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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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계입양프랑스인 연극배우이자 극작가인 나나, 입양 전  한국 이름 문주는 독립영화 제작자 서영으로부터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제작을 의뢰받는다. 서영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문주가 한국으로 건너와 서영의 집에 머물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받아들이며 화해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서영의 집 건물 1층식당의 주인 복희(연희)의 이야기가 또 다른 줄기를 이룬다. 연희는 백복순의 아이 백복희를 돌보고 입양보낸 과거가 있었고 문주는 자신에게 정성스런 음식을 내어준 연희에게 마음이 쓰이게 된다. 생의 마지막 문턱에 다다른 연희를 대신해 연희를 찾아온 복희를 만나고 연희의 전 생애를 더듬어 가게 된다.
사실 과거 , 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왔던 문주는 결국 가족을 찾지 못했고 마음을 닫았었다. 일년 후 문주는 갑작스레 자신의 몸에 찾아온 우주를 품고 서영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이야기는 시작하는데 특히 문주의 감정선을 다룬 문장들이 인상 깊었다. 아이를 가지게 되고 과거를 마주하게 되면서 타인을 끌어안으며 좀 더 단단한 삶을 꾸리게 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참으로 섬세했다. 깊이 감응되기에 충분했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들.

P15 난파된 배에서 살아남았지만 아무도 찾아주지 않아 정처없이 표류하는 사람이 어느새 내 외로움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어떤 상황을 무대처럼 만들어 상상으로 빚어진 배우에게 내게 닥친 외로움을 전가하는 건 오래된 습관이었다. 전가된 외로움은 내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니었기에 깊이 빠지지 않아도 된다는 게 나는 좋았다.

발 딯지 못하고 평생 부유하는 마음으로 외롭게 살아왔을 문주의 고통과 감정들을 헤아리기에 그것들이 너무 무겁고 조심스럽기도 했다.  작가의 말에 보면 쓰기 전 입양인이 아닌 사람이  입양에 관한 이야기를 써도 될까 망설였다고 했는데 고심을 한 흔적이 문장 곳곳에서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

앞서 이름은 집이란 서영의 말에 문주는 강하게 이끌리게 되는데 자신의 이름은 물론 서영과 소율, 복주 등 모든 사람의 이름과 지명의 뜻에 관심을 보인다. 여기서 단 한사람 오랜 옛날 젊은 연희와 더불어 복순을 보살피던 이가 있었는데 평소 복희의 식당을 자주 드나들던 노파이다. 노파의 이름은 끝까지 알 수 없다. 많은 시간과 시대를 건너며 분명 이름이 있고 존재했지만 이름없이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지워져 간 이들, 그들이 있었음을 기억하는것 . 작가가 곧 이 소설을 쓴 의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밑줄긋기

P17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랄지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여기는 뭐든지 너무 빨리 잊고, 저는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고 믿습니다.

P23. 문주로 살면서 나는 비로소 감각과 기억을 소유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단맛과 쓴맛을 인지하고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할 줄 알게 되고 심심함과 억울함과 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온전한 존재. 모든 '처음'의 기억- (중략)문주의 의미를 알아야 나의 역사도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P134. 돌이켜보니, 복희는 내게 늘 음식을 해주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녀만큼 내입에 들어가는 것에 관심을 가져 준 사람은
없었다. (중략) 기적처럼 복희가 깨어나 내게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 음식들을 나열할 생각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곳을 지키게 된 충분한 이유가 되었노라고, 왜냐하면 너를 자라게 했으니까, 그 음식이 너의 피와 뼈를 구성하는 성분이 되었으니까.

P192.그러나 자기연민은 생이라는 표면에   군데군데 나있는 깊고 어두운 굴 같은 것이어서 발을 헛디뎌 그곳에 빠질 수는 있어도 그 누구도, 영원히, 그 굴 안에서만 머물지 못한다. 고립이 필연적인 자기 연민에 침잠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으나 그마음의 상태를 사랑한 적은 없었다, 단 한번도

P 240 .진실을 유예하면서 보호받는 시간 또한 삶의 일부라고, 나는 믿기로 했다.

P 252. 내가 증거니까요.
태어나고 구조되고 보호받고 누군가의 딸이 되고 배우와 극작가로 일하고 있으며 이제는 우주와 가족이 된, 그야말로 살아있는 삶의 증거니까요. 태어나기 전에 포기되었어야 했다고 생각하던 시절과 지금도 가끔씩 그런 마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재의 나 자신 마저 포함하는 내 삶이니까요.
엄마, 들리나요?

나는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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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러닝
이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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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러닝>
-이지

#하니포터5기_나이트러닝

201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얼룩, 주머니, 수염>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장편소설 <담배를 든 루스>로 제 7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한 이지작가의 첫 단편집이다.
신춘문예 당선작인 <얼룩,고양이,수염>을 비롯하여 <나이트러닝>을 포함한 8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표제작 <나이트러닝>을 비롯한 나머지 단편들 모두  부모, 친구의 죽음 ,애인과의 이별을 겪는다. 혹은 신체 한 부분을 잃은 이른바 상실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나이트러닝>에선 남편을 잃고 그리워한 나머지 자신의 팔을 잘라내고 매일밤 다시 자라나는 팔을 끊임없이 잘라낸 나머지 수북히 쌓인 팔을 태우려 불을 지른 여자의 이야기가 나오며 <얼룩,주머니,수염>에선 사실은 삼백살 먹은 애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지만  애인이 사준 고장난 밥솥을 버리지 못해 고치려 애를 쓴다. <우리가 소멸하는법>에선 갑작스런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며 왕릉을 돈다. <모두에게 다른중력>은 한쪽 눈을 잃고 의안을 넣게 된 주인공이 익숙했던 모든 것을 떠나 타국에서 홀로 고군분투한다.

최대한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지만  사실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잊기도 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슬픔을 삼키지 못해 주저앉아 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다시 일어나 그들의 방식으로 잘라낸 팔을 들고 달리고 숨쉬고 애도하며 생을 이어나간다.비록 고친 밥통은 터져버렸지만...

그리고 그 상실의 시간을 보내고 잘 건너오기 위해선 타인의 온기가 필요하다는 것. 마지막에 실린 <에덴 -두사람 묶음> 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p250 세상에는 한 묶음 사람이 있고 두 묶음 사람이 있어. 한 묶음 사람은 한 사람 자체로 완벽해서 타인을 필요로 하지 않아 혼자가 편한거지. 모든 결정을, 일상을 혼자 할 수 있는 거야. 오히려 누가 있으면 더 불행할 수도 있어, 완벽한 자신만의 시공간이 필요한 거지. 하지만 우리 같은 두 묶음 사람들은 결코 혼자 지낼수 없어. 그래서 언제나 반쪽을 찾아 헤매게 되고, 꼭 맞는 반쪽이 아니라 해도 혼자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없기에 괴로운 둘을 감수하는 거야.

책을 넘기며 툭툭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들이 많았다. 그 문장들을 곱씹어보자니 자른 팔을 들고 달리던 <나이트러닝>의 그들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밑줄긋기

p14 큰 슬픔 앞에서 사사로운 불행은 폼을 잡지 못하는 법이다. 슬픔의 위력은 대단하다. 슬픔은 우리를 발가벗기고 초라하게 만든다. 우리는 아주 작은 일에도 웃고, 달리고, 노래한다. 그래야 슬픔의 힘에 눌리지 않기 때문이다.

p20 사는 일은 왜 항상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가울까. 어째서 중간은 없는 걸까.

p58 어차피 산다는 건 시간을 좀먹는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젊음, 그리고 적당한 꾸밈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얼굴을 지니고 있지만 내면은 사납고 불안하다. 언젠가 외모는 내면을 닮아갈 것이다. 싫으나 좋으나 그때까지 살아야만 삶이 끝난다.

p64 슬픔은 슬픔이라는 이유로 쉽게 발설하지. 미움, 질투 , 분노 이런것들을 사람들은 주로 슬픔으로 위장해.

p108 사랑에 대해 생각하는 건 무효다. 그럴 시간에 옆에 누워있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편이 더 사랑에 가까운 것 아닐까. 죽음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소용없다. 그건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이 죽거나, 소중하지 않았다 해도 알던 사람이 죽으면 그게 뭔지 저절로 알게 된다.

p209 삶은 그렇게 오롯하지도 명징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투박하고 느닷없다.

p242 그게 과연 운인가. 삶의 한 시기를 비워가며 찾아낸, 그것이 과연 운의 영역일까. 우리가 운이라고 여기는 수많은 것들이 실은 오랜 염원으로 자기자신의 일부와 혹독하게 바꿔온 어떤 소망의 결과가 아닐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후기를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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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의 질문들 - 우주의 탄생과 진화에 관한 궁극의 물음 15
토니 로스먼 지음, 이강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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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의 질문들>
-우주의 탄생과 진화에 관한 궁금의 물음15

#하니포터5기_빅뱅의질문들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뭔가가 있을까?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까지의 거리는 4광년이다.
*우리 은하의 지름은 대략 10만 광년이다.
*은하단을 가로지는 거리는 수백만 광년이다.
*초은하단의 크기는 수억광년이다.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는 약 140억 광년이다.

-p21. 들어가는 글에서

그렇다. 이 책에서는 흔히 우주하면 빼놓을 수 없는 별이나 행성에 대해선 다루지 않는다. 블랙홀도 나오지 않는다. 그 이유인즉 이런 천체들은 중요하게 다루기에는 너무 작다는 것. 스케일 보소~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을 넘은 우주론에 접근하는 책이다. 그 시작이 빅뱅이다.

저자 토니 로스먼은 일반 상대성 이론과 우주론을 전공한 이론물리학자이자 작가이다. 주로 빅뱅, 블랙홀 및 관련 주제를 연구여 80여편의 논물을 집필했고, 우주 핵합성, 블랙홀, 인플레이션 우주론 및 중력자 연구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1929년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우주론은 과학이 되었고 이것은 곧 멀리 있는 은하가 더 빠르게 멀어진다는 사실이었다고 한다. 우리은하로부터만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멀어지고 있음을 내포한다고. 개념적으로 허블이 한 일은 은하 몇개의 속도와 거리의 관계를 점으로 찍었을 뿐이라고 하는데...(네?? 😱) 그렇지만 저자는 여기서 가장 어려운 수학이 나온다고 했고 그것이 직선의 방정식! 암튼 이것을 우주의 팽창으로 해석한 것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다. 고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면 우주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말이므로  시간을 과거로 돌리면 우주가 점점 작아질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과거의 어느시점에서는 우주가 한점으로 모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에서 시작된 것이 빅뱅이론이라고 한다.
빅뱅이론을 우주론의 정설로 만든 결정적인 근거는 1964년 우주배경복사의 발견이란다.
1998년에는 우주의 팽창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책에선 나와 같은 일반독자들이 가질법한 깨알 질문에 간간히 답하고 있는데 그점들이 흥미로웠다. 책이 일반독자들을 충분히 염두해 쓰여졌다는 얘기가 되겠다.
그 예로 흔히 빅뱅을 생각한다면 "꽝"하고 폭발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오산... 빅뱅의 순간이 우주의 중심일거라 생각한다면 이것도 틀린 생각이란다. 그리고 우주가 팽창한다면 은하들 자체와 (특히) 우리도 팽창하는가에 대한 다소 황당한 질문에도 차분히 그 답을 서술했다는 점이 좋다.
(그답인즉 살찌지않는이상 우리는 팽창하지 않는다는 것 ㅋㅋㅋㅋ)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우주 동영상을 찾아보곤 하는데 그걸 보고 있자면 전전긍긍하고 마음 쓰는 일이 별것 아닌 것 처럼 가벼워지고 나라는 존재 자체도 결국 아무것도 아니란 안도감(?)을 얻곤 한다. 그래서 몇몇 우주 관련한 책을 한번씩 찾아보고 펼쳤다 닫았다 하기 일쑤다. 이 책도 그 노력의 일환이다.  역시 만만치 않았다. 어렵다. 어쩔수 없지. 천문학, 물리학 등 관련 학문 자체가 어렵지 않은가 위로해보며🥲
그러니까 결국 빅뱅을 이야기하려면 중력에서 시작하고 특수 상대성 이론, 일반상대성 이론을 거쳐야 한다. 팽창우주, 암흑우주, 우주의 인플레이션과 양자중력 등등... 책은 다중우주와 메타물리학을 끝으로 마무리한다.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높겠지만 이 책은 간간히 그 여정에 함께 할 것이다. 간결하지만 최대한 친절하게 쓰여졌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넘겨볼 만한 책이다. 

#밑줄긋기

p237 대부분의 우주론자들은 자연의 궁극적인 의문을 풀기 위해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 연구한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니까 걱정 말고 마음을 편하게 가져라. 다음 세대의 우주론자들이 걱정을 이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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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생존자입니다 - 삶을 가두는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31가지 연습
허심양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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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생존자입니다>

-삶을 가두는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31가지 연습

p132 당신은 파도를 멈출 수 없다. 그러나 파도를 타는 법은 배울 수 있다.

-
트라우마는 '상처'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의학 용어로 외상을 뜻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표현하는 트라우마는 정신적 외상이나 충격이다. 현재 삶에 지속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과거 경험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기억을 매개로 하는 끝없는 고통의 재생이며 사건과 관련된 기억, 몸의 감각, 감정, 생각이 뒤엉켜 현재에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다(p23~24)

책의 목차는 크게 4장으로 나뉘어진다.

1장 트라우마가 우리에게 남긴 흔적
-트라우마의 정의와 외상후 스트레스의 이해, 해리현상의 정의를 설명했다.

2장 치유와 변화의 시작
-수용과 변화를 이해하며 여러 생존전략을 소개한다. 잠깐 물러나기, 마음챙김, 자기돌봄 등 그 방법을 서술했다. <연습>이란 장을 따로 마련해 지금 당장 실천해 볼 수 있다!

3장 더 깊은 회복으로
-2장에서 깊이 들어간다. 점진적이지만 구체적으로 회복을 목표로 하는 단계다. 심리상담의 필요성과 현재에 머무르며 과거를 마주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연습을 해본다. 역시  <연습>장을 따로 마련해 몸의 느낌과 친해지고 안전한 환경만들기, 성취감을 맛보고 연결감 회복하기 등을 알려준다.

4장 생존에서 삶으로
-이제 이론과 치료의 단계를 넘어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트라우마의 후유증과 소송, 생존자뿐 아니라 생존자를 이해하고 돕는 법, 트라우마 회복에서 연대의 중요성을 한번 더 짚고 넘어간다.
부록으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진단기준과 도움받을 수 있는 기관을 수록했다.

저자 역시 자신의 마음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심리학을 배웠고 현재 심리상담 연구소 '사람과사람'에서 임상심리전문가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들어가기 전에 앞서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응원과 위로를, 피해 뿐 아니라 이후의 어려움에서 목숨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존중받아야한다는 의미로  피해자victim 대신 생존자survivor이란 표현을 사용하겠다 못 박는다. 그렇다. 어느 누구의 삶이건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가야 하므로. 이 생존자라는 표현에 마음이 뭉클했다. 책 곳곳마다 저자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 진심이 차근차근 옹골차게 독자를 이끈다.
그중에서도  마음챙김, 자기돌봄, 감정일기는 트라우마를 겪은 생존자들 뿐만 아니라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법하다. 내 마음과 감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판단하지 않고 지켜보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지금 여기에 존재할 것! 이런 일련의 과정을  등한시하고 있지 않은지 책을 보며 점검하는 계기가 됐다.
꽤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도무지 앞으로 나갈 수 없던 날들이 있었다. 삶은 지지부진했고 스스로를 한없이 갉아먹었다. 책을 읽으며
마침내, 어린 날 내 오랜 트라우마에서 벗어났고 그것을 제법 잘 헤쳐나왔다는 것을 확인받았다. 그뒤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지켜봐 준 이들이 있었고 나의 터닝포인트에는 매번 연결과 연대의 힘이 있었다는 것. 나는 생존했고 앞으로도 살아갈거다.

#밑줄긋기
 
p58 불을 켜고 끄는 온.오프 스위치가 아니라 동그란 버튼을 돌려가며 조도를 조절하는 스위치를 떠올려보세요 수용과 변화의 극단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조도를 찾는 것, 조금 더 밝게 혹은 조금 더 어둡게 조절하는 것이 바로 균형으로 나가는 길입니다.

p183 살아남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내 삶의 주도권을 누가 가졌는지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이나 외부 환경이 내 삶을 통제하는지, 내가 내 삶을 통제하는지를 말합니다.

p225 트라우마는 개인의 마음 안에서 발생하는 일이 아니라 외부에서 발생하여 당사자에게 침투한 것입니다.

p54 평온의 기도
-라인홀드 니부어

하나님,
제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주시고,

제가 바꿀수 있는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리고 그 둘을 구별할수 있는 지혜를 내려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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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 환상적 욕망과 가난한 현실 사이 달콤한 선택지
도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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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환상적 욕망과 가난한 현실 사이 달콤한 선택지

도우리 저

한겨레 21, 닷페이스, 미디어스 등의 매체에서 글을썼고, 칼럼니스트인 페미니스트 작가 도우리님의 책이다.

9장에 걸쳐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보편적이면서도 다양한 문화 트렌드를 '중독' 이라는 포맷에 맞추어 한권의 책에 담아냈다. 서문의 글 '자기위로이면서 자해인 것' 에 벌써 느낌 온다.이 책 잼있겠는데?

1장 갓생- 계획적으로 열심히 살며 타의모범이 되는 성실한 삶을 뜻하는 신조어로 미라클 모닝을 비롯한 소소한 일련의 일상실천을 말함- 아이러니하게도 이 갓생엔 인간들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모순과 이로인해 휴식할때조차 생산성과 쓸모를 생각하는 것, 여성청년에게 더 가혹한 갓생의 부작용을 이야기한다.

2장 배민 맛- 배달앱과 먹방, 배달플랫폼의 별 5점 의 딜레마를 다룬다.
(구내식당의 전국민 보급화 시급하다구~이거 대찬성입니다!!)

3장 방꾸미기 -누구나 예쁜 방을 가질 수있다는 인테리어 앱과 체인징 인스턴트식 조립가구의 유행, 사실은 쥔 예산만큼 가질수 있는 인테리어 민주주의의 몰취향과 그에 가려진 주거불안과 그 실태를 담아낸다.

4장 랜선사수 - 업무를 위해 학생시절보다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쏟고 대체불가능한 일잘러가 되기 위한 노동자의 현실을 다룬다.

5장 중고거래- 명품부터 판매자의 노동력, 이웃까지 사고 파는 중고거래 앱 이용기를 다룬다면 6장은 안읽씹- sns으로 실시간 연결된 톡 포비아를 다룬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넘어 제대로 대화할 권리를 확장시켜야 할 것을 제시한다. 7장 불안을 상품화한 치유비지니스(사주풀이, 신점, mbti의 열풍, 8장은 데이트앱, 9장은 sns의 이미지소비와 좋아요에 숨은 심리와 권력을 다룬다.

중고거래 앱, 데이트 앱, 인테리어 앱은 사용하지 않으며 사주를 보지 않지만 mbti를 좋아하고 좋아요에 기분좋아지는 나란인간 ...아침엔 도통 기운이 없어 미라클모닝은 불가능하지만 갓생은 살고 싶어 온갖 온라인 수강앱을 끊고 배달앱은 놓지 못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할 생각에 벅차고 아침아닌 늦은 오후쯤에서야 온라인 수강을 하고 오늘 걸은 걸음 수를 기록한다. 괜시리 오지 않는 카톡을 열어 다른 사람의 프로필 업데이트를 엿본다. 이 시대를 살아간다면 최소 절반쯤은 느슨하게 걸치고 있을 우리의 모습이 담겨있고 그 실랄한 풍경에 피로가 몰려왔다. 아니 이렇게까지 애쓰고 산단 말인가...어느시대건 마찬가지지만 요즘 사람들 정말 열심히 산다.

이 책은 일단 재미있다. 작가만의 유쾌하지만 날카로운 시선으로 현 시대의 트렌드를 조목모족 잘 집어냈다. 트렌트를 다루는 책이기에 그 시의성이 빨리 닳을까 걱정되었다는 작가의 말이 있었다. 보편에 가깝게 쓰려고 노력했더니 글이 생기를 잃었고 지금 여기에 집중해서 좁게 쓰니 풀렸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옳았다. 이거 내모습인데... 사찰당한 기분이랄까.

최근 전 국민이 애용하는 카톡 메신저의 서비스 불통으로 난데없는 혼란을 겪었다. 나는 그때 좀 무서웠다. 단일화된 모습으로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괜찮은 걸까. 이 책에서도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 걸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카톡이 경제뿐 아니라 권력과 권리의 장이 되었다는 것을 꼬집어낸다. 도우리 작가는 이 사태를 어떤 실랄하고 명쾌한 언어로 되짚어낼까?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리고 이 모든 트렌드의 중독으로부터 우리는 괜찮고 괜찮다고 작가는 다독인다.


#밑줄긋기

p22 생산성 앱을 우리 몸에 상처자국을 남가지 않은 디지털채찍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날카로운 풍자의 달인인 독일 작가 볼프강m 슈미트의 말이다. 슈미트는 생산성 앱이 엄격한 자기 감시와 자기 징벌 전략으로 "다만(게으름이라는)악에서 구할뿐:이라고 말한다.

p 27 갓생을 위해 커피를 마시는 일 하나에도 , 점심을 먹을 때도, 심지어 취미를 즐기거나 휴식할때조차 끊임없이 생산성과 쓸모를 생각하는 습관 탓에 진짜 삶을 산다는 감각과 멀어지고 있다. 신에게도 안식일은 있었는데 말이다.

p123 문화에 대한 취향은 단지 사적인게 아니고 계급이 첨예하게 구별되는 장이라고.

p143 대화라는 행위자체는 필연적으로 오해할수 밖에 없는 행위다. 하지만 메신저 대화의 핵심 문제는 그저 오해할 여지가 더 많아서라기보다 책임감을 묽히는 데 있다. 책임감responsibility은 상대의 부름에 응답respond할 수 있는 능력ability이다.

p212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에서 소셜 미디어의 유해성이 "우리의 사회적 지위를 공개적으로 만든다"라는 점에 있다고 말한다. "아주 평범한 사교모임조차 곧 잘 인스타그램에서 기념되고 스냅스토리에 게시되기 때문에 우리의 부재는 쉽게 눈에 띈다"는 것이다.

p216 인정받지 못한 현실 노동의 정체성에서 비롯된 자신의 정체성을, 유튜브라는 공간을 통해 표현하고 , 창조하고, 공유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평가받지 못하거나 평하갈수 없는 노동은 조회수와 구독자라는 성과로 가시화되고, 이들은 현실의 노동공간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노동의 수고로움을 인정받음으로써 위로받는다. -이선민

p219좋아요 조회수는 환대가 아니다. 평론가 권유리야의 논문<귀여움과 장애, 기형적인 것의 향유>에 따르면 "공적 시스템에 의한 돌봄을 확신할 수 없는 사회에서는 유머, 사교성, 언변, 충성심, 공감의 태도, 아름다움과 같이 사적인 매력이 사회적 생존을 결정한다. 따라서 한 사회에 귀요미가 많다는 것, 그만큼 그 사회의 권력이 안정적이지 못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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