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의 살인 첩혈쌍녀
아라키 아카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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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끝의 살인』

 

아라키 아카네 지음

이규원 옮김

북스피어

 


 

📖

약 1년 5개월전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할 것이라는 공표가 되고, 일본은 충돌 예측 지점이 되어 무법천지상태가 된다. 비상식량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죽음을 준비하거나, 폭동을 일으키거나 살인 범죄, 약탈이 일상이 되어버린다.

 

주인공 하루 짱은 어머니의 가출, 아버지의 자살, 2층에서 무엇을 하는지 서로 말도 하지 않는 상태이다. 약 67일 남은 지구의 멸명을 받아들이는 것도 아닌가. 엉뚱하게도 운전실습을 받기위해 운전연습학원에 가는데 이사가와 강사는 왜 남아있는지 의문이다. 주행실습 중 트렁크에 실린 시체 발견에 이어 강사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내는 것도 이상했는데 강사는 경찰이었다.

 

📝

그 외 의문점들은 많다. 이상한 건 범인은 왜 도망친 나카노 이쓰키를 붙잡아 고문까지 했으면서 그냥 놓아주었을까.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여놓고. 그래서 하루짱의 2층 집에서는 동생이 아니면 나나코였나. 범인은 살인을 한 동기가 무엇? 종말이면 살인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건가. 흠..얼렁뚱땅 넘어간 건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건지 답답함이있다.

 

곳곳에 숨은 범인같은 인물들 사이에도 세상 종말에도 생명을 구하는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종말이 온다면 무슨 준비를 할까 고민과 이들처럼 묵묵히 원래 삶을 이어가기 위해 또 하루를 살아낼까. 수사를 함께하며 뭉친 이들은 범죄현장에서 자신의 희생으로 타인이 남은 생을 살 수 있다면 도망치기보다 희생을 기꺼이하여 세상의 끝에서도 인간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듯 했다.

 

세상 종말이 배경에서 살인사건의 수사가 범인으로 추청되는 인물들을 추적하고 있지만 짜릿한 한방이나 매력적인 인물은 없어서인지 조금 아쉬웠던. 하지만 예견된 종말을 앞두고서도 배움을 시작하는 등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보자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 “두 분, 정말 수사를 할 겁니까?“

강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지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P129 형제 배





**

366쪽

나는 이치무라는 노려보며 말했다. → 나는 이치무라를 노려보며 말했다.


수정되어야 할 것 같아요.



 

#세상끝의살인 #아라키아카네 #북스피어 #에도가와란포상 #디스토피아소설 #첩혈쌍녀시리즈 #장편소설 #일본소설 #미스터리소설 #서평

"두 분, 정말 수사를 할 겁니까?"

강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지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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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새가 사는 숲 오늘의 젊은 작가 43
장진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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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새가 사는 숲』

 -오늘의 젊은 작가43


장진영 장편소설

민음사 출판




 

 

장진영작가의 『취미는 사생활』 소설은 사회적 문제임에도 무겁지 않고 재미있게 읽었었다. 이번 『치치새가 사는 숲』은 책 제목만으로 작고 아름다운 새가 노래할 것 같았지만 청소년 성폭력이라는 더 무거운 소재를 담고 있어서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라 당혹스러웠지만 읽고 난 뒤에 여운이 아주 길게 남았다. 왠지 내가 책 속에서 놓친 것이 있을 것만 같아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기억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소설은 서른 중반이 된 나와 과거 열네 살인 내가 교차하며 이야기한다.

 

간지러워 하는 '나'는 게가 되고 싶어 하는데, 나에게 언니는 계속 긁으면 피가나 딱지가 앉아 게처럼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단지 자매사이의 농담이 아니라 나는 자신을 외부로부터 지킬 수 있는 딱딱한 껍질을 가진 게가 정말 필요했던 것 같다.

 

중학교. 열네 살. 소녀에게 예민한 시기이지만 부모의 돌봄이 부재였기에 신체적, 정신적 성장이 아슬아슬한 나쁜 행동을 만들었고 연예인병으로 주목받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시절의 떠올리면 부끄러웠던 행동들. 누군가 알까봐 숨겨두고 싶었던 과거들. 중학생의 철이 없다고 하기에 상대방이 상처받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달미에게 잘 보이기위해 친구가 되기 위해 해야만했던 잘못된 행동은 모두가 폭력으로 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런 폭력은 자신들이 저질렀다는 것은 잊은 건지 생각도 안한 건지 아이의 행동에 대해 상처주는 말들만 늘어놓을 뿐이다.

 

누가 될지 모르는 두근거리는 첫사랑을 생각하며 예쁘게 쓴 내 마음 가득 적은 일기장이 사랑이라 착각하게 만든 폭력자로 인해 더 이상 펼칠 수 없는 추잡한 일기장으로 변모시켜버렸다.

 

그 시대는 일하기 바빠서 그러했다는 부모의 핑계는 부재에 의해 방임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정이있었다고 말하면 사랑에 목말랐던 아이가 폭력에 의해 자신이 품었던 치치새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잃었을 때의 슬픔은 알아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슬프다. 보호해야할 의무를 가진 보호자들이 결국 아이를 외롭게 만들었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한 아이는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달콤한 거짓말에 속아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범죄에 노출되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 내 이름은 치치림. 치치새가 사는 숲이라는 뜻이다. 치치새는 아주 진귀한 새로, 세상에 존재하는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그 새는 마음씨가 고운 사람에게만 보인다. 행운을 가져다준다. P7

 

🔖 원인이 결과를 빚는 게 아니라 결과가 원인을 반추하게 하므로. 미래가 과거를 구성하므로. 결과가 원인에 앞서므로. P45



 

🔖 나는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 길에 껌을 안 뱉는 것처럼. 도덕은 내 비루한 자긍심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지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못생긴 여자아이의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P50

 

🔖 내가 굉장하네, 하고 말했다. 언니가 반사적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굉장하네.’가 없었다면 언니와 나 둘 중 하나는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P62

 

🔖 “바람 쐐요,”

그러자 차장님이 창문을 내려 바람이 들어오게 했다. 나는 바람을 쐤다. 바람은 폭신하고 미지근했다. 춥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았다. 바람이 뺨을 어루만졌다. 이해받는 기분이 들었다. 깡촌 사람들은 내가 학주에게 따귀를 맞았다는 사실을 모른다. P75



 

🔖 사람들은 미안할 때 화를 낸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사람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너무 뻔뻔했다. P76

 

🔖 요즘 나는 하루를 이틀씩 살고 있다. 시간이 병렬로 흐르기 때문이다. 20년 전과 현재가 페이스트리처럼 겹쳐서 동시에 흐른다. 참기 어려운 감각이다. 살갗을 긁는 걸 참기 어려운 것처럼. 어쩌면 피부의 독은 열이 아니라 기억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P91

 

#치치새가사는숲 #장진영 #장편소설 #민음사 #오늘의젊은작가 #읽을만한책 #추천도서 #독서 #서평

내 이름은 치치림. 치치새가 사는 숲이라는 뜻이다. 치치새는 아주 진귀한 새로, 세상에 존재하는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그 새는 마음씨가 고운 사람에게만 보인다. 행운을 가져다준다. P7 - P7

원인이 결과를 빚는 게 아니라 결과가 원인을 반추하게 하므로. 미래가 과거를 구성하므로. 결과가 원인에 앞서므로. P45 - P45

나는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 길에 껌을 안 뱉는 것처럼. 도덕은 내 비루한 자긍심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지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못생긴 여자아이의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P50 - P50

내가 굉장하네, 하고 말했다. 언니가 반사적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굉장하네.’가 없었다면 언니와 나 둘 중 하나는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P62 - P62

"바람 쐐요,"

그러자 차장님이 창문을 내려 바람이 들어오게 했다. 나는 바람을 쐤다. 바람은 폭신하고 미지근했다. 춥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았다. 바람이 뺨을 어루만졌다. 이해받는 기분이 들었다. 깡촌 사람들은 내가 학주에게 따귀를 맞았다는 사실을 모른다. P75 - P75

사람들은 미안할 때 화를 낸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사람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너무 뻔뻔했다. P76 - P76

요즘 나는 하루를 이틀씩 살고 있다. 시간이 병렬로 흐르기 때문이다. 20년 전과 현재가 페이스트리처럼 겹쳐서 동시에 흐른다. 참기 어려운 감각이다. 살갗을 긁는 걸 참기 어려운 것처럼. 어쩌면 피부의 독은 열이 아니라 기억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P91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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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 일기 안온북스 사강 컬렉션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백수린 옮김 / 안온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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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일기』


프랑수아즈 사강 
베르나르 뷔페 그림
백수린 옮김
안온북스 출판



 



 

인간의 고독과 사랑의 본질을 그려낸 사강의 작품들은 자유로운 감성과 세심한 관찰력, 담담한 문체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해독일기>는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자동차 전복 사고로 마약성 진통제 모르핀에 중독된 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쓴 소설로 백수린 작가의 번역했다.

책의 장마다 있는 베르나르 뷔페의 흑백 그림이 그 불안을 잘 보여주는 듯했는데 여자 나체 그림들이 치료제로 인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잠을 자거나 바닥에 느러져 있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왜 나는 모든 이들이 감각적이라 말하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글이 난해한건지ㅠㅠ 다른 책을 읽지 않고 해독일기만 읽은터라 일기 내용이 너무 짧기도 했고,, 그 짧은 내용들도 중독 치료 과정동안의 불안들만 보였다.


🔖
화요일.
아마 더 힘들어질 모양이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아침부터 숨이 차다. 그래도 포기하면 안 되는가 보다.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기분이 끊임없이 오르내린다. 수화기를 들고, 담대한 모습을 유지하며,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차분하게 설명하면, 그들은 무언가를 해줄 것이다. 내가 떠날 순간을 늦출 그 무언가를. 나를 위해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나에게 반대로 작용한다. 그것은 꽤 끔찍한 일이다. P33



#해독일기 #프랑수아즈사강 #베르나르뷔페 #백수린 #안온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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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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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소설

민은영 옮김

문학동네 출판

 


15개의 단편소설이 실려있고, 모두 중년 남성의 ‘나’가 화자여서 가정을 이루기도 했고, 홀로 중년이 되어 과거를 회상하기도해서 읽다보면 한 인물이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다. 각 단편소설은 강렬하게 기억 남는 사건이나 반전 없이 표지의 그림처럼 강물에 떨어진 낙엽들이 물길따라 떠내려가듯 잔잔하게 흘러가는 삶을 이야기한다.

 

현재의 안온한 삶이 유지되기 바라는 마음으로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불안감, 예술가와 대학가의 직업을 갖고 있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지의 고뇌하는 모습은 내가 중년의 나이라 그런지 공감되었다. 한편으로 저물어가는 젊음과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내가 놓쳤던 무언가와 잊고 있었던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했다.



 

<오스틴>

 

아이들이 태어나며 바뀐 일상과 나이가 든 내 모습을 거울로 보며 느낀 감정. 내 인생이 아니라고 남일이라 여겼던 이야기가 내 삶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불안감. 가족이 생기고 안정감이 있음에도 눈물이 많아진다.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를 잃을 것만 같은 상실감을, 이것이 나이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듯한 소설.

 

 

🔖친구들은 아직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데 나는 두툼한 허리와 넓적하고 편한 신발, 희끗희끗한 턱수염에 굴복해버렸다. 

P14 오스틴

 

🔖밖에서는 가끔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 젊은이들이 허공에 대고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 나는 그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된 것일까? 나는 늦은 밤 이 의자에 앉아 나 자신에게 종종 그런 질문을 하고 술을 홀짝이며 마음의 평안을 느꼈다. 하지만 어쩐지 더 큰 목적에서 이탈해 표류하는 기분,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벽 바로 뒤에서 그림자가 솟아오르고 더욱 거대한 부재의 울림이 메아리치는 듯한 느낌이 늘 있었다. 예전에 지녔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혹은 버려두고 떠나왔다는 느낌이 늘 있었다. 이런 기분을 아내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P21 오스틴

 

<넝쿨식물>

 

🔖이런 점진적인 멀어짐은 그해 여름 내내 일어나고 있었지만 나는 그 순간이 되어서야 그것을 물리적으로 감지했다. 이제 방안에는 다른 기운이, 다른 분위기가 흘렀다. 

P58 넝쿨식물

 

삼십대. 동네 카페 바리스타로 일하는 나와 추상화를 그리는 마야는 판화가로 꽤 유명한 예순즈음의 라이어널 집에 세를 들어 산다. 라이어널은 20대 젊은 여자를 모델로 누드화를 그리는 작업을 하는데 그의 작품이 성적이라며 비난하던 마야와 나는 라이어널을 부러워하는 마음도 있다. 삼십대는 최고의 성과라 말하는 라이어널의 말에 지금 삶의 행복을 느끼고 있으며 사랑하는 일을 알아가는 중이라 답을 한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마야와 헤어지게 됨을 알아채게 되고,(직업도 재산도 꿈도 명확하지 않은 자신에 비해 마야는 꿈이 있으니 헤어지는 것이겠지만) 우연히 라이어널의 작업실에서 마야와 닮은 누드화를 보게된다.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하라고 손 내밀던 라이어널은 마야에게도 손을 내밀었을까. 그래서 마야는 라이어널을 통해 성공하고 싶었던 것일까.

 

<첼로>

 

🔖지금까지 여러 달을 지나는 동안에도 우리는 계속 기다려온 것만 같았다. 이 회색 지대를 부유하면서 어떤 미래가 올지 모르는 채로 모든 결과를 조마조마 걱정하고, 혼자 있는 순간에는 요즘 우리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어떤 느낌을 견디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몸이 엄청나게 허약하며, 갑작스럽고 불가해한 방식으로 우리를 배반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었다. 

P92 첼로



 

아내 내털리는 유능한 첼로 연주자이지만 손의 떨림으로 연주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낙담한다.

 

<라인벡>

 

🔖우리의 숨결은 안개처럼 공기중에 서린 채 멈춰 있다. 

P126 라인벡

 

🔖그런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렸을지, 그런 사소한 기억들이 얼마나 많이 지워져버렸을지. 

P126 라인벡

 

🔖참 이상한 일이다. 마흔세 살이 되었는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다니, 삶의 어느 시점에 잘못된 기차에 올라타 정신을 차려보니 젊을 때는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심지어 알지도 못했던 곳에 와버렸다는 걸 꺠닫다니. 꿈에서 깨어났는데 그 꿈을 꾼 사람이 자신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P127 라인벡

 

리베카와 데이비드. 그 두 연인과 오랜 친구처럼 지냈지만 둘 사이의 흔들림과 권태 사이에 한번씩 자신이 이용당하는 듯한 기분. 함께 있으면 좋지만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셋 모두 안다. 각자의 길을 가야하는 기로에서 왜 선택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지. 아니 그런 마음을 가졌었는지도 이제는 흐릿해진 기억.

 

<숨을 쉬어>

 

🔖어쩌면 이언은 이런 불행을 내게만 내보였는지도 모른다. 내 잘못이라고, 나 때문에 자기가 이렇다고 알려주기 위해. 아니면 그보다 훨씬 단순한 문제였을 수도 있다. 그저 자기가 뽑은 패에, 자신에게 주어진 아버지에게 실망한 건지도. 아이가 가장 원한 건 그저 다른 삶이었는지도. 

P154 숨을 쉬어

 

아이는 풍족한 장난감과 환경을 어른과 다른 호기심으로 소유욕으로 좋아한다. 그런 아이에게 모든 걸 갖추었는데 어릴 때 물에 빠진 기억에서 극복하지 못하고 기침을 하는 것으로 아이도 부모도 모두 예민하다. 사고가 일어난 후. 일상으로의 빠른 복귀 정상처럼 보이고자 한 행동이었지만 정작 마음으로 고통은 극복하지 않았다. 경제력과 방법이 잘못되었나. 결국 극복 못한 모습. 아이 부모 모두.

 

<벌>

 

🔖내가 너무 세게 밀면 모든 게 무너져버릴지도 몰랐다. 

P212 벌



 

🔖 마치 아내가 우리 둘 다 말하지 않았던 우리 사이의 수치스러운 비밀을 정통으로 찌른 것 같았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그녀의 어떤 측면에 나는 또한 이끌린다는 사실을. 

P227벌

 

 

알렉시스와 나. 그리고 딸 리아. 별거 중인 부부의 헤어지는 감정들. 곧 떨어져 추락할 듯한 불안함과 더 이상 단란하고 행복한 시간이 오지 않는 다는 것을 아이도 나도 모두가 안다. 그 사이에 더 불안하게 벌들이 집에 벌집을 짓고. 이미 마음 떠난 아내가 다시 돌아오길 바라지만. 인정하면 희망조차 사라질 것 같다. 구질구질하게도 리아와 벌을 핑계로 끊어질 것 같은 인연을 붙들고 있다.

 

<포솔레>

 

🔖 이 식당 밖의 세상에서 내 인생은 혼란 그 자체였다. 집에 어린아이가 둘 있어서 아내와 나는 잠을 거의 못 자고 심지어 대화도 거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 이 식당에 있으면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P232 포솔레

 

육아에 지쳐 유일하게 힐링하는 공간. 시간이 지나며 사라지고 변해가는 그런 공간은 내 머릿속에만 존재할 것이다. 그리움으로.

 

<히메나>

 

🔖 그해 봄에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한층 실감했다. 물론 거울을 보면 바로 느낄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느꼈다. 예컨대 슈퍼마켓에서 젊음이들 사이를 걷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의식하거나 쳐다보지 않았다. 가장 큰 슬픔은 바로 그런 인정의 부재에서 왔던 것 같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현실, 유령이 되어 세상을 살아나가는 현실이었다. 

P267 히메나

 

🔖“가끔은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매달려 너무 애쓰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어. 알아? 그걸 놓아버리기가 너무 힘들어.” 

P287 히메나

 

무기력한 삶을 사는 나와 직장의 안정감을 위해 노력하지만 젊은 나이의 경쟁상대에게 질 때마다 힘들어라는 칼리. 그런 둘 사이에 젊은 히메나와의 대화로 서로가 알지만 말하지 않던 충고들을 간접적으로 듣게 된다.

긴 시간이 흐르면 번듯한 집도 있을 줄 알았는데, 제자리에 정체되어 있고 아이도 없고 안정적인 직업도 없이 사는 지금을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던 것. 매일을 쉬지 않았고 미래를 꿈꾸었고 노력했지만 지금 현실의 답답함이 보였던 소설.

 

<사라진 것들>

 

🔖 우리는 아주 이상한 이틀을 함께 보냈다고, 그리고 내가 떠난 뒤 우리는 아마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라고. 어쨌든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할 이유는 없을 테지만, 그래도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우리에겐 아직 반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P326 사라진 것들

 

#사라진것들 #앤드루포터 #읽을만한책 #독파 #독파챌린지 #잔잔한 #단편소설 #신간도서 #북클럽문학동네 #문학동네 #신작 #내돈내산 #서평


친구들은 아직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데 나는 두툼한 허리와 넓적하고 편한 신발, 희끗희끗한 턱수염에 굴복해버렸다.

P14 오스틴 - P14

밖에서는 가끔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 젊은이들이 허공에 대고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 나는 그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된 것일까? 나는 늦은 밤 이 의자에 앉아 나 자신에게 종종 그런 질문을 하고 술을 홀짝이며 마음의 평안을 느꼈다. 하지만 어쩐지 더 큰 목적에서 이탈해 표류하는 기분,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벽 바로 뒤에서 그림자가 솟아오르고 더욱 거대한 부재의 울림이 메아리치는 듯한 느낌이 늘 있었다. 예전에 지녔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혹은 버려두고 떠나왔다는 느낌이 늘 있었다. 이런 기분을 아내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P21 오스틴 - P21

지금까지 여러 달을 지나는 동안에도 우리는 계속 기다려온 것만 같았다. 이 회색 지대를 부유하면서 어떤 미래가 올지 모르는 채로 모든 결과를 조마조마 걱정하고, 혼자 있는 순간에는 요즘 우리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어떤 느낌을 견디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몸이 엄청나게 허약하며, 갑작스럽고 불가해한 방식으로 우리를 배반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었다.

P92 첼로 - P92

우리의 숨결은 안개처럼 공기중에 서린 채 멈춰 있다.

P126 라인벡 - P126

이 식당 밖의 세상에서 내 인생은 혼란 그 자체였다. 집에 어린아이가 둘 있어서 아내와 나는 잠을 거의 못 자고 심지어 대화도 거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 이 식당에 있으면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P232 포솔레 - P232

그해 봄에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한층 실감했다. 물론 거울을 보면 바로 느낄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느꼈다. 예컨대 슈퍼마켓에서 젊음이들 사이를 걷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의식하거나 쳐다보지 않았다. 가장 큰 슬픔은 바로 그런 인정의 부재에서 왔던 것 같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현실, 유령이 되어 세상을 살아나가는 현실이었다.

P267 히메나 - P267

"가끔은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매달려 너무 애쓰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어. 알아? 그걸 놓아버리기가 너무 힘들어."

P287 히메나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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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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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시집
문학동네시인선 032



 


나는 시가 어려워서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눈으로는 시를 읽고 있지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을 때가 많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ㅠㅠ 
박준 시인의 시는 독파를 하는 2주 동안 한 번에 읽지 않고 나누어 천천히 읽어보았는데, 읽히지 않는 문장들이 매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고 새롭게 이해되기도 했다. 아버지, 어머니, 군인, 노인, 사람들.. 많은 대상들이 있지만 붙잡히지 않는 그리움, 아련함들이 담겨있었다. 
'모든 글의 만남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문장은 작가가 시를 쓰는 마음가짐과 그 대상들이 글 속에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어떠해야하는지 잘 보여주는 듯했다. 


자주 나오는 '미인'은 통영으로 여행을 떠나 동백을 함께 보았던 헤어진 연인은 아니었을까. 풍요롭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풍성했었 그 시절에 빛 하나들어오는 창만 있어도 함께여서 좋았던 사람. 당신의 말들에 연을 묶어 놀던 그 때 아름다움의 끝을 하늘에 띄워두고 눈을 감으면 보일 것 같은 그리움이 가득 담겨 있다. 이제는 병이 다 나은 걸까. 물론 꾀병이겠지만 어둠에서 더는 머무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시의 해석이 절실합니다 ㅎㅎ 문학평론가의 해석을 찾아보러 가야겠어요..)

 


🔸박준 시인의 '추천책'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장석남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막스 피카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인간과 말」

 


🔸가장 좋았던 시


<꾀병>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시집 속 밑줄 긋기

 

그 방 창문 옆에서 음지식물처럼 숨죽이고 있던 내 걸음을 길과 나의 접(椄) 같은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덕분에 너의 음악을 받아 적은 내 일기들은 작은 창의 불빛으로도 잘 자랐지만 사실 그때부터 나의 사랑은 죄였습니다. 
P029 관음(觀音)-청파동3

 

변심한 애인들의 향기는 좋고 나는 살아서 나를 다 속이지 못했다라고도 말하기로 합니다 덧셈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간밤에는 달게 잤습니다, 라고 연이어 말할 때 나는 저녁의 억양과 닮아갑니다 
P030 언덕이 언덕을 모르고 있을 때

 

이곳에서 당신의 새벽을 추모하는 방식은 두 번 다시 새벽과 마지하지 않거나 그 마주침을 어떻게 그만두어야 할까 고민하다 잠이 드는 것 
P034 나의 사인(死因)은 너와 같았으면 한다

 

빛 하나 들여보내는 창(窓)이면 좋았다 우리는,
P037 광장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는 그 축농(蓄膿) 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 절기들을 줄줄 외워보았다
P49 환절기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P55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불어오는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
P68 마음 한철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P69 마음 한철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라고
조그맣게 적어놓았습니다
P77 낙서


 

당신의 슬픈 얼굴을 어디에 둘지 몰라
눈빛이 주저앉은 길 위에는
물도 하릴없이 괴어들고

소리 없이 죽을 수는 있어도
소리 없이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우리가 만난 고요를 두려워한다
P79 저녁-금강

 

손이 찬 당신이 투명한 잔을 내려놓았다 번져 있는 입술자국이 새가 날아오르기 전 땅을 깊게 디딘 발자국 같았다면 살아남은 말들은 쉽게 날 줄을 알았다 나는 가난하고 심심한 당신의 말들에 연을 묶어 훠이훠이 당기며 놀았다 사실 우리 아름다움의 끝은 거기쯤 있었다
P88 연

 


 

작은 창으로 바라본 하늘엔 봉제선 같은 별들이 두둘두둘 많다 수많은 별들이 저마다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은 별보다 많은 눈동자들이 어두운 방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내 창에 골목에서 만난 눈동자를 잘도 그려넣었다 
P99 잠들지 않는 숲

 

생각한다 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버리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버릴 생각만 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도 한다 
P116 당신이라는 세상

 

 

🔸독파챌린지 ‘박준’ 시인의 응원 메세지

  (시 한편을 남기신 줄 알았습니다 😊)

 

<쪽>
 
눈앞에 있는 것들이 세상의 전부처럼 여겨지는, 다시 이러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생각은 너머를 넘나들지만 한번 맺힌 상을 지워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응시도 미루어두고 외면도 거두어들이면서 헤매기만 합니다 와중 품고 있는 바람도 하나 있습니다 속절없이 맞닥뜨리고 있는 것과 애를 쓰며 다시 마주하고자 하는 것의 사이가 멀어지기를 더 아득하게 부디 영영 멀어져서는 어느 삶의 장면에도 한데 놓이는 일이 없기를 일단 그때까지는 쪽과 쪽 사이를 두텁게 쌓고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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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그 방 창문 옆에서 음지식물처럼 숨죽이고 있던 내 걸음을 길과 나의 접(椄) 같은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덕분에 너의 음악을 받아 적은 내 일기들은 작은 창의 불빛으로도 잘 자랐지만 사실 그때부터 나의 사랑은 죄였습니다.
P029 관음(觀音)-청파동3 - P29

변심한 애인들의 향기는 좋고 나는 살아서 나를 다 속이지 못했다라고도 말하기로 합니다 덧셈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간밤에는 달게 잤습니다, 라고 연이어 말할 때 나는 저녁의 억양과 닮아갑니다
P030 언덕이 언덕을 모르고 있을 때 - P30

이곳에서 당신의 새벽을 추모하는 방식은 두 번 다시 새벽과 마지하지 않거나 그 마주침을 어떻게 그만두어야 할까 고민하다 잠이 드는 것
P034 나의 사인(死因)은 너와 같았으면 한다

- P34

빛 하나 들여보내는 창(窓)이면 좋았다 우리는,
P037 광장 - P37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는 그 축농(蓄膿) 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 절기들을 줄줄 외워보았다
P49 환절기 - P49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P55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P55

불어오는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
P68 마음 한철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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