기 시작하는데 또 재미가 붙었다. 까볼수록 너무 공통점이 많아 나중엔 헛웃음까지 칠 정도였고 말이다.

거기에 한가지를 더하자면, 나는 이제 하루키의 수 많은 작품들 중 카프카 하나만을 읽었을 뿐인데 그 안에서 말하는(그리고 내게 닿는) 모든 느낌들이 이미 내게 하루키를 전파하려고 했던 이들을 통해 한두번 들어봤던 내용들이라는 것 이었다. 참 지독하게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준 작가가 아닐 수 없다. 굉장히 대단하고 부러운 일이기도 하고…….

하루키의 작품에서는 여러가지 소재들이 계속 반복해서 등장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고양이비틀즈의 음악 같은, 그래서 그 얘기를 듣고는 본인 스스로도 어떤 소재에 강한 자극을 받아 글을 쓰는 만큼 독자들에게도 그렇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카프카를 통해 나는 그를 좀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미 단편집은 하나 읽었고, 조만간 시작하게 될 것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에 앞서 카프카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도울 평론집을 읽어야겠고. 아직은 밍숭맹숭 하지만 나 또한 이 작가에게 좀 더 빠져들거란 예상은 충분히 된다. 그래서 이번 노벨문학상의 결과가 더욱 궁금해지기도 한다. 1Q84의 4권 여부와 더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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