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 슬라브 문학 1
까렐 차뻭 지음, 김희숙 옮김 / 길(도서출판)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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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작품은 1920년에 발표되었다. 그 시대에 씌여졌다고 생각하기에는 무척 '진보적인(작품 속에서 나오는 '진보'와는 다른 의미로)' 생각이 담긴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로봇과 비슷한 개념의 '골렘'이란 것이 옛날부터 전설로 존재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가장 처음 인조인간-로봇-의 개념을 정립했다는 것만으로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으로 '로봇'이란 말이 사용되었다는 것 외에는 이 책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내용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 읽어나가면서 이 책이 80여년 전에 씌여졌다는 것에 놀라워하게 된다. 지금, 바로 현재에 대입해 봐도 뒤떨어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섬뜩함마저 느끼게 하는 선견지명이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R.U.R.'에는 '진보'에 대한 여러 입장들이 나타나 있다. 그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자, 의혹을 갖는 자, 그것이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는 자. 작가는 그 입장들이 모두 옳은 것이라고 말한다. 즉, 어느 한 가지만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진보로 보았을 때, 그것은 분명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해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꼭 인류의 완전한 행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믿은 것들이 어느 순간 인간을 향해 발톱을 드러낼 수도 있다. 작품 안에서의 '로봇'처럼.

작가는 '로봇'이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대용물로써 '인간'을 보이고 있다. 처음에 '로봇'은 비인간적으로 보인다. 표정없고 모든 것이 똑같은. 그러나 이러한 '비인간적'인 로봇은 일면 개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획일화된 모습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리고 로봇이 점점 인간화되어 가면서 취하는 행동은 인간의 파괴적인 성격을 생각나게 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로봇은 인간들을 말살하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들을 닮아갔기 때문이다. 인간에게서 '살육'과 '정복'을 배운 것이다.

읽는 동안 내내 섬뜩함과 비관적인 느낌을 받았지만 끝부분에서 그런 느낌은 조금 사라졌다. 작가는 그래도 희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인간이 스스로를 파멸시킬지라도 생명의 힘만은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사랑'이 해답이라는 것은 진부하게도 느껴지지만 흔한 것이 감동을 주는 것일까. 마지막의 알뀌스뜨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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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y 플라이
김연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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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에 '성 도체스터 학원 살인 사건' 이후(첫 작품은 'Messenger'지만 그때는 이슈를 보지 않았다) 김연주 님의 단편이 꾸준하게 실리는 것을 보고 기뻐했었다. 그랬기에 비록 6부작이지만 'FLY'가 연재되었을 때는 정말 기뻤다. 연주 님의 작품은 그렇게 큰 감동이나 충격같은 건 없지만 잔잔한 감정의 물결을 일으키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그림도 깔끔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FLY는 사실 흔한 소재, 흔한 이야기이다. 멸망한 나라의 왕녀와 이웃나라 왕자, 왕녀의 수호기사(여기서 보통 이야기의 공식과 약간 어긋나는데 라이넬을 수호기사로 넣으면 문제가 없다). 거기다 그 왕녀에겐 신비한 능력(비밀이라고 해야 하나?)까지 있다. 그러니 당연히 왕녀를 노리는 무리들이 많을 테고...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흔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색다른 느낌을 줄 수도 있고 진부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FLY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끝부분에서 이야기가 좀 압축된듯한 느낌이 없지않았는데 그것은 6부작이라는 한계가 있는 이상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그 심각해야 할 상황에서 개그가 나오는 것이 조금 어색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제한된 분량안에서 끝을 맺기 위해서는 그 방법이 최선이었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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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만의 도시 - 알라딘월드북 20
헨리 빈터펠트 지음 / 웅진주니어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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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재미있었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좀 더 어렸을 때, 머리가 너무 커져버리기 전에 읽었으면 어땠을까였다. 처음 책의 제목을 보고 생각한 것은 무슨 환상이나 마법 같은 게 나오는 동화인지 알았다. 보통 생각으로는 아이들만의 도시는 현실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의 내용도 그렇게 현실적이진 않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실제로 있을 법 하게 설명을 했다. 아이들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어른들이 도시를 떠난다는 것.

어른들이 떠난 도시에서 아이들은 처음에는 무질서한 행동을 하지만 차츰 자신들의 규칙을 정하고 지도자를 뽑는 식으로 정리되어간다. 불량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해적단과의 싸움은 지금의 내가 보기엔 좀 우습게도 느껴졌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다를 것이다. 어쨌든 아이들은 일종의 그들만의 정부를 만들게 되고 그렇게 해서 질서를 유지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약간의 씁쓸함을 느꼈다. 분명히 '아이들만의 도시'지만 결국 그 모습은 '어른들의 도시'였다는 것. 어른들의 사회 모습을 그대로 닮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요구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 다른 모습으로 그 도시를 그려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약간은 독재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아이들의 지도자를 꼭 만들었어야 했을까?

물론 이 책은 동화책이다. 그리고 재미있다. 아이들의 동화를 이런 식의 비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잘못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안타깝다. 이런 식으로 트집을 잡지 않아도 되는 순수했던 시절에 이러한 책들을 읽지 못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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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의 음모 반덴베르크 역사스페셜 5
필리프 반덴베르크 지음, 박계수 옮김 / 한길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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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덴베르크의 책 중 가장 먼저 읽은 책이 바로 '파라오의 음모'였다. 평소 역사나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꽤 기대를 하고 본 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첫부분부터 실망을 해버렸다. 그다지 흥미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도입부, 그리고 번역의 잘못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꼬인 문장들. 뒷얘기에 대한 궁금증같은 것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그랬기에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은 상당히 고역이었다.

많은 파벌들-임호테프의 무덤을 찾으려는-이 등장하는데 끝부분에 가서는 대부분이 흐지부지되어버린 것 같았다. 할리마와 오마르의 이야기는 전체 이야기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었고 나중에는 얘네들이 왜 임호테프의 무덤을 찾고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그만큼 정신이 없었다는 말이다).

물론 작가는 임호테프의 무덤을 찾아가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사랑이야기 같은 것도 포함시키고 싶었을 테지만(이 책은 소설이므로) 두 가지가 서로 섞이지 않고 전혀 관련없이 보인다는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그런 점에서는 다른 이야기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에 나오는 안네와 가짜 아드리안의 이야기는 그런대로 주 내용과 잘 어울려진 것 같다.

작가의 욕심이 너무 컸던 것일까. '파라오의 음모'는 소설적 재미도, 새로운 지식을 얻는 즐거움도 충분히 주지 않는다. 결국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어정쩡한 것이 되고 말았다.
(여담이지만 제목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임의로 붙인 것 같은데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파라오'라니...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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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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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를 다 읽고 나서 덮었을 때 든 생각은 '아, 드디어 다 읽었구나' 였다. 나는 책 읽는 속도가 꽤 빠른 편이지만 보바리는 그렇게 쉽게 읽히지 않았다. 이처럼 힘들게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었다. 4년 반에 걸친 힘든 창작과정 끝에 보바리를 완성했다는 플로베르의 이야기 때문일까. 처음엔 하루에 10페이지 이상은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2부부터는 조금씩 속도가 붙기 시작해서 3부는 하루만에 읽었다.

비록 번역된 글이긴 하지만 단어 하나를 택하는데도 많은 고심을 했다는 플로베르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그의 고통의 집약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인공 엠마의 감정과 꿈, 환상, 그리고 그러한 엠마의 눈으로 본 외부세계가 너무나도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마치 나 자신이 엠마가 된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생각을 그대로, 한 점의 오차도 없이 표현하려 했던 플로베르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도 했다.

과연 플로베르는 그 기나긴 지루한 시간의 고통을 이겨내고 자신이 그토록 쓰고 싶어하던 '무(無)의 책'을 써낸 것일까. 나는 잘 알 수 없지만 그가 겪었을 창작의 고통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지 감상문을 쓰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소설을 쓰는 것은 오죽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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