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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못 버린 물건들 - 은희경 산문집
은희경 지음 / 난다 / 2023년 8월
평점 :
『또_못 버린 물건들』
은희경 산문
난다 출판


주부로 늙어가는 즐거움과 하소연.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살림살이의 고달픔. 그럼에도 일상이라 할 수 밖에 없는 글이지만 이 산문이 더 와닿은 이유는 물건들이 나라는 것, 나의 시간들이었다는 것. 버리지 못하는 나에게 집착이 무엇이었는지를 들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다 필요해서 샀던 것이고 모아보고 돌이켜보면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물건들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물건들의 색이 바래진다는 것은 낡아지는 것에 대한 쓸쓸함일 수 도 있는데, 어쩌면 그런 물건들은 쓰임이 다 했기에 버려지는 것이지만 정을 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좀 더 그 시간들을 잡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책 속에 나오는 글처럼 물건과 잘 이별해야하는데 그냥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이 그 시간을 그렇게 처분해버리는 것을 볼 수 없어서 붙잡고 있었을지도.
헌 물건을 버리고 새로운 물건을 사는 일. 그리고 잘 보내주는 일은 아직은 익숙하지 않지만 용기내어 해야 내 과거, 현재, 미래를 잘 정리하는 일은 아닐까 생각한다.
물건 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새롭게 시작하는 초보자, 마이너가 될 수 있으니 용기를 내라고 말한다. 늘 익숙함에 머물러 있기보다 낡고 헤지면 새로 바꾸어야 하는 것처럼 자연스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우울해할 필요없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이니.
유독 <반지> 글을 읽으면서 나도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자라면서는 왜 그렇게 우리에게 소홀했는지 섭섭했고, 다 커서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알면서도 변화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답답해했다. 그러면서도 엄마의 빈자리가 늘 그리웠고 함께 했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현재의 잠깐 잠깐의 시간을 또 그런 행복으로 채워보기도 한다. 엄마의 인생이라는 것도 있었음을 내가 살아보니 알겠고 또 그 시대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아 속상해 했을 엄마에게 고생많았다고 나도 이제 잘 산다며 포근히 안아주고픈 마음도 든다. 그렇게 못했던 기억을 내가 알면 엄마도 아는 것이겠지. 내가 아이의 표정만 보아도 아는 것처럼.
내가 행복을 너무 슬픔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나름의 행복으로 잘 살고 있는 삶인데 내 기준으로 힘들었겠다고 판단하고 미리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많이 바뀌었고 배웠다 생각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부모님께는 왜 적용하지 않았나. 죽은 사람을 기억할 때 슬픈 기억보다 추억하고 행복했던 시절들을 떠올려보듯 살아계실 때에도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고 더 다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따스함을 전달해드리는 것 남에게도 하면서 엄마 아빠에게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투덜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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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 밑줄긋기
그 시절의 나에게 음주는 일종의 시간제 타락 체험 같은 것이었다. 그 체험장에 입장하면 생활에 시달리고 타인에게 위축된 나 대신 무책임하고 호탕한 내가 있었다. 취한 눈으로 나를 보니 소심하고 고지식하다고만 알아온 내가 제법 솔직하고 웃기고 패기조차 있고, 무엇보다 좌절된 꿈을 가슴 깊이 숨긴채로 살아가는 게 아닌가. P15
급히 쟁반에 잔을 챙기는데, 모여 앉은 사람 수대로 유리잔 다섯 개는 가까스로 갖춰놓았지만 짝이 맞는 게 한 벌도 없었다. 크기조차 다 달라서 맥주를 따르니 술의 양도 제각각이었다. 그 술상이 어쩐지 임시변통으로 살아가는 내 삶의 남루한 모습 같았다. P16
집안 구석구석 처박혀 있던 오래된 물건들이 그 집에서 살아낸 세월을 하나하나 떠오르게 했고, 버릴 물건과 아닌 물건을 가리다보면 어느샌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추억에 잠겨 있곤 했다. P78

엄마가 돌아가신 뒤 엄마를 의식하고 엄마의 범주 안에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새로운 장소나 여행지에 갈 때마다 그곳에 엄마가 있다면 분명 이랬을 거라고 떠올리게 되는 일. 그것은 엄마가 그 장소를 즐길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혹은 내가 더 잘했더라면 하는 후회와 아쉬움만은 아니었다. 나를 믿어주었던 엄마가 더이상 내 곁에 없다는 상실의 실감이었다. P81
의기소침하고 외로웠던 나라는 엔진을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내 안에 이물질을 집어넣고 그것을 쫓아가도록 자극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나의 삶이라는 건축물에 색다른 블럭을 끼워넣음으로써, 새로운 분야의 초보가 됨으로써, 매너리즘과 헛된 욕심에 빠진 나로 하여금 첫마음을 돌아보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P146-147
초보가 된다는 것은 여행자나 수강생처럼 마이너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지점에서 나를 바라보게 된다. 나이들어가는 것, 친구와 멀어지는 것, 어떤 변화와 상실, 우리에게는 늘 새롭고 낯선 일이 다가온다. 우리 모두 살아본적 없는 오늘이라는 시간의 초보자이고, 계속되는 한 삶은 늘 초행이다. 그러니 ‘모르는 자’로서의 행보로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하는 훈련 한두 개쯤은 해봐도 좋지 않을까. P147
삶은 우리의 정면에만 놓여 있는 게 아니지만, 만약 정면에 놓여 있다면 그 또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뚫고 나가야 할 때라면 그렇게 해야겠지. 언제나 인간의 편으로 같은 자리를 지켜주는, 그래서 실생활에서는 쓸모없어 보이는 예술, 문학의 위로와 함께.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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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쟁반에 잔을 챙기는데, 모여 앉은 사람 수대로 유리잔 다섯 개는 가까스로 갖춰놓았지만 짝이 맞는 게 한 벌도 없었다. 크기조차 다 달라서 맥주를 따르니 술의 양도 제각각이었다. 그 술상이 어쩐지 임시변통으로 살아가는 내 삶의 남루한 모습 같았다. - P16
집안 구석구석 처박혀 있던 오래된 물건들이 그 집에서 살아낸 세월을 하나하나 떠오르게 했고, 버릴 물건과 아닌 물건을 가리다보면 어느샌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추억에 잠겨 있곤 했다 - P78
엄마가 돌아가신 뒤 엄마를 의식하고 엄마의 범주 안에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새로운 장소나 여행지에 갈 때마다 그곳에 엄마가 있다면 분명 이랬을 거라고 떠올리게 되는 일. 그것은 엄마가 그 장소를 즐길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혹은 내가 더 잘했더라면 하는 후회와 아쉬움만은 아니었다. 나를 믿어주었던 엄마가 더이상 내 곁에 없다는 상실의 실감이었다. - P81
의기소침하고 외로웠던 나라는 엔진을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내 안에 이물질을 집어넣고 그것을 쫓아가도록 자극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나의 삶이라는 건축물에 색다른 블럭을 끼워넣음으로써, 새로운 분야의 초보가 됨으로써, 매너리즘과 헛된 욕심에 빠진 나로 하여금 첫마음을 돌아보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 P146
초보가 된다는 것은 여행자나 수강생처럼 마이너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지점에서 나를 바라보게 된다. 나이들어가는 것, 친구와 멀어지는 것, 어떤 변화와 상실, 우리에게는 늘 새롭고 낯선 일이 다가온다. 우리 모두 살아본적 없는 오늘이라는 시간의 초보자이고, 계속되는 한 삶은 늘 초행이다. 그러니 ‘모르는 자’로서의 행보로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하는 훈련 한두 개쯤은 해봐도 좋지 않을까. - P147
삶은 우리의 정면에만 놓여 있는 게 아니지만, 만약 정면에 놓여 있다면 그 또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뚫고 나가야 할 때라면 그렇게 해야겠지. 언제나 인간의 편으로 같은 자리를 지켜주는, 그래서 실생활에서는 쓸모없어 보이는 예술, 문학의 위로와 함께.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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