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9·11 참상' 8500여 장 사진에 담아
90여 개국서 전시한 미국 사진작가 미야로위츠 방한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그로부터 열흘쯤 뒤 2만여 평의 참사 현장(그라운드 제로) 울타리 안으로 한 사진작가가 들어섰다. 그는 상상을 넘어선 파괴에 '외경심'까지 느끼며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이듬해 6월까지 8개월 반 동안 거의 매일 그곳을 찾아 8500여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는 이 가운데 28장을 골라 '9.11 이후-그라운드 제로의 이미지'란 이름으로 세계 90여개국 400여개 도시에서 전시했다. 모두 400여만 명이 봤다고 한다.
조엘 미야로위츠(67). 그는 사진작가로는 유일하게 9.11 테러 현장에 무제한 접근해 사진을 찍었던 사람이다. 한국HP의 전문가용 포토프린터 출시 행사에 참석차 최근 방한한 그를 만나봤다.
-어떻게 해서 '그라운드 제로' 사진을 찍게 됐나.
"(참사가 발생한 뒤) 뉴욕 토박이로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살펴봤다. 흔히들 헌혈이나 기부를 했는데 난 그 이상의 일을 하고 싶었다. 알아봤더니 (현장을 기록하는) 사진가가 없었다. 그건 잘못된 거였다. 그래서 뉴욕시 당국을 설득했다."
-사진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건.
"뼛속까지 울리는 고통이랄까 슬픔같은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라운드 제로에 섰던 유일한 사진작가로서 받은 느낌을, 그곳을 보지 못한 사람들까지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전시회까지 하게 된 계기는.
"국무부에서 연락이 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전세계에 보여주자고…. 실제로 관람객으로부터 '비디오로 볼 때는 영화의 특수효과 같았는데 사진을 보니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겠다. 참 비극적이다'란 얘기를 많이 들었다."
미야로위츠가 사진을 하게 된 건 실로 우연이었다. 오하이오대에서 미술사와 추상화를 전공한 그는 당초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 1962년 어느 날, 업무차 한 사진작가를 찾아갔다가 그의 일하는 모습에 매료돼 바로 사진계에 뛰어들었다.
"사진작가라 하면 흔히 (모델에게)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라고 한 뒤 사진을 찍는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자신을 찍었다. 마치 시간을 정지시킬 수 있는 듯한 모습으로…. 바로 그날 오후 직장을 관두고 카메라를 빌려 거리로 나섰다." 그 사진작가가 바로 사진집 '미국인들'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로버트 프랭크다.
미야로위츠는 처음부터 컬러 사진을 찍었다. 당시만 해도 예술 사진계에서 컬러 사진은 경박하다고 '멸시'받았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어느덧 그는 흑백 사진에 대한 급진적 반동 운동인 '뉴 컬러'의 중심에 선 인물로 사진사에 기록됐다. 78년 나온 그의 첫 작품집 '케이프 라이트'는 컬러 사진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지금까지 13권의 책을 내고 35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글=고정애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