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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평점 :
5명의 각기 다른 인물들이 옴니버스로 얽히고설켜 풀어내는 적당히 독특하고 적당히 현실적인 이야기. 아 근데 너무 길었다. 600페이지 넘는 책은 참 오랜만에 읽어 지구력이라곤 요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나같은 인간에겐 너무도 긴 대장정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스피디한 전개나 흥미진진한 캐릭터+스토리 덕분에 제법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었다.
공중그네의 잔상이 너무도 강해서 그 이후의 작품들은 선뜻 시도하지 못했던 내게 "오쿠다히데오=공중그네"라는 공식을 깨트려 준 작품. 그것만으로도 의의는 충분하지만, 그 외에도 전체적으로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었다고 평가해주고 싶다. 더불어, 우습게도 책을 읽으면서 실제 주변에 있는 여러 인물들이 캐릭터마다 하나씩 겹쳐 보여 재밌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했던 책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꿈의 도시'라는 제목은 역설적 의미의 표현이다. 다시 말해 전체적인 내용은 따끔따끔한 우리네 현실이 거듭 와닿는 책이었다는 뜻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겹겹이 아주 촘촘하게 맞물려있는 이런 옴니버스의 형식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or 영화)의 형식이기도 해서 특히 흥미로웠다.
이 책을 읽는동안 이야기의 배경 만큼이나 내 개인적인 상황들도 좀 불편했던 것들이 많아. 그 중에 '풍요속의 빈곤', '군중속의 고독'이라는 표현을 오랜만에 쓴 바 있었다. 전체적으로 우리네 현실을 대변하듯이 보여주는 상대적인 고독이 정말 그 당시의 내 마음과도 같아서 끝으로 내달릴수록 불안하고 또 두려웠던 작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을 수 없는 애증어린 마음. 끝에 이르러서는 읽는 동안 내심 예상하고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결말이 나올까봐 항상 책의 마지막 장은 읽지 않고 그대로 덮어버렸다던 어느 영화 속 주인공을 따라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매 장마다 찾아왔었다.
책의 뒷면에는 이런 카피가 적혀있다.
"폭발하는 스토리, 스피디한 전개, 충격적인 라스트신"
오쿠다 히데오의 진면목을 담은 최신 걸작 소설
마음은 간절했지만 역시 나는 그 영화 속 주인공처럼은 될 수 없어 숨가쁘게 다다른 마지막 장은 진짜 충격적인 라스트씬이었다. 뭐랄까, 카피에서 의도한 바가 어떤 의중이었는지는 알겠는데, 그것에는 동의할 수 없는 그런 의미의 충격이 아니라, 뭐랄까... 충격이 아닌건 아닌데 충격적이면서 아닌. 아. 정말 곤란하다. (이 책을 완독한 독자들은 이런 내 맘을 부디 이해해주길 바란다.)
책을 다 읽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맘에들었던 구절을 공유하고 감상을 적고 하는동안 어쩌면 '진짜 오쿠다 히데오'의 모습으로 돌아온, 나처럼 공중그네(혹은 인더풀)로 익숙한 한국 독자들에게 이제서야 그가 지닌 마성을 보여줄 만한 책일거라는 한 독자분의 의견을 들었다. 그 부분에는 나도 공감하는 바인지라 앞서 충격적인 라스트신을 제외한 나머지 두 줄의 카피에는 적극 공감을 표하고 싶다. 쨌든, 덕분에 소장만 하고 읽기를 미뤄두었던 오쿠다 히데오의 다른 작품들에도 선뜻 손을 뻗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것도 이 책이 준 또 하나의 고마움이라고 꼭 적어둬야겠다. 한가지 더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나는 아직 부족함이 많으니 조만간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 이 책을 샅샅이 분해하고 분석한 날카로운 리뷰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것.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