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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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소설

문학동네 출판



 

작가는 미성년의 시간이 일곱 소설에 스며있다고 했다. 그 시절의 폭력, 비난 말들로 도망치고 싶었고 내게 무해한 사람이고 싶다고 말했다.

각 소설에서 인물들은 모두 달랐지만 각자 성장 과정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없는 고통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런 시간들을 읽으면서 과거가 떠오르기도 했고, 어쩌면 현재의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같아서 인물들로부터 위로 받기도 하고 숨었던 내 모습을 알아봐주기도 했다. 최은영 작가님의 글을 연이어 읽으면서 폭력과 차별, 우정과 사랑이라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내가 놓인 위치와 나에 대해 조금더 알아볼 수 있고 이해한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

다 떠나서.. 글이 넘 좋음 💛

 


📚「그 여름」

 

늘 하루의 한계치만큼 살아내는 것 같이 보였던 수이와 수이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는 이경. 오랜 시간만큼이나 지쳤을테고 성장하는 동안 만나는 관계가 달라지면서 수이와 이경은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점점 더 깨닫는다. 이경은 수이와 헤어지지만 열여덟 뜨거운 여름과 같았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첫사랑이 생각나는 소설.

 

🔖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부분을 저에게 보여줬어요. 저는 그 사람을 위로했고, 그 사람도 저를 위로했죠. 그 사람도 저를 위로했죠. 어떻게 우리가 두 사람일 수 있는지 의아할 때도 있었어요. 네가 아픈 걸 내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내가 아프면 네가 우는데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일 수 있는 거지? 그 착각이 지금의 우리를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들고 만들었는지도 몰라요. P29

 

무너지기 직전의 연애, 겉으로는 누구의 것보다도 견고해 보이던 그 작은 성이 이제 곧 산산조각날 것이라는 예감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을 준비했는지도 모른다. P49


수이는 시간과 무관한 곳에, 이경의 마음 가장 낮은 지대에 꼿꼿이 서서 이경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수이야, 불러도 듣지 못한 채로, 이경이 부순 세계의 파편 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곳까지 이경은 손을 뻗을 수 없었다. 은지를 만나지 않았다면 수이와 헤어지지 않았을까. 그 가정에 대해 이경은 자신이 없었다. P59

 


📚「601,602」

 

남아선호사상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우리나라의 70-80년대 이야기 같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도 있을..) 여자로 태어난 게 잘못인가 싶을 정도로 가혹했고 살기힘들다는 소리기 나올 차별의 현장이다.

 

에미가 되어서 돈 번다고 애를 방치한다는 말을 듣던 엄마는 막상 직장을 관두고서는 남편 잘 만나 집에서 속 편하게 노는 여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P77

 


📚「지나가는 밤」

 

친언니가 생각났다. 그렇게 싸웠는데 이제는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한다. 어쩌면 그때도 내 모습같았던 것 때문에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먼 곳에서 다른 환경과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유년기의 기억 때문에 여전히 함께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얼굴만 서로 늙어가는 것은 착각이 아니겠지만^^)

 

어린 시절은 다른 밀도의 시간 같다고 윤희는 생각했다. 같은 십 년이라고 해도 열 살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그 이후 지나게 되는 시간과는 다른 몸을 가졌다고. 어린 시절에 함께 살고 사랑을 나눈 사람과는 그 이후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끝끝내 이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현실적으로 서로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P97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윤희야,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그것을 기다린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P99

 

기억나지 않는 시간은 어디로 가는 걸까……P101

 


📚「모래로 지은 집」

 

단편 중 가장 긴 글이었지만 가장 좋았다.

고등학교부터 가정폭력을 겪는 공무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의 모래, 나는 통신으로 만나 스물하나의 나이가 되기까지 세트처럼 지낸다. 공무, 모래, 나는 서로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듯 하면서도 함께 공유하는 것들에 대해 자신이 상처입을까봐 한발짝 뒤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서 행복하지만 모래로 지은 집처럼 그 시간은 허물어져 희미하다.

그 시절 미니홈피 사진과 글을 보며 감성에 젖어보려했던 기억도 떠올랐고, 통신이라는 매개로 청춘에 대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서로의 글을 읽으며 알아봐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비록 허물어져 없어져버릴 모래집일지라도 짓는 동안은 행복했었던 그 시간.

 

나는 자신이 겪은 일을 자기 말로 풀어 쓸 수 있는 그애의 능력과 끝까지 자기 연민을 경계하는 태도에 마음이 갔다. P109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사람에게 연연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상하고 망가지고 비뚤어진다고 생각했으니까. 구질구질하고 비뚤어진 인간이 되느니 차라리 초연하고 외로운 인간이 되는 편을 선택하고 싶었다. P112



 


어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금이라도 알아낼 수 있다면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가짜 이유라도 만들어서 믿고 싶었다. P121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 P127



 


📚「고백」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신경들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미주, 진희, 주나.

예민하다고 여중학생들만의 아픈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내가 한 고백이 나에게 너에게 우리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건 언제든 될 수 있으니까.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P209

 


📚「손길」

 

혜인. 정희.

자신의 꿈을 위해 부인과 자식을 상처로 내 몰았던 아빠를 미워하지도 않는다. 고생하는 엄마에게 티를 내지도 않는 성숙했던 어린 혜인은 스무살 초 젊은 숙모와 함께 있을 때면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배꼽 잡고 깔깔 웃는 딱 그 나이의 아이로 돌아갔다. 시간이 흘러 오랜만에 만난 숙모를 혜인은 그리워했다고 이제 혜인이 숙모에게 다가간다.

 

그들은 삼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제대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혜인이 아는 한 그런 말을 했던 사람 중에 삼촌보다 더 행복한 이는 없었으니까. 겪어보지 못한 일을 상상할 수 없는 무능력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삶에 기대어 삼촌의 불행을 어림짐작했다. P222

 

그 모든 것들이 혜인에게 위안을 줬다.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행복이 얼마나 위태롭고 위험한 것인지 여자로부터 배운 셈이라고 혜인은 종종 생각하곤 했다. 사람은 그런 식으로 쉽게 행복해질 수 없는 법이라고.P226

 


📚「아치디에서」

 

랄도는 하민이 가족으로부터 상처받은 마음을 통해 자신이 상처준 가족을 떠올린다. 나약한 나였기 때문에 가족이라고 해서 나를 위해 희생하고 무조건 적인 포용해야한다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하민을 보며 깨닫게 하다니. 이 소설을 읽고 이렇게 자신을 변화시키는 사랑도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힘들게 한 사람이 떠오르기 때문일까. 사랑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같은 느낌.

 

그렇지만 마음이 아팠다. 삶이 자기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 가버리고 말았을 때, 남은 것이라고는 자신에 대한 미움뿐일 때, 자기 마음을 위로조차 하지 못할 때의 속수무책을 나도 알고 있어서.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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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부분을 저에게 보여줬어요. 저는 그 사람을 위로했고, 그 사람도 저를 위로했죠. 그 사람도 저를 위로했죠. 어떻게 우리가 두 사람일 수 있는지 의아할 때도 있었어요. 네가 아픈 걸 내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내가 아프면 네가 우는데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일 수 있는 거지? 그 착각이 지금의 우리를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들고 만들었는지도 몰라요. - P29

기억나지 않는 시간은 어디로 가는 걸까…… - P101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사람에게 연연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상하고 망가지고 비뚤어진다고 생각했으니까. 구질구질하고 비뚤어진 인간이 되느니 차라리 초연하고 외로운 인간이 되는 편을 선택하고 싶었다. - P112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 - P127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 P209

그들은 삼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제대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혜인이 아는 한 그런 말을 했던 사람 중에 삼촌보다 더 행복한 이는 없었으니까. 겪어보지 못한 일을 상상할 수 없는 무능력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삶에 기대어 삼촌의 불행을 어림짐작했다. - P222

그렇지만 마음이 아팠다. 삶이 자기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 가버리고 말았을 때, 남은 것이라고는 자신에 대한 미움뿐일 때, 자기 마음을 위로조차 하지 못할 때의 속수무책을 나도 알고 있어서.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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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못 버린 물건들 - 은희경 산문집
은희경 지음 / 난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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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_못 버린 물건들』

 

은희경 산문

난다 출판





 

주부로 늙어가는 즐거움과 하소연.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살림살이의 고달픔. 그럼에도 일상이라 할 수 밖에 없는 글이지만 이 산문이 더 와닿은 이유는 물건들이 나라는 것, 나의 시간들이었다는 것. 버리지 못하는 나에게 집착이 무엇이었는지를 들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다 필요해서 샀던 것이고 모아보고 돌이켜보면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물건들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물건들의 색이 바래진다는 것은 낡아지는 것에 대한 쓸쓸함일 수 도 있는데, 어쩌면 그런 물건들은 쓰임이 다 했기에 버려지는 것이지만 정을 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좀 더 그 시간들을 잡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책 속에 나오는 글처럼 물건과 잘 이별해야하는데 그냥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이 그 시간을 그렇게 처분해버리는 것을 볼 수 없어서 붙잡고 있었을지도.

 

헌 물건을 버리고 새로운 물건을 사는 일. 그리고 잘 보내주는 일은 아직은 익숙하지 않지만 용기내어 해야 내 과거, 현재, 미래를 잘 정리하는 일은 아닐까 생각한다.

물건 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새롭게 시작하는 초보자, 마이너가 될 수 있으니 용기를 내라고 말한다. 늘 익숙함에 머물러 있기보다 낡고 헤지면 새로 바꾸어야 하는 것처럼 자연스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우울해할 필요없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이니.

 

유독 <반지> 글을 읽으면서 나도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자라면서는 왜 그렇게 우리에게 소홀했는지 섭섭했고, 다 커서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알면서도 변화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답답해했다. 그러면서도 엄마의 빈자리가 늘 그리웠고 함께 했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현재의 잠깐 잠깐의 시간을 또 그런 행복으로 채워보기도 한다. 엄마의 인생이라는 것도 있었음을 내가 살아보니 알겠고 또 그 시대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아 속상해 했을 엄마에게 고생많았다고 나도 이제 잘 산다며 포근히 안아주고픈 마음도 든다. 그렇게 못했던 기억을 내가 알면 엄마도 아는 것이겠지. 내가 아이의 표정만 보아도 아는 것처럼.

 

내가 행복을 너무 슬픔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나름의 행복으로 잘 살고 있는 삶인데 내 기준으로 힘들었겠다고 판단하고 미리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많이 바뀌었고 배웠다 생각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부모님께는 왜 적용하지 않았나. 죽은 사람을 기억할 때 슬픈 기억보다 추억하고 행복했던 시절들을 떠올려보듯 살아계실 때에도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고 더 다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따스함을 전달해드리는 것 남에게도 하면서 엄마 아빠에게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투덜대겠지만)

 

 


◈ 책 속 밑줄긋기

 

그 시절의 나에게 음주는 일종의 시간제 타락 체험 같은 것이었다. 그 체험장에 입장하면 생활에 시달리고 타인에게 위축된 나 대신 무책임하고 호탕한 내가 있었다. 취한 눈으로 나를 보니 소심하고 고지식하다고만 알아온 내가 제법 솔직하고 웃기고 패기조차 있고, 무엇보다 좌절된 꿈을 가슴 깊이 숨긴채로 살아가는 게 아닌가. P15

 

급히 쟁반에 잔을 챙기는데, 모여 앉은 사람 수대로 유리잔 다섯 개는 가까스로 갖춰놓았지만 짝이 맞는 게 한 벌도 없었다. 크기조차 다 달라서 맥주를 따르니 술의 양도 제각각이었다. 그 술상이 어쩐지 임시변통으로 살아가는 내 삶의 남루한 모습 같았다. P16

 

집안 구석구석 처박혀 있던 오래된 물건들이 그 집에서 살아낸 세월을 하나하나 떠오르게 했고, 버릴 물건과 아닌 물건을 가리다보면 어느샌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추억에 잠겨 있곤 했다. P78



 

엄마가 돌아가신 뒤 엄마를 의식하고 엄마의 범주 안에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새로운 장소나 여행지에 갈 때마다 그곳에 엄마가 있다면 분명 이랬을 거라고 떠올리게 되는 일. 그것은 엄마가 그 장소를 즐길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혹은 내가 더 잘했더라면 하는 후회와 아쉬움만은 아니었다. 나를 믿어주었던 엄마가 더이상 내 곁에 없다는 상실의 실감이었다. P81

 

의기소침하고 외로웠던 나라는 엔진을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내 안에 이물질을 집어넣고 그것을 쫓아가도록 자극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나의 삶이라는 건축물에 색다른 블럭을 끼워넣음으로써, 새로운 분야의 초보가 됨으로써, 매너리즘과 헛된 욕심에 빠진 나로 하여금 첫마음을 돌아보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P146-147

 

초보가 된다는 것은 여행자나 수강생처럼 마이너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지점에서 나를 바라보게 된다. 나이들어가는 것, 친구와 멀어지는 것, 어떤 변화와 상실, 우리에게는 늘 새롭고 낯선 일이 다가온다. 우리 모두 살아본적 없는 오늘이라는 시간의 초보자이고, 계속되는 한 삶은 늘 초행이다. 그러니 ‘모르는 자’로서의 행보로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하는 훈련 한두 개쯤은 해봐도 좋지 않을까. P147

 

삶은 우리의 정면에만 놓여 있는 게 아니지만, 만약 정면에 놓여 있다면 그 또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뚫고 나가야 할 때라면 그렇게 해야겠지. 언제나 인간의 편으로 같은 자리를 지켜주는, 그래서 실생활에서는 쓸모없어 보이는 예술, 문학의 위로와 함께.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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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쟁반에 잔을 챙기는데, 모여 앉은 사람 수대로 유리잔 다섯 개는 가까스로 갖춰놓았지만 짝이 맞는 게 한 벌도 없었다. 크기조차 다 달라서 맥주를 따르니 술의 양도 제각각이었다. 그 술상이 어쩐지 임시변통으로 살아가는 내 삶의 남루한 모습 같았다. - P16

집안 구석구석 처박혀 있던 오래된 물건들이 그 집에서 살아낸 세월을 하나하나 떠오르게 했고, 버릴 물건과 아닌 물건을 가리다보면 어느샌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추억에 잠겨 있곤 했다 - P78

엄마가 돌아가신 뒤 엄마를 의식하고 엄마의 범주 안에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새로운 장소나 여행지에 갈 때마다 그곳에 엄마가 있다면 분명 이랬을 거라고 떠올리게 되는 일. 그것은 엄마가 그 장소를 즐길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혹은 내가 더 잘했더라면 하는 후회와 아쉬움만은 아니었다. 나를 믿어주었던 엄마가 더이상 내 곁에 없다는 상실의 실감이었다. - P81

의기소침하고 외로웠던 나라는 엔진을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내 안에 이물질을 집어넣고 그것을 쫓아가도록 자극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나의 삶이라는 건축물에 색다른 블럭을 끼워넣음으로써, 새로운 분야의 초보가 됨으로써, 매너리즘과 헛된 욕심에 빠진 나로 하여금 첫마음을 돌아보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 P146

초보가 된다는 것은 여행자나 수강생처럼 마이너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지점에서 나를 바라보게 된다. 나이들어가는 것, 친구와 멀어지는 것, 어떤 변화와 상실, 우리에게는 늘 새롭고 낯선 일이 다가온다. 우리 모두 살아본적 없는 오늘이라는 시간의 초보자이고, 계속되는 한 삶은 늘 초행이다. 그러니 ‘모르는 자’로서의 행보로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하는 훈련 한두 개쯤은 해봐도 좋지 않을까. - P147

삶은 우리의 정면에만 놓여 있는 게 아니지만, 만약 정면에 놓여 있다면 그 또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뚫고 나가야 할 때라면 그렇게 해야겠지. 언제나 인간의 편으로 같은 자리를 지켜주는, 그래서 실생활에서는 쓸모없어 보이는 예술, 문학의 위로와 함께.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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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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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요시다 슈이치 장편소설

은행나무 출판



 

제15회 야마모토 슈고로상 수상작인 요시다 슈이치의 장편소설 《퍼레이드》가 출간 20주년을 기념하여 리커버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 나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이지만,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커뮤니케이션이 그리 원활하지 못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최소한의 유대를 갖고자 애를 썼으며, 그런 젊은이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 제15회 야마모토 슈고로상 수상 소감 중에서




 


20년이 지난 책이라 그 당시 젊은이들의 감성과 지금 젊은이들의 감성이 완전히 다를 거라 생각하며 책을 펼쳤는데, 기술의 발달로 통신과 환경이 발달한 것일뿐 현재와 다를 바 없는 공동생활의 삭막함과 개인주의는 마찬가지였다.

 

방 둘에 거실이 있는 아파트 401호에서 남자 셋, 여자 둘 5명의 청춘들이 우연히 동거를 하게 된다. 소설은 5명의 동거인들이 차례로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끄는 옴니버스식 전개로 구성되어있으나 화자가 바뀌어도 이야기는 계속되어 각 개인이 가진 사연을 듣고 내면의 감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스기모토 요스케”는 21세 H대학 경제학부 3학년으로 선배의 애인을 호시탐탐 노린다.

“오코우치 고토미” 23세 무직으로 인기 배우 ‘마루야마 도모히코’와 (비밀연애)열애 중이다.

“소우라 미라”는 24세 일러스트레이터 겸 잡화점 점장으로 삶을 고뇌하며 음주에 심취 하는 중이다.

“고쿠보 사토루”는 18세 자칭 ‘밤일’에 종사하는데 쓸모없는 젊음을 팔아치우는 중 이다.

“이하라 나오키”는 28세 독립영화사에 근무하고, 제54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향방을 예상 중이다.

 

 

처음은 한 공간 안에 생활하며 마음을 터놓는 것도 아니고 오롯이 주거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라 일정한 거리감을 두며 필요한 말만하는 동거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의 아파트 이웃과 인사하며 지내지 않는 현상처럼, 내가 쉬고 안락함을 위한 공간에 대해 침범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나만의 공간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잘 드러나 있었다.

 

이렇게 심심할 때면 왠지 시간이란 직선의 개념이 아니라 그 양끝이 연결된 원 같은 느낌이 들고, 아까 지나간 시간을 다시 한 번 새롭게 보내고 있는 듯한 생각도 든다. 현실감이 없다는 표현은 어쩌면 이런 상태를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P10 스기모토 요스케)

 

마지막에 요스케는 왜 울음을 터트렸던 것일까. 윤리적으로 선배의 애인을 뺏은 행동을 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자신을 믿고 있는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을 눈물로 보여준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집도 그런 장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싫으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있을 거라면 웃으며 생활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인간인 만큼 모두들 선의와 악의를 동시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마 미라이도 나오키도 요스케도 여기서는 모두 선인인 척 연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걸 두고 '계산된 교제'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게는 이 정도가 딱 좋다. 물론 이런 생활이 평생 지속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기간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순조로울 수 있고 나름대로 의미도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P103 오코우치 고토미)

 

잘생긴 마루야마와의 시간은 행복하지만 정신을 놓고 있는 미루야마의 어머니를 본 이후엔 고토미의 마음은 변해버렸다. 마루야마를 좋아해도 20대의 풋풋한 사랑을 즐기고 싶은 고토미였기에 선남선녀로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만을 바랄뿐 동정의 시선을 받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철부지 같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연예인으로 성공하는 남자와 요양이 필요한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것을 저울질하는 고토미가 현실적일 수도 있다.

 

고토미의 계산된 행동이 카톡이나 SNS소통이 없는 시대의 이야기임에도 공감이 가는 이유는 코로나를 겪은 이후 더욱 고립과 개인화를 겼었기 때문에 사회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적당한 거리감이 편안함을 준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은 아닐까.

 

만약 내가 익명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면 나는 절대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과장에 과장을 덧붙인 위선적인 자신을 연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세상에서는 ‘있는 그대로 산다’는 풍조가 마치 미덕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있는 그대로의 인간이란 나에게는 ‘게으르고 칠칠맞지 못한 생물’의 이미지로밖에 다가오지 않는다. (P141 소우라 미라이)

 

청춘. 호기심 그 어느 사이에 방황하는 젊은 피들은 들끓는 자신들의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했다가도 본성을 되찾으려는 내면의 분열들이 미라이에게 보였다.

 

요즘 들어 왠지 자주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항상 서 있는 공원에서, 손님과 깉이 머문 호텔에서, 손님의 집에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나온 사우나에서, 필로폰을 너무 많이 해 이불에 오줌을 쌀 뻔했던 마고토의 아파트에서……여러 장소에서부터 걷기 시작하지만, 언제나 걷기만 할 뿐 내게 도착지란 없다. (P233 고쿠보 사토루)

 

어릴 때부터 가족의 편안함을 알 수 없었던 소년은 문 열린 빈집에 들어가 그 집의 거주자들의 행동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그 사람의 취미나 성향을 몰래 훔쳐보며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정서의 빈 공간을 채워보려 한다. 그래서인지 18살임에도 밤일에 종사하며 미래 따위는 없는 무의미한 날들을 보내지만 나오키의 멋진 모습에 직업이라는 것을 가져보는 꿈을 꾸기도 하고 요스케와 고토(미)의 설득과 관심으로 대학이라는 것을 준비하려 한다.

 

고토 역시 최근 몇 달 동안 함께 살긴했지만, 내게는 단순한 친구 중의 한 사람일뿐이다. 사실 이 모호한 거리감이 어렵다. 우린 버럭 화를 낼 수 있을 만큼 가깝지도 않고, 눈앞에서만 짐짓 걱정해주는 척하며 끝낼 만큼 멀지도 않은 사이였다. (P272 이하라 나오키)

 

마지막 반전은, 충격이다. 모두가 가면을 쓴채 공동의 공간을 쓰는데 서로가 진짜 서로에 대해 몰랐을까. 어쩌면 내 주변에도 뉴스에 나올 법한 범죄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읽고 나를 제외한 모두를 경계하게 만드는 소설. (또는 모두가 나를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퍼레이드 #요시다슈이치 #은행나무 #개정판 #리커버 #일본소설 #청춘소설 #소설추천 #책추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𓂃𓏧 '은행나무'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이렇게 심심할 때면 왠지 시간이란 직선의 개념이 아니라 그 양끝이 연결된 원 같은 느낌이 들고, 아까 지나간 시간을 다시 한 번 새롭게 보내고 있는 듯한 생각도 든다. 현실감이 없다는 표현은 어쩌면 이런 상태를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P10 스기모토 요스케) - P10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집도 그런 장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싫으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있을 거라면 웃으며 생활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인간인 만큼 모두들 선의와 악의를 동시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마 미라이도 나오키도 요스케도 여기서는 모두 선인인 척 연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걸 두고 ‘계산된 교제‘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게는 이 정도가 딱 좋다. 물론 이런 생활이 평생 지속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기간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순조로울 수 있고 나름대로 의미도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P103 오코우치 고토미) - P103

만약 내가 익명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면 나는 절대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과장에 과장을 덧붙인 위선적인 자신을 연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세상에서는 ‘있는 그대로 산다’는 풍조가 마치 미덕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있는 그대로의 인간이란 나에게는 ‘게으르고 칠칠맞지 못한 생물’의 이미지로밖에 다가오지 않는다. (P141 소우라 미라이) - P141

요즘 들어 왠지 자주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항상 서 있는 공원에서, 손님과 깉이 머문 호텔에서, 손님의 집에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나온 사우나에서, 필로폰을 너무 많이 해 이불에 오줌을 쌀 뻔했던 마고토의 아파트에서……여러 장소에서부터 걷기 시작하지만, 언제나 걷기만 할 뿐 내게 도착지란 없다. (P233 고쿠보 사토루) - P233

고토 역시 최근 몇 달 동안 함께 살긴했지만, 내게는 단순한 친구 중의 한 사람일뿐이다. 사실 이 모호한 거리감이 어렵다. 우린 버럭 화를 낼 수 있을 만큼 가깝지도 않고, 눈앞에서만 짐짓 걱정해주는 척하며 끝낼 만큼 멀지도 않은 사이였다. (P272 이하라 나오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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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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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장편소설

문학동네 출판

 

10년 전 읽고 잊어버렸던 내용을 독파 챌린지로 다시 읽었다. 김훈 작가님의 문체는 감히 따라할 수 없는 먼 거리감이 있는데 어렵다고 느껴지지만 이상하게 그 감정들은 문장을 따라 전해왔다.

 

소설은 칼의 울음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로 시작한다.

적을 베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전쟁, 자신의 상징성을 위해 적 가토의 머리를 바치기 바라는 임금은 평양을 거처 의주까지 달아났다. 임금은 용맹한 장수, 강한 신하를 두려워해 때려죽이고 쳐죽이고 고문시켜 죽였다. 적이 오고 무너지는 전장을 지켰던 백성들을 적으로 대했어야 했을까. 정치도 자신의 자리도 그렇게 지켰어야 했을까. 읽으면서 그들이 속으로 삭혔어야 할 울분이 느껴져서 나도 함께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는 아무래도 그 시대 태어났다면 온전한 내 명대로 살긴 힘들었을듯 ㅎㅎ)

 

의금부 형틀에서의 심문은 무엇을 위해 그리 이순신장군을 고통으로 내몰았는지 헛것을 쫓고 있는 그들이 가엾다고 표현했다. 임금이 장군을 죽이면 적이 오니 죽일 수 없고 적 때문에 이순신은 살아났다. 정치를 모르는 아둔한 자신을 부끄럽지 않아했고, 임금의 장난감을 바칠 수 없는 자신의 무력을 한탄했다. 그들에게 분노하기 보다, 적의 미친 광狂을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힘이 없는 것에 더 집중했다.

 

기어코 일본놈들은 셋째아들 면이를 죽였다.

아들의 부고를 듣고 몰래 숨어 울어야만 했던 이순신장군도 아버지였다.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백성도, 도굴된 선왕들의 무덤이 있는 방향으로 절을 올리던 왕도, 모두 울음이 끊이지 않는다. 머리와 코가 잘린 백성들의 시체들이 수도 없이 쌓이고 먹을 게 없어 아이를 잡아먹는 사람들을 보며 이순신 장군은 몸속의 울음, 슬픔을 칼을 갈며 마음을 다잡는 듯하다.

 

끝도 없이 다가오는 적과 먹을 것이 부족하여 굶어죽고 이질에 걸려죽는 백성들의 죽음도 끝이 없다. 언제 이 이야기가 끝나는지 한숨나올 정도로 고통과 막막함뿐인 시간 속에서 죽기만을 바라고 있을 수는 없어야 하는 위치에 있어 더욱 슬펐다. 우수영을 떠난다고 했을 때 백성들은 모두 짐을 꾸리고 뗏목을 타며 이순신장군을 따랐다. 임금보다 자기 자신을 이순신에게 맡겼던 백성들은 자식모두 잃고 더이상 잃을 것도 없다고 울부짓으며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이 있을지 생각할 수는 있었을까. 암울했다.

 

이순신 장군의 감정들이 많이 드러나 있어 난중일기를 들추어본 것 같았고,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자신의 감정을 눈에 보이는 자연에서 찾은 문장들이 어찌할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고자 한 듯하다. 이렇게라도 해야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밝음을 붙잡았었길 생각해본다.

 

어둠 속에서 안개는 무겁게 가라앉았다.(P250)

누운 몸이 물결에 흔들렸다.(P257)

나는 달빛에 젖어 잠들었다.(P257)

해 지는 쪽 하늘에서 붉은 노을과 검은 노을이 어지럽게 뒤엉켰다.(P266)

 

부하들이 목이 잘린 얼굴의 눈과 마추진 그 장면, 적군인지 포로인지 소금에 절여진 쭈글해져 나이조차 가늠이 안되는 얼굴은 아무리 전쟁이다 할지라도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몸이 움직이는 데로 하지 않으면 미쳐버렸을 것 같은 상황들이 많았다. 이순신장군은 삼시세끼 밥을 다 먹었다. ‘말없이 그냥 먹었다’는 부분에서도 공감할 수 있듯이, 그들이 내게 준 위치는 밥벌이를 하라고 만든 자리이니 살아 바다로 나가야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이 문장을 읽는데 갑자기 김훈 작가님이 프강페 줌토크에서 한 말이 생각났다. 강연에 불려 나오셨다는 말씀...지긋지긋하다는 밥벌이 말씀과 함께ㅋㅋㅋ)

 

소설은 들리지 않는 사랑 노래 " 노량의 물결은 사나웠다." 로 끝이 났고, 이순신장군은 끝없이 밀려드는 적군들은 미칠 광狂자를 쓸만큼 그들이 무엇을 위해 저렇게 목숨을 바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임금에 의해 무의미하게 죽기보다 전장에서 수긍할 수 있는, 누구도 애도하지 않는 자연사로 기록되더라도 죽음의 방식을 본인은 적에 의해 죽음을 원했다. 그렇게 바다에서 칼의 노래는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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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 밑줄긋기

 

목이야 어디로 갔건 간에 죽은 자는 죽어서 그 자신의 전쟁을 끝낸 것처럼 보였다. 이 끝없는 전쟁은 결국은 무의미한 장난이며, 이 세계도 마침내 무의미한 곳인가. 내 몸의 깊은 곳에서, 아마도 내가 알 수 없는 뻣속의 심연에서, 징징징, 칼이 울어대는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등판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캄캄한 바다는 인광으로 뒤채었다. P17

 

나는 정치적 상징성과 나의 군사를 바꿀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한움큼이 조선의 전부였다. 나는 임금의 장난감을 바칠 수 없는 나 자신의 무력을 한탄했다. 나는 임금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함대를 움직이지는 않았다. 나는 즉각 기소되었다. 권율이 나를 기소했고 비변사 문인 관료들은 나를 집요하게 탄핵했다. 서울 의금부에서 문초를 받는 동안 나는 나를 기소한 자와 탄핵한 자들이 누구였던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정치에 아둔했으나 나의 아둔함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P28

 

임금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죽임으로써 권력의 작동을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길삼봉은 천 명이 넘었으나, 길삼봉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P42

 

히데요시는 그러하되, 물 위에서 죽음에 죽음을 잇대어가며 파도처럼 달려드는 그 무수한 적병들의 적의의 근본을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죽음의 물결은 충忠 이나 무武 라기보다는 광狂 에 가까웠다. P63



 

한산 통제영에서 장계를 쓰던 임진년의 여름밤은 달이 밝았다. 나는 내 무인된 운명을 깊이 시름하였다. 한 자루의 칼과 더불어 나는 포위되어 있었고 세상의 덫에 걸려 있었지만, 이 세상의 칼로 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덫을 칠 수는 없었다. P117

 

칼을 올려놓은 시렁 아래 면사첩을 걸었다. 저 칼이 나의 칼인가 임금의 칼인가. 면사첩 위 시렁에서 내 환도 두 자루는 나를 베는 임금의 칼처럼 보였다.

그러하더라도 내가 임금의 칼에 죽으면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고 내가 적의 칼에 죽어도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다. 적의 칼과 임금의 칼 사이에서 바다는 아득히 넓었고 나는 몸둘 곳 없었다. P121

 

나는 죽음을 죽음으로써 각오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각오되지 않는 죽음이 두려웠다.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두려웠다기보다는 죽어서 더이상 이 무내용한 고통의 세상에 손댈 수 없게 되는 운명이 두려웠다. 죽음은 돌이킬 수 없으므로, 그것은 결국 같은 말일 것이었다. 나는 고쳐 쓴다. 나는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 이러한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서, 캄캄한 바다 밑 뻘밭에 묻혀 있을 내 백골의 허망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P209

 

그 개별성 앞에서 나는 참담했다. 내가 그 개별성 앞에서 무너진다면 나는 나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때, 나는 칼을 버리고 저 병신년 이후의 곽재우처럼 안개 내린 산속으로 숨어들어가 개울물을 퍼 먹는 신선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적은 적의 개별성이었다.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적의 개별성이야말로 나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P264



 

나는 집중된 중심을 비웠다. 중심은 가볍고 소슬했다.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었다. 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버린 빈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었다.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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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미엄 강연 페스티벌(프강페)_ 2023.09.09. 오후 4시>

김훈 작가, 전종환 아나운서의 케미가 아주 아주 돋보였던 강연이 있었어요.



 

작가님의 글에 대한 생각, 연필을 쓰는 이유, 가장 신명나게 말씀하신 <자전거 여행> 책 내용 등 강연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아주 사적인 내용들이 많아 작가님께 한발짝 더 다가선 느낌입니다^^

아래는 작가님 말씀 중 제가 기억하고 싶은 내용 일부를 기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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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은 즐겁지만 써야한다는 것은 노동이다. 산문의 문체는 헐겁고 소설보다 좀 가볍다. 기사출신이란 점이 소설에서의 영향은 제로리스적이다. 6하 원칙의 글, 정보, 사실만을 논리적으로 배열한 글은 좋다. 강력하고 순결하고 조준점이 분명하다. 소설, 에세이에 도입하려 노력한다. 그런 문체, 스트레이트 문체는 좋아한다. 뼈, 틀만 갖고 글을 쓸 때 지나친 해석, 논평보다 그냥 쓰자.

수다를 떨지말자.

해석늘 너무하지 말자.

핵심만 가져가자.

 

헐거웠다는 말을 자주 쓰시는 작가님.

밥과 노동, 글쓰기.

밥벌이의 지겨움, 가장 인간에게 친숙하고 인간의 정서에 깊이 각인이 되는 것이다. 밥과 맛에 대한 느낌이 각인되어 있다. 헐거워지고 싶은 마음이 있다.

 

김훈체. 집을 짓는 것처럼 하나의 문장 안에 집 전체가 들어가게 해야 한다.

길어지면 산만, 수다, 흐트러진다. 깔끔, 단정한 문장을 쓰기로 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공간이 넓어지면 논리적으로 해석 안되서 독자가 허당에 빠진다. 전압 연결이 안된다. 공백이 많으면 전달이 안 되어 조정해 가면서 쓴다. 내공이 없는데 단문을 쓰면 헛헛한데 균형을 잡는게 중요하다.

 

글을 써서 이 세상을 바꾸고, 인간을 개조할 수 있다. 내면을, 인간을 구원하는 행위이다. 글의 힘을 믿는자들의 진실상을 믿는다. 나는 큰 소망을 갖고 있지 않지만, 남에게 이해받길 원하고 이해결과로 인간을 구성하는 조건으로부터 인간이 풀려나 느슨해지고 헐거워지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면에서 친절하지 않다.

 

연필은 진하고 미끄럽지 않은 것, 저항감 있는 연필을 쓰고, 흐리고 눈이 편한 원고지 칸을 쓴다. 책은 고전은 아니지만 세월에 의해 테스트를 받고, 무서운 풍화작용을 거친 책, 세월이 지난 것을 읽는다. 낙후되었지만 아름다움이 있다.

 

아날로그의 언어적 개념을 모르겠다. 직접적인 것이고, ‘만들다’, ‘하다’ 이 동사들은 아날로그의 동사이다. 동사는 아날로그였다.(아직도 이 설명은 어렵습니다...;;;)

디지털은 기호, 정보, 기계, 영상이 개입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간접적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글쓰기 시작은 쉽게, 결론까지 토탈 플랜으로 해야한다.

의문으로, 망설임으로 끝나도 된다.

나와 가까운 언어를 가져오는 게 좋다. 멀리, 큰 언어, 개념어는 표현력이 무뎌지고 개념에 의지하게 되어, 글은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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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노래 #김훈 #장편소설 #문학동네 #이순신 #독파 #북클럽문학동네 #프리미엄강연 #독파챌린지 #완독챌린지 #앰버서더3기 #앰버서더 #스테디셀러 #책추천 #서평

 

❤︎ 독파 앰버서더 3기로 ‘문학동네’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나는 정치적 상징성과 나의 군사를 바꿀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한움큼이 조선의 전부였다. 나는 임금의 장난감을 바칠 수 없는 나 자신의 무력을 한탄했다. 나는 임금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함대를 움직이지는 않았다. 나는 즉각 기소되었다. 권율이 나를 기소했고 비변사 문인 관료들은 나를 집요하게 탄핵했다. 서울 의금부에서 문초를 받는 동안 나는 나를 기소한 자와 탄핵한 자들이 누구였던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정치에 아둔했으나 나의 아둔함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 P28

임금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죽임으로써 권력의 작동을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길삼봉은 천 명이 넘었으나, 길삼봉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 P42

히데요시는 그러하되, 물 위에서 죽음에 죽음을 잇대어가며 파도처럼 달려드는 그 무수한 적병들의 적의의 근본을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죽음의 물결은 충忠 이나 무武 라기보다는 광狂 에 가까웠다. - P63

한산 통제영에서 장계를 쓰던 임진년의 여름밤은 달이 밝았다. 나는 내 무인된 운명을 깊이 시름하였다. 한 자루의 칼과 더불어 나는 포위되어 있었고 세상의 덫에 걸려 있었지만, 이 세상의 칼로 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덫을 칠 수는 없었다. - P117

칼을 올려놓은 시렁 아래 면사첩을 걸었다. 저 칼이 나의 칼인가 임금의 칼인가. 면사첩 위 시렁에서 내 환도 두 자루는 나를 베는 임금의 칼처럼 보였다.

그러하더라도 내가 임금의 칼에 죽으면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고 내가 적의 칼에 죽어도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다. 적의 칼과 임금의 칼 사이에서 바다는 아득히 넓었고 나는 몸둘 곳 없었다. - P121

나는 죽음을 죽음으로써 각오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각오되지 않는 죽음이 두려웠다.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두려웠다기보다는 죽어서 더이상 이 무내용한 고통의 세상에 손댈 수 없게 되는 운명이 두려웠다. 죽음은 돌이킬 수 없으므로, 그것은 결국 같은 말일 것이었다. 나는 고쳐 쓴다. 나는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 이러한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서, 캄캄한 바다 밑 뻘밭에 묻혀 있을 내 백골의 허망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 P209

그 개별성 앞에서 나는 참담했다. 내가 그 개별성 앞에서 무너진다면 나는 나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때, 나는 칼을 버리고 저 병신년 이후의 곽재우처럼 안개 내린 산속으로 숨어들어가 개울물을 퍼 먹는 신선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적은 적의 개별성이었다.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적의 개별성이야말로 나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 P264

나는 집중된 중심을 비웠다. 중심은 가볍고 소슬했다.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었다. 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버린 빈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었다.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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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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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소설
문학동네 출판

 

7편의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어둡고 힘들었던 시기와 잊고 있었던 어린시절, 포기하고 싶었지만 끝내 이루었던 순간들. 다양한 감정들을 나는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언어로 글로 표현한다는 것에 놀라웠다. 책 전체를 필사하먄 작가님 같은 언어를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만큼.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일 년>, <이모에게> 소설이 가장 좋았다. 다양한 인물들이 가진 삶이 나와 내 주변과 닮아있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살아내다보면 살아진다는 말을 고요하게 마음에 전달해준 책💛



🤍작가님과 줌 토크에서


*작가님이 최근에 읽은 책
- 대만 ‘우밍이 작가’의 <도둑맞은 자전거>
 (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를 읽고 알게 되었다.)
- ‘우춘희 작가’의 <깻잎 투쟁기>


*좋은 자극을 준 책
- ‘권여선 작가’의 <각각의 계절>
  작가님이 경력과 압력에 빠지지 않고 글을 잘 쓰는지 궁금하다.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 ‘포터’로 분위기는 원래도 작가님 환한 미소에 친근했지만 더 가까워진 느낌 ^^ 32-33쪽을 작가님 목소리로 들으니 이야기가 편하고 집중이 더 잘되었다. 


*책 이야기
- <파종>이라는 단어의 피상적이면서 저항하는 의미가 좋아 글을 쓰게 되면 제목으로 쓰고 싶었다.

- <답신> 썼을 때는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었다. 상처받고 보복하고 싶은 마음들이 있지만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은 잘 살고 있을 때의 절망들이 있었다. 유사한 상태의 인물이 있는데 경험을 하고 나서 시간이 지난 후, 끊어버리고 나아가고 싶다. 삶에 찾아오는 불행들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 


-마지막 문장을 쓰면 그 세계가 닫힌다는 생각으로 쓸 수가 없다. 사라지는 것은 내가 세계있다는 것을 잊는 고통을 잊는 것이고,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인물들과 만났던 시간과 인연은 내 안에 남아 있어 일체감이 있다. 글로 언어로 쓰면서 정리가 되고 납득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희원은 2009년 2학기, 구 년 전 스물일곱 대학교 3학년 학사 편입생. 
은행을 그만두고 늦게 대학생활을 하다 시간강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게 되는 일이 있다. 그녀의 글을 읽고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녀의 삶을 동경하고 또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생각하면서도 여자, 시간강사의 말이 주는 힘은 남자 정교수보다 약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한계에 있는 그녀에게 상처주는 말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자신이 동경했지만 자신도 그렇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눈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 같은 아련함이 가득했고, 아주 희미한 빛처럼 흐릿하게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어떻게 저런 표현을 글로 쓰는지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어도 너무 좋은 글 ❤️


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 언어화될 때 행복했고, 그 행복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던 종류의 감정이라는 걸 가만히 그곳에 앉아 깨닫곤 했다. 가끔은 뜻도 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다. 너무 오래 헤매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P11


퇴근해 책상 앞에 앉아 책에 밑줄을 긋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에 투명 망토를 두른 것 같았다고 그녀는 썼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기분이었다고. 그녀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세상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도 언제나 더 가깝게 느껴졌다고 썼다. 그럴 때면 벌어진 상처로 빛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그 빛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더 가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렇게 썼다. 

나는 그녀의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녀의 언어가 나의 마음을 설명해주는 경험을 했다.

나도, 더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P43-44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쫓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빛을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에게서 보고 싶었다. 그 빛이 사라진 후, 나는 아직 더듬거리며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어림해보곤 한다. 그리고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도. 나는 그녀가 갔던 곳까지는 온 걸까. 아직 다다르지 않았나. P 44







📚<몫>


신입 대학생 혜진, 희영, 한 살이 더 많은 정윤.  
공동체 안에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겨진 사람들의 몫. 사람으로써의 몫. 
풋풋했지만 누구보다 열정 강했고 삶에 대해 진심이었던 스무살. 왜 이 대학생들이 멋있게 보이는 걸까.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 될 수 있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P52




📚<일 년>


회사 선배인 그녀는 인턴 다희와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다희는 허물없이 귤을 까먹고 대화했는데 그 모습을 특이하게 느꼈다. 자신은 입사 초기 최선을 다하고도 낙담했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다희의 행동이 부러웠나 혹은 이해가 되지 않았었나. 

반복되는 체념 속에 빛을 잃어가고 껍데기만 남은 다희의 표현은 일상에 지쳐버린 일하는 사람들의 고됨같았다. 


오래 전 한 사람에게 힘든 일을 털어놓았고 그 사람만 보면 자동적으로 내 힘든 사정을 쏟아내듯 말하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 힘든 마음을 담아 내준 사람이지만 그 힘듦을 담고 있어서 알고 있어서인지 어느 순간 내가 자꾸 거리를 두게 된 적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실망하는 거죠. 전 언제나 사람들의 기대만큼 밝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아, 너 이런 애였니? 이러고 가버리는 거예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말하고 다희는 힘없이 웃었다. 
그래서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잃고 싶지 않으니까 무리를 하게 돼요.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어서. P97


살아진다. 그러다보면 사라진다. 고통이, 견디는 시간이 사라진다. 어느 순간, 그녀는 더 이상 겉돌지 않았고, 그들의 세계에 나름대로 진입했다. 모든 건 변하고 사람들은 변덕스러우니까. 그러나 그 후에도 그녀는 잠들지 못하거나 질이 낮은 잠을 끊어 자며 아침을 맞았다. P108


🔖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P115 (-서운함을 이렇게 글로 표현한다는 것에 또 놀라움🩵)



애정이 상처로 돌아올 때 사람은 상대에게 따져 묻곤 하니까. 그러나 어떤 기대도, 미련도 없는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을 걸어 잠근다. P119



 


사람들은 때로 누군가에게 진심을 털어놓고는 상대가 자신의 진심을 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상대를 증오하기도 하니까. P120






📚<답신>


엄마를 닮은 나와 아빠를 닮은 언니. 그런 언니에게 수치스럽다, 창녀같다는 말은 어린 아이에게 상처가 될 거라는 걸 알고 한말이었을까. 아빠는 남겨진 딸들에게 꼭 그렇게 생채기를 내야했을까. 

나쁜남자의 절정을 달리는 형부와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려는 언니. 언니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내가 느낀 언니에 대한 감정을 조카는 알아주길 바래서 편지를 쓴 것 같다. 많이 슬프고 여자를 기만하는 남자들로 기분이 나쁘게 만든 소설. (너무 공감이 되어서요^^)


그렇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남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니고 남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느라 나의 욕구를 무시했지. 그때 내가 느꼈던 가장 큰 두려움은 다른 사람들이 내게 실망하는 거였어. 나는 절대로, 절대로, 누군가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 P133


밤하늘 아래의 불빛들이 반짝이면서 너는 앞으로도 살아야 해, 살아가야 해, 하고 낮게 합창하는 것 같았어. 더 알고 싶은 것도, 더 해보고 싶은 것도 없는데, 이젠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데, 그런데도 살아야 한다고 자꾸만 누가 내 등을 떠미는 것 같았지. P160-161




📚<파종>


창작과비평 문학부분에서 읽고 이번 소설집에서 두 번째이다.
소리와 엄마는 소라의 삼촌이자 엄마 민주의 오빠의 빈자리를 그리워한다. 오빠가 떠나기전 그녀의 힘든 것을 손바닥에 다 주고 가져가겠다는 말을 하지만 고개를 흔들며 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오빠가 이제는 편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담겨있었다. 소리와 엄마는 삼촌이 일구던 밭을 다시 일구며 그의 흔적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리운 마음을 함께 해본다.


삶을 이어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저렇게 동생의 힘든 마음까지 생각할 수 있을까. 가정폭력 속에 자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가족의 아픔을 본인 마음에 품어줄 수 있는지  삼촌은 따뜻한 사람이었고, 충분히 빈자리가 느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언어로 그 적는 순간순간들을 복원했다. P186



 

세상은 온통 뿌옇게 보였다. 누구도 그녀에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때 그녀는 처음으로 막연함을 느꼈다. 막연한 두려움, 막연한 슬픔, 막연한 외로움.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 시간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에 가지 않고 길을 돌고 돌았다. 그렇게라도 시간을 버리고 싶었다. P204-205




📚<이모에게>


파종의 삼촌 같은 남자는 드물다. 대게의 남자들음 밥상 숟가락도 안놓거나 여자를 깔보는게 습관인 사람들이 자주 나오는데 이모에게의 아빠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
희진은 엄마보다 나이가 20살도 넘게 차이나는 이모와 함께 살며 이모의 양육방식으로 자랐고, 부모에게도 할 수 없었던 감정을 유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대상이 이모였다.


어릴 적 함께 살았던 막내 고모가 생각났다. 맞벌이 부모님을 대신해 숙제도 곧잘 봐줬던 고모. 어른들의 관계로 연락도 이제는 닿지 않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늘  있었던 고모는 희진의 이모같은 느낌이어서 그런지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이렇게 잘 컸고, 잘 살고 있다고 보여주면서. 


고통스러울 정도로 나를 몰아세우자 놀랍게도 나를 아프게 하는 생각의 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건 가학적으로 귀를 막으면서 진짜 문제들을 뒤로 미루는 방식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내가 꽤 잘해내고 있다고 믿었다. P246


더 나은 존재가 되어간다는 고양감에는 중독성이 있었다. P247


돌아보면 그 시절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나의 공포와 분노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그러지 않기 위해 나는 쉽게 겁내지 않고, 사소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연출했다. P248




📚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헐값에 어린 막내를 팔아버린 가족. 식모살이로 성장한 기남은 홍콩에 사는 둘째 딸 우경이 자식임에도 불편하다. 세월이 지나 가족이라고 생모 생신 잔치에 초대받았지만 불청객같은 대우에 기남은 명동 거리를 방황한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은 가족과 주변으로부터 식모살이하는 사람이었고, 결혼해서도 남편과 자식에게 무시받는 사람이다. 탁구를 칠 때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과 감정이 편하다고 느낄만큼 자신에게 뿌리 깊이 주변의 멸시의 행동과 시선이 익숙했던 기남. 


나도 어쩌면 그 사람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직업과 자라온 환경만으로 무시하지는 않았나. 가족이나 친구에게 그런 시선을 보내진 않았나 생각해보게 했다.




#아주희미한빛으로도 #최은영 #소설 #문학동네 #독파 #독파챌린지 #완독챌린지 #앰배서더3기 #앰배서더 #신간도서 #책추천 #최은영을읽는물결 #진실-치열-용기 #뒤늦게깨달은사랑 #스스로의몫 #돌봄 #서평 #내돈내산

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 언어화될 때 행복했고, 그 행복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던 종류의 감정이라는 걸 가만히 그곳에 앉아 깨닫곤 했다. 가끔은 뜻도 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다. 너무 오래 헤매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P11

퇴근해 책상 앞에 앉아 책에 밑줄을 긋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에 투명 망토를 두른 것 같았다고 그녀는 썼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기분이었다고. 그녀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세상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도 언제나 더 가깝게 느껴졌다고 썼다. 그럴 때면 벌어진 상처로 빛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그 빛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더 가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렇게 썼다.

나는 그녀의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녀의 언어가 나의 마음을 설명해주는 경험을 했다.

나도, 더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 P43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쫓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빛을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에게서 보고 싶었다. 그 빛이 사라진 후, 나는 아직 더듬거리며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어림해보곤 한다. 그리고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도. 나는 그녀가 갔던 곳까지는 온 걸까. 아직 다다르지 않았나. - P44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하고 강한 글을, 첫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을, 그래서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 될 수 있는 글을,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로 변화시켜 누군가와 이어질 수 있는 글을 - P52

그러다가, 실망하는 거죠. 전 언제나 사람들의 기대만큼 밝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아, 너 이런 애였니? 이러고 가버리는 거예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말하고 다희는 힘없이 웃었다.
그래서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잃고 싶지 않으니까 무리를 하게 돼요.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어서. - P97

살아진다. 그러다보면 사라진다. 고통이, 견디는 시간이 사라진다. 어느 순간, 그녀는 더 이상 겉돌지 않았고, 그들의 세계에 나름대로 진입했다. 모든 건 변하고 사람들은 변덕스러우니까. 그러나 그 후에도 그녀는 잠들지 못하거나 질이 낮은 잠을 끊어 자며 아침을 맞았다. - P108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 P115

사람들은 때로 누군가에게 진심을 털어놓고는 상대가 자신의 진심을 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상대를 증오하기도 하니까. - P120

밤하늘 아래의 불빛들이 반짝이면서 너는 앞으로도 살아야 해, 살아가야 해, 하고 낮게 합창하는 것 같았어. 더 알고 싶은 것도, 더 해보고 싶은 것도 없는데, 이젠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데, 그런데도 살아야 한다고 자꾸만 누가 내 등을 떠미는 것 같았지. - P160

자신의 언어로 그 적는 순간순간들을 복원했다. - P186

세상은 온통 뿌옇게 보였다. 누구도 그녀에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때 그녀는 처음으로 막연함을 느꼈다. 막연한 두려움, 막연한 슬픔, 막연한 외로움.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 시간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에 가지 않고 길을 돌고 돌았다. 그렇게라도 시간을 버리고 싶었다. - P204

돌아보면 그 시절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나의 공포와 분노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그러지 않기 위해 나는 쉽게 겁내지 않고, 사소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연출했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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