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카타콤
이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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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카타콤』 

 

이봄 장편소설

위즈덤하우스


문명은 죽음 위에, 도시는 무덤 위에

 


 

‘카타콤’은 로마와 파리 등에 조성된 지하 공동묘지를 가리키는 말인데 핍박받고 버려진 사람들이 모여들거나 지상에서 묻어주지 못한 사람들이 묻히는 곳이었다고 한다. 

『서울, 카타콤』은 ‘서울에도 카타콤이 있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시작된 소설이다.

▣ 줄거리

화려한 서울 강남역 아래 ‘카타콤’이 있다. 

현실의 도피처로 선택한 결혼은 지옥과도 같았던 주인공 ‘나’는 남편의 구타로 아이를 유산하고 다리까지 절게 되면서 아무도 자신을 찾을 수 없는 지하 깊은 곳까지 내려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지하철 승강장과 이어진 지하를 발견하며 개미굴 같이 거대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하에는 현실의 삶을 견딜 수 없었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지하세계에 자리를 잡도록 도와준 ‘양어르신’, 언니라고 친근하게 부르던 ‘화연’, 아버지를 피해 도망친 어린남매 ‘선아’, ‘승우’, 소방관이었으나 마음의 상처를 입고 지하로 온 ‘은혁’ 등 사람들을 만나며 죽을 자신도, 싸울 자신도 없던 과거와 달리 서서히 생기를 찾는다. 하지만 지하세계도 사건과 사고, 붕괴 등으로 흔들리게 되는데...


▣ 책을 읽고

외면했던 소외된 계층, 무방비로 폭력과 범죄에 노출된 사회적 약자들은 지상의 경계선에 있고 높고 화려한 빌딩숲의 지상보다 지하로 내려가기 쉬운 위치에 놓여있다. 지하세계는 괴물이나 외계생명체가 존재할 것 같지만, 자신이 잘못한 일을 인정하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나약함, 마음의 상처와 상대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치기 바빴던 현실을 외면한 사람들이 살았다. 

누구나 다 내려놓고 싶고, 도망쳐 버리고 싶은 때가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소설을 읽으며 캄캄한 어둠 속에서 계속 헤메고 있는 주인공 ‘나’를 보며 빛이 언제 비쳐들지 기다려졌다. 

소설 속 ‘나’는 자신의 아이가 유산될 때도 폭력에서 달아나고자 느껴볼 수조차 없었던 애착과 슬픈 감정을 아버지에게 폭력을 피해 지하로 온 선아와 승우를 돌보면서 감정이 자신에게도 있었음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욕으로 주먹으로 발길질로 얻어맞으면서 때린 사람을 증오로 가득찬 눈으로 보지 못하고 한 번도 대들지 못한 채 겁먹고 도망쳤고 피하기 급급했던 ‘나’로 인해 세상에 나오지 못한 자신의 아이를 향한 감정을 선아와 승우에게 대신 해주는 듯 했다.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지하에 사는 모습은 지상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은 죽음을 위해서가 아닌 살기위해 치열했다. 

다른 이의 눈에 띄면 자신의 보금자리를 잃게 될까 두려워 좁고 깊은 곳에 위치한 개미굴엔 양어르신과 ‘나’만 거주했다. 불안정함 속에서도 자신만의 안정을 찾고 영역을 만들고, 그 불안정함 속 안정조차 흔들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호의에도 상대방에 대한 의심, 선의 속에 상대방을 이용하려는 마음을 숨기는 모습들은 삶에 대한 희망보다 인간의 본성을 잃어가는, 빛으로부터 도망친 어둠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에서 지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하 입구가 붕괴되어도 지하에 갇혀버리지 않게 다른 길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며 지하에서 언젠가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나도 한없이 아래로 가라앉을 때 소설 속 주인공들을 떠올려보며 나를 위로 끌어올려주는 손을 찾고 잡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 책 속에서

아무도 내가 그 사이로 조용히 들어가는 걸 몰랐다. 마치 음식물 쓰레기 더미 사이로 쥐가 도망가는 모양새였다. 만나야 하는 사람과 가야 할 곳에 집중하느라, 웬 여자가 다리를 절며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사람들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자. 

저 아래로. P10

치열하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은, 죽음과도 같은 시간. 강바닥으로 끝없이 가라앉아 조용히 자리 잡은 침전물처럼 그저 존재할 뿐이었다. 평화로웠다. P19

 


 

“카타콤이라고 들어봤어?”

생소한 단어에 고개를 저었다. 

“‘무덤 사이에’라는 뜻이다. 저기 서양에서 이런 곳을 부르는 말이다. 도시 아래 지하. 사람이 죽어 묻히는 곳을.” P27

마음이 땅으로 꺼지는 듯한 느낌에 비하면 몸이 아픈 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절망은 오늘의 노력이 고단해서가 아니라, 그 노력이 일말의 희망조차 불러올 수 없다고 느껴질 때가 왔다. 

나는 절망했었다. 

하지만 지하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예 달리기를 포기했으니까. P47

 


 

“이렇게 크고 복잡하고 오래된 지하에 별일이 다 있었을 테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별의별 사람이 왔을 거고 별의별 일이 있었을 거야. 우리는 딱히 결정권이 없어. 위에서 흘러오는 대로 쌓이는 것뿐이지.” P101

“물에 돌 던지면 바닥에 있던 모래가 튀고 흙탕물이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가라앉지 않냐. 그냥 그렇게 지나갔어.” P102


 

필사적으로 손발을 휘저어도, 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면은 까마득히 위에 있었고, 방향을 잡아 나아가려 해도 이정표가 없었다. 디딜 땅도 없고, 죽음과도 같은 새까만 심연뿐이었다. 온통 파랗고 공허했다. 막혀오는 숨과 흐려지는 시야에 공포가 엄습했다. 아무리 치열하게 허우적대봤자 이 절망적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살기 위해 끝없이 버둥거렸다. 포기한 채 심연으로 내려앉았을 때 비로소 편해졌다. P138

가서 뭐 하게. 뭘 물어보게. 가지 말라고 붙잡기라도 하게? 내가 뭔데. 만나서 해야 할 일이나 나눠야 할 대화를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아니다, 그냥 보고 싶었다. 화연도, 아이들도, 벌써 가버렸을까. 나한테 인사도 없이. P173

아이들을 보면서 절망했다. 

이 아이들이, 이 예쁜 아이들이 돌아가야 할 곳이 지상이라는 것에, 절망했다. P235

나오는 것은 나오기를 결심하는 것보다 쉬웠다. 내려왔던 길과 반대로 하염없이 위로,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길은 모두 이어져 있었다.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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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적으로 손발을 휘저어도, 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면은 까마득히 위에 있었고, 방향을 잡아 나아가려 해도 이정표가 없었다. 디딜 땅도 없고, 죽음과도 같은 새까만 심연뿐이었다. 온통 파랗고 공허했다. 막혀오는 숨과 흐려지는 시야에 공포가 엄습했다. 아무리 치열하게 허우적대봤자 이 절망적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살기 위해 끝없이 버둥거렸다. 포기한 채 심연으로 내려앉았을 때 비로소 편해졌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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