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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강지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평점 :
오전 일과를 마치고 노곤해 있을 무렵 밥 때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마지 못해 몸을 일으켜 혼자 차려 먹어야 할 점심은 그다지 즐겁지 않다. 그럼 한 끼쯤 건너 뛰어도 되지 않느냐 . 규칙적인 식사시간이 위장에 좋다고 들었거니와 하루 중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마지막 식사시간이기도 하므로 놓칠 수 없지. 한마디로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뭐 그런 복잡 미묘한 관계라고나 할까.
학교 다닐 땐 가장 먼저 급식표를 받아챙기며 좋아하는 반찬에 형광 줄 긋고 누구보다 재빠르게 튀어나가 점심을 반기는 사람이었다.
여러 알바를 하며 거친 남의 회사 구내식당의 푸짐하고 다양한 메뉴를 사랑했고, 식후 믹스커피 빠질 수 없다구~
그 중 황금 같은 점심시간 1시간을 깎아 30분만에 밥을 먹고 오라며 알바에게 정직원 못지 않은 요구를 천연덕스럽게 날리던 곳에선 난 누구 못지 않은 투사의 기질을 불태웠다.
서른을 맞아 여러 도시를 돌며 여행하던 그때 유명 순대국밥집에서 벽 보며 치열한 점심을 즐긴 뒤론 혼밥은 아무일이 아닌 일이 됐다.
대체로 아침 저녁의 일관성과는 달리 점심은 그 어느 끼니때보다 내 현재 상황과 맞물려 변주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수없이 스쳐간 여러 날의 점심이 날 키웠구나 새삼 깨달았다.
이책은 '점심'을 주제로 10명의 작가들의 글을 엮어 만든 앤솔로지 에세이집이다. '점심'에 따라 오는 모든 이야기를 담았다. 점심시간과 메뉴, 특별한 추억, 코로나이후의 점심시간의 변화,스몰토크 또는 점심을 즐기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까지. 점심을 주제로 삶을 아우르는 작가들의 철학이 담겨있다. 한 가지 주제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가능하다니 책을 처음 펼칠때 기대했던 설렘이 만족스러움으로 바뀌었다. 직업도 연령도 성별도 다른 각 10명의 작가의 글은 처음 접하는거나 다름없었는데 각각의 매력에 푹 빠져 읽었다. 특히 좋았던 작가의 글은 평론가 강지희님, 전 기상캐스터 이세라님, 현 경찰관 원도님의 글이었다.
특히 이세라님의 글들은 점심이라는 직접적인 주제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아마 점심시간에 썼을 글일까?) 삶과 일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했을 저자만의 통찰력과 진솔함이 엿보여 마음이 동하는 글이었다.
책 말미엔 작가들의 짧은 인터뷰가 실려있다. 오늘 점심엔 뭘 먹었는지, 점심은 어떤 의미인지, 오늘 저녁에 세상이망한다면 점심엔 뭘하고 싶은지 ! ㅋㅋㅋ
그러고보니 나 오늘 점심에 뭘 먹었더라....?
나 역시 세상이 망하는 날 점심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같이 한끼이고 싶다.
#책속한줄
🔖P26 점심을 거르는 건 그사람이 나약한 의지나 낮은 자존감으로 자기 관리를 놓쳐서가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가면 그렇게 되어 버리는 상황의 문제일 때가 많다. 점심이 없던 그날들에 내가 얼마나 자주 불안에 휩싸였는지 , 얼마나 몸을 학대하듯 살았는지, (이하 생략)(강지희)
🔖P153 무엇인가를 행하고 그결과로 반드시 더 큰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수 있다면, 삶은 얼마나 더 다양한 가짓수의 즐거움으로 내게 화답해올까.(이세라)
🔖p170(음식이 혓바닥위에 머무르며 자신이 가진 본연의 풍미를 뽑낼 틈도 없이 소화기관을 향해 발사되는 일은 음식에게도, 목구멍 주인에게도 비극이다.(원도)
📌서평단 자격으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