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법에 걸린 나라
조기숙 지음 / 지식공작소 / 2007년 2월
평점 :
정치 집단을 훌륭하게 이끌어 나간다는 것, 말을 하거나 글을 쓰기는 참으로 쉽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만만한 일인가! 하다 못해 집단의 가장 기본인 가정이라는 것을 운영하는 것도 그리 녹녹치 않은 데 말이다. 딱 두명의 부부만 사는 가정이라고 쳐도 심심하면 다투게 되는데, 거대한 정당에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배가 산으로 가는지, 강으로 가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런 어려움을 조금은 해결해 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저자 조기숙은,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열린 우리당, 진보진영에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숙제를 내준다.
저자는 '참여정부의 청와대는 마법의 성'이라고 말한다. 그 유리성이 마왕의 마법에 걸려 대통령과 참모들의 모습을 흉측하게 굴절시킨다고 말이다. 이게 무슨 소린고 했다. 대체 무엇을 일그러뜨린다는 말인지 말이다.
"어제 신년인사회를 했습니다. 저는 돼지 한 마리를 잘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보도에 나온 것 보니까 돼지는 어디 가버리고 꼬리만 딸랑 그려놨어요. 그것도 밉상스럽게 그려놨습니다." 이것은 대통령이 조기숙에게 했던 말이다. 언론의 자의적 해석, 과잉비판, 비판을 위한 비판, 말꼬리 잡기, 말 뒤집기, 없는 말 만들어내기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조기숙 또한 책을 통해 말한다.
왜 이렇게 언론은 노무현과 그 일당(일당이라 표현해서 미안하지만, 딱히 생각나는 표현도 없고 그와 관련된 모든 집단을 함축하기 위함이니 이해해 주길 바란다.)을 그렇게 상채기 내고, 무너뜨리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일까? 그것은 잠시 뒤에 이야기 하도록 하자.
나는 그간 냉정하리 만큼 정치에 무관심했다. 내가 꼬마일 적부터 아버지께서 뉴스를 즐겨 보셨는데, 나는 그 뉴스가 참으로 재미가 없었다. 어릴 때는 무슨 내용인지 몰랐기 때문이었고, 조금 머리가 커서는 자기들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당파 싸움 일색으로 비쳤기 때문이었다. 내가 곡해한 것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과연 그들은 누구를 위한 정치인들인가 의구심이 들었었다. 왜 토론하는 공간에서 욕지거리를 해대며 서로를 비난하기 바쁜 것인지, 무엇이 중요한지 그들은 무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나의 그러한 무관심 또한 노무현 정부가 위태위태한 것에 한 몫 거든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나는 그 어떤 후보에게도 표를 내주지 않았다. 어차피 뽑아봐야 '그 인물이 그 인물이지' 라는 생각에 말이다. 나는 머리로 하는 정치 말고, 가슴으로 하는 정치를 원했다. 이렇게 말하면 '이 사람 정치가 장난이야? 감정적으로 처리하게.' 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가슴으로 하는 정치란 자기 잇속 차리려는 야비한 속내가 담긴 정치가 아니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고 아픈 곳을 치유해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그런 포근한 정치를 말하는 것이다. 내 눈에 보여지는 정치인들이란 그저, 갓 사냥해 온 먹잇감을 앞에 두고 서열 따져가며 으르렁 대는 야생동물과도 같아 보였으니까 냉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배웠듯이 정치적 무관심은 어쩌면 나라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훨씬 위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러한 생각이 들어서 내심 속이 불편했다. 이 책의 일부에 담긴,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원망하는 듯한 내용들이 더더욱 나로 하여금 미안한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당파 싸움이니, 밥그릇 챙기기니 뭐니 해도 정작 중요한 것은 정치에 대한 관심이었음을 이제야 비로소 새롭게 깨우쳤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은 어떻게 정부가 바르게 서도록 도울 수 있을까? 정치에 실망을 했던 사람들, 비난을 쏟아내기 바쁜 사람들 모두 우리 나라 정치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제금 다시, 이 책 속으로 빠져 들어가 보려한다. ㅡ 정치라는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하고, 중요한 사안이니 만큼 왠만해선 책에 흠집내는 것에 치를 떠는 내가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었다. ㅡ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해결 방안인지 함께 들여다 보자.
"노무현 대통령은 17대 대통령이 아니다. 2대 대통령이다. 노무현 이전의 대통령은 모두 비슷하다. 노 대통령이야말로 비로소 완벽하게 단독으로 개혁정권을 수립했으므로 과거와 차별되는 대통령이다. 그래서 기대가 더 크다." ㅡ p.58
구시대의 특권층이며 소위 '밤의 대통령'이라 불리던 보수언론의 사주들은 특권층의 기득권을 배척하고 시민이 권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려는 노무현 정부를 애초부터 인정하지 않았다. (중략) 따라서 수구언론과 참여정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담론경쟁은 불가피하다. 국민들이 가치관의 혼란과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구시대 방식과 참여정부의 새로운 방식이 충돌을 벌이며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ㅡ p.58
개혁을 하려는 노무현 정부와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려 하는 수구언론간의 담론 경쟁이 불가피한 것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갈등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시어머니가 지켜왔던 모든 것이 며느리에 의해 새로이 정립되는 것이 기득권 세력인 시어머니의 눈엔 마냥 고울리 없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 사회는 높은 언론신뢰, 낮은 정부신뢰로 정리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이만큼 민주화를 이루었는데도 여전히 언론신뢰가 정부신뢰보다 높은 이유는 정부가 덜 제도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론이 동종업종 봐주기로 다른 언론의 왜곡 보도를 바로잡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ㅡ p.88
부당한 평가에 대해 당에서 누구도 나서서 밝혀주지 않으니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는 것이다. ㅡ p.186
언론을 견제해야 할 정부와 정치인들이 언론을 두려워하니 언론이 독점적 권력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ㅡ p.234
언론의 파워가 세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열린 우리당은 경쟁의 상대라고 할 수 있는 보수언론의 담론에 놀아나기만 했다. 눈치만 보면서. 수구언론이 모든 사안을 확대하고 부당하게 왜곡하는데도 사과만 하고 이를 부당하다고 반박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노무현 정부는 무능해 보이고, 사람들의 비난의 목소리만 거세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수구언론이 기득권을 꼭 움켜쥐려는 속셈은 알지만, 국민의 진실을 알 권리를 그렇게 부당하게 무시하고, 노리개처럼 갖고 놀아도 되는 것인가? 열린 우리당은 대체 누구의 편인가? 그렇게 남의 눈치만 봐가며 자기 편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슨 배짱으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것일까? 여전히 속이 쓰리다.
위의 내용을 보다시피, 저자는 노무현 정부의 놀라운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관심 밖으로 내몰린 안타까운 처지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는 앞으로 노무현 정부 측근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제시하고 저자 자신의 반성에 대한 글도 담아냈다. 그러한 내용은 나의 글에 담지 않겠다. 내가 보여주는 것보다는 정말 관심이 있다면 스스로 읽어보는 것이 훨씬 나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 다른 것이기에, 스스로 능독적으로 정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가장 재미있게 느껴진 것은 '초기조건'에 대한 것이다.
반 컵의 물을 보고 "물이 반 컵이나 있네" 라고 말할 수도 있고 "물이 반 컵밖에 없네" 라고 말할 수도 있다. (중략) 반 컵의 물에 대한 최초의 해석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평가도 달라진다. 이런 것을 수학이나 물리학에서는 '초기조건'이라고 부른다. ㅡ p. 219
정치에 대한 평가를 최초로 내리는 초기조건은 언론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이 어떤 평가를 내리느냐에 따라 사회의 분위기가 따라간다. (중략) 반 컵에 대한 해석은 양쪽이 일견 타당하기 때문이다. 어떤 해석도 합리성과 객관성을 갖췄다고 믿을 만하기에 최초의 해석이 기선을 제압하게 된다. 결국 정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언론이 만들어내는 분이기를 따라가게 돼 있다. ㅡ p. 220
참 흥미로운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것 보면 사람은 참 귀가 얇은가보다. 뚜렷한 생각 없이 남의 의견을 따라가니 말이다. TV라는 것이 '바보상자'라고 일컬어지는 이유는, 사람의 사고능력을 정지 시키고 보이는 그대로만 받아들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언론이 떠들어대는 내용을 진실인지 거짓인지 국민이 알 길이 없다. 누군가가 반박하고 나서야만 '이게 무슨일이래?'하고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거짓이란 것도 반복해서 듣게 되면 진실로 각인되기 마련이다. 예전에는 불륜이라는 것이 엄청 죄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다면, 요즘 시대에는 TV에서 쉽게 자주 접하게 되어 그것도 무덤덤해지고 불륜이 더 늘어나고, 그런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처럼 언론의 영향은 실로 대단한 것이 아닌가. 더이상, 국민의 눈과 귀를 막지 말고 진실만을 보도할 것을 바라며, 국민을 더 이상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농간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내가 너무 언론만의 탓인 것마냥 언론의 잘못에 대해서만 파고들고 있지만, 언론만이 잘못이라기 보다는 언론의 영향이 그만큼 크고 언론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이야기 한 것 뿐이다. 보수 진영과 수구언론, 진보 진영 모두가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고 참다운 정치를 해주기를 바란다. 더불어, 우리 국민들 모두 정치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바란다.
정치에 관한 서적은 이번에 처음으로 읽어본 책이다. 그간 몰랐던 사실들, 정부에 대한 오해,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할 것이가에 대해 속 시원히 알게 해준 저자 조기숙씨에게 감사한다. 물론, 이 책에 담긴 내용이 100% 진실인지 아닌지는 다시 읽어보면서 천천히 생각할 문제이지만,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었다. 별 다섯개 중에서 네 개를 주고 싶다. 이 책이 완벽한지는 지금 확실하게 알 수 없으므로, 1개의 여유는 남겨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