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센디어리스
권오경 지음, 김지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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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디어리스』

권오경 R. O. Kwon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출판




‘모든 것의 밑에는 할렐루야가 있다’

신의 존재, 종교, 믿음에 대해 말하는 소설 같았다. 
책은 피비, 윌, 존 릴의 이야기를 윌의 시점에서 하는데, 윌은 피비와의 지난 연애를 회고하며, 전 여자 친구가 어쩌다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해보려 안간힘을 쓴다. 


▪️신앙을 잃은 윌은 피비의 엄마가 피비에게 집작했던 것처럼 사랑과 집착을 오간다. 
▪️피비는 상실감에서 신을 믿음으로 자신이 구원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를 찾는다.
▪️독재자를 보고 품은 열정으로 종교를 만든 존 릴은 어둡고 흔들리는 사람들을 광신도들로 만든다.


엄마는 피비만을 바라보며 살았지만 피비는 그것을 집착이고 자신을 피아노 외엔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로 만들었다 생각한다. 엄마의 사고가 자신의 탓이라 여기며 죄책감과 상실감에 스스로를 고통 속으로 내모는 행동이 속죄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신앙을 만났으니 겨우겨우 쌓은 나무에 화르르 불을 지피고 뜨거운 불놀이에 빠져든 사람처럼 자신의 열정을 신앙에 온통 쏟아부었다. 
심리적으로 본다면 그렇지만 이런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은 영화, 소설, 만화 등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클리셰(진부한 반복)같다. 피비는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가혹하게 몰았어야 했을까싶다가도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였지만 멈추지 못하고 테러까지 저지르게 되는 자신을 누군가는 멈춰주길 바랬을 것 같다.

피비는 피아노를 좋아하고 피아니스트들을 숭배하고 있었다. 단지 숭배하던 대상을 잃고 방황했을 뿐. 자신의 숭배 대상이 상실되면서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피비는 망상이라 하더라도 숭배를 했을듯하다. 사람들 앞에서 빛나야 하는 자신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 수단이 필요했을 테니까. 

존 릴은 탈북민을 구출하다가 북한 수용소에 갇혔었는데, 그때 본 사람들이 독재자를 향해 신에게 찬양하는듯한 모습을 보면서 종교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한다. ‘제자’ 이름의 광신도들에게 헌금을 빌미로 갈취하고, 신을 만나기 위해 해야하는 말도 안되는 자학을 지시하고, 생명을 운운하며 일으키는 테러들은 종교라는 명분으로 신도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악랄한 범죄라 생각한다.

피비는 독재자를 꿈꾸는, 종교를 앞세워 도덕적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주교인 존 릴에게 동화되어 테러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것을 보면 스톡홀름 증후군(인질로 잡힌 사람이 인질범에게 심리적으로 동조하는 증세나 현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누구나 슬픔을 안고 살지만 자신의 약한 모습을 내비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물어뜯는 인간들에게 자신이 다 뜯어버릴테니. 하지만 존 릴과도 같은 사람들은 가면 뒤의 숨은 약한 모습을 한 사람들을 사냥하고 신을 핑계로 그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가면을 씌워 조종한다. 

중간을 놓치면 생뚱맞은 장면에 와있는 느낌도 든다. 윌의 시점에서 쓴 글이라 갑자기 어머니가 소환되거나 장면이 바뀌기도 해서 읽다가 내가 놓친 것이 있는지 다시 앞으로 돌아가기도 했는데 중간을 넘어가면서 윌이 회상을 했었던 장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이해가 되었다.

글을 읽으면 마음으로 와닿고 감정이 요동치는 작품은 아니다. 인간이 믿음이라는 것으로 인생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책속 밑줄긋기

피아노는 나를 고양시켰어요. 마치 커다랗고 강력한 피아노의 혼령이 된 것처럼, 윤이 흐르는 피아노의 깊숙한 내부에 스며들어가 이리저리 돌진했어요. 나는 피아노를 사랑했어요. 어렸을 때도, 지금도.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내가 눈물을 닦아내자 어머니가 알아차리고는 휴지를 건넸어요. 하지만 나는 외면했죠. 울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으니까요. P45

신앙의 부수적 이익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리스도의 빛이 보이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그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증오가 상대방과 나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면 먼저 용서하는 것이 치료제가 될 수 있다. 나는 지금보다 평온했던,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나를 마치 옛 친구처럼 그리워하곤 했다. P90 윌

나는 고통을 먹었어요. 눈물을 마셨고요. 충분히 섭취하면 내 고통과 눈물을 담을 자리가 없어질 것 같았거든요. P106 피비



피비의 가장 안에 있은 반짝이는 정신으로, 숨어버리는 모습을 내게 들킴으로써 자신을 내보이는 그 가시적인 불투명함으로 나를 이끌어줄 지도. 결핍은 곧 욕망이다. 고립은 갈망이다. 나는 그녀가 내주지 않는 것을 간구했다. 피비가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늘 더 알고 싶었다. 
P184 윌

그래서 나는 변했어요. 변하는 게 가능하더라고요. 종종 존 릴이 즐겨 하던 말을 생각했어요. 우리가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듯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다고 믿을 수 있다면 나머지는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그는 말했죠. 사랑이란 단지 잘 상상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 생각을 꺼냈어요. 그리고 남몰래 그걸 들어올려 빛에 비춰 봤어요. 그 프리즘의 빛 속에서 내가 될 수 있는 피비의 모습을 찾아내려는 듯이. 
P200 (다시는 못 칠 것 같았던 찬송가를 피아노 연주하며. 피비는 종교에 빠지기 시작한다.) 

군중은 계속 노래했다. 나는 홀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하나의 무리였고, 하나같이 내게 결여된 것을 갖고 있었다. 그분이 했다고 믿어지는 말씀들에 따르면 주님의 뜻은 명백하다. 그분은 온던하고도 절대적인 헌신을, 다름 아닌 그것을 요구하신다. 그 부분에서는 존 릴이 옳았다. 
P209 (낙태반대시위에 동참한 존릴. 피비. 윌)

사실 나도 질문을 하는 순간 이미 답을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답을 모르는 것처럼, 혹은 그렇게 모른 척함으로써 내가 원치 않는 진실을 바꿀 수라도 있는 것처럼, 나는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P252 윌



신앙은 손 한 번 내밀어서 고스란히 받아 쥘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비록 긴 햇살이 발치에서 아첨할지라도, 신앙은 수북이 쌓인 잔해들 사이에서 억지로 끄집어낸 전리품이요, 힘겹게 쟁취한 보상이었다. 다가올 전쟁은 성스러운 치유가 될 것이고, 순수한 이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P256 존 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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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변했어요. 변하는 게 가능하더라고요. 종종 존 릴이 즐겨 하던 말을 생각했어요. 우리가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듯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다고 믿을 수 있다면 나머지는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그는 말했죠. 사랑이란 단지 잘 상상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 생각을 꺼냈어요. 그리고 남몰래 그걸 들어올려 빛에 비춰 봤어요. 그 프리즘의 빛 속에서 내가 될 수 있는 피비의 모습을 찾아내려는 듯이.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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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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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알베르 카뮈

이정서 옮김

새움출판사


 



  내가 생각하는 『이방인』은 어떠했는지 오롯이 느끼기 위해서 비평, 해석을 찾아보지 않았다. 1부를 읽고 어렵다는 생각에 알베르 카뮈에 대해 다른 작품, 성장과정, 사상 등에 대해 찾아본 후 2부를 읽기 시작했다. (작가소개와 사상에 대해 읽지 않았다면 바다를 좋아하고 사랑의 감정에 휩싸이는 한 남자가 살인을 저지른 후 범죄가 계획된 자로 몰려 사형을 당하는 것으로 재미없게 읽었을 것 같다.)

  문학과 사상을 떠나 알베르 카뮈는 지금 보아도 멋있고 잘 생겼다. 『이방인』 작품을 읽고 싶은 이유 중 하나다. 1942년에 출간된 『이방인』 소설은 첫 번째 아내의 약물중독과 외도로 상처를 받고 1940년 이혼을 하는 시기에 썼다. 그래서 인지 뫼르소가 연인 마리에게 사랑하는 것 같지 않지만 결혼은 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카뮈가 추구하는 ‘영원한 사랑은 없으며, 매순간 열렬히 반복해서 사랑한다는 것' 을 잘 설명해주는 듯했다.

  저녁에, 마리가 나를 찾아와서는 자기와 결혼하고 싶은지를 물었다. 나는 그건 하나 안 하나 같은 거지만 만약 그녀가 그걸 원한다면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그러자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말한 것처럼, 그건 아무 의미도 없지만 아마도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P65 뫼르소가 연인 마리에게 



이방인을 읽기 전 카뮈가 추구한 사상인 ‘시지프’와 ‘부조리’에 대해 알고 있어야 뫼르소라는 주인공의 삶이 이해된다.

*시지프(시시포스 Sisypho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코린토스의 왕으로, 신들의 노여움을 사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벌을 받는다. 산꼭대기에 이른 바위는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리는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끊임없이, 끝도 없이 반복되고 어떤 희망도 없다.

*노동자의 시점에서 어떻게 부조리를 타파할지를 고민했다. 반복되는 일상, 부조리함, 잘 하고 싶은데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때 시지프를 떠올린다. 이러한 부조리를 외면하지 않고 그 속에서 버텨 나가기 위해 ‘반항’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방인』 소설은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님 죽음에 애도를 표하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즐긴 것, 종교를 믿지 않았다는 것, 살인을 할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태양으로 인한 사건이었음을 말하지만 주변은 뫼르소의 모든 행동을 단죄의 논거로 보았다. 뫼르소의 생각과는 달리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들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뫼르소를 사형선고를 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삼가 애도함.’ 그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아마 어제였을 것이다. 

P16 소설의 시작

 

 

그때 갑자기 가로등이 켜지며, 밤하늘에 가장 먼저 떠오른 별들이 흐릿해졌다. 그처럼 온갖 사람들과 빛이 가득한 거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눈이 피로해졌다. 젖은 보도블록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빛났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전차들이 들어올 때 비치는 빛이 머리칼이나 웃음 띤 얼굴, 은팔찌 위에서 바스러졌다. 이윽고 전차들이 뜸해지고 깜깜한 어둠이 어느새 나무들과 가로등 위로 내려앉으면서 거리엔 차츰 인적이 끊기고 첫 번째 고양이가 천천히 다시 한적해진 길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

언제나처럼 또 한 번의 일요일이 지나갔고, 엄마는 이제 땅속에 묻혔으며, 나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것이고, 결국,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P42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고 애도하지 않은 뫼르소의 태도로 그가 살인을 태양때문이 아니라 계획적이고 잔인한 살인자로 몰아간다. 어머니의 죽음과 살인과는 별개로 보지 않고 뫼르소를 그런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다.

누구나 추모하는 방법, 그리운 이를 떠나보내는 방법이 다르다. 돌아가신 후에 나의 일상을 찾아가는 일은 부조리함이라고 한다. 뫼르소의 행동이 이해가 되는 나는 잘못된 것일까. 

카뮈의 어머니에 대한 애증으로부터 부조리가 시작된 것 일 수도 있다. 

작가는 1차 세계대전 때 사망한 아버지, 청각 장애인 어머니 아래 가난하게 자랐는데, 현실에 타협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하고 싶지 않은 반항과 내 주장이 옳음에도 강하게 밀고 나갈 수 없는 꺾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허무함. 어느 순간 그런 현실에 익숙해져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딜레마를 이방인 뫼르소를 통해 보여주는 것 같다.

누구나 도덕적으로 부모님을 공경해야한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가정폭력 속에 자란 아이에게 부모를 사랑하라고 강요할 수 없듯이, 어떤 부모이고 자라온 환경이냐에 따라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모두가 다르다. 소설에서 뫼르소의 자라온 환경보다 자신들이 뫼르소를 죄인으로 만들기 위한 어머니의 장례, 살인에 관련된 일만 필요로 할 뿐이다. 



‘원전 그대로 읽는 세계문학, 움라우트 시리즈’ 『이방인』은 이정서 번역가가 기존의 오역된 부분을 지적하였는데, 어떤 부분이 오역이었고 번역의 한계였는지 각주로 알려주어 이해하기 좋았다. 

“이 양로원을 둘러싸고 그렇듯 커다란 소음이 오간다는 것에 대해 말입니다. 결국, 만약 이러한 시설들의 유용성과 중요성을 증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정부 그 자체에 대해 말해져야만 할 거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는 장례식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나는 그 점이 그의 변론에서 부족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모든 장광성, 내 영혼에 대해 말해지던 그 끝없는 시간과 모든 날들 때문에, 나는 그곳이 현기증 나는, 모든 것이 무색의 물 같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P137

*각주의 내용: 종국에 뫼르소가 정부가 좋은 뜻으로 운영하는 양로원이 어머니를 보낸 게 문제라면, 그건 우리의 인식과 양로원을 탓해야지 왜 뫼르소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냐고 변호사가 검사에게 되묻는 아주 중요한 대목인데 이 역시 모든 번역서가 잘못 번역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내가 한낮의 균형을, 스스로 행복감을 느꼈던 해변의 그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미동도 하지 않는 몸뚱이에 네 발을 더 쏘아 댔고 탄환은 흔적도 없이 박혀버렸다. 그것은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와도 같은 것이었다. 

P86 살인의 순간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인식하고 정면으로 마주한다. 

나는 하루가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사는 것은 길었지만, 하루가 다른 하루로 넘어가는 것으로 그렇게 팽창하는 것이다. 그들은 거기서 자신들의 이름을 잃는다. 어제 또는 오늘이라는 단어는 내게 의미가 지켜진 유일한 것이었다. 

P109 감옥에서



 

뫼르소는 현실에 적응이 빠르다. 감옥에서 아름다운 바다, 여름 냄새, 자신이 사랑했던 동네, 어떤 저녁 하늘, 마리의 웃음과 원피스들을 회상하며 잠이 들고 시간을 보낸다. 이런 뫼르소가 현실을 직면하기보다 과거의 행복했던 시간을 생각하며 과거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재판장의 모습들이 시지프의 형벌처럼 모두가 뫼르소의 잘못만을 반복해서 말하며 뫼르소에게는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판사는 십자고상을 흔들며 자신이 예수를 믿고 있는데 뫼르소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것에 잘못되었다고 논리적으로 따진다. 검사는 뫼르소 어머니를 양로원으로 보낸 것을 영혼부터 죄인이라 결론을 짓고 끼워맞추기 식이다. 변호사는 뫼르소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검사, 변호사, 판사 모두가 뫼르소의 생각은 듣지 않고 주변인들로부터 뫼르소가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낸 것과 장례식에서 뫼르소가 보여준 행동에 대해 주변인들에게 듣고 계획적인 범죄자라 판단해버린다. 

논리로 이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뫼르소는 부조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데 일반 노동자 계급 시점에서 어떻게 부조리를 타파할지를 고민했던 카뮈의 생각이 뫼르소에게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생각든다.

나는 그 순간, 같은 세계의 사람들이 들어와 서로를 발견하고 즐거워하는 클럽이나 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만나,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또란 내가 과도한 존재라는, 다소 억지로 끼어든 존재 같다는 기묘한 인상을 깨닫게 해주었다. 

P112 재판장으로 들어가며 뫼르소는 자신이 이방인이라 생각하는 걸까.

뫼르소는 부조리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볼 수 있듯 사람들 모두가 자신이 사형되는 모습을 보기를 바라는 것처럼 삶을 외부가 아닌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뫼르소 자체만을 보았을 때는 상황에 적응도 잘하고, 사랑도 순간적 선택으로 빠지며, 현실을 중요시하는 인물로 매력있다. 하지만 카뮈가 부조리에 대한 ‘반항’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고나면 주인공 뫼르소는 사형 판결에 대한 체념이 아니라 자신이 사형당하는 모습을 사람들이 다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폭력에 대하여 자신이 받아들이는, 스스로의 선택이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뫼르소의 행동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고 뫼르소를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카뮈의 사상을 떠나 80년이 지난 지금도 나도 이방인이 될 수 있고, 내가 누군가를 이방인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것은 소설 속 뫼르소처럼 누군가를 죽음으로 모는 일은 아닐지. 

역시, 『이방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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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움’으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저녁에, 마리가 나를 찾아와서는 자기와 결혼하고 싶은지를 물었다. 나는 그건 하나 안 하나 같은 거지만 만약 그녀가 그걸 원한다면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그러자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말한 것처럼, 그건 아무 의미도 없지만 아마도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 P65

나는 하루가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사는 것은 길었지만, 하루가 다른 하루로 넘어가는 것으로 그렇게 팽창하는 것이다. 그들은 거기서 자신들의 이름을 잃는다. 어제 또는 오늘이라는 단어는 내게 의미가 지켜진 유일한 것이었다. - P109

나는 그 순간, 같은 세계의 사람들이 들어와 서로를 발견하고 즐거워하는 클럽이나 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만나,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또란 내가 과도한 존재라는, 다소 억지로 끼어든 존재 같다는 기묘한 인상을 깨닫게 해주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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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카타콤
이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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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카타콤』 

 

이봄 장편소설

위즈덤하우스


문명은 죽음 위에, 도시는 무덤 위에

 


 

‘카타콤’은 로마와 파리 등에 조성된 지하 공동묘지를 가리키는 말인데 핍박받고 버려진 사람들이 모여들거나 지상에서 묻어주지 못한 사람들이 묻히는 곳이었다고 한다. 

『서울, 카타콤』은 ‘서울에도 카타콤이 있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시작된 소설이다.

▣ 줄거리

화려한 서울 강남역 아래 ‘카타콤’이 있다. 

현실의 도피처로 선택한 결혼은 지옥과도 같았던 주인공 ‘나’는 남편의 구타로 아이를 유산하고 다리까지 절게 되면서 아무도 자신을 찾을 수 없는 지하 깊은 곳까지 내려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지하철 승강장과 이어진 지하를 발견하며 개미굴 같이 거대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하에는 현실의 삶을 견딜 수 없었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지하세계에 자리를 잡도록 도와준 ‘양어르신’, 언니라고 친근하게 부르던 ‘화연’, 아버지를 피해 도망친 어린남매 ‘선아’, ‘승우’, 소방관이었으나 마음의 상처를 입고 지하로 온 ‘은혁’ 등 사람들을 만나며 죽을 자신도, 싸울 자신도 없던 과거와 달리 서서히 생기를 찾는다. 하지만 지하세계도 사건과 사고, 붕괴 등으로 흔들리게 되는데...


▣ 책을 읽고

외면했던 소외된 계층, 무방비로 폭력과 범죄에 노출된 사회적 약자들은 지상의 경계선에 있고 높고 화려한 빌딩숲의 지상보다 지하로 내려가기 쉬운 위치에 놓여있다. 지하세계는 괴물이나 외계생명체가 존재할 것 같지만, 자신이 잘못한 일을 인정하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나약함, 마음의 상처와 상대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치기 바빴던 현실을 외면한 사람들이 살았다. 

누구나 다 내려놓고 싶고, 도망쳐 버리고 싶은 때가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소설을 읽으며 캄캄한 어둠 속에서 계속 헤메고 있는 주인공 ‘나’를 보며 빛이 언제 비쳐들지 기다려졌다. 

소설 속 ‘나’는 자신의 아이가 유산될 때도 폭력에서 달아나고자 느껴볼 수조차 없었던 애착과 슬픈 감정을 아버지에게 폭력을 피해 지하로 온 선아와 승우를 돌보면서 감정이 자신에게도 있었음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욕으로 주먹으로 발길질로 얻어맞으면서 때린 사람을 증오로 가득찬 눈으로 보지 못하고 한 번도 대들지 못한 채 겁먹고 도망쳤고 피하기 급급했던 ‘나’로 인해 세상에 나오지 못한 자신의 아이를 향한 감정을 선아와 승우에게 대신 해주는 듯 했다.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지하에 사는 모습은 지상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은 죽음을 위해서가 아닌 살기위해 치열했다. 

다른 이의 눈에 띄면 자신의 보금자리를 잃게 될까 두려워 좁고 깊은 곳에 위치한 개미굴엔 양어르신과 ‘나’만 거주했다. 불안정함 속에서도 자신만의 안정을 찾고 영역을 만들고, 그 불안정함 속 안정조차 흔들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호의에도 상대방에 대한 의심, 선의 속에 상대방을 이용하려는 마음을 숨기는 모습들은 삶에 대한 희망보다 인간의 본성을 잃어가는, 빛으로부터 도망친 어둠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에서 지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하 입구가 붕괴되어도 지하에 갇혀버리지 않게 다른 길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며 지하에서 언젠가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나도 한없이 아래로 가라앉을 때 소설 속 주인공들을 떠올려보며 나를 위로 끌어올려주는 손을 찾고 잡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 책 속에서

아무도 내가 그 사이로 조용히 들어가는 걸 몰랐다. 마치 음식물 쓰레기 더미 사이로 쥐가 도망가는 모양새였다. 만나야 하는 사람과 가야 할 곳에 집중하느라, 웬 여자가 다리를 절며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사람들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자. 

저 아래로. P10

치열하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은, 죽음과도 같은 시간. 강바닥으로 끝없이 가라앉아 조용히 자리 잡은 침전물처럼 그저 존재할 뿐이었다. 평화로웠다. P19

 


 

“카타콤이라고 들어봤어?”

생소한 단어에 고개를 저었다. 

“‘무덤 사이에’라는 뜻이다. 저기 서양에서 이런 곳을 부르는 말이다. 도시 아래 지하. 사람이 죽어 묻히는 곳을.” P27

마음이 땅으로 꺼지는 듯한 느낌에 비하면 몸이 아픈 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절망은 오늘의 노력이 고단해서가 아니라, 그 노력이 일말의 희망조차 불러올 수 없다고 느껴질 때가 왔다. 

나는 절망했었다. 

하지만 지하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예 달리기를 포기했으니까. P47

 


 

“이렇게 크고 복잡하고 오래된 지하에 별일이 다 있었을 테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별의별 사람이 왔을 거고 별의별 일이 있었을 거야. 우리는 딱히 결정권이 없어. 위에서 흘러오는 대로 쌓이는 것뿐이지.” P101

“물에 돌 던지면 바닥에 있던 모래가 튀고 흙탕물이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가라앉지 않냐. 그냥 그렇게 지나갔어.” P102


 

필사적으로 손발을 휘저어도, 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면은 까마득히 위에 있었고, 방향을 잡아 나아가려 해도 이정표가 없었다. 디딜 땅도 없고, 죽음과도 같은 새까만 심연뿐이었다. 온통 파랗고 공허했다. 막혀오는 숨과 흐려지는 시야에 공포가 엄습했다. 아무리 치열하게 허우적대봤자 이 절망적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살기 위해 끝없이 버둥거렸다. 포기한 채 심연으로 내려앉았을 때 비로소 편해졌다. P138

가서 뭐 하게. 뭘 물어보게. 가지 말라고 붙잡기라도 하게? 내가 뭔데. 만나서 해야 할 일이나 나눠야 할 대화를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아니다, 그냥 보고 싶었다. 화연도, 아이들도, 벌써 가버렸을까. 나한테 인사도 없이. P173

아이들을 보면서 절망했다. 

이 아이들이, 이 예쁜 아이들이 돌아가야 할 곳이 지상이라는 것에, 절망했다. P235

나오는 것은 나오기를 결심하는 것보다 쉬웠다. 내려왔던 길과 반대로 하염없이 위로,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길은 모두 이어져 있었다.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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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적으로 손발을 휘저어도, 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면은 까마득히 위에 있었고, 방향을 잡아 나아가려 해도 이정표가 없었다. 디딜 땅도 없고, 죽음과도 같은 새까만 심연뿐이었다. 온통 파랗고 공허했다. 막혀오는 숨과 흐려지는 시야에 공포가 엄습했다. 아무리 치열하게 허우적대봤자 이 절망적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살기 위해 끝없이 버둥거렸다. 포기한 채 심연으로 내려앉았을 때 비로소 편해졌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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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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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
켄 리우 소설
장성주 옮김
황금가지 출판
 
 
휴고 상, 네뷸러 상, 세계환상문학상을 동시 수상한 대표작인 「종이동물원」부터 압도시켰다.

💬 중국인 엄마를 부끄러워하고 멀리하는 ‘잭’은 엄마가 돌아가신 후 엄마의 편지를 읽는데 그동안 알아주지 않았던 엄마의 사랑의 글에 가슴이 찡해졌다.


“내가 ’사랑(love)’이라고 말할 때, 난 그 말을 여기서 느껴요.” 엄마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켰다.
“하지만 ‘아이[爱]라고 말하면, 여기서 느껴요.” 엄마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아빠는 고개를 저었다.
“여긴 미국이야.”
「종이동물원 P22-23」






 

영어를 쓰기 힘든 엄마는 중국어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었다. 말이 되지 않으니 글로 종이에 써서 마법으로 종이호랑이의 숨을 불어 넣고 아들에게 온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으나 알아주지 않는 슬픔이, 외로움이 편지에 담겨 있다.
 
SF소설이지만 공감이 더 되었던 것은 어린 시절 종이인형으로 상황극 놀이도 하고 예쁘게 색칠해서 꾸며주었는데, 내가 만든 종이들이 나와 친구였었고 내가 만든 세상에서 주인공으로 살게 해준 기억들 때문인지 다가가기 쉬운 소설이었다. 그리고 중2병 제대로 걸린 아들에게 엄마의 사랑을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문자(한자)를 택했다는 것도 현실의 내 마음같기도 해서 속상한 마음이 더 이해된 것 같다.
 
 



우린 모두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에메랄드 성에 사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센틸리언이 우리 눈에 씌운 두꺼운 초록색 고글 때문에 온 세상이 아름다운 초록빛으로 보인다고 믿는 거죠. 
「천생연분 P56」




 켄 리우 작가님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자 법률 변호사의 직업을 갖고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인지 IT관련한 내용들이 아주 구체적이고 이론적으로 가능할 법한 장면들이 나온다. 미래가 아닌 현재 우리 삶도 데이터 수집에 의해 알고리즘이 알려준 정보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관심 갖고 있던 물건을 쇼핑하거나 영상을 보기도 한다. SF가 아닌 현실에서도 익숙해져 버렸는데 얼마나 많은 기술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눈과 귀가 되어 혼돈에 빠트리게 될지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날이 슬그머니 다가올 것이라고 알려주는 소설같다.
 
 



멍한 기분으로 아버지의 시신을 내리는 동안, 나는 아버지와 아버지가 평생 사냥한 요괴들이 서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쪽 다 이미 사라져서 돌아오지 않을 낡은 요술의 힘으로 연명하는 존재였고, 그 요술 없이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지 못했으니까.
「즐거운 사냥을 하길 P94」
 
백년묵은 여우와 사냥꾼이 나오는 홍콩의 전설 같은 판타지이다. 변해버린 시대에서 요술을 부리는 자들이 사라진 건지 요술이 사라져버린 건지 모르겠지만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요술을 잃어 여우로 변신할 수 없자 과학기술을 사용해 로봇으로 여자에서 여우로 몸을 재현시켜준 사냥꾼은 여우의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싶어서였을지 아니면 자신도 요술이 존재해야 쓸모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우주의 모든 지적 생물종을 정확히 집계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지성을 규정하는지에 관한 논쟁이 끊이지 않을뿐더러, 매 순간 모든 장소에서 문명이 일어났다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는 별이 태어나고 죽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시간은 삼라만상을 집어삼킨다.
그러나 모든 생물종은 대를 이어 지혜의 전수하는 자기 나름의 독특한 방법이 있다. 사유를 눈에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 거스르지 못할 시간의 파도에 맞서는 방파제처럼 잠시나마 동결된 것으로 만드는 방법 말이다.
모두가 책을 만든다.
어떤 이들은 글쓰기란 단지 눈에 보이는 말하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관점이 편협하다는 것을 안다.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 P195」
 
책을 글로만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생각을 어조, 음성, 억양, 강세, 성조, 리듬까지 담아내는 다양한 종족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은 적출된 정신을 동결하여 지도를 만들고 질문하는 방법으로 책을 만드는 헤스페로인, 블랙홀의 가장자리인 ‘사건의 지평선’에서 가장 훌륭한 책을 찾는 툴톡인, 음악을 사랑해서 생각을 소리내면 금속판에 홈을 만들고 진동을 일으켜 두개골 속 빈 공간에 그 소리를 증폭시켜 글쓴이의 목소리가 재현되는 방식의 글을쓰는 알레시아인 등 글을 문자가 아닌 다른 형태로 전달한다는 것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위해 자기 삶의 경험을 형상화하고 단계화해요. 기껏 휴가를 가서도 한쪽 눈은 접착제로 붙인 것처럼 비디오카메라에서 뗄 줄을 모르죠. 현실을 그대로 정지시켜 보관하고 싶은 욕망은 곧 현실을 회피하려는 욕망이에요.
「시뮬라크럼 P215」
 
존재의 일부이지만 생명을 영상에 불어넣는 「시뮬라크럼」 소설은 가장 좋았던 추억이 인생 전체를 뒤바꿀만큼 소중하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줄 수도 있지만, 그 소중했던 추억이 현재와 미래를 그 추억 속에 갇혀버린 채 살게 만드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아 놓지 못하는 것 또한 욕심인듯 하다.





빛나는 팔, 웃음소리, 신들의 음식. 우리 기억은 그렇게 압축되고 통합된 끝에 반짝이는 보석이 돼서 머릿속의 한정된 공간에 박힌단다. 하나의 장면은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기호로 바뀌고, 긴 대화는 문장 한 줄로 줄어들고, 하루는 덧없이 사라지는 즐거운 느낌으로 농축되지.
시간의 화살은 그 압축의 정확성을 앗아간단다. 스케치가 되는 거야, 사진이 아니라. 기억은 곧 재현이란다. 그것이 소중한 까닭은 원본보다 나은 동시에 원본보다 못하기 때문이지.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 P312」
 
영원한 젊음과 영원한 생명조차도, 별 볼일 없는 것처럼 보였다. 기계로서 존재하는 자유 앞에서는. 어수선하고 불완전한 살아 있는 세포 대신 결정형 그물망의 질박한 아름다움이 깃든, 생각하는 기계 앞에서는.
마침내 인류는 진화를 초월하여 지적 설계의 영역에 진입했던 것이다.
「P354 파(波)」
 
“히로토, 모든 것은 지나가는 법이란다. 지금 네 마음을 차지한 그 기분, 그건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われ] 라는 거야. 삶의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지는 감정이지. 태양, 민들레, 매미, 해머, 그리고 우리 모두 다. 인간은 누구나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라는 물리학자가 정리한 방정식에 지배당한단다. 그래서 우리 모두 결국에는 사라질 운명을 타고난 짧은 패턴일 뿐이야. 그 수명이 1초든, 아니면 100억 년이든.”
「P388 모노노아와레」
 
 



미래에 대해 자식들이 살아가야할 터전과 아름다운 현재의 자연이 환경파괴로 인하여 사라진 것에 대한 걱정들을 판타지 소설 안에 담았다. 어쩌면 꿈 속 세상에 다녀온 듯한 느낌도 있고, 존재하지 않는 세계들, 우주의 다른 종족들, 어머니에서 비롯된 수많은 아이들 정신만 존재하는 곳처럼 모양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더라도 정신만은 살아있듯 앞으로의 미래도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 같았다.
 
요즘 OTT와 영화에서 쏟아지는 인간이 로봇으로 탄생하고, 죽었으나 가상세계에 정신만 살아있는 내용들이 많아 그런지 소설의 내용이 미래 혹은 어디선가 있을 수도 있을 이야기들이 많다. 우리가 그리운 이들을 볼 수 없을 때 기억을 저장해서 꺼내본다던지 아시아계 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자들을 과학기술로 접근해 추척해가는 이야기들은 원하지만 할 수 없는 답답한 현실에서 상상으로나마 해결해주는 돌파구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14편의 단편소설 중 <종이동물원>, <즐거운 사냥을 하길>,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 <모노노아와레> 이렇게 4개 단편소설이 가장 독특해서인지 기억에 남았다. 단편들마다의 개성이 확연하게 뚜렷하고 소재들이 구미가 확 당길만한 흥미로워 단편들로 남기에 너무 아쉬워 장편으로 써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종이동물원 #켄리우 #장성주 #황금가지 #전설 #판타지소설 #SF #중국소설 #SF소설 #단편소설 #책추천 #책스타그램 #서평
 
♥ ‘황금가지’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내가 ’사랑(love)’이라고 말할 때, 난 그 말을 여기서 느껴요." 엄마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켰다.

"하지만 ‘아이[爱]라고 말하면, 여기서 느껴요." 엄마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아빠는 고개를 저었다.

"여긴 미국이야." - P22

우린 모두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에메랄드 성에 사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센틸리언이 우리 눈에 씌운 두꺼운 초록색 고글 때문에 온 세상이 아름다운 초록빛으로 보인다고 믿는 거죠. - P56

멍한 기분으로 아버지의 시신을 내리는 동안, 나는 아버지와 아버지가 평생 사냥한 요괴들이 서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쪽 다 이미 사라져서 돌아오지 않을 낡은 요술의 힘으로 연명하는 존재였고, 그 요술 없이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지 못했으니까. - P94

우주의 모든 지적 생물종을 정확히 집계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지성을 규정하는지에 관한 논쟁이 끊이지 않을뿐더러, 매 순간 모든 장소에서 문명이 일어났다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는 별이 태어나고 죽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시간은 삼라만상을 집어삼킨다.

그러나 모든 생물종은 대를 이어 지혜의 전수하는 자기 나름의 독특한 방법이 있다. 사유를 눈에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 거스르지 못할 시간의 파도에 맞서는 방파제처럼 잠시나마 동결된 것으로 만드는 방법 말이다.

모두가 책을 만든다.

어떤 이들은 글쓰기란 단지 눈에 보이는 말하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관점이 편협하다는 것을 안다. - P195

사람들은 카메라를 위해 자기 삶의 경험을 형상화하고 단계화해요. 기껏 휴가를 가서도 한쪽 눈은 접착제로 붙인 것처럼 비디오카메라에서 뗄 줄을 모르죠. 현실을 그대로 정지시켜 보관하고 싶은 욕망은 곧 현실을 회피하려는 욕망이에요. - P215

"히로토, 모든 것은 지나가는 법이란다. 지금 네 마음을 차지한 그 기분, 그건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われ] 라는 거야. 삶의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지는 감정이지. 태양, 민들레, 매미, 해머, 그리고 우리 모두 다. 인간은 누구나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라는 물리학자가 정리한 방정식에 지배당한단다. 그래서 우리 모두 결국에는 사라질 운명을 타고난 짧은 패턴일 뿐이야. 그 수명이 1초든, 아니면 100억 년이든." - P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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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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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장편소설

문학동네



 

 

 

💬

글을 읽으면 지연이의 현재와 과거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주인공 이지연은 할머니로부터 과거 일제시대 증조모이야기를 듣고 현재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교차하며 소설은 진행된다. 결혼한 여성의 감정을 정말 잘 묘사했다.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았나 싶을 정도로 나의 일기장 속 이야기같이 감정들이 공감되었고 책 페이지를 넘겨갈 때마다 내 속안을 한바퀴 휘젓고 지나간듯 요동쳤다.

 

잊고 있었던 나의 할머니가 생각났다.

내가 사회에 적응하고 견디고 경쟁에 치일동안 과거를 회상하며 천천히 흘러가는 그 시간들을 체념한 듯 집에서 홀로 외롭게 있었던 나의 할머니의 기억이.

이렇게 소설 속에서 만난 할머니도 여자였고, 엄마였고 청춘을 살아왔었다는 것을 그땐 왜 몰랐을까. 쇠약해져가는 모습을 보며 돌아서기보다 나와 닮은 한 여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살갑게 대했더라면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았을텐데 할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그리움이면서도 동시에 미안했다.

 

눈물이 계속 났던 이유는 책속의 여자들처럼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때문인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알았기 때문인지 외로움과 평생을 싸워야했던 그들에게 서로가 있었듯 나에게도 서로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내가 밀어내고 봐주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대구 명숙할머니 집에서 함께 증조모, 새비아주머니, 희자, 영옥이 이렇게 여자만 모여 살며 큰 소리로 웃던 장면과 새비아주머니가 희령으로 찾아와 증조모와 바다에 함께 가서 공놀이하는 장면은 행복해 보였다. 그 잠시밖에 누릴 수 없다는 행복을 알아서 였을까 웃음으로 서로의 기억에 행복으로 기억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가슴이 아팠다. 서로 편지로 안부를 묻기도 하고 자신의 속내를 적으며 한풀이하기도 했다. 그런 과거와 현재의 엄마와 딸 사이의 감정들에 대해 생각만 했던 일들을 글을 읽고 보니 나는 그동안 엄마에 대해 많이 몰랐었구나 싶다. 당장의 변화될 수 없겠지만 엄마와 딸이기에 그냥 지나쳤던 것, 말하지 않았던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 해보고 경계를 긋고 멀리하기보다 조금 더 다가가는 것부터 해보아야겠다.

 

삼천이와 새비아주머니, 희자와 영옥이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지연이가 회복되었던 것처럼 나도 『밝은 밤』으로 내 가슴 속의 일부가 다독여진 것 같아 너무 좋았다.

 

 

 

 


📖 책 속 밑줄긋기

 

희령에 도착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나는 할머니에게 마음을 열었다. 아이들은 귀신같이 아니까. 이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자신을 해치려 하는지 돌보려 하는지. P10

 

흰빛이 사람을 압도하고 두렵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한번은 폭설이 그친 무렵, 눈 덮인 논가 국도를 달리다가 가슴이 심하게 뛰고 숨쉬기가 어려워 갓길에 잠시 차를 세워둔 적도 있었다. 마음의 보호대 같은 것이 부러진 기분이었다. 덜 느낄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가 사라진 것 같았다. P12

 

♥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P14

 

엄마는 남자와 사는 삶에 희망이 있는 것처럼 말하곤 했지만, 그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도리어 엄마야말로 남자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 같았다. 때리지 않고 도박하지 않고 바람피우지 않는 남자만 되어도 족하다니, 인간 존재에 대한 그런 체념이 또 어디 있을까. P17

 

이름 없는, 구체적인 형상도 없는, 엄마의 할머니로만 존재했던 사람이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빠져나와 금방이라도 내 앞에 나타날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나의 증조할머니, 이정선. P49

 

지구가 수명을 다하고, 그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순간이 오면 시간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그때 인간은 그들이 잠시 우주에 머물렀다는 사실조차도 기억되지 못하는 종족이 된다. 우주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곳이 된다. 그것이 우리의 최종 결말이다. P82

 

 

♥ 내가 누리는 특권을 모르지 않았으므로 나는 침묵해야 했다. 내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라며 느꼈던 외로움에 대해서, 내게 마음이 없는 배우자와 사는 고독에 대해서. 입을 다문 채 일을 하고, 껍데기뿐일지라도 유지되고 있었던 결혼생활을 굴려가면서, 이해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는 감정에는 눈길을 주지 않아야 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으니까.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그 껍데기들을 다 치우고 나니 그제야 내가 보였다. 깊이 잠든 남편 옆에서 소리 죽여 울던 내 모습이, 논문이 잘 써지지 않으면 내 존재가 모두 부정되는 것만 같아서 누구보다도 잔인하게 나를 다그치던 내 모습이,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숨쉬듯 나를 비난하고 비웃던 내 모습이.

너는 너를 다그쳤기 때문에 더 나은 자리를 잡을 수 있었어. 너에게 조금이라도 관용을 베풀었다면 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되었을 거야. 아빠도 말했잖아. 넌 큰 사람이 될 수 없을 거라고. 남편도 얘기했지. 네가 이룬 모든 것은 운일 뿐이라고. 그러니 넌 더 단련되어야 해. 이런 취급에는 이미 익숙해졌잖아.

나는 항상 나를 몰아세우던 목소리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나만큼 나를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일이. P85-86

 

 

5월의 새비에 따뜻한 바람이 불구, 내레 떨지 않구 희자 아바이 보내줬다. 땅이 녹아서 파기가 어렵지 않았더랬다. 내레 추울 때 가믄 땅이 얼어 심이 들 테 조금만 더 버텨보갔어. 기깟 걸 농이라고 하던 희자 아바이가 마음놓았을까. P127

 

 

♥  우리는 둥글고 푸른 배를 타고 컴컴한 바다를 떠돌다 대부분 백 년도 되지 않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가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우주의 나이에 비한다면, 아니 그보다 훨씬 짧은 지구의 나이에 비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너무도 찰나가 아닐까. 찰나에 불과한 삶이 왜 때로는 이렇게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나무로, 기러기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인간이었던 걸까.

  원자폭탄으로 그 많은 사람을 찢어 죽이고자 한 마음과 그 마음을 실행으로 옮긴 힘은 모두 인간에게서 나왔다. 나는 그들과 같은 인간이다. 별의 먼지로 만들어진 인간이 빚어내는 고통에 대해, 별의 먼지가 어떻게 배열되었기에 인간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해 가만히 생각했다. 언젠가 별이었을, 그리고 언젠가는 초신성의 파편이었을 나의 몸을 만져보면서. 모든 것이 새삼스러웠다. P130

 

 

♥ 예전처럼 며칠씩 서로 말도 붙이지 않을 정도로 신경전을 벌일 만한 일이 우리에게는 더 이상 없었다. 큰불이 나기 전에 꺼버렸고, 상대에게 작은 불씨를 던졌다는 것에 문득 무안해지기도 하는 사이가 된 것이었다. 그건 우리가 그만큼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서로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가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우리는 눈빛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정말 끝이 날까봐 끝까지 싸울 수가 없는 사이가. P137

 

 

잘 사는 것이 복수라고, 보란듯이 잘 살면 된다고 말하는 응원의 목소리가 내 등을 천천히 두드리는 손길에서 내 등을 후려치는 채찍이 되는 동안에. P156

 

 

 고통 안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다. 나는 자꾸만 뒷걸음질 쳤고 익숙한 구덩이로 굴러 떨어졌다.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서린 두려움이 나를 장악했다. 나는 왜 내가 원하는 만큼 강해질 수가 없을까.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도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래 울던 밤에 나는 나의 약함을, 나의 작음을 직시했다. P156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어떤 성취로 증명되지 않은 나는 무가치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나를 절망하게 했고 그래서 과도하게 노력하게 만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와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P156

 

 

♥ ㅡ 내레 어릴 적에 소설 읽어주던 이들이 있었다이. 책방에서 『홍길동전』두 읽어주구 『사씨남정기』랑 『임진록』두 읽어주구. 내레 기걸 참 좋아했더랬어. 넋을 놓구선 이야기를 들었다이. 어마이가 이야기 좋아하믄 가난해진다고 해두 어쩔 수가 없었디. 기게 참 좋았더랬어.

그 말을 하는 명숙 할머니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어렸다. P186

 

 

 나는 누구에게 거짓말을 했나.

나에게, 내 인생에게.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알고 싶지 않아서, 느끼고 싶지 않아서.

어둠은 거기에 있었다. P299




어머니는 일평생 그런 식이었죠. 바들바들 떨면서도 제 손을 잡고 걸어갔어요. 어머니는 내가 살면서 가장 사랑한 사람이었어요. 무서워서 떨면서도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 나는 어머니를 닮고 싶었어요. P333

 

 

♥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할 테까. 나는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사실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의 나이면서 세살의 나이기도 하고, 열일곱 살의 나이기도 하다는 것도. 내게서 버려진 내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도. 그애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관심을 바라면서, 누구도 아닌 나에게 위로받기를 원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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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안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다. 나는 자꾸만 뒷걸음질 쳤고 익숙한 구덩이로 굴러 떨어졌다.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서린 두려움이 나를 장악했다. 나는 왜 내가 원하는 만큼 강해질 수가 없을까.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도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래 울던 밤에 나는 나의 약함을, 나의 작음을 직시했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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