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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디어리스
권오경 지음, 김지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평점 :
『인센디어리스』
권오경 R. O. Kwon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출판

‘모든 것의 밑에는 할렐루야가 있다’
신의 존재, 종교, 믿음에 대해 말하는 소설 같았다.
책은 피비, 윌, 존 릴의 이야기를 윌의 시점에서 하는데, 윌은 피비와의 지난 연애를 회고하며, 전 여자 친구가 어쩌다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해보려 안간힘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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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잃은 윌은 피비의 엄마가 피비에게 집작했던 것처럼 사랑과 집착을 오간다.
▪️피비는 상실감에서 신을 믿음으로 자신이 구원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를 찾는다.
▪️독재자를 보고 품은 열정으로 종교를 만든 존 릴은 어둡고 흔들리는 사람들을 광신도들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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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피비만을 바라보며 살았지만 피비는 그것을 집착이고 자신을 피아노 외엔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로 만들었다 생각한다. 엄마의 사고가 자신의 탓이라 여기며 죄책감과 상실감에 스스로를 고통 속으로 내모는 행동이 속죄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신앙을 만났으니 겨우겨우 쌓은 나무에 화르르 불을 지피고 뜨거운 불놀이에 빠져든 사람처럼 자신의 열정을 신앙에 온통 쏟아부었다.
심리적으로 본다면 그렇지만 이런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은 영화, 소설, 만화 등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클리셰(진부한 반복)같다. 피비는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가혹하게 몰았어야 했을까싶다가도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였지만 멈추지 못하고 테러까지 저지르게 되는 자신을 누군가는 멈춰주길 바랬을 것 같다.
피비는 피아노를 좋아하고 피아니스트들을 숭배하고 있었다. 단지 숭배하던 대상을 잃고 방황했을 뿐. 자신의 숭배 대상이 상실되면서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피비는 망상이라 하더라도 숭배를 했을듯하다. 사람들 앞에서 빛나야 하는 자신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 수단이 필요했을 테니까.
존 릴은 탈북민을 구출하다가 북한 수용소에 갇혔었는데, 그때 본 사람들이 독재자를 향해 신에게 찬양하는듯한 모습을 보면서 종교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한다. ‘제자’ 이름의 광신도들에게 헌금을 빌미로 갈취하고, 신을 만나기 위해 해야하는 말도 안되는 자학을 지시하고, 생명을 운운하며 일으키는 테러들은 종교라는 명분으로 신도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악랄한 범죄라 생각한다.
피비는 독재자를 꿈꾸는, 종교를 앞세워 도덕적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주교인 존 릴에게 동화되어 테러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것을 보면 스톡홀름 증후군(인질로 잡힌 사람이 인질범에게 심리적으로 동조하는 증세나 현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누구나 슬픔을 안고 살지만 자신의 약한 모습을 내비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물어뜯는 인간들에게 자신이 다 뜯어버릴테니. 하지만 존 릴과도 같은 사람들은 가면 뒤의 숨은 약한 모습을 한 사람들을 사냥하고 신을 핑계로 그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가면을 씌워 조종한다.
중간을 놓치면 생뚱맞은 장면에 와있는 느낌도 든다. 윌의 시점에서 쓴 글이라 갑자기 어머니가 소환되거나 장면이 바뀌기도 해서 읽다가 내가 놓친 것이 있는지 다시 앞으로 돌아가기도 했는데 중간을 넘어가면서 윌이 회상을 했었던 장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이해가 되었다.
글을 읽으면 마음으로 와닿고 감정이 요동치는 작품은 아니다. 인간이 믿음이라는 것으로 인생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책속 밑줄긋기
피아노는 나를 고양시켰어요. 마치 커다랗고 강력한 피아노의 혼령이 된 것처럼, 윤이 흐르는 피아노의 깊숙한 내부에 스며들어가 이리저리 돌진했어요. 나는 피아노를 사랑했어요. 어렸을 때도, 지금도.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내가 눈물을 닦아내자 어머니가 알아차리고는 휴지를 건넸어요. 하지만 나는 외면했죠. 울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으니까요. P45
신앙의 부수적 이익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리스도의 빛이 보이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그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증오가 상대방과 나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면 먼저 용서하는 것이 치료제가 될 수 있다.
나는 지금보다 평온했던,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나를 마치 옛 친구처럼 그리워하곤 했다. P90 윌
나는 고통을 먹었어요. 눈물을 마셨고요. 충분히 섭취하면 내 고통과 눈물을 담을 자리가 없어질 것 같았거든요. P106 피비

피비의 가장 안에 있은 반짝이는 정신으로, 숨어버리는 모습을 내게 들킴으로써 자신을 내보이는 그 가시적인 불투명함으로 나를 이끌어줄 지도.
결핍은 곧 욕망이다. 고립은 갈망이다. 나는 그녀가 내주지 않는 것을 간구했다. 피비가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늘 더 알고 싶었다.
P184 윌
그래서 나는 변했어요. 변하는 게 가능하더라고요. 종종 존 릴이 즐겨 하던 말을 생각했어요. 우리가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듯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다고 믿을 수 있다면 나머지는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그는 말했죠. 사랑이란 단지 잘 상상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 생각을 꺼냈어요. 그리고 남몰래 그걸 들어올려 빛에 비춰 봤어요. 그 프리즘의 빛 속에서 내가 될 수 있는 피비의 모습을 찾아내려는 듯이.
P200 (다시는 못 칠 것 같았던 찬송가를 피아노 연주하며. 피비는 종교에 빠지기 시작한다.)
군중은 계속 노래했다. 나는 홀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하나의 무리였고, 하나같이 내게 결여된 것을 갖고 있었다. 그분이 했다고 믿어지는 말씀들에 따르면 주님의 뜻은 명백하다. 그분은 온던하고도 절대적인 헌신을, 다름 아닌 그것을 요구하신다. 그 부분에서는 존 릴이 옳았다.
P209 (낙태반대시위에 동참한 존릴. 피비. 윌)
사실 나도 질문을 하는 순간 이미 답을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답을 모르는 것처럼, 혹은 그렇게 모른 척함으로써 내가 원치 않는 진실을 바꿀 수라도 있는 것처럼, 나는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P252 윌

신앙은 손 한 번 내밀어서 고스란히 받아 쥘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비록 긴 햇살이 발치에서 아첨할지라도, 신앙은 수북이 쌓인 잔해들 사이에서 억지로 끄집어낸 전리품이요, 힘겹게 쟁취한 보상이었다. 다가올 전쟁은 성스러운 치유가 될 것이고, 순수한 이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P256 존 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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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변했어요. 변하는 게 가능하더라고요. 종종 존 릴이 즐겨 하던 말을 생각했어요. 우리가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듯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다고 믿을 수 있다면 나머지는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그는 말했죠. 사랑이란 단지 잘 상상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 생각을 꺼냈어요. 그리고 남몰래 그걸 들어올려 빛에 비춰 봤어요. 그 프리즘의 빛 속에서 내가 될 수 있는 피비의 모습을 찾아내려는 듯이.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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