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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ㅣ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평점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시집
문학동네시인선 032

나는 시가 어려워서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눈으로는 시를 읽고 있지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을 때가 많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ㅠㅠ
박준 시인의 시는 독파를 하는 2주 동안 한 번에 읽지 않고 나누어 천천히 읽어보았는데, 읽히지 않는 문장들이 매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고 새롭게 이해되기도 했다. 아버지, 어머니, 군인, 노인, 사람들.. 많은 대상들이 있지만 붙잡히지 않는 그리움, 아련함들이 담겨있었다.
'모든 글의 만남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문장은 작가가 시를 쓰는 마음가짐과 그 대상들이 글 속에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어떠해야하는지 잘 보여주는 듯했다.
자주 나오는 '미인'은 통영으로 여행을 떠나 동백을 함께 보았던 헤어진 연인은 아니었을까. 풍요롭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풍성했었 그 시절에 빛 하나들어오는 창만 있어도 함께여서 좋았던 사람. 당신의 말들에 연을 묶어 놀던 그 때 아름다움의 끝을 하늘에 띄워두고 눈을 감으면 보일 것 같은 그리움이 가득 담겨 있다. 이제는 병이 다 나은 걸까. 물론 꾀병이겠지만 어둠에서 더는 머무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시의 해석이 절실합니다 ㅎㅎ 문학평론가의 해석을 찾아보러 가야겠어요..)
🔸박준 시인의 '추천책'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장석남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막스 피카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인간과 말」
🔸가장 좋았던 시
<꾀병>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시집 속 밑줄 긋기
그 방 창문 옆에서 음지식물처럼 숨죽이고 있던 내 걸음을 길과 나의 접(椄) 같은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덕분에 너의 음악을 받아 적은 내 일기들은 작은 창의 불빛으로도 잘 자랐지만 사실 그때부터 나의 사랑은 죄였습니다.
P029 관음(觀音)-청파동3
변심한 애인들의 향기는 좋고 나는 살아서 나를 다 속이지 못했다라고도 말하기로 합니다 덧셈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간밤에는 달게 잤습니다, 라고 연이어 말할 때 나는 저녁의 억양과 닮아갑니다
P030 언덕이 언덕을 모르고 있을 때
이곳에서 당신의 새벽을 추모하는 방식은 두 번 다시 새벽과 마지하지 않거나 그 마주침을 어떻게 그만두어야 할까 고민하다 잠이 드는 것
P034 나의 사인(死因)은 너와 같았으면 한다
빛 하나 들여보내는 창(窓)이면 좋았다 우리는,
P037 광장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는 그 축농(蓄膿) 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 절기들을 줄줄 외워보았다
P49 환절기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P55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불어오는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
P68 마음 한철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P69 마음 한철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라고
조그맣게 적어놓았습니다
P77 낙서

당신의 슬픈 얼굴을 어디에 둘지 몰라
눈빛이 주저앉은 길 위에는
물도 하릴없이 괴어들고
소리 없이 죽을 수는 있어도
소리 없이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우리가 만난 고요를 두려워한다
P79 저녁-금강
손이 찬 당신이 투명한 잔을 내려놓았다 번져 있는 입술자국이 새가 날아오르기 전 땅을 깊게 디딘 발자국 같았다면 살아남은 말들은 쉽게 날 줄을 알았다 나는 가난하고 심심한 당신의 말들에 연을 묶어 훠이훠이 당기며 놀았다 사실 우리 아름다움의 끝은 거기쯤 있었다
P88 연

작은 창으로 바라본 하늘엔 봉제선 같은 별들이 두둘두둘 많다 수많은 별들이 저마다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은 별보다 많은 눈동자들이 어두운 방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내 창에 골목에서 만난 눈동자를 잘도 그려넣었다
P99 잠들지 않는 숲
생각한다 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버리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버릴 생각만 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도 한다
P116 당신이라는 세상
🔸독파챌린지 ‘박준’ 시인의 응원 메세지
(시 한편을 남기신 줄 알았습니다 😊)
<쪽>
눈앞에 있는 것들이 세상의 전부처럼 여겨지는, 다시 이러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생각은 너머를 넘나들지만 한번 맺힌 상을 지워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응시도 미루어두고 외면도 거두어들이면서 헤매기만 합니다 와중 품고 있는 바람도 하나 있습니다 속절없이 맞닥뜨리고 있는 것과 애를 쓰며 다시 마주하고자 하는 것의 사이가 멀어지기를 더 아득하게 부디 영영 멀어져서는 어느 삶의 장면에도 한데 놓이는 일이 없기를 일단 그때까지는 쪽과 쪽 사이를 두텁게 쌓고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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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그 방 창문 옆에서 음지식물처럼 숨죽이고 있던 내 걸음을 길과 나의 접(椄) 같은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덕분에 너의 음악을 받아 적은 내 일기들은 작은 창의 불빛으로도 잘 자랐지만 사실 그때부터 나의 사랑은 죄였습니다. P029 관음(觀音)-청파동3 - P29
변심한 애인들의 향기는 좋고 나는 살아서 나를 다 속이지 못했다라고도 말하기로 합니다 덧셈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간밤에는 달게 잤습니다, 라고 연이어 말할 때 나는 저녁의 억양과 닮아갑니다 P030 언덕이 언덕을 모르고 있을 때 - P30
이곳에서 당신의 새벽을 추모하는 방식은 두 번 다시 새벽과 마지하지 않거나 그 마주침을 어떻게 그만두어야 할까 고민하다 잠이 드는 것 P034 나의 사인(死因)은 너와 같았으면 한다
- P34
빛 하나 들여보내는 창(窓)이면 좋았다 우리는, P037 광장 - P37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는 그 축농(蓄膿) 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 절기들을 줄줄 외워보았다 P49 환절기 - P49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P55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P55
불어오는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 P68 마음 한철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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